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니니와 보티첼리의 걸작 속 ‘변형’
로마·이탈리아 시인들의 영감 받은 조각가 베르니니와 화가 보티첼리, 자신들의 작품에서 ‘변형의 아름다움’ 묘사

지안 로렌조 베르니니의 실물 크기 대리석 조각 ‘아폴로와 다프네(Apollo and Daphne)’는 이탈리아 로마의 보르게세 미술관을 방문하는 사람들 위에 우뚝 솟아 있다. 이 작품은 고대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Metamorphoses)’에서 아름다운 물의 요정 다프네가 태양의 신 아폴로의 격렬한 추격을 피해 월계수 나무로 변하는 이야기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절정(絕頂) 상황에서의 변형을 묘사하고 있다.
아폴로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12명의 올림포스 신 중 한 명이다. 사랑의 신 큐피드의 황금 화살에 맞아 다프네란 물의 요정을 보고 욕망에 휘말리게 된다. 다프네는 강(江)의 신 페네우스의 딸로 큐피드의 납화살에 맞아 남자들의 사랑을 거부하며 도망친다. 아폴로는 그녀를 쫓다가 추격 끝에 다프네의 발을 밟게 됐고, 그의 숨결은 그녀의 흐르는 머리카락과 섞인다. 다프네는 달아나는 데 지쳐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기도한다.
“아버지, 만약 당신의 흐르는 강물에 능력이 있다면,
나를 도와주세요! 어머니 대지여, 나를 감싸 주세요!
나를 해친 아름다움을 파괴하거나
내 생명을 파괴하는 몸을 바꿔 주세요.”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다프네의 몸은 점차 변화해 갔다. 얇은 나무껍질이 가슴을 감싸고 발은 구불구불한 뿌리로 변해 땅에 고정돼가고 있다. 아름다운 얼굴은 나뭇잎에 의해 가려지고, 머리카락은 떨리는 나뭇잎으로 변하며, 팔은 흔들리는 가지로 변하게 된다.
1622년 베르니니는 23세 나이로 교황의 조카 시피오네 보르게세 추기경의 명에 따라 이 작품 조각을 시작했다. 보르게세 추기경은 베르니니가 ‘프로세르피나의 강탈(The Rape of Proserpina)’ 제작을 마친 직후 이 작품을 의뢰했다. 이 작품은 추후 보르게세 추기경이 루도비코 루도비시 추기경에게 선물했다.

이 솟아오르는 조각상은 다양한 질감과 대리석의 마감 정도를 보여주며 우리를 맞이하지만 이러한 다양성은 전체 작품의 조화에 종속된다. 수직적이고 나선형적인 제스처는 우리의 시선을 위로 이끌어 다프네의 손가락과 머리카락이 월계수 잎으로 변하는 구성의 정수에 이르게 한다. 잎 부위의 대리석은 매우 얇고 종이처럼 가벼워 햇빛이 비추면 금빛으로 변한다.
베르니니는 오비디우스가 시로 표현한 상황을 놀라울 정도로 충실하게 재현했다. ‘아폴로와 다프네’의 세부 묘사는 특히 인상적인데 예를 들어 발톱에서 뿌리로 이어지는 끊어짐 없는 전환은 다프네를 땅에 고정시키는 흙의 덩굴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조각상의 움직임은 관람객들이 둘러보면서 조각상을 둘러싼 공간 속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를 경험하도록 초대한다.
이 작품의 감상을 관람자 눈높이에 자리하고 있는 두 인물의 하체에서 시작하면 아폴로의 욕망이 그의 다리가 걷는 중간에 포착된 방식으로 그 힘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오른발은 단단히 땅에 눌려 있다. 다프네의 다리는 신의 다리 앞에 있으며 땅의 둔덕 위에 올려져 있다. 이는 마치 물의 요정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방금 전 형성된 것으로 상상할 수 있다. 아폴로가 추격 중 보여주는 긴장감 있는 역동적 자세와 달리 다프네의 비틀린 몸은 마치 힘이 빠진 것처럼 조각되어 있으며 그녀의 발은 땅에 고정되고 그녀의 물결처럼 흐르는 머리카락은 섬세한 잎사귀 무리로 끌려가는 힘을 표현하고 있다.

얇은 월계수 나무껍질은 솟아오른 흙더미에서 솟아 나와 다프네를 감싸며 그녀를 유연한 나무껍질로 둘러싸고 있다. 우리의 시선이 거친 나무껍질이 다프네의 부드러운 살갗을 감고 있는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아폴로가 마침내 다프네와 접촉하는 절정의 순간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너무 늦은 순간이다. 신의 손은 다프네의 부드러운 배에 닿지 못하고, 새로 형성된 월계수 나무껍질만을 만질 뿐이다. 겨우 아폴로의 손가락 끝만이 다프네의 피부에 닿고 있다. 이는 신의 거의 이루어질 뻔한, 그러나 결국 이루어지지 않은 열정을 강조하는 세밀한 묘사다.
이 신화를 통해 월계수는 아폴로에게 중요한 승리의 상징으로 숭배된다. 다프네의 변형 후 아폴로는 선언한다.
“비록 너는 내 아내가 될 수 없으나,
너는 내 선택된 나무라 불리게 될 것이며,
오 월계수여! 너의 푸른 잎들은
영원히 내 이마를 장식할 것이고,
내 화살통과 내 거문고를 둘러쌀 것이다;
로마의 영웅들은 너로 왕관을 쓸 것이다.”
따라서 다프네의 잎사귀는 왕관, 화환, 그리고 꽃다발로 엮여 델피의 아폴로 신전에서 열린 ‘피티아 경기(Pythian Games)’에서 선수들에게 수여됐다(피티아 경기는 아폴로가 뱀 피톤을 물리친 것을 기념해 열린 종교적·문화적 대회다). 우리가 ‘국가 시인’이나 ‘노벨 수상자’라 말할 때, 이는 사실 이 고대 그리스와 로마 전통을 이어받아 뛰어난 업적을 인정받은 이들에게 월계수로 존경을 표하는 것에 해당한다.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

