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타임스

‘햄릿의 사순절’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나타나는 참회적 이미지, 독자들이 햄릿의 고뇌와 비극적 변화 경험할 수 있는 렌즈 역할 해

2025년 03월 27일 오후 3:17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 ‘햄릿’의 천재성 중 하나는 인간 삶의 궁극적 질문들에 대한 변함없는 탐구에 있다. 즉 죽음, 의심, 신앙에 대한 질문들이다. 셰익스피어는 이러한 주제들을 ‘재(灰)의 수요일’과 ‘사순절’ 관련 이미지를 통해 강조하며 독자들을 죄, 참회, 죽음,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한 분위기로 끌어들인다.

종교적 배경

기독교 전통에서 사순절은 죄에 대한 보상과 영적 정화를 위해 하나님께 바치는 금식, 참회, 기도, 자아 부정의 시간이다. 이 참회 기간은 또한 성 주간과 부활절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사순절은 재의 수요일에 시작해 일요일을 제외한 40일 후인 부활절 일요일에 끝난다. 사순절은 사막에서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40일간 금식을 상징한다.

전통적으로 재의 수요일 의식에는 사제나 목사가 무릎을 꿇은 사람들 이마에 재로 십자가 모양을 그리는 의식이 포함된다. 이 의식 중에 사제나 목사는 참회자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
이렇게 사순절은 재로 시작되며, 재는 회개의 고대적 상징이자 죽음을 상기시키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상징이다.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의 라틴어다. 메멘토 모리는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예술에서 자주 사용된 죽음의 상징 해골과 함께 인간의 유한성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곤 했다

이 간단하지만 무게 있는 제례에서의 문장은 ‘햄릿’ 전반에 걸쳐 울려 퍼지며 그중에서도 흙에 대한 많은 언급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 개념이 햄릿의 사색과 독백의 핵심을 이룬다고 말할 수도 있다. 햄릿은 죽음과 또 다른 중대한 선택이 영원한 그의 영혼에 미칠 영향을 두고 고뇌하는 인물이다.

이 사진은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리틀 마운틴에 있는 캐퍼스 채플 연합감리교회의 보라색 사순절 장식을 묘사했다. | 토마스 커첼/CC BY-SA 4.0

셰익스피어 연구에 정통한 영국의 문학 비평가 해리 모리스는 “햄릿은 사적 복수 행위가 악(惡, evil)이란 것을 알았을 것”이라며 “자신의 영혼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면서 (부친을 살해한) 클라우디우스를 죽일 방법을 찾으려다 이 둘 사이에서 시간을 지체하게 된다”고 했다. 죽음, 죄, 심판은 이 작품의 핵심에 있다. 이는 바로 기독교인들이 사순절 시작을 알리는 재의 수요일에 마주하는 세 가지 현실이다.

이것이 셰익스피어가 사순절 이미지를 사용해 그가 다루고자 했던 문제들을 표현하고 탐구하는 데 적합하다고 생각한 이유일 수 있다. 이 작품은 덴마크 왕자 햄릿의 이야기로, 햄릿의 아버지인 왕이 햄릿의 삼촌 클라우디우스에 의해 살해당한 사건을 다룬다. 클라우디우스는 이후 왕의 아내와 왕위를 차지하게 된다. 이야기는 햄릿의 아버지가 유령으로 나타나 아들 햄릿에게 자신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전하고 복수를 명령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슬픔과 분노에 휩싸인 햄릿은 작품의 대부분을 주어진 과제와 씨름한다. 아버지 죽음을 복수하려는 과정 그리고 그에 따른 영적 고뇌로 인해 햄릿은 사랑하는 이들과 멀어지게 되고 결국 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햄릿은 결국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삶과 그에게 소중한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 후에야 이뤄진다.

1870년경 햄릿 역의 미국 배우 에드윈 부스, J. 게니가 촬영한 사진. | 에버렛 컬렉션/셔터스톡

‘햄릿’에서의 종교적 연결

사순절 이미지는 작품 초반부터 나타난다. 햄릿은 전통적으로 참회의 색인 검은 옷을 입고 있다. 금식은 극 초반 햄릿이 아버지의 유령과 나누는 대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선 유령은 자신을 회개하는 상태로 묘사한다.

“나는 네 아버지의 영혼이니,
일정 기간 밤마다 걸을 운명에 처해 있으며,
낮에는 불 속에서 금식하며 갇혀 있다.
내가 살았던 시절의 더러운 죄들이
태워지고 정화될 때까지.”

