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반외국제재법’ 시행규정 발표…“외국기업 지분·지식재산도 압류 대상”

중국 공산당 정부가 최근 ‘반(反)외국제재법’ 시행규정을 발표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제재에 대한 맞대응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 법은 외국 정부가 인권 탄압 등을 이유로 중국 공산당(중공) 정부기관이나 관리, 개인에 제재를 가할 경우 보복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제공한다.
특히 이 법에 저촉된 외국 기업이나 단체, 개인을 상대로 중국 내 자산, 심지어 지식재산까지 압류·몰수·동결할 수 있도록 규정하여 우려를 키우고 있다. 외국 자본의 대규모 이탈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지적된다.
중국의 검열을 받지 않는 해외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법은 외국에 대한 보복을 강조하면서도 내부 선전과 정권 안정을 꾀하는 측면도 강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중공, 미국의 제재에 보복 조치 법적 근거 마련
중국 국무원은 지난 24일 ‘반외국제재법’ 시행규정을 발표했다. 이는 2021년 6월 중국의 의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통과시킨 ‘반외국제재법’의 구체적인 실행 규칙을 담고 있다.
미국에 거주하는 중국 출신 인권 변호사 우사오핑(吳紹平)은 “이 법은 미국의 대중 제재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며 “국제적으로 인권 침해, 국제법 위반 등의 사안에 대해 실질적인 제재를 가할 능력이 있는 국가는 사실상 미국뿐”이라고 말했다.
우 변호사는 “중공은 그동안 수차례 국제법을 위반하고 인권을 탄압한 전력이 있고, 이에 따라 미국의 법률적 제재를 받아왔다”며 “이번 법안은 사실상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경제학자 데이비드 황도 “이번 시행규정은 외부 압력과 도전에 직면한 중공이 정치적, 경제적 주권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대응”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최근 미국 미주리주가 코로나19 팬데믹과 관련해 중공 등 9개 단체를 상대로 한 240억 달러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한 일을 거론했다.
데이비드 황은 “미주리주 정부가 지역 내 중국 자본이 보유한 농지와 자산을 압류하겠다고 밝히면서 중공도 ‘반외국제재법’ 시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 기업의 지식재산권까지 압류 가능
이번에 발표된 시행규정의 핵심은 제7조다. 이 조항은 ‘반외국제재법’이 허용하는 ‘재산 압류, 동결, 몰수’의 대상을 확대해 현금, 유가증권, 지분뿐만 아니라 지식재산(IP)과 매출채권(받을어음)까지 포함하도록 했다.

보복 대상이 광범위하고 기준도 모호하다. 시행규정 제3조에 따르면 △외국 정부가 자국 법률에 따라 중국을 봉쇄하거나 중국 단체와 국민을 상대로 차별적 제한 조치를 하거나 △중국의 내정에 간섭하거나 △외국 정부나 단체 또는 개인이 중국의 발전과 이익을 해치는 행위를 하거나 이를 지원·지지했을 경우 보복 대상이 될 수 있다.
즉, 외국 개인이나 단체가 중공의 이익을 해칠 경우 중국 내 자산과 지분, 지식재산을 압류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한 셈이다.
우 변호사는 “중국 내 외국 기업들이 보유한 지식재산권이 강제로 압류될 위험이 커졌다”며 “미국이나 국제적으로 등록된 특허를 중국으로 들여온 기업들은 이제 그 권리를 박탈당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이 규정이 시행되면 외국 기업들은 더 이상 지식재산권을 보호받을 수 없으며, 사실상 (중공) 정부가 원하는 대로 강탈당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고 덧붙였다.
데이비드 황 역시 “이번 조항은 외국 기업들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며 “물리적인 자산이 없는 기업이라도 소프트웨어나 브랜드 상표 등 지식재산권이 중국에서 무효화될 수 있어 사업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고 지적했다.
외국 자본, 중국 시장에서 이탈 가속화할 듯
전문가들은 이번 규정이 시행되면 중국 내 외국 기업들의 투자 환경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자본 유출이 가속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우 변호사는 “외국 기업에 있어 이번 조치는 리스크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키는 요소”라며 “중국과 국제 사회의 갈등이 심화될수록 외국 기업이 직면할 위험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 내 외국 기업들은 이제 언제든지 정부의 결정에 따라 재산을 몰수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 사업을 운영해야 한다”며 “결국 이러한 불확실성은 외국 자본의 대규모 이탈로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시행규정’ 형태로 유연성 확보…대내 선전 목적도
전문가들은 이번 시행 조치가 ‘조례’가 아닌 ‘규정’의 형태로 발표됐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중국의 법률 체제상 시행규정(實施規定)은 시행조례(實施條例·시행령)에 비해 법적 구속력이 낮은 규범이다. 국무원 부처나 지방정부가 제정할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 언제든 수정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
반면, 시행조례는 국무원이 제정하며, 법률보다는 낮지만 시행규정보다는 높은 수준의 법적 구속력을 발휘한다.
우 변호사는 중공이 실제로 외국 자본의 대규모 이탈을 초래할 가능성을 우려해 법적 강도를 조절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중공 지도부가 이번에 시행조례가 아닌 규정을 발표한 것은 외국 자본을 지나치게 위축시키지 않으려는 조치”라며 “실제로 법을 집행하기보다 국내 선전을 위한 목적이 강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