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따라잡는다’…딥시크 앞세운 중국 AI 대약진의 명과 암

2025년 03월 08일 오후 12:47

중국이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중국 공산당은 ‘인더스트리 4.0’ 구상 아래, 이른바 ‘AI 대약진’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대외적으로는 미국과의 AI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다는, 이른바 ‘글로벌 패권 경쟁’이라는 전략적 목표, 대내적으로는 중국 공산당의 디지털 전체주의 통제를 강화하려는 의도와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AI, 정부 전략적 육성 속 2023년 급격히 성장

2017년 중국 정부는 ‘차세대 인공지능 발전 계획’을 발표하며 AI 기술을 국가 전략 차원에서 육성하기 시작했다. 이후 2023년 들어 생성형 AI 관련 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하며 본격적인 도약기를 맞았다.

중국 국무원은 2023년 7월 ‘생성형 AI 서비스 관리 규정’을 발표하며 AI가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을 반영해야 한다는 지침을 내렸다. 같은 해 중국 내 AI 관련 스타트업의 총투자 유치 규모는 100억 달러를 넘어섰는데 이는 2022년의 10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러한 정책적 지원 아래, 중국의 주요 IT 기업들이 잇따라 대형 언어 모델(LLM)을 출시했다. 2023년 3월 중국판 구글 ‘바이두’가 중국 최초로 공식 인증된 생성형 AI 모델 ‘원신이언(文心一言·Ernie Bot)’을 출시하고, 8월부터 대중에게 개방했다.

이어 같은 해 4월 알리바바의 ‘통의천문(通義千問·Qwen)’, 5월 아이플라이텍(iFLYTEK)의 ‘성화대모형(星火大模型·SparkDesk)’ 발표가 잇따랐다. 전자는 기업용 서비스, 후자는 교육 분야에 특화됐음을 내세웠다.

중국 정보통신 선두 업체 화웨이가 같은 해 7월 ‘반고대모형(盤古大模型·PanguLM)’ 3.0 버전을 공개하며 생성형 AI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금융, 의료, 기상 예측 등 산업에 특화한 모델이다.

8월에는 틱톡 모회사인 바이트댄스가 AI 챗봇 ‘더우바오(豆包·Doubao)’ 출시하며 미국 오픈 AI의 챗GPT 대항마를 선언했고, 9월에는 텐센트가 텍스트 생성·이미지 제작·코딩 지원 기능을 강조한 ‘혼원대모형(混元大模型·HunyuanLM)’을 공개하며 중국 IT기업들의 2023년의 AI 공개 행진을 마감했다.

중국 상하이 인공지능(AI) 산업 협회가 주최한 글로벌 개발자 컨퍼런스. 20252.2.21 | AFP/연합

가성비 내세운 딥시크, 중국 AI 대약진의 선봉

2023년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중국 ‘AI 대약진’이 급속히 떠오른 것은 2025년 1월 20일 ‘딥시크’의 발표 때였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2기 취임일이자 중국 공산당의 ‘인더스트리 4.0’ 30년 계획의 두 번째 10년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했다.

‘인더스트리 4.0’은 중국 공산당이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을 본떠 만든 제조업 경쟁력 강화 프로젝트로 2015년 발표한 ‘중국제조 2025’ 계획이 그 첫 단추였다. 이후 사물인터넷, 빅데이터와 AI 개발을 장려하는 ‘인터넷 플러스'(2016), AI 대약진의 초석이 된 ‘차세대 인공지능 발전 계획'(2017)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 지난 10년간의 기초 단계를 마무리한 중국 공산당의 ‘인더스트리 4.0’은 이제 새로운 10년이라는 2단계를 시작하고 있다.

그 첫출발을 ‘딥시크’로 장식한 것은 AI, 5G,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컴퓨팅 등을 주력 분야로 삼아 중국을 제조업 강국에서 첨단기술 선도국으로 변모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사건으로 평가된다.

딥시크의 충격은 비용에 있었다. 딥시크는 경쟁 상품인 오픈AI의 챗GPT에 비해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유사한 성능을 제공해 파란을 일으켰다.

출시 직후 애플 앱스토어 미국 지역 무료 앱 다운로드 순위 1위를 차지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글로벌 투자자들은 고가의 AI칩 없이 높은 성능을 구현했다는 딥시크 측의 발표에 AI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Nvidia)의 향후 성장 가능성에 우려를 표하며 대규모 매도를 단행했다.

엔비디아 주가는 지난 1월 27일 하루 만에 17% 급락했고, 시가총액에서 5890억 달러가 증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나 이후 딥시크가 챗GPT 등 기존 AI 모델의 데이터를 불법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 같은 데이터 ‘증류(distillation)’ 기법은 합법은 아니지만 불법도 아닌 회색지대에 속한다.

