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싱크탱크 “中 공산당, 정치전 지속…간첩 처벌 강화해야”

미국의 한 싱크탱크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중국 공산당이 대만을 대상으로 공개 및 비공개적인 ‘정치전(political warfare)’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외국 대리인 등록제 도입 △간첩 행위 처벌 강화 △현직 및 퇴직 공직자의 중국 방문 감시 강화를 제안했다. 특히 출국 30일 전 여행 일정 공개 의무화와 비공개 회의 전면 금지를 강조했다.
정치전은 1940년대 소련 모스크바에 근무하던 미국 외교관 조지 케넌이 보고서에서 사용한 용어로 “국가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쟁을 제외한 모든 국가 수단을 동원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정치공작과는 구분된다. 총칼만 안 들었을 뿐, 모든 수단과 방법을 통해 상대국을 영향력하에 두는 것을 뜻한다. 정치 분야에만 한정되지 않고 언론, 문화, 예술, 경제, 교육 등 전후방을 가리지 않은 비밀 공작을 포괄한다.
워싱턴 소재 글로벌대만연구소(GTI)는 최근 ‘중국 공산당의 대만 비밀 공작(Chinese Communist Party Covert Operations Against Taiwan)’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출신 중국 전문가 피터 매티스 등이 작성했다.
보고서는 “대만만큼 외부의 조직적 위협을 받는 민주국가는 없다”며 “중국 공산당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 시도와 그로 인한 대만 민주주의의 훼손이 현실적인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공산당)은 정치 공작을 통해 대만의 내부 결속을 약화시키려 하고 있으며, 이를 방치하면 대만 사회가 내부에서부터 붕괴될 위험이 크다”고 경고했다.
저자들은 대만에 한정했지만, 중국과 인접한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대만은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전면 수검표를 확립함으로써 선거 개입 가능성을 최소화했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외세의 선거 개입 논란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특히 중국공산당의 ‘군사 기업’으로 평가되는 화웨이의 통신장비를 이용한 통신망 혹은 폐쇄회로망을 구축한 정부기관은 언제든 도청을 당할 수 있다는 미국 정부의 경고를 감안하면,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한 실정이다.

외국 대리인 등록제 도입 및 간첩 행위 처벌 강화 제안
보고서는 대만이 외국 대리인 등록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등은 외국 정부나 단체를 위해 활동하는 개인 및 조직에 대해 등록을 의무화하는 법적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이러한 제도가 완벽하진 않지만, 외국 세력의 개입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마련하는 데 유용하다는 게 보고서 저자들의 평가다.
특히 보고서는 “등록 없이 외국 세력을 대리해 활동하는 경우를 형사 범죄로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간첩 활동을 처벌하는 것은 기밀 정보 공개의 위험 때문에 쉽지 않지만, ‘미등록 외국 대리인’ 혐의로 기소하면 정보 유출 여부를 입증하지 않아도 처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미국 사례를 들어 “미국에서는 다수의 간첩이 ‘미등록 외국 대리인’ 혐의로 기소된다”며 “이는 국가 안보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었음을 입증하지 않아도 처벌이 가능한 방식으로, 경범죄에 해당하지만 형량은 상당히 무겁다”고 분석했다.
중국 공산당은 최근 ‘회색지대’ 전술을 각 방면에서 구사하고 있다. 영유권 분쟁이 치열한 해역에서는 군용 선박이 아닌 민간 어선을 이용해 상대방 해역을 침투하면서 경계 태새와 여론의 반응을 살펴보기도 한다. 상대국으로서는 민간 어선에 강경히 대응하기 어렵다.
과거와 같은 개념의 간첩은 아니지만 유학생이나 관광객 신분을 내세워 상대국의 국가 안보상 민감한 지역을 염탐하기도 하고, 양국 기업가 혹은 정치인 간 교류를 표방해 가볍게는 호화로운 여행에서부터 명예 학위와 보상, 사업적 이권을 제공해 명망 있는 인사를 포섭한다.
방송이나 유명 유튜브 채널에서는 중국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중국 공산당의 해결 능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중국(중국 공산당)과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른바 중국 전문가와 학자들의 활동도 ‘회색지대’ 전술에 속한다.
이들의 범법 사실을 추적, 적발해 처벌하거나 국내에서 활동을 제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이나 중국 정부, 단체와의 관계를 체류국 정부에 신고하지 않고 활동할 경우 제약을 가할 수 있도록 한다면, 효과적인 대응이 가능하다는 이 보고서의 제안은 한국 사회에도 동일하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이다.

