에포크타임스

무역전쟁 속 드러난 중국의 ‘美 의약품 지배력’

2025년 04월 24일 오후 8:26

2020년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팬데믹이 미국 전역의 병원들을 덮쳤을 때 의료 현장에서는 마스크, 장갑 등 필수 의료 물자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의약품 산업 분야에서 세계 선두를 달리는 미국이었지만 이번 사태는 외국산 의료 물자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이에 따라 정치권과 보건 당국은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문제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코로나 펜데믹이 발생한 뒤 몇 년이 흐른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의료용품 유통업체 ‘딜메드(Dealmed)’의 창립자 마이클 아인혼은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2020년 3월 코로나 팬데믹 초기 중국에서의 선적이 전면 중단되면서 발생한 ‘물류 악몽’을 직접 경험했다고 회상했다.

아인혼에 따르면 미국의 제네릭 의약품(복제약) 공급망은 여전히 해외 생산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의약품 성분과 원자재의 상당량이 중국에서 공급되고 있다.

이 같은 현실을 인식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4월 1일(이하 현지 시간) 의약품 및 그 원료의 수입이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기 위한 이른바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Section 232 Investigation)’에 착수했다.

같은 시기에 반도체에 대한 별도 조사가 동시에 시작됐다. “232조 조사는 정말 오래전부터 예고된 일이었다”고 아인혼은 말했다.

미국 내 생명 유지 필수 의약품 공급이 중국 정권의 강력한 통제 아래 놓이게 된 것은 하루아침의 일이 아니다. 이는 주요 산업을 지배하려는 베이징의 전략적 움직임, 미국 보건의료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 그리고 워싱턴의 결단력 부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업계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들은 특히 의약품 산업은 자동차 산업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자동차 부문에서는 정부가 전략 없이 관세를 부과할 경우 공급난과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제약 산업에서는 그러한 전략적 접근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점이 중국에 막대한 이점을 준다. 불행하게도 중국이 모든 패를 쥐고 있다”고 아이혼은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 같은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국가 안보 위협으로 번진 의약품 의존

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수년간 의약품 생산을 중국과 기타 해외 국가로 이전하면서 미국은 다수의 생명 유지 필수 의약품을 자국 내에서 생산할 능력을 상실했고 이는 곧 국가 안보 위협으로 직결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건 인간이 만든 문제지만, 해결은 가능하다.” ‘China Rx: 미국의 중국산 의약품 의존의 위험을 폭로하다(China RX: Exposing the Risks of America’s Dependence on China for Medicine)‘의 공동 저자 로즈메리 깁슨은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에포크타임스가 제작하는 심층 인터뷰 프로그램 ‘미국의 사상 리더들(American Thought Leaders)’ 진행자 얀 예켈렉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미국의 의약품 시스템은 대규모 실패와 막대한 인명 피해를 초래하도록 완벽하게 설계된 구조다. 이 시스템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깁슨에 따르면,  이제 미국에서는 항생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자체 생산할 수 없다. 페니실린도 만들지 못하고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질환인 폐혈증 치료에 필요한 항생제도 만들 수 없다. 폐렴이나 성병 치료에 필요한 항생제조차 생산하지 못한다.

2007년 8월 7일,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퍼블릭스 슈퍼마켓 약국에서 한 약사가 처방 전용 항생제를 계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년간의 해외 생산 이전으로 인해 미국이 다수의 생명 유지 의약품을 자체 생산하지 못하게 됐고 이는 국가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고 경고한다. | 조 레이들/게티이미지

새로운 232조 조사는 “완제품 제네릭 및 비제네릭 의약품, 의약품 대체물, 활성 제약 성분과 주요 원재료와 같은 중요한 투입물, 그리고 그들에게서 파생된 제품”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해당 문서에서 밝혔다.

많은 국가 안보 전문가는 이번 조사 후 미국 정부가 중국에 대한 높은 약품 의존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잘 설계된 전략적 계획을 제시하길 기대하고 있다.

“한 나라가 산업 기반을 상실하면, 즉 실제로 물건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되면 그 나라는 매우 취약한 상태에 처하게 된다.” 미국 육군 대령 출신이며 ‘국가 전략 위험위원회(Council on Strategic Risks)’의 방문 선임 연구원 빅터 수아레즈는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수아레즈 연구원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수백만 명의 미군 병사들이 해외에서 싸우고 있었지만 그들의 노력은 민간 부문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 언급했다. 그는 자동차와 가전제품을 생산하던 공장들이 전쟁 물자를 생산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전환됐음을 지적했다.

