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

[트럼프 관세] EU는 남았는데, 혼자 협상 테이블 박찬 中…“공급망 배제 자초”

2025년 04월 08일 오후 2:39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글로벌 관세’ 정책을 발표하며 세계 경제에 충격을 안겼다. 7일(현지시각) 오전, “미국이 관세 90일 유예를 검토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기자들의 질문에 직접 “우리는 그런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트럼프는 전날 “우리는 중국과 1조 달러(1464조원) 무역적자를 겪고 있다”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중국과 거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어 “중국의 막대한 무역 흑자가 지속하는 한 협상은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입장은 매우 단호하다. 트럼프는 중국의 34% 보복 관세 예고에 “만약 그 (보복) 관세가 내일 정오까지 철회되지 않으면 우리는 이미 부과한 관세에 5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더욱 강한 조치를 예고했다.

또한 유럽과 아시아에서 협상 제의가 들어오고 있지만 무역적자 해소가 전제 조건이라면서 “적자란 곧 손해다. 우리는 흑자를 내야 하며, 최악의 경우라도 균형은 맞춰야 한다”며 “이 문제 때문에 내가 당선됐다”고도 덧붙였다.

보복 관세 발표한 중국, 협상 여지 남긴 EU

중국은 트럼프 관세가 발표된 지난 4일 오후, 오는 10일부터 모든 미국산 상품에 34%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보복 조치를 발표했다. 중국 재무부는 “미국의 조치는 국제 무역 규칙을 준수하지 않고 중국의 합법적이고 적법한 권리와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방적 괴롭힘”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희토류 7종에 대한 수출 제한을 즉각 시행하고, 미국 기업 11곳을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목록에, 16곳을 수출 통제 목록에 올려 중국 기업과의 거래를 제한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도 보복 조치를 거론했다. 그러나 중국에 비하면 한층 유연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EU 수장인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은 7일 기자회견에서 “미국과 협상할 준비가 돼 있다”며 상호 관세를 0%로 하는 협상안을 제시했다.

이는 본격적인 보복 조치에 앞서 나온 제안이었다. EU는 오는 9일 표결을 통해 보복 관세 부과 방안을 결정한다. 다만,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당장 이번 달부터 보복 관세를 부과하는 당초 방안에서 한 걸음 물러선 내용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와 대결을 피하고 협상 여지를 남겼다.

당초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트럼프의 글로벌 관세 발표 직후 “EU 회원국 중 하나와 맞서려면 우리 모두와 맞서야 한다”며 단호한 대응을 시사했다. 하지만 EU 안에서도 입장이 엇갈린다. 프랑스는 찬성했지만, 이탈리아는 유보적 입장을 취했고, 아일랜드는 반대했다.

미국도 출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관세 정책 소식에 4월 3~4일 이틀 동안 미 증시에서 6조 달러 이상이 증발했다. 백악관은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캐빈 해싯은 6일 언론 인터뷰에서 증시 하락은 의도한 바가 아니며, 미국 근로자들에게 이익이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에 따르면 현재 50개국 이상이 미국과 관세 협상을 요청한 상태다. 해싯 위원장은 “트럼프의 관세는 많은 국가를 불쾌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협상 테이블로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2025년 4월 2일, 워싱턴 D.C. 백악관 로즈 가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 관세에 관한 발언을 하는 동안 차트를 들고 있다. 2025.4.4 | Brendan Smialowski/AFP via Getty Images

혼자서 테이블 뒤엎은 중국… 중국 내부에서조차 비판

중국 문제 전문가들은 중국 공산당이 보복 관세로 반(反)트럼프 관세 움직임에 총대를 메고 나섰지만 오히려 고립을 자초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재미 중국 문제 전문가 탕칭은 “이번 관세 정책은 반도체, 의류, 전자제품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끼칠 것이며, 그 성패가 오는 2026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향방을 좌우할 뿐 아니라 트럼프의 정치적 성패도 결정지을 것”이라며 “그야말로 배수진을 친 것”이라고 평가했다.

