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살바도르, 갱단 척결 속 ‘가장 안전한 나라’로 변모 중

엘살바도르 플라야 툰코(PLAYA TUNCO). 플라야 툰코는 엘살바도르 수도에서 40km가량 떨어진 관광 명소다. 고향 엘살바도르의 회색빛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한 레스토랑에서 부드럽게 울려 퍼지는 라틴 음악을 배경으로 50대 여성 파트리샤 샌도발(Patricia Sandoval)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며 목소리가 갈라졌고, 내전에 찢긴 나라에서 11살까지 자라며 겪은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자 말투에서 어두운 기색이 묻어났다.
몇 주 전, 그녀가 고국 땅을 다시 밟은 것은 무려 42년 만의 일이었다. 어머니와 형제자매들과 함께 안전한 새 삶을 위해 미국으로 도피한 이후 처음이었다. 지난달 어린 시절을 보낸 땅에 다시 발을 디뎠을 때 느꼈던 그 달곰씁쓸한 순간을 떠올리며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나는 떠났다. 그리고 이제 돌아왔지만 이 나라를 모르겠다. 내 땅이 낯설다.” 그녀는 목이 메인 채 말했다.
현재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는 샌도발이 이번에 고국을 다시 찾은 이유는 수십 년간의 내전과 잔혹한 갱단 폭력 끝에 나입 부켈레 대통령 아래 엘살바도르가 평화를 되찾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아는 다른 사람들도 이제는 안전하다고 느끼며 귀국을 고려하고 있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도 괜찮을 것 같다. 그냥 돌아다니면서 우리 땅을 다시 알아가고 싶다. 전쟁과 갱단, 폭력 때문에 빼앗겼던 그 땅을.” 그녀는 말했다.
많은 엘살바도르 사람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과거에는 갱단이 마음대로 사람을 죽이고 약탈했지만 부켈레 대통령 취임 이후 이제는 안전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엘살바도르는 현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진 중인 불법 체류 범죄자 추방 정책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미국 국토안보부 크리스티 노엠 장관은 지난 3월 26일(이하 현지 시간) 엘살바도르를 방문했다. 노엠 장관은 현지의 테러리즘 수감센터(CECOT)를 배경으로 촬영된 영상에서 미국 내에서 활동하려는 갱단 조직원들에게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전했다.
에포크타임스는 부켈레 대통령 집권 이후 변화한 엘살바도르의 모습을 조명하기 위해 175마일(약 280km)을 넘게 이동하며 현지 주민 10여 명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미국으로부터의 추방 조치에 대한 그들의 생각도 함께 물었다.
대다수 주민은 이러한 변화에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엘살바도르든 미국이든, 잔혹한 갱단 조직원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입장이었다.
한때 중남미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로 악명 높았던 엘살바도르는 이제 세계에서 가장 폭력적인 갱단으로 꼽히는 ‘MS-13’과 ‘바리오 18’ 등 조직원들을 대대적으로 체포하면서 부켈레 대통령의 입을 통해 “가장 안전한 나라”로 홍보되고 있다.
엘살바도르가 갱단에 대해 철저하고 단호한 이미지로 부각된 데에는 엘살바도르 중부지역 테콜루카에 세워진 중남미 최대 초대형 테러리즘 수감센터 CECOT 건설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소식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주목을 받았다. 선거 유세 중 그는 조 바이든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1100만 명의 불법 이민자 대부분이 넘어온 미국 남부 국경을 봉쇄하겠다고 공언했다. 지난 1월 집권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베네수엘라의 ‘트렌 데 아라과’ 같은 범죄 갱단 조직원들을 추적해 추방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으며 이 지점에서 엘살바도르가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엘살바도르의 정치 분석가 허버트 에스마한은 “엘살바도르가 미주 지역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중 하나로 불리게 된 변화야말로 미국으로의 불법 이민을 줄이는 핵심”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갱단 문제를 정리하면 더 많은 기업이 생기고 관광객이 늘며 일자리도 창출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엠 장관, 테러리즘 수감센터 방문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CECOT 교도소로 이어지는 2차선 도로는 울창한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운다. 지난 3월 26일 있었던 노엠 장관 방문 소식은 도시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이 소식은 시내 전광판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해졌다.
