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실로 새긴 숭고한 사랑…‘귀부인과 유니콘’

2025년 03월 05일 오후 10:45

일각수, 즉 유니콘은 중세 시대 가장 사랑받은 신화 속 동물 중 하나다. 다양한 예술에서 유니콘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제작했지만, 현재 남아 있는 태피스트리 시리즈는 단 두 개뿐이다. 

하나는 뉴욕 메트로폴리탄의 클로이스터스 미술관에 소장된 유명 작품, ‘유니콘 태피스트리’ 시리즈이며, 나머지 하나는 ‘귀부인과 유니콘’ 태피스트리 시리즈다. 

‘귀부인과 유니콘’ 태피스트리는 대중에게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예술적 가치 면에서는 손색이 없는 걸작이며 ‘유니콘 태피스트리’와 같은 시기인 15세기경에 제작됐다. 

이는 현재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클뤼니 중세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클뤼니 중세 박물관은 프랑스 유일의 중세 미술 전문 국립 박물관으로, 2만 4000여 점이 넘는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귀부인과 유니콘’ 태피스트리는 별도의 공간에서 전시되고 있으며, 독보적인 아름다움과 신비로운 매력으로 많은 사람을 매혹시킨다. 그러나 작품의 기원 및 서사에 관한 연구와 논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잡히지 않는 존재, 유니콘

‘유니콘과 함께 있는 처녀’, 1602년경, 프레스코화, 도메니키노 작. 로마 파르네세 궁전 소장. | 퍼블릭 도메인

서양 문화에서 단일 뿔을 가진 동물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400년경 인도를 여행한 어느 그리스인의 기록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세 사람들은 유니콘은 실제로 존재하지만 단지 찾기 어려운 동물로, 특히 뿔에 마법의 힘과 보호의 능력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은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에 반영돼, 유니콘은 회화, 프레스코, 판화, 태피스트리, 보석, 채색 필사본 등 다양한 작품에서 화려하게 표현됐다.

‘귀부인과 유니콘이 있는 반지’, 1550-1600년경, 독일 보석공 작품. 금, 에나멜, 다이아몬드로 제작. 프렘셀라와 함부르크 기증,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소장. |  퍼블릭 도메인

중세 사람들은 ‘뿔’을 유니콘이 실재한다는 증거로 여겼으며, 이는 왕실과 귀족 컬렉션에서 귀한 보물로 취급되는 등 활발히 거래됐다. 그러나 사실 이 뿔은 유니콘의 것이 아닌, 일각돌고래의 엄니였다. 

일각돌고래는 북극 연안에 서식하는 해양 포유류로, 두 개의 이빨 중 하나가 윗입술을 뚫고 나와 거대한 나선형 엄니로 자라난다.

흥미로운 점은, 고대와 초기 중세 예술에서 유니콘은 곧고 매끄러운 뿔을 가진 모습으로 묘사됐지만 이후에는 ‘귀부인과 유니콘’에 묘사된 것처럼 나선형 뿔을 가진 모습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는 스칸디나비아 선원들이 일각돌고래의 엄니를 유럽 시장에서 거래하기 시작한 시점과 맞물린다.

수컷 일각돌고래의 엄니는 수세기 동안 유니콘 뿔로 여겨졌다. | 웰컴 이미지 CC BY 4.0

‘중세의 모나리자’로 불리다

‘귀부인과 유니콘’ 태피스트리 시리즈는 1500년경에 짜였다. 당시 최고급 태피스트리를 생산했던 지역인 플랑드르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지만, 이는 현재까지도 논쟁과 연구가 진행 중인 여러 가설 중 하나일 뿐이다. 

이 여섯 점의 태피스트리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814년, 프랑스 중부 부삭의 한 성(城)에 대한 설명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27년 후 프랑스의 역사학자이자 고고학자이며 소설 ‘카르멘’의 저자로 유명한 프로스페르 메리메가 이 작품들을 발견했다.

그는 작품들의 아름다움에 매료됐고, 곧 습기와 쥐에 노출될 수 있는 위치에 작품이 놓여 있단 사실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심지어 태피스트리들의 일부는 카트 덮개나 러그로 사용되며 훼손되기도 했다.

이에 메리메는 프랑스 정치인에게 서신을 보내 태피스트리들을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을 촉구했고, 결국 1882년, 클뤼니 박물관이 이 작품들을 2만 5500프랑에 인수했다.

이 태피스트리들은 종종 ‘중세의 모나리자’, ‘프랑스의 국보’로 여겨지는데, 이는 문학 작품들에서 자주 언급된 덕분이다. 

조르주 상드의 ‘잔느’,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와 같은 역사적인 소설에서 이 태피스트리가 등장하며, 오늘날에도 소설과 영화 속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다.

1921년에 이르러서야 미술사학자들은 이 여섯 점의 태피스트리가 각각 인간의 감각을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에 합의했다. 