이 영혼의 참회적 태도는 햄릿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는 유령과의 만남 이후 자신만의 사순절 금식을 시작한다. 햄릿은 아버지 유령이 내린 임무 외에는 모든 즐거운 기억들을 희생하고, 오직 그 임무만이 그의 마음속에 남게 하기로 결심한다.

“그래, 내 기억의 책상에서
모든 사소하고 애틋한 기록들을 지울 것이니,
모든 책의 교훈들, 모든 형태, 모든 지나간 압박들
젊음과 관찰이 그곳에 새겨 놓은 것들,
그리고 당신의 명령만이 고독하게
내 뇌의 책과 두루마리 속에 살아남을 것이다.”

햄릿은 책상을 깨끗이 쓸어내는 비유를 사용한다. 이는 금식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정신적 금식을 시작한다. 햄릿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모든 하찮은 생각들을 비워낸다. 기독교인들이 사순절 기간 중 특정한 기쁨, 종종 음식 등을 희생하고 더 중요한 사안에 집중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말이다.

사순절과 재의 수요일 이미지를 더욱 발전시키면서 셰익스피어는 흙의 개념을 작품 전반에 걸쳐 통합한다. ‘햄릿’의 1막 2장에서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드는 햄릿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의 고귀한 아버지는 흙 속에서 찾거라.”
이 책의 2막 2장에서 햄릿은 유명한 대사로 인간을 ‘흙의 본질’이라 요약한다. 이는 재의 수요일 의식의 문구와 거의 일치한다.

카타콤은 인간의 죽음을 물리적으로 상기시켜 준다. | 길만신/셔터스톡

햄릿은 다시 한번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란 핵심 관념을 언급한다. 이는 4막에서 어린 시절 친구였으나 배신자가 된 로젠크란츠가 “당신은 죽은 몸을 어떻게 했습니까, 전하?”라고 묻자 “흙과 섞었지, 그것이 그와 연관이 있으니”라고 대답하는 장면에서 나타난다.

이 대사는 재의 수요일 의식에서 언급되는 흙과 죽음에 대한 상징을 다시 떠올리게 하며 햄릿이 죽음과 그 후에 오는 결과들에 대해 계속해서 성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햄릿의 죽음에 대한 가장 유명한 명상 중 하나는 왕들의 ‘흙과 분해의 굴욕’을 형상화하는 데에서 힘을 얻는다. 햄릿은 “우리가 얼마나 천한 용도로 돌아갈 수 있는지, 호라티오! 왜 상상력이 알렉산더의 고귀한 흙을 추적해 그것이 단순히 맥주통 구멍을 막고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할까?”라고 말한다. 이어 다시 한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란 말을 되새기며 햄릿은 이렇게 말한다.

“알렉산더는 죽었고,
알렉산더는 묻혔으며, 알렉산더는 흙으로 돌아간다; 그 흙은
땅이 되고; 우리는 그 땅으로 토양을 만든다; 그렇다면 왜 그 토양(그가 변한)으로
맥주통을 막을 수 없겠는가?
위엄 있는 카이사르, 죽어 점토로 변해,
구멍을 막아 바람을 막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햄릿은 외모, 말, 행동에서 사순절 정신을 요약하는 것 같다. 사실 헝가리 출신 문학 비평가 지타 투리는 이 작품에서 햄릿이 상징하는 사순절과 클라우디우스가 상징하는 카니발 사이의 상반된 개념이 충돌하며 알레고리적 싸움이 벌어진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투리는 클라우디우스가 “연회와 오락을 조직하면서 왕권을 조롱하고 (신의 권력에 의해 임명되지 않고) 스스로를 왕으로 임명한다. 그러고선 기도는 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는 모두 카니발이란 개념에 해당하는 특성이다. 투리는 클라우디우스에 대해 “‘진짜’ 왕의 사기적 화려함을 입고 왕권을 조롱하는 ‘혼돈의 주인’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평했다.

사순절의 상징으로서 햄릿의 역할은 클로디어스에 의해 구현된 음탕하고 죄 많은, 방탕한 카니발의 정신으로부터 왕국을 정화하는 것이다. 투리는 햄릿이 “잘못된 통치와 떠들썩한 방종에 반대한다”고 썼지만 “클로디어스의 사순절을 반대하는 방종에 의해 방해받고 있다”고 했다.

사실 금욕을 설교하고 실천하는 햄릿의 역할은 투리의 주장을 한층 강화한다. 예를 들어 3막 4장에서 햄릿은 어머니에게 클라우디우스와의 성관계를 자제하라고 충고한다. 중요한 결투 장면에서 햄릿은 독이 든 와인잔—어머니 거트루드의 죽음을 초래하는 와인잔을 거절한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그녀는 자기 방종적인 카니발 정신의 영적 죽음에 굴복했으며 이는 햄릿, 사순절의 금욕 정신이 거부한, 바로 그 와인잔으로 상징된다.