그는 “정말로 산업이 우리 나라를 구한 것이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로즈메리 깁슨은 자신의 저서에서 베이징이 제약 산업과 같은 주요 산업을 지배하기 위해 자신들의 전략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설명했다. 깁슨은 이러한 무역 관행들이 2000년대 초 미국 내 마지막 페니실린 발효 공장이 사라지는 데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강조했다.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후 값싼 페니실린 원자재를 시장에 대거 유입시키기 시작했다. “중국은 이를 매우 저렴한 가격에 팔면서 미국, 유럽, 심지어 인도 생산자들을 몰아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깁슨은 말했다. “결국 중국은 페니실린 원료의 지배적인 글로벌 공급자가 됐고 그 후 가격을 올렸다.”

2007년 8월 3일 중국 베이징의 동인당 공장에서 직원들이 캡슐 의약품 생산 라인을 지켜보고 있다.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값싼 페니실린 원료를 시장에 대거 공급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미국이 제네릭 의약품에 사용되는 핵심 성분의 95%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고 추정한다. | 더 엥쿤/AFP‧게티이미지/연합

중국의 숨겨진 무기: 의약품 원료

중국은 세계 의약품 원료 시장에서 지배적인 공급 국가다. ‘China Rx’의 공동 저자 깁슨은 미국이 제네릭 의약품 생산에 필요한 핵심 성분의 95%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고 추정한다.

설령 미국이 중국산 완제품 의약품에 대한 의존도를 줄인다 하더라도 ‘핵심 출발 물질(KSM)’이나 ‘활성 제약 성분(API)’ 등 주요 구성 요소를 중국에 의존하는 국가들 입장에서는 여전히 의약품을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의약품 공급망은 다단계 생산 구조를 따른다. 기초 원료인 KSM은 대부분 중국에서 생산되며 이후 인도 등지로 보내져 API가 만들어진다. 일부 고품질 의약품 및 API는 아일랜드 등지에서도 제조되며 최종 완제품은 다시 미국으로 수출된다.

딜메드의 아인혼은 “KSM 없이는 API를 만들 수 없고, API 없이는 완제품 의약품을 만들 수 없다. 결국 중국이 세계 의약품 공급망의 가장 기초에 자리 잡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제약 산업에 대한 관세 부과가 미국 내 제조업을 활성화하고 해외 의존도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자국에서 의약품을 생산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5일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약사들은 아일랜드에 있고, 다른 많은 나라들—중국에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다.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다”라며 “관세가 높을수록 그들이 더 빨리 (미국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단계는?

현재 진행 중인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의 일환으로 미국 정부는 업계 리더, 무역 단체, 학계, 전문가 등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로부터 자료와 의견을 수집 중이다.

하워드 루트닉 상무장관은 지난 13일 A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제약 및 반도체 산업에 대한 관세 결정은 1~2개월 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제약 및 반도체 산업에 대한 분야별 관세는 “다른 나라들과 협상 대상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루트닉 상무장관은 “이것들은 단순히 이 나라에서 반드시 자체 생산돼야 할 핵심 국가 안보 품목의 제조업체들을 국내로 회귀(리쇼어링)시키기 위한 조치의 일환일 뿐”이라고 말했다.

2025년 3월 14일 백악관 북쪽 잔디광장에서 TV 인터뷰를 마친 후 기자와 대화하고 있는 하워드 루트닉 상무장관. | 앤드루 하닉/게티이미지

수아레즈 연구원은 단순한 관세만으로는 국가 전략을 실현하기에 충분치 않다고 보고 있다.

“국내 제조업체를 실질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어떤 형태든 인센티브 정책이 필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이어 생산 확대, 시설 현대화, 장비 구입을 추진하는 기업에 세금 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미국인들이 복용하는 처방약의 90~92%가 제네릭 의약품이란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가장 큰 역할을 해야 할 분야는 바로 이 제네릭 부문이다. 왜냐하면 이쪽은 브랜드 의약품처럼 벤처 캐피털이나 사모펀드의 투자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아레즈 연구원은 또한 1970년대부터 유지되어 온 ‘전략비축유(SPR)’와 유사한 형태의 ‘전략 의약품 비축 제도(a strategic reserve for pharmaceuticals)’ 도입을 주창했다.

그는 KSM과 API를 장기 보관할 수 있는 재고 시스템을 미국 내에 갖춘다면 전략적 유연성과 기동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 최대 규모의 비상용 비축 원유인 미국의 SPR은 1973~1974년 아랍 산유국의 석유 금수 조치로 촉발된 글로벌 에너지 위기를 계기로 만들어졌다.

수아레즈 연구원은 “책임 있는 조직이라면 어느 곳이든, 국가든 기업이든 항상 비상 계획을 갖고 있다”라며 반문했다. “그런데 왜 미국의 제약 산업에는 그런 계획이 없다는 것인가?”

*박경아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