그날 군복을 입고 M16 소총을 든 병력들이 노엠 장관의 이동 경로를 따라 배치됐다. 노엠 장관은 상반신에 문신을 새긴 갱단 조직원들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강력한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는 갱단 조직원들에게 “미국에 들어오려 한다면 이런 초대형 교도소에 갇히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엠 장관의 교도소 방문은 정부의 철저한 통제 아래 진행됐다. 한 현지 언론사는 에포크타임스에 “부켈레 대통령과 노엠 장관의 회동에 초청받지 못했다”며 정부가 언론의 접근을 제한했음을 시사했다.
엘살바도르 대통령실의 웬디 라모스 대변인은 에포크타임스가 요청한 부켈레 정부와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어떠한 정부 관계자도 관련 정보를 제공할 권한이 없다”고 라모스 대변인은 밝혔다.
하지만 거리의 목소리는 달랐다. 엘살바도르 시민들은 기꺼이 자신들의 견해를 전했고, 대부분은 미국이 자국으로 갱단 조직원들을 추방하는 데 대해 긍정적 입장을 내보였다.
에포크타임스가 인터뷰한 모든 시민은 부켈레 대통령 취임 이전 대부분 갱단에 의해 겪었던 폭력과 범죄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갱단 추방, 엘살바도르 시민들의 엇갈린 시선
엘살바도르의 수도 산살바도르 역사 지구 중심에 위치한 헤라르도 바리오스 광장. 옛 대통령이자 군 영웅의 이름을 딴 이곳에서 아이들이 비둘기를 쫓으며 웃고, 비둘기들은 푸드덕 날갯짓을 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175년 된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이 광장을 품고 있으며 이는 엘살바도르의 뿌리 깊은 기독교적 정체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 되고 있다. 엘살바도르인의 80%가 가톨릭 교인이다.
3월의 어느 토요일, 근처 호텔에서 흘러나온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의 ‘셉템버(September)’가 스피커를 타고 광장에 울려 퍼졌다. 관광객들과 현지 주민들이 어울려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는 모습은 과거 범죄로 악명 높았던 이 나라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풍경이다.
그날 ‘USA’라고 적힌 셔츠를 입은 테오테페케 출신 농부 엔리케 오레야나는 통역을 통해 에포크타임스에 이렇게 말했다. 산살바도르 북서쪽으로 약 40km 떨어진 작은 도시 출신인 오레야나는 가축에 피해를 주는 나사벌레 유충 확산을 막기 위해 수도에 농약을 사러 왔다고 했다. 올해 61세인 그는 “노엠 장관의 방문은 이 나라가 더 이상 갱단에게 지배받지 않는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는 자랑스러운 순간”이라고 말했다.
“과거엔 범죄 1위였지만 지금은 치안 1위다. 트럼프와 부켈레가 손잡고 함께 일하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은 아니었다.
광장에서 멀지 않은 시장에서 만난 76세 노인 아벨은 통역을 통해 미국의 갱단 추방 정책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이 나라는 (그들을) 받아들일 법적 의무가 없다”며 “트럼프는 미국에서 직접 감옥에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친구이자 올해 30세인 바네사 역시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베네수엘라 갱단 트렌 데 아라과 조직원을 미국이 엘살바도르로 보내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그녀는 “미국은 수감자를 수용할 자원도 충분한 나라”라며 “책임도 미국이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CECOT에 수감된 갱단 조직원들
지난달 트럼프 행정부는 베네수엘라 범죄 조직 트렌 데 아라과 소속으로 추정되는 조직원 238명과 MS-13 조직원 21명을 엘살바도르의 CECOT(테러리즘 수감센터)로 추방했다.
이 추방 과정은 영상으로 기록됐으며 군 병력에 의해 비행기에서 내리는 수감자들의 모습, 버스와 군용 차량에 실려 교도소로 이송되는 장면 등이 영상에 담겼다.
