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릴 충성 증표로 삼지마”…美-베트남 협상에 조급해진 베이징

中 CCTV 산하 채널, 시진핑 베트남 방문 당일 이례적 논평
“중국의 이익을 팔아서 미국에 대한 충성증표 삼지 말라” 우려감
베트남, 중공에 거리두고 미국과 협상에 속도…원산지 관리도 강화
중국 공산당(중공) 관영 언론이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베트남에 날 선 메시지를 쏟아냈다. 미국과 무역에서 막대한 흑자를 거두고 있는 베트남이 미국과의 관계 강화에 중국을 팔아넘길까 불안한 속내를 감추지 못했다.
중공 관영 중국중앙텔레비전(CCTV) 산하 시사 콘텐츠 채널 ‘위위안탄톈(玉淵譚天)’은 지난 14일 “누가 중국을 가져다가 미국에 충성 증표로 바치려 한다면, 중국(중공)은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논평했다. 이날 시진핑 중공 총서기는 미국의 관세에 공동 대응할 ‘동지’를 찾으려 동남아 3국 순방에 올랐고, 첫 대상국인 베트남을 국빈 방문했다. CCTV 논평은 시진핑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또 럼의 정상회담이 이뤄지기도 전에 발표됐다.
중국 문제 전문가 쭝위안(鍾原)은 “중공 관영매체가 지도자의 방문 성과를 확인하기도 전에 상대국에 노골적인 위협 메시지를 낸 것은 이례적”이라며 “자신감이 떨어지고, 성급하고 무모한 발언을 자제하지 못할 정도로 불안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처럼 예민한 반응에는 역사적 맥락이 깔려 있다”고 말했다. 1979년 중-베트남 전쟁 당시, 덩샤오핑(鄧小平)은 전쟁 개시 직전 미국을 방문해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미국을 대신해 베트남을 치겠다”며 중국의 미국과의 협력 의지를 충성의 증표로 제시했다. 이후 중공은 베트남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이용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했지만, 이 과정에서 베트남의 반(反)중공 감정도 깊어졌고 둘 사이의 앙금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WSJ “미국, 관세 협상 이용해 중국 고립 추진”
미국은 상호관세 발표 후, 각국과 협상을 통해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고립시키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중공의 경제력을 약화시켜 미국에 대한 패권 도전을 좌절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15일(현지시각)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미국은 협상에 응한 각국에 관세를 낮춰주는 대신 공산주의 중국과의 거래를 끊거나 중국이 해당 국가를 이용해 상품을 운송하는 것을 금지할 것을 요청했다. 또한 중국 기업이 해당 국가에 공장을 세우지 못하도록 하고, 값싼 중국산 상품을 받아들이지 말 것도 제안했다. 모두 중공이 제3국을 통해 미국의 관세를 우회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베트남은 이러한 미국의 전략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나섰다. 지난 4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베트남을 상대로 46%의 상호관세 부과를 발표하자, 베트남 또 럼 서기장은 당일 백악관에 전화를 걸어 “제로(0) 관세 협상”을 제안했다. 이어 지난 11일에는 미국과의 협상에 앞서 자국 기업에 원산지 표시 및 관리 강화를 지시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베트남 산업무역부는 자국 기업에 ▲위장 라벨링 방지 ▲원산지 기록의 정밀 관리 ▲단일 국가에 대한 원자재 의존 탈피 등을 강력히 요구했다.
중공은 이런 베트남의 행보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우려하는 모양새다. 특히 자국 기업들이 베트남을 통해 미국으로 우회 수출하는 상황이 막힐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에 중공 지도부 복심을 대변해온 CCTV가 정권을 대신해 베트남을 향한 협박에 나서게 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냐, 중공이냐…베트남의 선택에 몰리는 시선
미국은 베트남의 최대 수출 시장이다. 코트라가 공개한 베트남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베트남의 2024년 대(對)미국 수출액은 전년 대비 23.17% 증가한 1195억100만 달러였다. 무역흑자는 무려 1043억9900만 달러에 달했다.
반면, 베트남의 최대 수입국은 중국으로 2024년 수입액은 전년 대비 3.05% 증가한 1140억2000만 달러였다. 같은 기간 대중 무역 적자액은 528억9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즉 베트남은 중국에서 중간재·원자재를 수입해 완성품을 만들고 이를 미국 시장에 내다 팔아 돈을 버는 구조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베트남의 대미 수출 품목, 대중 수입 품목을 살펴보면 이 구조가 더욱 뚜렷하다. 베트남의 2024년 대중국 주요 수입품은 ‘컴퓨터, 전자기기 및 부품’이 345억8759만 달러로 가장 많았고, 이어 ‘기계 장비 및 부품’(289억6198만 달러), ‘섬유류’(99억8092만 달러) 순이었다.
같은 기간 대미국 주요 수출품은 ‘컴퓨터·전자기기 및 부품’이 232억156만 달러로 1위였고, ‘기계 장비 및 부품’(220억5252만 달러), ‘섬유·의류’(161억5179만 달러)가 뒤를 이었다.
실제로 베트남의 중국산 원자재 의존도는 60~7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이 중국 기업의 국적 세탁을 거부하고 원자재 수입처 다변화를 추진하면 중공은 적잖은 경제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베트남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중공의 시도는 실패로 기울어지고 있다.
시진핑은 베트남에서 “공급망 안정”과 “반(反)패권주의”를 내세워 베트남을 미국 견제의 파트너로 끌어들이려 했다. 14일 팜민찐 베트남 총리와의 회담 후에는 “양측은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고”, “패권주의, 일방주의, 보호주의에 공동으로 반대한다”며 이른바 ‘항미 연대’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베트남은 ‘균형 잡힌 무역’과 ‘남중국해 문제 해결’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고수하며 거리를 뒀다. 베트남 측이 발표한 성명에서는 ‘함께 미국에 맞선다’는 언급이 전혀 없었다.
쭝위안은 “이는 베트남이 실질적으로 미국과의 협상에 집중하려는 의사를 보인 것”이라며 “중공 입장에선 이런 흐름이 뼈아플 수밖에 없다. 이미 미국의 고율 관세로 수많은 중국 수출업체가 주문 취소와 파산 위기에 몰렸고, 국제 외교에서는 중공과의 관계를 정리하려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공은 과거 미국을 상대로 ‘강공-협상’ 병행 전략을 써왔지만, 이번에는 자충수가 됐다”며 “미국이 다른 나라들과 유화적인 협상 기조를 보이는 와중에도 중공에만은 고율 관세를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 더는 중공의 전략이 통하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