다섯 점의 태피스트리는 ‘촉각’, ‘미각’, ‘후각’, ‘청각’, ‘시각’ 각각 상징적으로 나타내며, 이는 중세 문헌에서 인간의 감각을 분류하는 순서와 일치한다. 

마지막 태피스트리는 여섯 번째 감각인 ‘육감(sixth sense)’을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이 표현은 현대에서도 쓰이지만 사실 중세부터 존재했던 개념이다.

‘촉각’ 태피스트리의 사자와 ‘미각’ 태피스트리의 유니콘이 프랑스 리옹 르 비스트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장식을 지니고 있다. | 퍼블릭 도메인

‘귀부인과 유니콘’ 태피스트리에는 금발의 귀부인이 서 있고, 그녀의 오른쪽에는 사자, 그리고 왼쪽에는 유니콘이 배치돼 있다. 여섯 점 중 네 점에는 시녀도 등장한다. 사자와 유니콘은 각각 푸른 띠에 세 개의 은색 초승달이 그려진 빨간색 장식을 지니고 있다. 

이는 프랑스의 귀족 가문인 ‘리옹 르 비스트’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학자들은 르 비스트 가문에서 이 태피스트리 시리즈의 제작을 의뢰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정확한 후원자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작품에서 주요 인물들은 화면의 중심부에 배치돼 있으며, 붉은색 배경과 대비되는 푸른색의 독립된 섬 위에 서 있다. 이 섬과 배경 전반에는 밀플뢰르, 즉 ‘천 개의 꽃’이라 불리는 장식 기법이 눈부시게 직조돼 있다.

또한 작품 속에는 블루벨, 카네이션, 수선화, 데이지, 은방울꽃, 금잔화, 팬지, 제비꽃, 호랑가시나무, 참나무, 오렌지나무, 소나무 등 수십 종의 꽃과 나무가 등장한다. 매, 왜가리, 까치, 앵무새, 자고새 같은 새들과 함께 치타, 개, 양, 표범, 원숭이, 여우, 토끼 같은 다양한 동물들도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미각’ 태피스트리에 직조된 매, 까치, 원숭이, 토끼. | 퍼블릭 도메인

이 태피스트리들이 정확히 서유럽 어디에서 짜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도안은 파리에서 그려졌을 가능성이 크다. 작품 속 이미지들을 분석한 결과, 큐레이터들은 ‘안 드 브르타뉴의 거장’이라 불리는 익명 화가의 작품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 화가는 아마도 장 디프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장 디프르는 프랑스 왕비, 안 드 브르타뉴를 위해 화려하게 제작한 필사본 기도서인 ‘트레 프티트 되르(Très Petites Heures)’로 유명하다.

‘트레 프티트 되르(Très Petites Heures)’, 15세기 후반, 안 드 브르타뉴의 거장이라 불리는 익명의 화가 작. | CC BY-SA 4.0.

다섯 가지 감각과 한 가지의 수수께끼

‘촉각’ 태피스트리에서 귀부인은 흐르는 머리카락 위로 작은 왕관을 쓰고 있다. 그녀의 짙은 파란색 벨벳 드레스는 왕실과 연관된 족제비 털로 안감 처리돼 있으며, 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화려한 자수 띠로 가장자리가 꾸며져 있다. 

촉각이라는 주제는 그녀가 손에 쥔 두 가지 물건을 통해 명확하게 드러난다. 오른손에는 깃발이, 왼손에는 유니콘의 뿔이 들려 있다. 유니콘은 종종 중세의 궁정 연애* 이야기에서 자주 우의적인 존재로 등장하는데,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귀부인이 유니콘을 붙잡아 길들였다는 의미가 된다.
(*역주- 궁정 연애는 중세 귀족 사회에서 기사와 귀부인의 이상적인 사랑을 묘사할 때 사용된 것으로, 색욕을 넘어선 숭고함과 존경심을 강조한 개념이다)

즉, 유니콘은 연인의 상징이며, 배경 속에서 목줄이 채워진 채 갇혀 있는 동물들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촉각’ 태피스트리, 1484년~1500년경. 울과 실크, 10.3 x 11.7피트. 파리 클뤼니 박물관 소장 | 퍼블릭 도메인

‘미각’ 태피스트리에서 귀부인은 마치 산들바람이 부는 듯 나부끼는 베일을 쓰고 있으며, 시녀가 들고 있는 접시에서 단것을 우아하게 집어 든다. 그리고 그 조각을 손에 앉아 있는 앵무새에게 먹이려 한다. 이를 반영하듯, 원숭이가 바닥에서 과일을 먹고 있다. 

한편, 섬 뒤쪽에는 장미가 가득한 격자 구조물이 보인다. 이는 ‘호르투스 콘클루수스(hortus conclusus)’, 즉 ‘닫힌 정원’이라는 개념을 나타내는데, 이는 궁정 연애에서 인기 있는 모티프였다. 