부켈레 대통령은 이들 외국인 수감자들을 1년간 CECOT에 수용하기로 미국 측과 합의했으며 그 대가로 600만 달러(약 870억 원)를 받기로 했다.
하지만 미국 내 법적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제임스 E. 보스버그 미국 연방지방법원 판사는 갱단 조직원들을 태운 항공기 두 대가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로 향하던 도중 미국으로 되돌아오도록 구두 명령을 내렸다. 다만 이 명령이 서면 판결문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 사건은 현재 진행 중이며 트럼프 행정부와 법원이 갱단 조직원 추방 문제를 두고 대립하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외국인 적법(Alien Enemies Act)’을 발동해 불법 이민자 중 자국을 침입한 세력으로 간주되는 인물들을 신속히 추방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이어 3월 31일 트럼프 행정부는 트렌 데 아라과 및 MS-13 소속의 ‘폭력 범죄자들’을 추가로 엘살바도르로 송환했다.
이에 대해 부켈레 대통령은 소셜 미디어에 “지난밤 미국과의 공동 군사 작전을 통해 트렌 데 아라과 및 MS-13과 연관된 극도로 위험한 범죄자 17명을 이송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감사의 뜻을 담은 서한을 부켈레 대통령에게 보냈으며 해당 서한은 부켈레 대통령 본인이 소셜 미디어 플랫폼 X에 직접 게시했다. 서한에는 오는 4월 14일 백악관 초청 의사가 담겨 있었으며 (부켈레 대통령은) “양국 간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공식 실무 방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범죄와 처벌
2024년 유엔총회 연설에서 부켈레 대통령은 자국이 내전으로 시작된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갱단 폭력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중주의 성향의 부켈레 대통령은 지난 5년간 엘살바도르가 무법 상태를 벗어나 안전을 확보하는 데 집중했다고 주장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수천 명을 감옥에 가둬 놓았다고 말하지만 사실 우리는 수백만 명을 자유롭게 만든 것이다.” 부켈레 대통령은 말했다. “수천 명의 엘살바도르 사람들은 전쟁과 빈곤을 피해 고국을 떠났다. 이제 우리는 그들이 돌아올 수 있는 나라를 만들었다. 지난 5년 동안 엘살바도르는 다시 태어났다.”
정치 분석가 에스마한은 엘살바도르에서 정부가 CECOT에 갱단 구성원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수감하기 전 철저히 조사를 한다고 밝혔다. 갱단 문신과 입증된 연관성이 있는 사람들은 법적 절차를 거쳐 수감된다고 했다.
“이 사람들이 범죄자로 확인되지 않았다면 절대 우리 감옥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에스마한은 CECOT에 수감된 사람들에 대해 설명했다.
부켈레는 ‘비상 상태’를 선언하고 갱단 구성원들을 일망타진했지만 에스마한은 부켈레가 강력하게 정부를 이끌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반박하며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독재가 아니다”라고 부켈레 대통령은 말했다. “이 나라는 범죄 조직들이 테러리스트로 선언됐기 때문에 그들을 처벌할 수 있었다.”
그는 세계주의자들이 엘살바도르가 감옥 안에서 범죄자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믿게 만들고 싶어 한다고 주장했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엘살바도르에서는 인권이 회복됐다”고 에스마한은 말했다.
엘살바도르의 갱단원들은 갱단 구성원 및 테러리스트로서의 형량, 마약 밀매, 강간 및 살인 등의 혐의로 평생을 감옥에서 보낼 가능성이 크다.
미국에서 추방된 이들은 미국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이곳에서 수감되고 있으며 엘살바도르 내 다른 수감자들이 겪었을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에스마한은 엘살바도르가 이들을 받아들인 것은 그들이 범죄자임이 확인된 후였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혁명, 전쟁
23세의 기계공 디에고는 요즘 관광객과 방문객을 위해 산살바도르 전역에서 운전을 하며 이전보다 더 나은 수입을 올린다고 말했다.
