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지속적으로 닭 살처분하는 이유
지난 3년간 1억 6600만 마리 사라져

미국이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HPAI) 확산 사태를 4년째 겪고 있다.
농업 및 공중보건 당국 수장이 교체됐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수백만 마리의 가금류를 살처분하는 기존 방역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농무부 한 고위 관계자는 에포크타임스 영문판에 “현재로서는 더 나은 대안이 없기에 살처분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류 인플루엔자(조류 독감)는 1990년대 중국에서 처음 확인됐다. 이후 철새를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됐다. 미국에서는 2014년 말 첫 감염 사례가 발생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살처분’ 정책을 성공적으로 적용해 1년 이내에 조류 독감 확산을 막아 냈다.
2014년 조류 독감 확산 대응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은 2017년 공식적인 조류 독감 대응 계획을 마련했다. 현재까지 이 계획을 ‘우선적이며 기본적인 전략’으로 시행하고 있다.
미국 농무부(USDA)에 따르면 2014년에 발생한 조류 독감 사례의 70%는 농장 간 감염을 통해 확산됐다.
농장 간 감염은 농장 근로자 또는 장비가 한 농장에서 다른 농장으로 이동하면서 바이러스를 옮기는 방식으로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새로운 가금류 집단으로 퍼지며 확산을 가속화한다.
미국 조류 독감 전문가인 캐롤 카도나(Carol Cardona) 미네소타대 수의·생물의학 과학부 교수는 미국 계란 산업계가 2014년 조류 독감 확산 경험을 바탕으로 방역 시스템을 대폭 개선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농장 간 감염률이 급감했다.
USDA 자료에 따르면 2014년 70%에 달했던 농장 간 감염 비율은 2023년 초 15%까지 감소했다.
카도나 교수는 2015년 이후 바이러스 변이가 거듭되면서 확산 경로도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류 독감이 야생 조류뿐 아니라 가축 포유류를 통해 농장으로 유입될 가능성도 제기했다. 그는 이 질병이 야생 조류 사이에서 풍토병(endemic)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USDA가 지난 5일(이하 현지 시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2월 이후 조류 독감 확산을 막기 위한 살처분 및 질병 감염으로 인해 죽은 가금류가 최소 1억 6600만 마리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로 인해 미국 계란 산업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대량 살처분으로 산란 가능한 닭뿐만 아니라 병아리까지 줄어들면서 계란 공급이 급감하고 가격은 사상 최고치로 치솟았다.

USDA가 지난달 28일 발표한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계란 도매가격은 한 판(12개) 기준 평균 8.05 달러를 기록했다.
대규모 살처분에도 불구하고 바이러스는 계속 확산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 대응 방식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백신 개발 선구자 로버트 말론(Robert Malone) 박사는 조류 독감이 풍토병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카도나 교수의 평가에 동의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살처분 전략이 실효성을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에포크타임스 영문판에 “(살처분 정책은) 자원 낭비”라며 “이제는 효과 없는 정책을 계속 고수하기보다는 새로운 방안을 고민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살처분 정책이 계란 가격 상승을 부추겨 인플레이션을 심화시키고 정치적 긴장을 야기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살처분 정책을 지속하는 이유
가뜩이나 치솟은 생활비 부담에 계란 가격마저 급등하자 백악관도 본격적으로 대응 조치를 마련하고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USDA에 ‘계란 가격을 신속히 낮추기 위한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지난 4일 연방 의회 합동 연설에서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특히 계란 가격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도록 방치했다”며 전 행정부를 비판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26일 USDA는 10억 달러(약 1조 3000억 원) 규모의 조류 독감 대응 예산을 발표했다.
이 예산은 미국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전부터 추진해 온 조류 독감 방역 정책을 대부분 유지하는 데 사용될 예정이다.
그러나 백악관 내부에서는 살처분 정책을 축소하거나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따라서 향후 정책 변화 가능성이 주목된다.
케빈 해셋(Kevin Hassett) 미국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지난달 16일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감염된 닭을 발견한 지역에서 무작위로 닭을 살처분했다”고 비판하며 살처분을 대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신 개발 전문가 로버트 말론(Robert Malone) 박사는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안했다. 그는 조류 독감이 자연적으로 지나가도록 놔두는 과정에서 농가는 면역을 획득해 살아남은 개체를 선별적으로 번식하는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류 독감에 대한 내성이 더 강한 ‘전통 품종(heritage breeds)’을 연구하고 이를 육종해 장기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USDA 고위 관계자는 에포크타임스 영문판에 “대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효과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조류 독감은 조류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라는 2012년 미국 수의병리학회(ACVP)의 연구 결과를 인용했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H5·H7 계열 조류 독감 바이러스는 닭에게 심각한 감염을 일으키며 치사율이 100%에 근접한다. 이에 따라 살처분을 대체할 현실적인 방법은 아직 없다. 다른 방안을 적용하더라도 닭의 생존율을 크게 높일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USDA의 공식 입장이다.