셰익스피어는 단식, 회개, 그리고 죽음과 심판에 대한 인식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문학에서 가장 유명한 메멘토 모리 장면 중 하나인 햄릿과 요릭 해골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를 나타낸다. 요릭은 어린 햄릿에게 웃음을 주던 궁정 광대였다.

해골은 죽음을 상기시키는 상징으로, 이마에 재를 바르는 것만큼이나 강력한 상징이다. 어쩌면 그보다 더 강력할 수도 있다. 해골 또한 기독교 전통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다. 수도사들은 종종 그들의 책상 위에 인간 해골을 놓고 삶의 덧없음과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미덕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키곤 했다.

햄릿과의 상호작용에서 해골은 메멘토 모리의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하며 인간 존재의 유한성과 죽음의 불가피함을 강하게 전달한다. 이 장면에서 햄릿은 자신의 죽음과 모든 인간의 필연적인 죽음을 직면하며 삶과 죽음에 대한 심오한 성찰을 한다.

19세기 로널드 가우어의 작품으로 요릭의 해골을 들고 있는 햄릿 왕자.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 | 퍼블릭 도메인

5막 1장에서의 묘지 장면에서 이 상징은 중심적 역할을 한다. 모리스는 이렇게 썼다.
“해골은 셰익스피어의 메멘토 모리 에피소드에서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 중 하나다. 해골은 무대 곳곳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무덤 파는 사람이 햄릿에게 세 개의 구별되는 해골을 보여주며, 햄릿의 추가적인 명상은 모든 메멘토 모리류의 시처럼 이처럼 적절하게 명명된 음침한 상기에서 비롯된다.”
이 장면에서 햄릿은 해골을 보고 인간 존재의 유한함과 죽음의 불가피성을 다시 한번 강하게 인식하게 된다. 해골은 그에게 인간의 삶이 결국 어떻게 흙으로 돌아가며 모든 왕이나 위대한 인물들도 결국 ‘흙으로 돌아갈’ 운명에 처한다는 깊은 성찰을 얻는다. 이 장면은 사순절 정신과 메멘토 모리를 다시 한번 환기하는 중요한 순간이다.

햄릿이 요릭의 해골을 보고 진심으로 죽음을 인식한다. 후대에 명성을 남긴 알렉산더, 카이사르 그리고 흙에 대해 말하며 모든 인간은 아무리 위대한 존재일지라도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믿음, 희망, 기쁨

중요한 점은 5막 1장에서 햄릿이 죽음에 대해 성찰하는 장면이 그의 마음에 균형을 되찾아 주고 심지어 믿음, 희망, 그리고 일종의 기쁨을 불러일으키는 듯 보인다. 이는 모든 금식과 침울한 사색이 실제로 중요한 영적 목적을 수행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결국 그것이 종국엔 빛으로 이끄는 길이 될 수 있다.

5막 2장과 마지막 결투로 향하는 햄릿은 갑자기 그가 오랫동안 놓쳤던 결단력을 얻게 된다. 또한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운명에 대해 괴로워하지 않고 더 높은 권능에 대한 신뢰를 찾게 된다.

5막 2장에서 그는 자신의 성격과 극의 메시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사를 전달한다. 이 대사들은 그가 마침내 회복한 내적 평화를 드러낸다. ‘나니아 연대기’로 유명한 영국 작가 겸 비평가인 C.S. 루이스가 햄릿의 대사를 인용해 말한 것처럼.

“‘햄릿’의 세계는 길을 잃은 세계다. 왕자도 의심할 여지없이 길을 잃었고, 우리는 그가 다시 길을 찾는 정확한 순간을 알 수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예언을 부정한다. 참새가 떨어지는 데에는 특별한 섭리가 있다. 만약 지금이라면, 그것은 오지 않을 것이다. 만약 오지 않을 것이라면, 지금이 될 것이다. 만약 지금이 아니라면, 그것은 결국 올 것이다. 준비가 전부다. 아무도 자기가 떠나는 것에 대해 가진 것이 없으니 이른 시간에 떠나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햄릿은 사순절의 참회와 메멘토 모리를 거친 후 마침내 죽음을 직면할 준비가 됐고 모든 것을 신의 섭리에 맡길 준비가 됐다. “준비는 다 돼 있다. … 그대로 두어라.” 만약 햄릿의 사순절 끝에 부활의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순간이다. 이 작품은 비극이기 때문에 우리는 완전한 부활을 목격할 수는 없다. 부활의 완전함은 비극적인 서사 범위 밖에 존재한다.

*박경아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