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적인 헌혈, 혈액암 발병률 줄인다
건강한 혈액세포 생성 촉진…잠재적으로 혈액암 위험 낮출 수 있는 유전적 변이 유도

정기적으로 헌혈을 하는 사람들은 타인을 돕는 만족감 이상의 이점을 얻을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규칙적으로 헌혈하는 사람들은 혈액암 위험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유전자 변이를 겪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꾸준히 헌혈을 하는 사람들에게 예상치 못한 건강상 이점이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혈액 세포의 유전적 돌연변이
나이가 들수록 혈액 세포를 포함한 우리 몸의 세포는 자연스럽게 유전적 돌연변이를 축적하게 되며, 이는 암과 같은 질환의 위험을 높인다.
혈액 전문 학술지 ‘블러드(Blood)’에 실린 최신 연구에 따르면 연구진은 정기적인 헌혈이 이러한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조사했다. 이 연구는 건강한 60대 남성 헌혈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비교했다. 한 그룹은 40년에 걸쳐 100회 이상 헌혈을 한 사람들이었고 다른 그룹은 약 5회 정도만 헌혈을 한 사람들이었다.
연구진은 이 같은 분류에 따라 217명의 정기 헌혈자와 212명의 비정기 헌혈자를 모집, 그들의 혈액 줄기세포와 성숙한 혈액 세포의 유전자를 분석했다.
그 결과 비정기 헌혈자와 비교했을 때 정기 헌혈자들은 백혈병 위험을 낮추고 스트레스에 대한 회복력을 높이는 데 관련된 유전적 변화를 혈액 줄기세포에서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기 헌혈자와 비정기 헌혈자 모두에서 ‘DNMT3A’ 유전자의 변화가 관찰됐다. 이 유전자는 백혈병과 관련 있다. 하지만 정기 헌혈자에게서 발견된 유전적 변화는 일반적으로 백혈병에서 나타나는 유전적 변화의 위치가 달랐다.
이러한 유전적 변화의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연구진은 DNMT3A 유전자를 포함하도록 실험실에서 배양된 인간 줄기세포의 유전자를 수정했다. 이 줄기세포들은 백혈병에서 관찰되는 유전적 변화와 정기 헌혈자들에게서 발견된 유전적 변화를 각각 반영했다.
이 세포들은 두 가지 환경에서 배양됐는데 하나는 적혈구 생성을 촉진하는 호르몬인 에리트로포이에틴(erythropoietin, EPO)이 포함된 환경이며, 다른 하나는 감염을 모방한 염증성 물질이 포함된 환경이었다. 여기서 에리트로포이에틴은 헌혈 직후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기 헌혈자의 유전자 변이를 지닌 세포는 EPO 환경에서 잘 자랐지만 염증 환경에서는 성장하지 못했다. 반면 암과 관련된 변이를 지닌 세포는 그 반대 양상을 보였다.
암이 진행될 때 만성 염증은 종양 성장을 촉진하고 암 예후를 악화하게 만들 수 있다.
그 후 연구팀은 두 종류의 돌연변이를 가진 인간 줄기세포를 쥐에게 이식했다. 이 쥐들 중 일부는 혈액을 채취한 뒤 헌혈과 관련된 스트레스를 모방하기 위해 EPO 주사를 맞았다.
정기 헌혈자 변이를 지닌 세포들은 정상적으로 성장해 건강한 적혈구를 만들었고, 암세포로 변하지 않았다. 반면 암 관련 변이를 지닌 세포는 염증 지표 중 하나인 백혈구 수를 상당히 증가시켰다.
사람이 헌혈을 하면 골수 속 줄기세포가 손실된 혈액 세포를 대체하기 위해 새로운 혈액 세포를 만든다. 이때 줄기세포의 활동은 주위 환경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에 영향을 받는다.
잦은 헌혈이나 출혈은 이러한 줄기세포들이 건강한 새 혈액 세포 생성에 집중하도록 해 백혈병 위험을 줄인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영국 런던에 소재한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Francis Crick Institute)에서 ‘혈액 줄기세포 연구실(Haematopoietic Stem Cell Laboratory)’을 이끄는 도미니크 보네(Dominique Bonnet) 수석 연구원은 “우리의 연구는 유전자와 환경이 상호작용하고 나이가 들면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녀는 연구 규모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헌혈과 전암성 백혈병 돌연변이 발생 감소 사이의 뚜렷한 인과관계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더 큰 규모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첨언했다.
연구팀은 이들 서로 다른 돌연변이가 백혈병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치료 목적으로 이를 표적으로 삼을 수 있는지에 대해 추가연구를 할 계획이다.
헌혈이 가져오는 두 가지 이익
미국적십자사(American Red Cross) 대변인은 에포크타임스에 이메일로 밝힌 성명에서 “혈액 접촉의 필요성은 우리가 인식하든 못 하든 대부분의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미국적십자사에 따르면 자발적 헌혈은 현대 의학에서 대체할 수 없는 역할을 하며 매년 수많은 생명을 구하고 있다. 단 한 번의 헌혈로도 교통사고 피해자, 암 환자, 그리고 복잡한 수술을 받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고 대변인은 전했다.
하지만 헌혈을 통해 도움을 받는 것은 수혈이 필요한 사람들만이 아니다. 헌혈자 역시 혜택을 볼 수 있다.
자신을 희생하며 타인을 돕는 행동을 자주 하고, 그로부터 삶의 목적을 느끼는 사람들은 심장 질환을 포함한 여러 건강 문제를 겪을 위험이 낮다는 일부 연구 결과가 있다. 이타심과 심장 건강 사이에 약물처럼 기계적인 인과관계 같은 연결고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타적 행동은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만성 스트레스는 심장 질환의 주요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또한 이타적 행동은 대개 사회적 상호작용을 동반하기 때문에 사회적 유대감을 강화한다. 그리고 강한 사회적 연결고리는 심장 질환 위험을 낮출 수 있다.
미국 뉴욕-프레스비테리언/웰 코넬 메디컬 센터(NewYork-Presbyterian/Weill Cornell Medical Center) 수혈의학 디렉터 로버트 디시몬(Robert DeSimone) 박사는 “헌혈을 하러 가게 되면 간단한 신체 검진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미국 적십자사에 따르면 헌혈자의 활력 징후(vital signs)는 적십자사 측에 기록돼 개인의 헤모글로빈 수치, 맥박, 혈압 등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고혈압 같은 건강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의료진과 정보를 공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정기적 헌혈은 심장 질환 위험도 낮출 수 있다. 디시몬 박사 의견에 따르면 꾸준히 헌혈을 하는 것은 혈압을 낮추고 심장마비 위험도 낮춘다.
이는 혈액 내 헤모글로빈 수치를 낮춤으로써 심혈관 질환 위험을 완화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 헌혈을 통해 헤모글로빈 수치를 낮추면 심장병 위험을 덜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헤모글로빈은 혈액에서 산소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지만 너무 많아지면 혈액 점도를 높여 혈전, 심장마비, 뇌졸중 위험을 키울 수 있다.
<필자정보>
조지 시트로너는 암, 감염병, 신경퇴행성 질환을 포함한 건강 및 의학 분야 전반을 다루는 저널리스트다. 그는 남성 골다공증 위험에 관한 기사로 2020년 정형외과 전문 언론 보도 우수상(Media Orthopaedic Reporting Excellence, MORE award)을 수상했다.
*박경아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