디에고는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부켈레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언하기 전에는 이웃 마을에 사는 여자친구를 만나러 갈 수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갱단은 자신들의 구역에 도로를 차단하고 들어오는 사람들의 신원을 확인했으며 종종 외부인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디에고는 성을 공개하지 말아줄 것을 요청했다.
디에고는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식당이나 쇼핑센터와 같은 중립적인 장소에서 만나야 했다고 말했다.
부켈레 대통령이 선출된 후 군대는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진입해 특정 문신을 기준으로 갱단에 연루된 용의자들을 체포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문신을 하고 있으면 그들을 심문했다”고 디에고는 통역사를 통해 에포크타임스에 말했다.
이 전술은 효과를 봐서 이젠 동네에 갱단 멤버들이 거의 없다고 한다. 사람들이 갱단 사인을 하는 사람을 보면 핸드폰으로 찍어서 당국에 알린다고 말했다.
“실제로 어제 어떤 아이가 갱단 사인을 했다. 각 마라(갱단)마다 갱단 사인이 있다. 그 아이가 한 공무원에게 갱단 사인을 했는데 그들이 금방 와서 그를 잡았다”고 디에고가 전했다.
에스마한은 이전에 범죄가 만연했던 지역들이 이제는 관광 명소가 됐다고 했다. 예를 들어 플라사 헤라르도 바리오스에 있는 국가 궁전이 그렇다.
이 지역에서 상인들은 사업을 운영하기 위해 갱단에게 수수료를 내야 했다고 한다.
“돈을 내지 않으면 갱단은 시장에 들어가서 모든 사람 앞에서 한낮에 그들을 쏴버리고 아무 일 없이 도망갔죠. 그게 전부였다”고 에스마한은 설명했다.
에스마한은 자신도 한때 갱단에게 걸려 총구 앞에 서서 강도를 당한 경험이 있다며 그 갱단들은 ‘그림자 정부’처럼 운영된다고 덧붙였다.
49세의 올리비아 에스페란사 가르시아는 도시 외곽의 길거리 시장에서 하루 11시간, 주 7일을 50센트에 사탕수수를 팔며 빈곤과 싸우고 있다. 그녀는 부켈레 대통령이 갱단을 감옥에 가뒀기 때문에 부켈레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한 미국이 갱단 멤버들을 자국의 대형 교도소로 보내는 것에 대해 찬성한다고 밝혔다.
“우리는 모두 그에게 투표했다”고 그녀는 부켈레가 80% 이상 득표로 재선됐음을 언급했다.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그들은 자신들의 죗값을 치러야 한다.” 그녀는 미국이 갱단 멤버들을 자국으로 추방한 것에 대해 말했다.
가르시아는 상황이 나아졌다고 느끼지만 미국에 살고 있는 엘살바도르 사람들이 돌아올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가 겪는 빈곤을 견디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들은 이미 다른 생활 방식을 익혔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수십 년간 고난과 폭력을 겪었다. 부켈레가 대통령으로 선출되기 전 그녀는 도로변에서 아이들, 손자들과 함께 일하던 중 갱단에게 강도를 당한 경험이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내전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내전이 터졌을 당시 11살이었다고 기억한다.
“많은 사람이 가족을 잃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내전으로 시작해 많은 엘살바도르 사람이 견뎌온 폭력의 경험은 정치인 부켈레의 부상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1979년부터 1992년까지 미국이 지원하는 엘살바도르 정부와 쿠바와 구소련이 지원하는 파라분도 마르티 국가해방전선(FMLN) 간 내전이 격화됐다.
엘살바도르 내전은 구소련 붕괴 이후인 1992년 멕시코시티에서 체결된 차풀테펙 평화협정이 발효되면서 공식적으로 종료됐다.
앞서 바닷가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났다고 한 샌도발이 그 시대의 폭력을 회상하는 사이 부드러운 바람에 그녀의 머리가 흩날렸다. 당시 민간인들은 폭력 속에서 부수적인 피해자가 됐다. 그녀는 정부 군인이나 FMLN(파라분도 마르티 국가해방전선) 반군들이 자신이 타고 있던 버스에 올라탔을 때의 두려움을 떠올렸다. 그들은 버스에 탑승하면 여자와 남자, 어린이들을 지목하며 내리라고 명령했다.