퇴직 공직자에 대한 감시 강화, 중국 방문 규제도 필요
보고서는 대만의 보안 심사 제도가 여러 기관의 내부 규정과 국가 관련 법률이 혼재된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체계적인 보안 심사 제도를 구축하고, 공직자는 퇴직한 후에도 엄격히 감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공직자들이 높은 윤리 기준을 준수하도록 하고, 심각한 기밀 유출 사례에는 형사 처벌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 같은 조치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행정부와 입법부 간 신뢰 구축에도 기여해 국가 안보 관련 정책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또 대만 정부가 중국과의 접촉에 대한 감시와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현직 및 퇴직 고위 공직자, 국회의원, 정치 임명직 관리들이 중국을 방문할 경우, 사전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출국 30일 전 여행 일정 공개를 의무화하고, 모든 공식 회의에 외교 관계자가 동석해야 하며, 기자의 취재 및 회의 기록을 보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현직 정부 관리, 정치인의 중국 여행은 중국 공산당 요원들이 친중공 인사를 포섭하는 주요 통로로 알려져 있다. 중국 공산당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적인 중국 문제 전문가들은 아예 중국을 방문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대처라고 조언한다.
실제로 2004년 상하이 주재 일본 외교관은 중국 정보기관 여성 요원의 미인계에 걸려, 조국을 배신하고 기밀정보를 제공하라는 압력을 받던 끝에 자살했다. 2011년에는 상하이 주재 한국 외교관들이 중국인 여성 덩(鄧)모씨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국가 기밀을 다수 유출했다는 의혹이 국내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다.

“중국 공산당의 선전에 참여하는 것도 간첩행위로 처벌해야”
보고서는 간첩 행위에 대한 추가 처벌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예를 들어 △국가 안보 관련 범죄를 저지른 공직자가 다른 공직자나 군인을 포섭해 중국과 접촉을 시도한 경우 △중국의 정보기관 및 통일전선부와 협력한 경우 등에 대해 가중 처벌을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
전통적인 의미의 간첩 행위에 그치지 않고 중국 공산당의 선전 활동에 참여하거나 통일전선 공작에 직접 가담하는 사례도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중국 공산당의 공작 전술 변경과도 관련이 있다. 중국 공산당은 과거 정권 이미지 개선을 위해 노력했으나, 각국에서 반중 여론이 고조되면서 실패로 돌아가자 현지 언론과 유명 인사를 통한 간접적인 선전 활동에 힘을 쏟고 있다.
가장 최근 한국에서 두드러진 것은 중국 비밀경찰서와 그 책임자 왕해군 사건이다. 왕해군은 지난 2022년 말 중국 비밀경찰서 책임자로 지목되자, 그해 12월 기자회견장에 모인 기자들에게 “기자님들은 저를 모른다고 해도 되지만, 소속 언론사의 임원진, 심지어 국장님, 대표님들도 정말 저를 모르시냐”며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적이 있다.
왕해군은 서울 송파구의 대형 중식당을 운영하며, 정치인과 언론사 임원진 등을 초청해 각종 행사를 개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해당 식당 2층은 중국 공산당 총서기 시진핑의 서적을 전시하는 등 공산당 이념과 체제 선전 창구로 활용됐음이 확인됐다.

“중국 공산당의 공작 감시에는 독립언론 지원이 효과적”
보고서는 독립 언론 지원도 중국의 정치 공작을 저지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 공작 관련 보도는 복잡한 사안이므로, 정부보다는 민간 언론이 더욱 효과적으로 조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매티스는 “언론은 전통적인 ‘제4의 권력(Fourth Estate)’의 역할을 넘어 정부가 감지하지 못하는 문제를 파헤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며 “정부, 언론사, 민간 후원자들이 협력해 독립 언론을 지원하는 기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4의 권력은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등 삼권분립에 이은 또 하나의 독립적 권력이라는 의미로 언론의 역할과 중요성을 뜻하는 표현이다.
보고서는 끝으로 “(대만은) 국내외에서 이 같은 지원을 확보해야만 동맹국과 파트너들이 중국 공산당의 위협을 보다 명확히 인식할 수 있을 것”이라며, 중국 공산당의 위협에 가장 크게 노출된 국가로서 철저한 대응을 통해 주변의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본보기를 제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