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의 가보나 신체적 특성만이 다음 세대에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2024년에 발표된, 무려 삼대(三代)에 걸쳐 가족을 추적한 25년간의 장기 연구에 따르면 ‘공감’은 세대를 넘어 지속되며 다양한 관계에서도 유지되는 특성으로 나타났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공감 방식이 친구 관계 형성뿐만 아니라 이후 자녀를 양육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수많은 육아 기법이 넘쳐나는 가운데, 공감은 사람들이 간과해 온 비밀 병기일지 모른다. 공감은 아이와 부모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며 평생 지속될 수 있는 의미 있고 상호 존중하는 관계를 형성하도록 돕는다.
미셸 보르바의 저서 ‘언셀피(Unselfie)’에 소개된 연구에 따르면 공감은 용서, 이타심, 관대함, 도덕적 용기를 키울 뿐만 아니라 미래의 행복, 성공, 건강, 그리고 전반적인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공감의 영향
아동 발달 저널에 실린 25년간의 종단 연구에 따르면, 어머니가 13세 자녀에게 보인 공감이 그 자녀가 청소년기(13~19세)에 가까운 친구들에게 보이는 공감을 예측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러한 청소년들은 성장해 공감하는 부모가 됐으며, 그들의 태도가 다시 자녀의 공감 능력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이전 연구들은 특정 시점에서 부모와 자녀의 공감이 서로 연관돼 있음을 밝혀왔지만, 이번 연구는 공감하며 양육할 때 그 영향이 최소 삼대를 거쳐 손자 대까지 이어지는 ‘파급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처음으로 입증했다.
사회 및 성격 심리학자이자 저명한 심리학 교수인 윌리엄 이크스는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좋은 부모는 자녀에게 중요한 삶의 기술을 가르치며, 그중에서도 특히 타인의 감정을 정확하게 읽는 공감 능력은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공감은 의미 있는 사회적 연결을 촉진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기술이며, 이는 건강과 웰빙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2018년 연구에 따르면, 감정적인 공감이 높은 부모 아래서 자란 미취학 아동은 그렇지 않은 부모 아래서 자란 또래보다 코르티솔* 수치가 약 3분의 1 정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역주: 부신에서 분비되는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 수치가 높아지면 면역 기능이 저하되고 사회적 적응력이 감소하는 등 다양한 건강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같은 연구에서 공감이 높은 부모 아래에서 자란 아이들은 감정 조절 능력이 뛰어나고, 두통이 적으며, 불안과 우울도 덜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 심리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미셸 보르바는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관계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으며, 우리 사회에 외로움이 얼마나 만연한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부모는 자녀에게 공감을 심어줌으로써 자연스럽게 그들을 고립과 외로움의 위험에서 보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들의 자녀 대까지 영향을 미쳐 재정적·학문적·리더십 측면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공감이 사라진 ‘공허의 시대’
공감은 유아기부터 형성되며, 친밀한 대면 상호 작용을 통해 길러진다. 교육 심리학자 미셸 보르바는 “공감의 씨앗은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심어지며, 아기들은 이 과정에서 신뢰, 애착, 공감, 사랑을 처음 배운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는 이러한 필수적인 상호 작용을 방해한다. 화면을 통해 소통하는 것이 일상이 된 세상에서, 공감이 발달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점차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보르바는 “이제 우리는 사람의 겉모습만 볼 뿐, 더 깊은 것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라며, 디지털 환경이 우리가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약화시키고 있음을 강조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워졌어요.”
미셸 보르바는 저서 ‘언셀피: 왜 공감하는 아이들이 자기중심적인 세상에서 성공하는가’에서 “자기 몰입은 인간 본연의 특성인 공감을 약화시킨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오늘날 젊은 세대가 점점 더 자기중심적으로 변하면서, 또래에 대한 무자비함, 학업 부정행위, 도덕적 판단력 저하, 정신 건강 악화 현상이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르바는 “우리 아이들의 행복이 위기에 처해 있으며, 그들의 공감도 마찬가지다. 불안이 커질수록 공감은 줄어든다. ‘생존 모드*’에 있을 때는 타인을 배려하기 어렵기 때문인데, 지금 너무 많은 아이가 그런 상태에 놓여 있다. 그 결과 ‘공감 격차’가 생겨난다”라고 설명했다.
(*역주: 극심한 스트레스나 불안 속에서 사람이 생존을 최우선으로 두고 반응하는 상태)
그녀는 지난 수십 년간 외로움과 나르시시즘이 확산된 원인으로 세 가지 사회학적 요인을 꼽았다. 바로 스크린(디지털 기기) 중독, 인성보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더 중시하는 태도, 그리고 덕목을 갖춘 역할 모델의 상실이다.
공감의 다양한 차원
‘공감’이라는 단어는 독일어 ‘아인퓔룽(Einfühlung)’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감정 이입’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공감은 타인의 내면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그들의 감정을 자신의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 즉 ‘타인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을 뜻한다. 이는 감성 지능의 중요한 요소다.
계몽주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인간의 마음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라고 말했다. 그의 통찰은 250여 년이 지난 1990년대, ‘거울 신경 세포’에 대한 연구를 통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거울 신경 세포는 인간이 특정 행동을 할 때뿐만 아니라, 그 행동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활성화되는 특별한 뇌세포다.
