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한 편이 진실을 마주하는 시작”…中 인권 실상 알리는 韓 영화인
허은도 락스퍼국제인권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중국 인권 실태를 다룬 영화는 왜 한국에서 보기 힘든가. 허은도 락스퍼국제인권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는 ‘문화적인 틀에서 인권을 말하고자’ 3년 전부터 중국 인권 다큐멘터리 발굴과 상영에 힘써왔다.
허 프로그래머는 2022년부터 매년 락스퍼국제인권영화제를 통해 중국 본토에서 상영이 금지된 인권 다큐멘터리들을 국내 관객들에게 소개해 왔다. 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이자 배급 전문가로, 그는 스크린 밖에서 일어난 비극을 관객과 마주하게 만드는 ‘큐레이터’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몇 년 전 우연히 탈북자를 만난 계기로 북한 인권 문제에 눈뜬 이후 인권을 주제로 한 문화 행사를 기획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중국 인권 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는 구체적으로는 “공자학원을 다룬 다큐를 본 것이 계기였다”며 “처음엔 단순한 문화교류인 줄 알았지만, 중국공산당(CCP)의 문화 침투는 일종의 정신적 침략이란 인식이 들었다”고 말했다.
허 프로그래머가 언급한 작품은 《공자라는 미명하에(In the Name of Confucius)》다. 이 영화는 중국 정부가 세계 1600여 개 대학에 설치한 공자학원의 이면을 조명하며 그것이 언어·문화 교육 기관이 아니라 CCP의 선전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허 프로그래머는 해당 작품을 한국의 IPTV 플랫폼에 공식 등록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이후에도 《창춘(Eternal Spring)》, 《마싼쟈에서 온 편지(Letter from Masanjia) 》등의 중국 인권 다큐를 영화제를 통해 국내에 선보였다.
《창춘》은 2002년 파룬궁 수련자들이 중국 창춘시 국영 케이블TV 방송에 파룬궁의 진실을 알리는 영상을 삽입해 송출한 실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재현한 다큐멘터리다. 캐나다 아카데미 시상식 3관왕이자 2022년 오스카 국제영화상 캐나다 공식 출품작이기도 하다.
《마싼쟈에서 온 편지》는 미국에서 할로윈 장식 안에 발견된 중국발 구조요청 편지를 바탕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다. 편지 작성자인 쑨이(孫毅)는 마싼쟈 노동교양소에서 겪은 고문과 강제노동을 세상에 알렸다. 이 영화는 북미 최대 규모의 다큐멘터리 영화제인 ‘핫독스(Hot Docs)’의 초청작으로, 영화 평론사이트 ‘로튼 토마토(Rotten Tomatoes)’에서 평점 100%를 기록한 바 있다.
허 프로그래머는 2022년 제2회 영화제에서는 홍콩 민주화 운동을 다룬 《시대혁명(Revolution of Our Times)》도 상영했다. 이 작품은 2019년 홍콩의 ‘반송중(反送中, 중국 송환 반대)’ 시위를 중심으로 중국 권위주의에 맞서 싸운 시민들의 모습을 담아낸 다큐로, 2021년 칸영화제에 비공식 초청됐다. 같은 해 대만 금마장 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를 좋아했던 허 프로그래머는 중학생 시절 영화관 매점 아르바이트로 영화와 가까워졌다. 20대 후반에는 외국 영화를 수입하는 판권업에 뛰어들며 영화 유통에 발을 들였다. 그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2004), 지아장커 감독의 《스틸 라이프》(2014), 다큐 애니메이션 《바시르와 왈츠를》(2008) 등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예술영화를 다수 배급했다. 또한 《방황의 날들》(2007), 《나무 없는 산》(2009) 등 제작에도 참여했고 위드시네마·명보아트시네마 대표를 역임하며 독립예술영화계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허 프로그래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올해로 5회를 맞은 락스퍼국제인권영화제에서는 위 세 작품을 포함해 중국 인권을 다룬 다큐멘터리 5편 이상을 상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제 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는 지난 2월 발표한 ‘2024 세계 자유 지수’에서 중국을 100점 만점 중 9점으로 평가하며 ‘자유롭지 않은 국가’로 분류했다. 휴먼라이츠워치 또한 올해 1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중국 정부가 표현의 자유와 정보 접근을 제한하고,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며 소수민족을 탄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허 프로그래머는 “(그럼에도) 중국의 인권 현실은 한국인 다수에게 여전히 ‘소문’ 수준”이라며 “우리가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가 영화인데, 인권 영화를 일반 극장에서 만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서 국제영화제를 통해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들을 발굴·소개하고자 한다. 문화적인 틀에서 인권을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허 프로그래머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서 중국 인권 영화를 정식 개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상업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배급사나 투자자들이 꺼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개봉되더라도 극장 측에서 시간표를 불리하게 편성해 실질적인 관람이 어렵다고 한다.
그는 “정부 지원도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며 “북한이나 중국 인권 문제는 공모조차 통과하기 힘들고, 성소수자나 장애인 이슈 중심의 선택적 인권만 주목받고 있다. 정작 중요한 인권 영화들이 외면받는 현실”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관객의 반응에서 힘을 얻는다고 한다. “《시대혁명》을 처음 수입했을 때 관객 수는 2000 명도 채 안 됐지만 많은 청년 관객이 눈물을 흘리며 ‘이게 한국의 미래일지도 모른다’고 했다”고 회상했다.
지난해 《마싼쟈에서 온 편지》를 본 한 관객은 “이건 신이 아니면 세상에 드러날 수 없는 이야기”라는 관람 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편지 한 편이 미국으로 흘러 들어가 (중국 노동교양소에 발생한 일이) 세상에 알려졌고 그걸 영화로 본 관객이 신의 존재까지 느꼈다는 말에 나도 깜짝 놀랐다”고 허 프로그래머는 말했다.
이어 “해외 영화인들은 락스퍼영화제를 주목하는데 정작 국내에서는 여전히 관심이 적다”며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영화제를 찾아준 제작진과 관객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청년들에게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단순한 관람이 아니라 진실을 마주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락스퍼국제인권영화제

‘락스퍼국제인권영화제’는 전 세계 인권 문제를 문화적으로 조망하는 영화제로 올해 제5회를 맞는다. 락스퍼는 참제비꽃의 영어 이름이다. 꽃말은 ‘정의’와 ‘자유’다. 올해 영화제는 5월 30일 서울 영등포 KBS홀에서 개막, 6월 3일까지 5일간 열린다. 중국 인권 관련 다큐멘터리 7편을 포함해 세계 각국 인권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상영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