샌도발은 그들이 “너, 너, 버스에서 내려”라고 말하며 그들을 데려가 강간하고 죽일 것이라고 공포에 떨었던 순간을 회상했다. “어렸을 때 난 최대한 못생기게 보이려고 노력했다.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 최대한 남성적으로 보이고 싶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내전이 한창일 때 시골로 차를 몰아야 했기 때문에 끊임없이 위험에 처했다.
샌도발은 어머니와 형제들과 함께 아버지 무덤을 방문하던 중 FMLN 반군이 샌도발 일행이 탑승 중이던 버스를 멈춰 세웠던 일을 기억한다. 엘살바도르 정부와 전쟁을 벌이던 무장한 FMLN 반군이 버스에 탑승했다. 그녀는 어머니가 그들에게 애원하는 모습을 보며 심장이 뛰었던 순간을 기억했다.
“제발, 내 아이들을 해치지 말아달라.” 그녀의 어머니가 비명을 지르며 말했다.
샌도발은 그런 어머니 모습과 함께 “손수건을 쓴 테러리스트가 내 어머니에게 ‘걱정 마라. 우리는 아이들을 해치지 않는다’라고 말하던 모습도 기억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그런 말을 하고 있을 때에도 FMLN 반군들은 승객들이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 허둥지둥하는 사이 짐가방을 쏟아내고 있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우리는 버스에서 도망쳤다. 우리가 달리는 동안 그들은 계속 총을 쐈다”고 그녀는 회상했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커다란 금속 전화 박스 뒤로 달려가 숨었다. 총알들이 옆을 스쳐 지나갔던 기억이 난다. 그들은 그냥 도망가는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쏘고 있었다.”
이제 그녀는 서핑으로 유명한 해변에 와 있으며 음식, 음료, 쇼핑에 달러를 쓰고 있는 관광객들에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 제게 오늘 이곳에 다시 돌아와 있는 것은 축복”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어디에도 숨을 곳은 없다
미국의 영향력은 엘살바도르 곳곳에 퍼져 있다. 이 나라는 구시대와 신시대, 가난과 부유함이 뒤섞인 모순의 땅이다.
6300만 명이 거주하는 이 작은 나라에는 맥도날드, 웬디스 같은 미국계 패스트푸드 체인점들이 곳곳에 있다. 심지어 부유층이 사는 한 지역에는 포르쉐 딜러샵도 있다.
도시 뒷골목에는 상점과 가정집 창문과 문을 철제 방범 창살이 덮고 있다. 울타리 위에는 가시 철조망이 얹혀 있다.
현대적인 도시 배경에는 화산과 울창한 숲, 그리고 작은 언덕 마을들이 자리 잡고 있다.
산살바도르 동쪽에 위치한 베라파스 지방자치단체는 산 비센테 화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과거 시간을 넘나드는 가족을 다룬 공상 과학 TV 시리즈 ‘잃어버린 땅(Land of the Lost)’을 연상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는 어떤 경계도 허물지 않는다.
23세의 어빈 아길라르는 아내와 4살 딸을 부양하기 위해 이 마을에서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다. 갱단이 제거되기 전에는 매일 15~20달러를 MS-13 갱단 보스에게 내고 사업을 해야 했다. 이발소에서는 3.50달러에 머리카락을 자른다.

그들이 돈 받아가는 건 “다양했다”고 아길라르는 통역을 통해 에포크타임스에 말했다. “그들이 당신을 좋아하면 적게 내고 싫어하면 더 많이 내야 했다.“
아길라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일부 조치에 찬성하지만 그 조치들이 미국 뉴욕에 살고 있는 미국 태생 형들과 함께 사는 어머니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점을 걱정한다고 했다.
“범죄 갱단들을 처치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미국에 불법으로 거주하는 일부 엘살바도르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미국에서 일하는 게 이제는 추방될까 봐 두려워서 어려워졌다“라고 아길라르는 말했다.
*박경아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