‘monkey-see, monkey-do(보는 대로 따라한다)’라는 별칭으로도 알려진 거울 신경 세포에 대한 2022년 연구에서는, 자기 피부가 접촉될 때 활성화하는 신경 세포가 타인이 접촉당하는 장면을 보기만 해도 동일하게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친구가 준비되지 않은 발표에서 실수하는 것을 보면 움찔거리거나, 축구 경기 중 친구가 심하게 넘어지는 장면을 보면 본능적으로 얼굴을 찡그리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신경 과학 연구에 따르면, 공감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며 각각 독립적인 뇌 신경망에 의해 조절된다. 감정적 공감은 타인의 감정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그대로 반영하는 능력이며, 인지적 공감은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세심한 육아(Sensitive parenting)에는 이 두 가지 공감이 모두 필요하다. 감정적 공감은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느껴 즉각적으로 반응하도록 한다. 반면 인지적 공감은 부모가 아이의 생각을 추론하고, 비언어적 신호를 해석하며, 이를 바탕으로 적절한 양육 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공감이 실생활에서 발휘되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일상적인 마음 읽기(mind reading)’, 즉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추측하는 행위를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친구가 점심시간에 평소보다 조용하다면, 다가오는 시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 현상을 20년 넘게 연구한 윌리엄 이크스는 이를 ‘공감의 정확성(empathic accuracy)’이라고 정의하며, 이러한 일상적인 마음 읽기가 얼마나 성공적인지를 나타내는 개념이라고 말한다.
그는 “공감의 정확성은 감성 지능의 핵심 요소이며, 어쩌면 가장 중요한 요소일 수도 있다”라고 강조했다. 감성 지능은 학업 성취, 리더십 역량 발휘, 그리고 심리적·신체적 건강 등 다양한 삶의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버지의 역할도 중요하다
수십 년 동안 부모의 공감과 안정형 애착에 관한 연구는 주로 어머니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그러나 2024년 심리학회 학술지 ‘심리학회보’에 발표된 종합 메타분석 연구에 따르면, 아버지의 민감성* 또한 어머니의 민감성만큼이나 아이의 건강한 애착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역주: 타인의 정서적, 행동적 신호를 민감하게 인식하고 적절하게 반응하는 능력)
연구에서 어머니의 민감성은 자녀와의 유대감을 26% 향상하며, 아버지의 민감성은 21% 향상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단 5% 차이에 불과한 이 수치는 자녀의 정서적 안정에 부모 모두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또한 다른 연구에서는 인지적 공감이 높은 예비 아버지일수록 ‘마음 이론(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나며, 출산 6개월 후 신생아와 더욱 효과적으로 유대감을 형성했다는 결과가 도출됐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자녀의 애착 형성과 정서적 돌봄에 대한 논의 및 향후 연구에서 아버지의 역할을 반드시 포함해야 함을 강조한다.
공감은 ‘행동’이다
만약 공감이 부족한 부모 아래서 자란다면 어떻게 될까? 평생 감정적으로 혼란스럽고 단절된 삶을 사는 걸까? 꼭 그렇지는 않다.
보르바는 “희망은 항상 존재한다. 그리고 희망은 인식에서부터 시작된다”라고 말했다.
즉, 공감은 타고나는 고정된 특성이 아니라 우리가 마음을 열기만 하면 삶의 어느 단계에서든 길러질 수 있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보르바는 ‘대런’이라는 한 소년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대런은 어린 시절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었고, 수많은 위탁 가정을 전전하며 안정적인 정서적 애착을 형성하지 못한 채 성장했다. 그는 타인을 극도로 불신했고, 신체 접촉에도 움츠러들곤 했다.
그러던 중, 생후 6개월 된 영아 에반과의 만남이 대런의 자아 인식을 변화시켰다. 에반이 타인과의 신체 접촉에 불편함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대런은, 그 모습이 마치 자신과 같다고 느꼈다.
대런은 에반을 조심스럽게 달래고 안정시켰다. 이는 대런이 생애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하는 순간이었고,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스스로를 ‘버려진 존재’가 아닌,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보르바는 공감을 ‘행동’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감은 의식적인 습관을 통해 실천해야 하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감정을 인식하고,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며, 고통스러운 감정을 조절하고, 친절을 실천하는 습관을 들이면 ‘나’에서 ‘우리’로 초점을 전환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대런은 에반을 어머니에게 돌려보내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보르바는 단호하게 말하며, 아래와 같이 덧붙였다.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단순히 손을 내밀고, 느끼는 거예요. 에반으로 인해 새로운 자신을 찾을 수 있게 된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자신을 사랑과 보살핌을 베풀 수 있는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잖아요. 이건 정말 엄청난 변화예요. 우리는 결국, 스스로 인식하는 대로 행동하게 되니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변화에 있어 절대 늦은 때란 없다는 것이다.
공감의 영향력과 정서적 유산의 대물림
미셸 보르바는 “공감을 많이 하다 보면 정체성이 바뀐다. 자신을 더 배려 깊고, 회복 탄력성이 높은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고 했다.
공감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은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변화를 이끄는 강력한 선물이다. 공감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를 더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들며, 그 영향은 현재를 넘어 미래 세대까지 이어진다.
“공감의 궁극적인 결과물은 단순한 공감이 아닙니다. 진정한 결과물은 ‘나눔을 실천하는 연민’이에요.” 보르바는 이렇게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우리는 물질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주는 것보다 얻는 것에 집착하지만, 사실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받을 때’가 아니라 ‘줄 때’ 더 행복합니다.”
우리는 흔히 세대를 거쳐 내려오는 트라우마에 대해서는 익숙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연구는 그 반대 현상, 즉 공감의 대물림이라는 개념에 주목한다. 공감은 필수적인 심리적 자원이다.
이는 단순히 자녀들의 미래를 형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음 세대에 이어질 정서적 유산까지 형성하게 될 것이다.
공감은 단순한 감정적 미화가 아니다. 자녀에게 타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그들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씨앗을 심는 일이다.
보르바는 “공감은 마치 초능력과 같다”며 “이는 웰빙과 행복을 위한 중요한 요소지만, 우리는 이를 분명 간과하고 있다”고 말한다.
*김지연, 한상아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