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국이 최근 새로운 ‘국가 돌발사건 종합긴급예방계획(國家突發事件總體應急預案·이하 긴급예방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기존 2005년판을 폐지하고 새롭게 마련된 것으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당 중앙)와 국무원이 전국적인 돌발 사건 대응을 지휘하는 내용이 담겼다.
국가 정권이 돌발적인 재난사태에 대한 대비책을 평상시에 마련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최근 장기적인 경제 침체, 불특정 다수 공격 사건 등 사회적 불안 심화, 중국공산당 반대를 외치는 민심 이반 등의 상황과 관련성이 주목된다.
다음 달 초 열리는 중국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정치협상회의)’를 앞두고 사회 불안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규모 전국적 시위 가능성을 염두에 둔 예방 대책, 진압 작전을 시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돌발사건’ 범위 확대… ‘대규모 시위’ 포함시켜
지난 25일 발표한 ‘긴급예방계획’에서는 돌발 사건을 △자연재해 △사고재난 △공중보건사건 △사회안전사건 등 네 가지로 분류했다. 특히 ‘사회 안전 사건’의 범주에는 테러, 대규모 시위, 민족·종교 관련 사건뿐만 아니라 금융 및 외교 문제, 시장 불안 등 사회 안정을 해치는 사건들을 포함했다(링크).
이번 ‘긴급예방계획’이 사회적 불안과 대규모 항의 시위를 대비한 것이라는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대목이다.
앞서 국무원이 2005년 발표한 기존 버전인 ‘국가 돌발공공사건 종합긴급예방계획(國家突發公共事件總體應急預案)’에서도 돌발 사건을 같은 네 가지로 분류했지만, 마지막 사회안전사건에 ‘테러 공격, 경제 보안사고, 해외 관련 비상사태’ 등만 명시했기 때문이다(링크).
즉, 이번 2025년 신판과 2005년 구판의 가장 큰 차이는 신판에 ‘대규모 시위’, ‘민족·종교 관련 사건’이 추가됐다는 점이다. 중국 공산당이 양회 개막을 앞두고 가장 우려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조항으로 풀이된다.
시사 평론가 왕젠(王劍)은 “중국 경제가 급속도로 악화하면서 사회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면서 그동안 불특정 다수를 향한 차량 돌진 등 여론에 축적된 사회에 대한 불만이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이번 양회에서 정부의 통제가 더욱 엄격해질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다.
공산당 당국은 2023년 전국적인 사회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중국공산당 중앙사회공작부’를 신설한 바 있다. 이 부서는 국무원 직속 기관으로 도시와 농촌의 기층에서 당 조직을 강화해 정권의 통제를 튼튼히 하는 것이 주 임무다.
중국 공산당은 중앙-지방-기층의 3단계 피라미드 구조로 구성됐다. 가장 하위인 기층에 대한 통제의 고삐를 죄기 위해 새로 만든 조직이 중앙사회공작부인 것이다. 공산당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통제권을 장악하고 있지만 여전히 주민들에 대한 통제 수위를 높이려 하고 있다.
왕젠은 중앙사회공작부가 이번 긴급예방책을 실질적으로 추진· 감시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봤다. 그는 “전국적인 감시망과 통제 시스템을 더욱 촘촘히 구축해서 주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조기 경보 시스템 갖춰도….권력자 한마디면 무력화
중국 정부는 이번 ‘긴급예방계획’에서 “돌발 사건 조기 경보 시스템을 구축하고”, 사건 발생 시 “신속 대응을 위한 지휘 체계를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왕젠는 이를 두고 “코로나19 같은 전염병 확산이나 지진, 화재 같은 재난의 발생을 빠르게 경보하고, 통일적이고 조직적인 지휘 체계를 통해 신속하게 대응하겠다는 것을 표면적인 명분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이어 왕젠은 “하지만, 중국 관료조직의 문제는 시스템의 허술함이 아니라 최고 지도자 의중에 따라 움직이는 구조가 굳어졌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2003년 사스(SARS), 2020년 코로나19 사태 때도 일선 현장과 중간 조직의 조기 경보와 1차적인 대응은 정상 가동했다”며 “하지만 중앙에서 사태를 은폐하라는 지시가 내려오면서 후속 대처가 지연됐다”고 꼬집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전염병 발생 진원지인 우한시와 허베이성에서는 대응책을 취하려 했으나, 시진핑이 ‘설 연휴가 끝난 후에 발표하라’고 지시하면서 공중보건 당국이 골든 타임을 놓친 것으로 알려졌다.
인구 1300만 명이 넘는 대도시 우한에서는 전염병이 확산하는 것을 감춘 채, 예정했던 설 연휴 대잔치를 열었고 여기에 참석했던 다수의 시민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줄도 모른 채 전국으로 흩어지고 해외로까지 나가면서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재앙이 초래됐다.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 가능성 대비” 해석도
이번에 ‘긴급예방계획’이 양회를 앞두고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를 대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시사 평론가 리무양(李沐陽)은 “중국 경제가 악화 일로를 걷고 있고 실업률 급증, 부동산 위기, 지방정부 부채 문제가 겹치면서 국민 생활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며 이번 조치를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같은 사회적 불만이 언제든지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을 당국이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무양은 “중국공산당은 비슷한 비상대책을 여러 차례 발표했다. 지난 2024년 6월에는 2007년 제정된 비상대응법을 개정했고, 2013년에는 사스 사태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해 국무원이 ‘돌발 사건 응급 관리 계획’을 수립했다. 2021년에는 베이징시 정부도 유사한 문건을 발표했다”고 했다.
이어 “이 밖에도 비상시 식량 대책, 대규모 정전 대비책 등 비슷한 문건을 여러 개 찾을 수 있었는데 상당수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만들어진 것들이었다”며 “비교적 최근에 세운 대비책이 다수 존재하는 상황에서 또다시 긴급대책을 발표한 것은 정권의 근본적인 불안감을 드러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공산당은 매번 양회 등 중요한 정치 행사를 앞두고 관례적으로 사회 통제를 강화해 왔다. 현재 베이징과 상하이 등 주요 도시에서는 “정부 비판 세력 및 민원 제기자의 이동을 제한하고, 대규모 검거·귀향 조치 등을 시행하는 등 강경 대응을 펼치고 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중화권 언론에서는 경제적 측면에 집중된 여론의 불만이 정치로 번지는 것을 당국이 경계하고 있으며, 이는 이미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라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