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전 총리 부인, 연일 시진핑 저격 게시물…중화권 관심

리셴룽 전 총리 부인 호칭, 트럼프 관세에 고립된 시진핑 풍자
앞서 21일에는 시진핑을 ‘조폭 두목’에 비유한 칼럼 공유하기도
중국 문제 전문가 “호칭, 중국 정치권과 연계…왕치산과 가까워”
중국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온 싱가포르의 리셴룽 전 총리 부인 호칭(Ho Ching·何晶)이 연일 중국 공산당 총서기 시진핑을 비판하는 게시물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호칭은 최근 시진핑이 마스크를 쓰고 외롭게 의자에 앉아 있는 사진을 직접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이 사진은 싱가포르 싱크탱크 연구원 마이클 페트레이어스가 지난 10일 온라인 매체 ‘크리티컬 스펙테이터’에 기고한 칼럼의 일부를 캡처한 것이었다.
이 칼럼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 관세와 관련해, 협상 의사를 밝힌 75개국은 90일의 유예 기간을 갖게 됐지만 홀로 보복에 나선 중국 공산당이 국제적으로 고립되면서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트럼프의 대중국 공산당 강경책에 맞서 동남아 순방길에 오른 시진핑의 행보를 “구애 공세(Charm offensive)”라며 “정말 우스꽝스러운 볼거리”라고 꼬집었다.
칼럼은 “지난 10여 년 황제로 군림하며 몰염치하게 약탈하려던 이웃 국가들을 향해 협력을 간청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은, 현재 중국(공산당)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인지를 보여준다”고 논평했다. ‘몰염치한 약탈’의 사례로는 중국 공산당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수출 부진과 공급망 이탈 등 안팎의 압력을 받고 있는 중국 공산당은 “곧 동맹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며,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시진핑이 마스크를 쓴 채 실외에서 의자에 혼자 앉아 있는 사진을 게재했다.
호칭이 해당 칼럼에서 이 사진이 나온 부분을 캡처해 올린 것은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보복하려다가 국제적으로 고립된 중국의 현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호칭, 단순한 유명 인사 아냐… 왕치산과 각별한 관계”
호칭의 시진핑 비판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21일 그녀는 시진핑을 ‘깡패 조직 두목’에 빗댄 칼럼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유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칼럼 역시 페트레이어스 연구원이 쓴 것으로, “중국 최고 지도자 시진핑은 지난 12년간 마피아 보스처럼 행동했다”는 비판을 담고 있다. 주변국에 거절하기 힘든, 협박에 가까운 제안을 일삼다가 이제는 피해자들에게 자신을 친구이자 파트너로 받아 달라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리셴룽 전 총리의 부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호칭은 그녀 자신이 중화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다. 총자산 2,880억 달러의 세계 10위 국부펀드인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의 전 최고경영자(CEO)이며, 현재는 중국 칭화대 경영대학 자문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중국 평론가 탕징위안은 “호칭은 단순한 유명 인사가 아니다. 그녀는 중국 전 국가부주석이자 시진핑의 반부패 선봉장을 맡았던 왕치산과도 각별한 관계로 알려져 있다. 2007년 왕치산이 베이징 시장 시절, 호칭을 공식 접견한 일도 있다”고 말했다.
탕징위안은 “호칭이 연이은 시진핑 비판을 개인 의견 표명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녀가 왕치산과 가까우며 칭화대 경영대가 중국 정치권에서 ‘주룽지-왕치산 계파(朱王派系)’와 ‘밀접한 사이’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공산당 내부 파벌의 견해를 일부 반영한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비난 여론에도 한동안 게시물 유지…시진핑이 두렵지 않다?
주룽지-왕치산 계파는 중국에서 주룽지 전 총리와 왕치산 전 부주석을 중심으로 한 실용주의 노선 세력을 가리킨다. 외자 유치 등 개방적인 경제 개혁과 국유기업 구조조정, 부패 척결에 방점을 두고 있다. 왕치산은 시진핑 집권 초기 반부패 운동의 핵심 역할을 맡았으나, 그 이전에 주룽지 전 총리의 최측근이자 비슷한 정치 사상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탕징위안은 호칭이 시진핑의 보복을 아랑곳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도 분석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은 2024년 3월 기준 739억 싱가포르달러(약 74조 원)를 중국에 투자한 바 있다.
탕징위안은 “시진핑을 비난하면 테마섹이 보복당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호칭이 이런 게시물을 올린 것은 시진핑의 눈 밖에 나는 것이 두렵지 않다는 의미다. 그녀와 중국 공산당 원로 세력의 관계를 고려하면, 중국 내부의 반(反)시진핑 세력을 염두에 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녀의 게시물을 두고 싱가포르 일각에서 삭제 요구가 제기되기도 했으나 호칭은 한동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그대로 게시물을 유지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23일 오전까지 열람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23일 오후 기준 해당 게시물 2편은 페이스북에서 사라졌다. 게시물 링크를 클릭하면 “이용할 수 없는 콘텐츠”로 표시된다. 게시물이 삭제됐거나 일부 공개 혹은 비공개된 경우에 나타나는 메시지다. 싱가포르를 벗어나 중화권 전체에서 논란이 확산되자 부담을 느꼈거나, 목적을 달성해 호칭 스스로 삭제 또는 비공개한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중국 내부에서 시진핑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분석과 정황은 지난해 말부터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RFA에 따르면, 지난 1월에는 시진핑이 다녀간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의 한 식품 상가에서 3일 후 정체불명의 물체가 폭발해 ‘테러’ 논란이 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