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

프라 안젤리코의 프레스코화 “관조를 통한 묵상·기도·헌신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

2025년 04월 21일 오후 10:13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 마르코 수도원에서는 미술이 도미니코회 수도사들이 영적 세계와 교감하는 데 중요한 매개 역할을 했다. 공동 공간과 개인 기도실에 걸린 프레스코화들은 그리스도의 생애 장면을 묘사하며 수도사들이 명상에 잠기게 했다. 수도사의 영적 성찰이 깊어질수록 더 복잡하고 심오한 내용의 프레스코화들이 그의 묵상을 위해 제공됐다. ‘프레스코(Fresco)’란 젖은 석회벽 위에 물에 녹인 안료를 직접 칠하는 벽화 기법으로, 석회가 마르면서 안료가 벽에 스며들어 벽면과 일체화되므로 오래 보존되는 장점이 있다.

산 마르코는 교회와 수도원으로 구성된 도미니코회 복합 단지로, 설교자 지롤라모 사보나롤라의 거처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프라 안젤리코(약 1395~1455년)의 신비로운 프레스코화들과 르네상스 인문주의자 피코 델라 미란돌라의 묘지가 있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이 수도원은 처음에는 발롬브로사회 수도원이었으며 이후 실베스트로회 수도사들이 사용하다 15세기 초 도미니코회에 넘겨졌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후기를 대표하는 화가, 건축가, 예술사가인 조르조 바사리(1511~1574년)의 유명한 예술가 전기집 ‘가장 뛰어난 화가, 조각가, 건축가들의 생애(The Lives of the Most Excellent Painters, Sculptors, and Architects)’에 따르면 1437년 이탈리아의 유력한 은행가이자 정치가였던 코시모 데 메디치는 산 마르코 수도원을 르네상스 양식에 맞게 개조하기 위해 약 4만 플로린(florins)을 투자했다. 당시 메디치 시대에는 1 플로린이면 검소한 사람이 한 달을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가치에 해당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 위치한 산 마르코 수도원의 중정. | 실버폭스999/셔터스톡

개축 작업은 메디치 가문의 전속 건축가였던 미켈로초 디 바르톨로메오가 진행했으며 5년에 걸쳐 완성됐다. 1443년 1월 6일, 주현절(Epiphany) 밤 수도원은 봉헌되었는데 이날은 동방박사의 아기 예수 방문을 기념하는 날이다. 프라 안젤리코는 도미니코회 수사로 서약한 후 자신이 거주하던 산 마르코 수도원에서 44개의 수도실(수면용 방)과 두 개의 복도에 벽화를 그렸다.

영적 각성의 단계들

산 마르코 수도원의 프레스코화들은 도미니코회 수사들의 명상 수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그들이 묵상을 통해 더욱 깊은 영적 몰입에 이를 수 있도록 이끌었다.

산 마르코 수도원에서 프라 안젤리코가 그린 44개 장면 중 하나. 이 장면은 그리스도의 영적 변화를 묘사하고 있다. | 안나 파쿠티나/셔터스톡

수도원 2층에는 수도사들이 잠을 자던 기숙사 방들이 있었다. 각 방은 기독교적인 삶의 한 장면을 그린 각기 다른 벽화로 장식돼 있어 수도사들이 명상, 기도 및 헌신을 유도할 수 있도록 했다. 각 기숙사 방에는 하나의 프레스코화가 벽에 그려져 있었으며 나머지 벽은 소박한 백색 석회로 칠해져 있었다.

이 같은 프레스코화들은 영적이고 지적 복잡성에 차이가 있었다. 좀 더 단순한 이미지들은 초급 수도사들이 명상할 수 있도록 설계됐으며 더 복잡한 이미지들은 고급 수도사들이 묵상할 수 있도록 배치됐다.

다음 세 가지 프레스코화는 영적인 깊이가 상승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들은 ‘성 베드로 순교자와 함께한 수태고지’, ‘변모’, 그리고 ‘나를 만지지 마라’다.

‘성 베드로 순교자와 함께한 수태고지’

‘성 베드로 순교자와 함께한 수태고지’. 1439~1443년 프라 안젤리코 작. 산 마르코 수도원 3번 방을 위해 제작됨. 템페라 색소로 회반죽에 그린 프레스코화. 크기 175.8cm× 147.8cm. 이탈리아 피렌체, 산 마르코 수도원 소장. | 퍼블릭 도메인.

‘성 베드로 순교자와 함께한 수태고지’에서 성모 마리아는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라는 아들을 잉태하고 낳게 될 것이라는 천사 가브리엘의 전언을 겸손히 받아들인다. 이 프레스코화는 누가복음 1장 26절부터 38절까지의 성경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다.

건축 공간 전체에 은은한 빛이 퍼지며 마리아의 자세는 경건함과 은총을 전한다.

장면이 펼쳐지는 수도원 회랑을 닮은 건축 양식은 산 마르코 수도원의 수사들이 실제로 생활하던 공간을 반영하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 준다. 이는 영적 상승이 바로 일상 속 현실에서 시작된다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입문 단계의 프레스코화인 ‘수태고지’는 영적 성장의 첫걸음을 상징한다. 곧 신의 말씀에 대한 수용과 받아들임이다. 마리아가 하나님의 뜻에 마음을 여는 것처럼 이 프레스코화를 묵상하는 수도사 역시 겸손과 순종을 실천하며 신성한 메시지에 마음을 열도록 격려받는다.

