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공산당, 홍콩기업 항만운영권 매각 비난…“탈중국만 가속화할 것”

중국 공산당(중공) 정권이 홍콩 최대 재벌 리카싱(李嘉诚) 회장과 그의 기업 CK허치슨 홀딩스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CK허치슨은 최근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요구를 받아들여 파나마 운하 양끝 항구 운영권을 글로벌 투자기업 블랙록이 이끄는 미국계 투자그룹에 매각했다. 또한 전 세계 41개 항만 운영권도 같이 매각했다.
중공 국무원 홍콩·마카오 사무판공실는 최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리카싱을 “냉혈한 투기꾼”이라고 맹비난하며 “미국과 손잡는 것은 미래가 없다”고 경고하는 글을 게재했다.
해외 항만 운영권은 미국에 맞선 중공의 경제 공동체 구상인 ‘일대일로’, 미국의 제해권에 맞설 에너지·무역 거점 항구 확보전략인 ‘진주 목걸이’ 전략의 핵심이다.
중공은 직접 전면에 나서는 대신, 지난 2013년부터 홍콩 기업들을 통해 해외 거점 항만 운영권을 확보해 왔는데, 이번에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10년간의 전략적 움직임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국무원 홍콩·마카오 판공실이 리카싱을 지목해 미국과의 협력을 비난한 것은 이러한 배경을 두고 있으나, 떠나는 리카싱의 발목을 잡을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리카싱은 이미 중국 내 자산을 축소하고 해외로 이전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이다.
중화권에서는 이미 중국에서 발을 뺄 기회를 엿보고 있던 리카싱이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을 계기로 삼아 골치 아픈 항만 운영권을 처분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중공의 정치적 요구에 계속 시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홍콩 재계의 상징인 리카싱에 대한 비판이 다른 홍콩 기업들의 ‘탈중국’ 행보를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중공 당국, 관영 홍콩매체 칼럼 인용해 리카싱 비난
지난 15일 홍콩·마카오 사무판공실은 홍콩에서 발행되는 관영매체 ‘대공보’ 칼럼을 인용해 리카싱과 CK허치슨을 거세게 비판했다.
대공보는 전 세계 43개 항만을 미국계 투자그룹에 매각하기로 한 CK허치슨의 결정을 겨냥해 “이처럼 중요한 항만을 어째서 이렇게 쉽게 ‘악의적인 미국 세력’에게 넘기는가?”라고 질타했다.
이어 중국의 전기차 제조사인 ‘비야디(BYD)’, 배터리 제조사 CATL, 인공지능 기업 아이플라이텍, 드론 제조사 DJI 등을 ‘애국적 기업’으로 내세우며 리카싱과 CK허치슨을 “국가를 배신한 냉혈한 투기꾼”으로 대비시켰다.
중공은 전날(14일)에도 국무원 홍콩·마카오 사무판공실 홈페이지를 통해 익명의 네티즌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CK허치슨의 항만 매각은 국민과 국가 이익을 저버린 행위”라고 맹비난했다. 연이틀 CK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드러낸 것이다.

금융허브 지위 상실한 홍콩…CK허치슨도 이탈 시도
중국 정부가 이틀 연속 CK허치슨과 리카싱을 비판한 것은 블랙록과의 항만 매각 계약을 무산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CK허치슨의 사업 중심이 이미 유럽과 해외 시장으로 이동한 만큼, 중국 정부의 압력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한다.
CK허치슨은 지난 4일 블랙록 컨소시엄과 원칙적 합의를 맺고, 전 세계 23개국에 걸쳐 43개 항만을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여기에는 파나마 운하 인근의 두 개 대형 항만도 포함됐으며, CK허치슨은 이번 매각으로 190억 달러(약 25조 원)의 현금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회사 재무보고에 따르면, 총자산 7635억 홍콩달러(약 142조1천억원) 가운데 중국과 홍콩에 있는 자산은 1065억 홍콩달러(약 19조8천억원)로 전체의 14%에 불과했다. 자산 대부분은 유럽과 캐나다, 아시아·호주 등에 분포하고 있다.
수익 구조면에서도 유럽 시장에서 발생하는 수익이 50%로 가장 많고 이어 아시아·호주(16%), 홍콩·중국 본토(12%) 순으로, 기업의 중심이 서유럽에 있음을 나타낸다.
블룸버그통신은 “CK허치슨이 (이번 계약으로) 매각하는 자산은 대부분 해외에 위치하고 있어, 중국 정부가 이를 규제할 법적 권한이 없다”며 “베이징(중공 지도부)이 리카싱의 다른 사업 부문을 견제할 가능성은 있지만, 그는 수십 년 전부터 중국 경제 의존도를 줄여왔다”고 평가했다.
“中의 리카싱 압박, 홍콩 기업의 탈중국만 가속화할 것”
중공이 홍콩·마카오 사무판공실을 통해 CK허치슨을 비판한 것에 대해 미국 세인트토마스 대학 국제연구학과 예야오위안(叶耀元) 교수는 “중공은 체제를 거스르는 인물들에게 ‘중국인’이라는 개념을 내세워 도덕적·감정적으로 압박하는 전략을 즐겨 쓴다고 지적했다.
예 교수는 “민간기업이 자산을 누구에게 팔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철저히 경제적 논리에 따른 판단이 돼야 한다”며 “게다가 중공이 주장하는 ‘중국인의 이익’은 실제로는 공산당의 이익일 뿐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사건은 오히려 다른 홍콩 기업들이 중국을 더 빨리 떠나도록 만드는 신호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홍콩의 대표적인 기업인으로서 중국과 홍콩의 경제 발전에 기여한 리카싱이 자산을 처분했다고 정권의 공개 비판을 받는 것을 본 다른 기업인들은 중국 시장에서 발을 빼야 한다는 인식만 깊어졌을 것”이라고 밝혔다.
리카싱 회장은 중공이 홍콩 기업인들을 비판할 때마다 주된 타격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2015년 금융시장 폭락으로 홍콩에서 대량의 자본이 빠져나가자, 그해 9월 중공 관영 신화통신 산하 싱크탱크 ‘랴오왕(瞭望) 연구소’는 ‘리카싱을 그냥 떠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칼럼을 발표했다.
이 칼럼에서는 “리카싱과 홍콩 재벌들은 중국 정부의 정책적 혜택을 받았으며, 이제 와서 떠나는 것은 도의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며 맹렬한 비판을 퍼부었다.
중국 경제학자 샤오중화(肖仲华) 박사는 “당시 탈중국 현상은 홍콩 기업뿐만이 아니라 외국 기업들도 마찬가지였다”며 “‘그냥 떠나게 할 수 없다, 가진 것을 내놔야 한다’는 주장은 오히려 기업들에게 ‘지금 떠나지 않으면 늦다’는 경고로 들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리카싱 회장과 CK허치슨 측은 이와 관련해 어떠한 공식적인 반응도 내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