탕칭은 “중국 공산당은 격분한 나머지, 동일한 수준의 보복 관세를 발표하며 협상 테이블을 뒤엎어 버렸다”면서 문제는 다른 국가들이 여전히 테이블에 남아 앉아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즉 중국 공산당이 냉정함을 잃고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될 위험에 스스로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중국 내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중국 공산당 관영 신화통신에 경제 전문가로 종종 초빙되는 경제학자 푸펑(付鵬)은 “트럼프의 상호 관세는 사실 구매자가 공급자에게 조건을 제시하는 일반적인 협상 전략”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중국이 협상을 거부하고 탁자를 엎는 건 입찰 기회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며 “최고 관세를 적용받으면서 협상장 밖에 머무르는 것은 결국 공급망에서 배제되는 길”이라고 경고했다.

푸펑은 지난해 11월 강연에서 “중국 중산층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고, 수요 부족으로 인해 정부의 부양책은 2008년처럼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말해 ‘진실을 말하는 지식인’으로 화제가 됐으나, 그의 발언은 곧 검열돼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사라졌다.

중국 공산당의 보복 관세를 비판한 중국 내부 전문가는 푸펑에만 그치지 않는다. 중국 사회과학원 전 공공정책연구센터 부주임 허빈(賀濱)은 소셜미디어에 “중국의 보복 관세는 마치 ‘너희가 아내를 때리니, 나도 내 아내를 때리겠다’는 식이다”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 글은 중국 인터넷에서 널리 퍼졌고, 같은 날 사회과학원은 해당 연구센터의 폐쇄를 공식 발표했다. “센터는 공식 해체됐으며, 관련 인사도 해고됐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당국의 조치가 강경한 것은 허빈의 발언이 가져온 파장이 그만큼 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025년 2월 18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연설하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 | 로이터/연합

왜 협상 대신 대결 택했나…中 공산당의 거듭된 오판

월스트리트저널은 5일 트럼프 취임 후 중국 공산당이 여러 차례 트럼프 팀과 접촉하려 했으나 모두 좌절됐다며 네 가지 사례를 들었다.

주미 중국대사 셰펑은 트럼프 행정부 자문역인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와 접촉해 관세 문제에 관해 협상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왕이 외교부장(장관)은 지난 2월 유엔(UN) 회의를 위해 뉴욕을 방문했지만,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클 월츠를 비롯해 트럼프 팀의 중요 인물 누구도 그에게 만나자고 연락해 오지 않았다. 소식통에 따르면, 비밀 만남을 중시하는 중국 공산당은 이를 외교적 실패로 판단했다.

이 밖에도 중국 공산당의 신뢰를 받던 월가 금융계 인사들이 이제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중재자 역할을 “리스크가 크다”며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중국 상무부장 왕원타오가 미국 상무장관과 무역대표에게 각각 서신을 보냈지만, 긍정적인 답변을 받지 못했다는 점 등이다.

탕칭은 이와 관련해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오판을 여섯 가지로 요약했다.

하나는 비공식, 비공개 협상 방식을 고수한다는 점이다. 탕칭은 “트럼프 행정부는 공개적이고 직접적인 교섭을 중시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밀실 협상을 하는 낡은 방식에 머물러 있다”며 달라진 트럼프 행정부에 중국 공산당이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극적으로 관망하는 태도 역시 관세 협상에서 발목 잡히는 요인이 됐다. 탕칭은 “중국 공산당은 미국이 먼저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물러서서 관망하다가 기회를 놓쳤다”고 평가했다.

또한 당 지도부 내부 포럼을 통해 확산한 ‘동승서강(東昇西降, 동양·중국은 떠오르고 서양·미국은 쇠퇴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미국이 쇠퇴기에 빠져있고 중국은 흥성한다는 자만심으로 제대로 된 협상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먼저 협상을 제안하면 체면이 깎인다는 시진핑의 ‘자존심 외교’, 그리고 파나마 운하에 대한 트럼프의 경고를 가볍게 여기다가 홍콩 CK홀딩스가 운하 인근 항만 운영권을 내준 후에야 허둥지둥 대처하며 중요한 협상 카드를 잃어버린 점도 거론됐다.

탕칭은 마지막으로 미국 증시 폭락과 국제 사회의 부정적 반응에 트럼프가 관세를 유예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고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오판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