중국 기업들은 이러한 모호한 영역을 파고들어 기술 격차를 좁히는 주요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이는 서방 자유 진영을 상대로 각종 편법, 때로는 기술 절도 같은 불법 행위를 동원하며 패권을 다투는 중국 공산당의 투쟁 전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의 베이징 사무실 유리창. | 로이터/연합

생성형 AI 확산과 중국 공산당의 전략적 목표

딥시크가 구현한 것은 투쟁 전략만이 아니다. 딥시크는 중국 공산당의 검열도 그대로 구현했다. 지난 1월 공개 이후, 세계 각국에서 사용자가 몰려들면서 딥시크는 자유세계 이용자들이라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만한 모습들을 노출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딥시크는 ‘중국에서 발언의 자유가 법적인 권리로 인정되느냐’는 멕시코 이용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중국 공산당의 홍콩 시위 진압, 인권 변호사에 대한 탄압, 체제에 따르지 않는 이들에게 벌점을 부과해 행동에 제약을 가하는 사회신용체계 등의 내용이 표시됐다.

이어 “중국의 통치 모델은 이러한 기틀(발언의 자유)을 거부하며, 개인의 권리보다 국가의 권위와 사회적 안정성을 우선시한다”며 공산당 정권을 비판하는 답변을 내놨다. 그러나 얼마 후 답변을 모두 삭제하더니 “죄송하다, 아직 이런 유형의 질문에 접근하는 법을 모른다”며 회피했다.

해당 사건은 딥시크가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중국 공산당의 검열을 받고 있으며 향후 모든 답변이 중국 공산당의 정치적 입장과 이익에 따라 조작될 수 있음을 입증한 것으로 여겨졌다.

실제로 중국 공산당은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해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인더스트리 4.0’만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대내적으로는 사회 통제의 도구로 활용하려는 전략을 펴고 있다. 크게 세 가지 목적이 알려졌다.

하나는 ‘디지털 독재 체제 강화’이다. 중국은 8억 대 이상의 감시카메라를 활용한 ‘스카이넷’ 감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으며, 여기에 AI를 접목해 사회 통제를 더욱 정교화하려 한다. VPN, 토르(Tor) 등 인터넷 우회 접속을 탐지·차단하는 기술도 AI로 발전시키고 있다.

다음으로는 이념 통제 및 해외 선전 공작도 중국 AI의 주력 분야로 꼽힌다. 딥시크의 사례에서 확인됐듯 바이두의 원신이인, 바이트댄스(틱톡)의 더우바우 등 중국의 생성형 AI 모델들은 검열된 정보를 제공하며, 당국의 입맛에 맞는 답변만 내놓도록 설계됐다.

딥시크 등 생성형 AI가 고도화하면서 인터넷 이용자들 스스로가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사이에 심리, 감정, 사고 패턴에 정교한 조작을 가할 수도 있다. 특정 커뮤니티 이용자들만 사용하는 은어와 속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면서, 이들이 관심 갖는 주제와 연계해 공산당에 유리한 방향의 여론을 조성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훈련된 ‘알바부대’들이 했던 작업을 AI가 대량으로 신속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특히 중국 공산당이 글로벌 이미지 개선을 요구하면서, AI를 이용한 선전 콘텐츠 제작과 정보전 수행이 강화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클라우드 기반 사이버 보안업체인 ‘플랫폼 엑스’에 따르면 중국 관영매체는 AI를 통해 보도자료를 생성하며, 지난해 생산량은 전년 대비 30% 증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마지막은 데이터 수집 및 활용 분야다. 기존 데이터 방식과의 차이점은 생성형 AI는 사용자와의 자연스러운 대화를 통해 정치적 성향, 감정 상태, 소비 패턴 등을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짜 사람처럼 위장한 AI 사용자를 통해 소셜미디어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게시글과 질의응답, 댓글을 통해 다른 사용자들의 반응을 이끌어내거나 시험하고 이를 분석해 더 밀도 있는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

자료사진 | 연합뉴스

딥시크, 글로벌 퇴출 움직임…中 AI 대약진 한계점도

기술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에서는 중국 공산당의 생성형 AI 확산에 대한 강한 반발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은 지난달 15일 개인정보 보호 문제를 이유로 딥시크의 다운로드를 전면 금지했다. 앞서 이탈리아도 딥시크 사용을 금지했으며, 미국·일본·인도 등도 관련 조치를 검토 중이다. 미국 정부는 이미 중국의 AI 반도체 확보를 차단하기 위한 제재를 강화하고 있으며, 향후 생성형 AI 기술의 글로벌 확산을 더욱 제한할 가능성이 높다.

이로 인해 중국의 생성형 AI 산업이 내수 시장에만 머무르는 ‘내순환 경제’로 귀결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AI 기술을 앞세워 경제·사회 전반에서 혁신을 이루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지만, 시장의 자연스러운 성장보다는 정부 주도의 강제적 도입이 강조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과거 중국의 태양광·전기차 산업이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다 과잉 생산과 부실 경영으로 부작용을 초래했던 전례를 감안하면, AI 산업 역시 유사한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또한, 글로벌 시장에서의 제재가 강화될 경우 중국의 AI 기술이 국제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워질 가능성도 높다.

중국의 ‘AI 대약진’은 인더스트리 4.0 시대를 앞당기는 기회일 수 있지만, 국가 통제 강화를 위한 도구로 작용하는 양면성을 지닌다. 시장 논리가 배제된 정부 주도의 AI 개발이 지속될 경우, 중국의 AI 산업이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