또 다른 변형을 묘사한 예술 작품은 산드로 보티첼리가 1480년대 초기 포플러 나무 패널에 유성 안료로 그린 ‘프리마베라(Primavera)’다. 이는 베르니니가 ‘아폴로와 다프네’를 조각하기 전, 140년 이상 앞선 작품이다. 메디치 가문을 위한 선물로 그려진 이 패널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신 아홉이 모여 오렌지와 월계수 숲속에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 그림 속 인물을 우측 끝에서부터 보면 오른쪽 끝이 서풍의 신 제피르, 꽃과 봄의 여신으로 후에 플로라가 된 클로리스, 클로리스가 변한 모습인 플로라, 사랑과 미의 여신 비너스(위에는 비너스의 아들인 큐피드가 날고 있다), 아름다움과 예술, 우아함을 상징하는 세 명의 그레이스 여신들, 그리고 전령의 신 머큐리가 그려져 있다.
이 아홉 신이 같은 공간에 등장하는 이유에 대해 수많은 학자가 해석을 시도했으나 이 특정한 신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야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의 신플라톤주의가 당시 피렌체의 지적(知的) 원로들, 특히 메디치 가문을 매료시켰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다. ‘프리마베라’는 오비디우스의 서사시 ‘파스티(Fasti)’와 아마도 고대 로마 시인 루크레티우스, 그리고 이탈리아 고전 학자이자 메디치 가문의 시인이던 폴리지아노의 글에서 영감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사시 ‘파스티’는 로마의 공휴일과 중요 기념일들을 다룬 서사시로 로마인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신들의 숭배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제피르, 서풍의 신은 그림의 오른쪽에 떠 있으며 요정 클로리스의 몸을 움켜잡고 있다. 그와 동시에 클로리스의 입에서 섬세한 꽃들이 나오며 땅에 떨어져 다양한 꽃들이 가득한 카펫처럼 펼쳐진다. 그림의 초록색 부분은 다소 어두운 편인데 이는 안료가 시간이 지나면서 변색된 결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0종 이상의 식물들이 식별되고 있으며 그중 138종의 꽃이 정확히 구분돼 보티첼리가 식물도감을 참조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미술 역사학자들은 ‘프리마베라’와 중세 말기 플랑드르(현재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일부 지역) 및 프랑스의 ‘밀레플뢰르(천 개의 꽃)’ 태피스트리 사이의 시각적 유사성에 대해 언급해 왔다. 이 태피스트리들은 어두운 초록색 배경에 꽃과 잎사귀가 뿌려져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15세기 말, 16세기 초 유럽 궁전에서 자주 장식용으로 사용됐다.

오비디우스의 ‘파스티’ 다섯 번째 책에서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제피르가 클로리스를 성공적으로 추격한 후 그녀와 결혼해 클로리스를 봄의 여신이자 꽃의 여왕인 플로라로 변모시킨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폭력에 대한 보상을 하여 나에게 신부란 이름을 주었고, 나의 혼인 침대에는 불만이 없다. 나는 영원한 봄을 누린다. 해마다 가장 풍요롭고, 언제나 나무는 잎으로 덮이고, 땅은 풀밭으로 덮인다. 나의 지참금인 들판에서 나는 풍성한 정원을 가졌으며, 그 정원은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흐르는 샘물로 적셔진다. 이 정원에 남편은 고귀한 꽃들로 채우고는 말하였다. ‘여신님, 꽃들의 여왕이 되십시오.’”

보티첼리의 그림에서 플로라는 흐르는 꽃무늬 드레스를 입고 정면을 바라보며 비너스 앞에 핑크와 빨간 장미를 뿌리고 있다. 꽃들은 세밀하게 그려졌으며 클로리스의 입에서 떨어뜨리는 꽃들은 플로라의 드레스 무늬와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플로라의 자세는 고귀하고 우아하며 성숙해 보인다. 이는 변형되기 전의 클로리스가 보이는 수동적이고 취약한 자세와 대비된다.
큐피드는 눈을 가린 채 그의 어머니 비너스 위에 떠 있으며 그의 화살은 세 그레이스 여신을 향하고 있다. 세 그레이스는 아름다움과 함께 다산, 즐거움을 상징하는 여신들이다. 신의 전령인 머큐리는 다른 신들에서 등을 돌린 채 자신의 카두케우스(caduceus, 두 마리 뱀이 서로 얽힌 지팡이로 현대 의학 관련 상징물)를 구름 속에서 들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부분이 이 작품 속 가장 수수께끼 같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다.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결혼과 출산을 축하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제피르의 클로리스를 향한 추격은 처음에는 강제로 이루어진 결합이었다. 하지만 결국 봄의 영원한 아름다움을 가져오는 결혼으로 변모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 것이다.
*박경아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