‘변모’

‘변모’. 1440~1442년 프라 안젤리코 작. 산 마르코 수도원 6번 방을 위해 제작됨. 템페라와 석고를 사용한 프레스코화. 크기: 세로 약 180.85cm×가로 약 151.89cm. 소재지 이탈리아 피렌체, 산 마르코 수도원. | 퍼블릭 도메인.

‘변모’에서 예수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타보르산(山) 정상에 올라 그들 앞에서 변모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성경적 사건은 마태복음 17장 1절부터 8절에 기록돼 있으며 예수의 얼굴이 빛나고 그의 옷이 밝게 변했다고 전해진다.

프라 안젤리코는 이 장면에서 예수를 ‘만도를라(mandorla)’—아몬드 모양의 눈부신 빛의 후광 안에 묘사했다. 그리고 예수의 흰옷은 환히 빛나고 있다. 작품 전체의 빛은 예수의 형상에서 발산되며, 이는 그가 제자들의 영적 깨달음의 근원임을 의미한다.

사도들은 땅에 엎드려 예수의 발 앞에 무릎 꿇은 채 두려움과 경외의 상태에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는 그림의 중간 부분에 묘사된 도미니코 수도사들이 기도와 묵상을 통해 함께 참여하는 영적 체험을 나타낸다. 야고보와 요한은 눈을 가리고 몸을 피하고 있는데, 이는 인간이 더 높은 신성을 이해하려 할 때 겪는 내적 갈등과 어려움을 상징한다. 이들의 경외, 두려움, 혼란이 뒤섞인 반응은 영혼이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반영한다.

예수께서 두 팔을 벌리고 계신 바로 아래 양쪽에는 모세와 엘리야의 얼굴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이 영광스러운 장면의 하늘의 증인으로, 각각 구약의 율법과 예언자를 상징한다.

‘수태고지’가 신성한 현존을 향해 마음을 여는 영혼의 시작을 묘사한 반면 ‘변모’는 하나님의 영광이란 압도적 현실을 체험하는 영혼의 상태를 나타낸다. 이는 골고다의 부활을 예고하는 신비로운 비전 속에서 그리스도의 영화로운 상태를 통해 드러나는 신성의 발현이다.

‘내를 만지지 마라’

1439~1443년 프라 안젤리코 작. 수도원 1번 방을 위한 작품. 템페라를 사용한 프레스코화. 크기: 세로 약 177cm×가로 약 137cm. 소재지 이탈리아 피렌체, 산 마르코 수도원. | 퍼블릭 도메인.

앞서 소개한 ‘변모’에서 예수는 여전히 시간 속에 존재한다. 반면 ‘나를 만지지 마라’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부활한 그리스도 앞에서 경외의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있다. 이제 그는 시간과 물리적 접촉을 넘어선 영화로운 존재로, 이 성경적인 사건은 요한복음 20장 17절에 기록돼 있다.

이 작품은 부드러운 빛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스도가 축복과 명령의 제스처로 마리아 막달레나가 그에게 손을 대려 할 때 그녀로부터 몸을 돌린다. ‘나를 만지지 마라’ 작품은 따라서 영적 변형의 완전한 과정을 의미하며 그곳에서 영혼은 세속적인 인식을 넘어 그리스도와 완전한 교감을 추구하게 된다.

푸른 풀밭에 흩어져 있는 작은 붉은 꽃들은 프랑스의 미술 역사학자 조르주 디디-유베르만이 “그리스도 피의 작은 구현된 얼룩”을 상징한다고 믿은 꽃들이다. 실제로 프라 안젤리코는 ‘십자가형’에서 그리스도의 피와 ‘수태고지’와 ‘나를 만지지 마라’의 꽃들을 그릴 때 동일한 테라 로사(terra rosa)색을 사용했다. 이는 미세한 실리케이트 조각들로 구성된 안료로, 사진으로는 그 질감을 포착할 수 없다.

“따라서 이 봄의 정원에 흩어진 붉은 꽃들은 타락에서 잃어버린 에덴의 꽃들에서 시작해 성육신을 거쳐 구속적 희생으로 이어지는 점선 같은 것을 추적한다. 즉 순교의 꽃들이다. … 그의 피는 땅을 적시고 그곳에 새로운 인류가 자라게 하며 그 인류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인류이며 죄에서 구속된 인류다”라고 디디-유베르만은 그의 저서 ‘프라 안젤리코: 위장과 형상화’에서 썼다.

프라 안젤리코의 프레스코화는 명상적인 수도사가 영적 변형의 무형적인 성격을 묵상하도록 초대한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그리스도와의 가까운 관계에 대한 열망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지려는 노력에서 표현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녀가 자신에게 손을 대지 못하도록 거부하며, 관객들에게 진정한 신과의 관계는 물리적인 형태를 초월한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 관계는 믿음과 기도, 그리고 명상을 통해 심화된다.

*박경아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