궁정 연애 서사와 유니콘 길들이기(사냥)에 관련된 또 다른 상징은 석류인데, 이는 귀부인의 허리띠 펜던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각’ 태피스트리, 1484년~1500년경. 울과 실크, 12.3 x 15.1피트. 파리 클뤼니 박물관 소장. | 퍼블릭 도메인
귀부인의 허리띠에 달린 석류 펜던트 장식은 궁정 연애 묘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상징이다. | 퍼블릭 도메인

‘후각’ 태피스트리에서는 꽃향기가 중심을 이룬다. 귀부인은 시녀가 쟁반에 올려둔 꽃으로 카네이션 화환을 만들고 있다. 당시 카네이션은 사랑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며, 화환은 궁정 연애 서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요소였다. 또한 원숭이가 장미꽃 향기를 맡는 모습은 태피스트리의 상징적인 의미를 더욱 강조한다.

이 장면에서 귀부인은 화려한 보석으로 가득한 머리 장식을 착용해 머리 대부분을 감싸듯 꾸몄다. 그녀가 팔찌를 착용한 방식도 당시의 유행을 반영하는데, 원래는 팔 윗부분에 착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당시에는 손목에 착용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후각’ 태피스트리, 1484년~1500년경. 울과 실크, 12 x 10.6피트. 파리 클뤼니 박물관 소장. | 퍼블릭 도메인

‘청각’ 태피스트리에서는 마치 음악이 울려 퍼지는 듯하다. 귀부인은 보석으로 장식된 중세의 포르타티브 오르간(당시의 유물은 남아 있지 않음)을 연주하고 있으며, 시녀가 풍구(*역주- 오르간 내부에서 공기를 공급하는 장치)를 작동시키고 있다. 

이 장면은 직물의 향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르간은 동양식 러그 위에 놓여 있으며, 귀부인은 16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유행하던 석류 무늬의 드레스를 입고 있다. 

사실, 이 ‘귀부인과 유니콘’ 태피스트리 전체 작품에서 귀부인이 입고 있는 의상과 장신구들은 당시 귀족 계급의 사치스러운 스타일을 잘 반영하고 있다. 

여기서 귀부인은 또 다른 머리 장식을 하고 있는데, 이는 깃털이 달린 장식인 ‘아그레트’다.


‘청각’ 태피스트리, 1484년~1500년경. 울과 실크, 12.1 x 9.5피트. 파리 클뤼니 박물관 소장. | 퍼블릭 도메인

‘시각’ 태피스트리에서도 귀부인은 아그레트를 착용하고 있다. 이 장면에서 그녀는 유니콘을 무릎 위에 반쯤 올려놓고 있는데, 이는 궁정 연애에서 특정한 의미를 가진 상징이다. 

귀부인은 왼손으로 유니콘을 쓰다듬으며, 오른손으로는 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거울을 들어 유니콘을 비춘다. 당시 거울은 매우 귀한 사치품이었다. 

배경 속 개, 새끼 사자, 토끼는 서로를 바라보며 시각이라는 주제를 강조하고 있다.

‘시각’ 태피스트리, 1484년~1500년경. 울과 실크, 10.2 x 10.8피트. 파리 클뤼니 박물관 소장.  | 퍼블릭 도메인

마지막 여섯 번째 태피스트리는 ‘나의 유일한 소망(A mon seul désir)’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제목은 배경 속 호화로운 천막 위에 새겨진 문구에서 따온 것이며, 욕망을 절제하고 헌신과 숭고한 사랑을 강조하는 궁정 연애(courtly love) 형태로의 해석을 암시한다.

귀부인은 시녀가 내미는 보석 상자를 바라보고 있고, 그녀의 손에는 ‘미각’ 태피스트리에서 착용한 것과 비슷한 목걸이가 들려 있다. 

이 장면을 두고 학자들은 그녀가 목걸이를 꺼내어 착용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보석 상자에 다시 넣으려는 것인지 분분한 논쟁을 벌여 왔다.

만약 후자라면, 이는 앞선 다섯 개의 태피스트리에서 표현된 ‘감각적 경험과 세속적 쾌락을 포기’하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여섯 번째 태피스트리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존재하며 그중에는 자유 의지와 관련된 해석도 있다. 현재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해석은, 이것이 영혼과 가까운 내면적 감각, 즉 ‘마음’과 관련된다는 것이다.

‘나의 유일한 소망(A mon seul désir)’, 1484년~1500년경. 울과 실크, 12.5 x 15.2피트. 파리 클뤼니 박물관 소장. | 퍼블릭 도메인

‘귀부인과 유니콘’ 태피스트리 시리즈는 중세 유럽에서 제작된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숙련된 직조공들은 수년에 걸쳐 이를 작업했을 것이며, 그 비용 또한 막대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 여섯 점의 작품은 여전히 신비롭고 아름다운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균형 잡힌 구도로 짜인 그림과 조화로운 색감은 보는 이들을 감탄 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김지연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