USDA는 조류 독감 방역 대책과 관련해 자연 면역 형성이나 감염 개체 분리 전략은 실효성이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USDA 고위 관계자는 에포크타임스 영문판에 건강한 닭과 감염된 닭을 분리해 보호하려는 모든 시도가 결국 실패했다고 말했다. 또 “통제할 수 없는 조류 독감이 상업용 농장에서 통제되지 않고 퍼질 경우 (감염은) 조류뿐 아니라 바이러스 변이를 거쳐 포유류, 심지어 인간에게까지 확산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USDA는 조류 독감에 대한 내성을 갖춘 품종 연구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USDA는 통제된 실험실 환경에서 감염 개체를 격리하고 감염 시 인도적으로 안락사시킬 수 있는 조건에서 새로운 내성 품종을 개발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는 “유전자 편집(gene editing) 기술을 활용한 연구도 조류 독감 저항성을 갖춘 유전형을 개발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보상금 지급
지난달 26일 미 연방 상원 청문회에서 토니 웨스너(Tony Wesner) 미국 대형 계란 생산업체 ‘로즈 에이커 팜스’ 최고경영자(CEO)가 조류 독감으로 인한 산업 피해를 설명했다.
웨스너는 미국 계란 농가를 대표하는 단체 ‘전미 계란 생산자 협회’의 요청으로 청문회에 출석했다. 그는 조류 독감에 감염된 농장은 반드시 가금류를 전부 살처분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 같은 조치가 ‘가축 건강 보호법(Animal Health Protection Act)’에 따른 의무사항이라고 설명했다.
이 법에 따르면 미국 농무장관은 감염된 가축의 살처분을 명령할 권한을 가진다. 이 법은 폐사된 가축의 소유주에게 ‘공정한 시장 가치’를 기준으로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조류 독감으로 피해를 입은 농가에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농가는 여전히 보상이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USDA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정부는 조류 독감 감염으로 인해 가금류를 ‘의무적으로 살처분’하는 농가에만 보상금을 지급한다. 즉, 감염이 확인된 후 살처분을 하지 않으면 정부의 지원금을 받을 수 없고 농장을 다시 운영할 수 있는 재정적 지원도 받을 수 없다.
청문회에 출석한 웨스너는 현재의 보상금 제도는 농가의 피해를 온전히 보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상금은 농가가 입은 손실을 부분적으로만 보상하는 수준”이라며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수 농가가 결국 폐업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웨스너 CEO에 따르면 이번 조류 독감 사태가 시작된 2022년 2월부터 2024년 11월까지 연방정부가 지급한 보상금은 총 12억 5000만 달러(약 1조 6000억 원)에 달한다. 그러나 USDA의 보상금 산정 방식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전미 계란 생산자 협회가 제안한 새로운 산정 방식을 적용하더라도 여전히 농가의 피해를 완전히 보상하기에는 부족하다.
이에 따라 지난달 26일 USDA는 추가로 4억 달러(약 5000 원)를 보상 예산으로 책정했다.
또한 정부는 조류 독감 피해 농가가 신속하게 회복할 수 있도록 “가금류 입식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승인 절차를 단순화하고 농가의 개체수 회복 속도를 높이는 새로운 지원 프로그램을 도입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장기적 과제
USDA는 조류 독감 확산을 막기 위한 장기 대응 전략으로 농장 방역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다.
지난달 말 USDA는 미국 내 모든 가금류 농가를 대상으로 ‘최고 수준의 방역 조치’를 적용하는 데 최대 5억 달러(약 6조 6000억 원)를 투입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USDA 고위 관계자는 조류 독감 확산을 차단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이러스가 농장에 유입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라며 방역이 앞으로도 조류 독감 대응의 핵심 전략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대규모 방역 예산을 투입하는 만큼 농장 차원의 예방 조치와 관리 기준이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미국 농가와 전문가는 조류 독감 확산을 막기 위한 장기 전략으로 백신 접종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지난달 26일 미 연방 상원 청문회에 출석했던 웨스너 CEO는 계란 산업계가 조류 독감을 통제하기 위해 ‘공격적인 백신 접종 정책’을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카도나 교수도 조류 독감이 풍토병으로 자리 잡으면 백신 접종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백신 접종이 국제 무역과 공중보건 측면에서 복잡한 문제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그렉 타일러(Greg Tyler) 미국 가금류 및 계란 수출 협의회 회장은 미국이 조류 독감 백신을 도입하면 가금류 제품 수출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현재 미국의 가금류 수출 규모가 연간 58억 달러(약 7조 7000억 원)에 달하며 이 중 최대 30억 달러(약 4조 원) 규모의 시장이 백신 접종으로 인해 사라질 위험이 있다고 했다.
이는 바이러스 확산을 우려한 일부 국가가 백신을 접종한 가금류 제품의 수입을 금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백신 접종은 단기적으로 조류 독감 확산을 막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다만 미국 가금류 산업의 수출 시장과 공중보건 이슈를 둘러싼 논란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기호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