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치산 전 중앙기율검사위원회(중기위) 전 서기가 정치적 견해 차이로 배척당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왕치산 전 서기는 시진핑 정권 출범 초반, 반부패 사정의 선봉장으로 오른팔 역할을 했지만, 시진핑에게 버림받은 인물이다.
중국 공산당 내부 소식에 정통한 시사평론가 차이선쿤(蔡慎坤)은 최근 자신의 개인방송을 통해 “왕치산의 몰락은 중국 공산당 최고 권력층 내부의 비정한 권력 투쟁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이같이 밝혔다.
왕치산은 한때 시진핑의 정치적 동지로, 다수의 정적을 제거하는 데 앞장서며 집권 초반 권력 기반이 불안정했던 시진핑에게 결정적 도움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시진핑에게 비협조적인 공산당 원로들을 설득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끈끈했던 두 사람의 유대 관계에 균열이 발생한 것은 2018년 시진핑이 국가주석 임기 제한을 철폐한 개헌을 통과시키면서부터다.
임기 제한 철폐 개헌안은 그해 3월, 중국의 국민의회 격이지만 이미 결정된 사안을 승인만 해 ‘거수기 의회’로 비판받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99.8%의 찬성으로 통과했다. 이는 공산당 체제하의 민주적 절차가 얼마나 무력한지 보여준 일화로도 꼽힌다.
중기위 서기로 시진핑을 절대 보필했던 왕치산은 같은 해 마찬가지로 임기 제한이 없는 국가부주석에 임명됐다. 그는 당시 69세로 은퇴 연령이 넘어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야 했으며 중기위 서기직도 내놓은 상태였으나, 국가부주석에 임명되며 시진핑 곁에 머무르게 됐다.
부주석으로 임명됐지만 사실은 실세에서 밀려났다는 게 당시 중화권의 해석이었다. 많은 전문가는 반부패 숙청으로 손이 피에 얼룩진 시진핑이 정치적 방패막이 용도로 왕치산을 이용했다고 분석했다.
왕치산은 시진핑의 국가주석 임기 1기 때 중기위 서기로서 ‘호랑이 사냥’이라고 불리는 강력한 부패 척결 운동을 주도했다. 이를 통해 차관·국장급 이상 고위 관리 440명을 포함한 수많은 관료를 숙청했다.
‘다리는 건넌 후 철거한다’…시진핑의 상투적 수법
차이셴쿤은 “왕치산은 시진핑의 권력 강화를 위해 자신의 모든 정치적 자산을 소진했지만, 그 대가로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였다”며 “심지어 그가 추천한 감찰조직 내부 인사들조차 시진핑이 임명한 후임 중기위 서기에 의해 밀려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다리는 건넌 후 철거하고, 원수는 나중에 갚는다(過河拆橋, 秋後算帳)”는 게 시진핑이 흔하게 사용하는 정치적 수법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공산당 체제에서는 비중 있는 정치인이 힘을 잃게 될 경우 그의 주변 인물들이 줄줄이 ‘부패 혐의’ 등으로 처벌받거나 숙청되는 현상을 쉽게 볼 수 있다. 시진핑이 국가주석으로 세 번째 임기를 확정 지으며 사실상 종신집권 길을 연 2022년을 전후해 왕치산의 측근들이 잇따라 중형을 선고받았다.
중기위 순찰 감사팀 전 부국장 둥훙(董宏)은 2022년 1월 사형 집행 유예를 선고받았으며, 중국 초상(招商)은행 전 행장 톈후이위(田惠宇)와 인민은행 전 부행장 판이페이(范一飛) 역시 2024년 사형 집행 유예를 선고받았다. 왕치산의 오랜 친구이자 부동산 재벌인 런즈창(任志强)도 2020년 9월 18년형을 선고받았다.
차이셴쿤은 왕치산에게 의존했던 시진핑이 그를 숙청한 것은 3연임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나타낸 것이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왕치산은 시진핑에게 20차 당대회 연임을 만류했는데, 이러한 조언이 오히려 그의 측근들을 표적으로 한 숙청의 명분이 됐다는 것이다.
왕치산은 퇴임을 앞두고 자신의 측근인 리샤오훙(黎曉宏)과 둥훙을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으로 추천했으나, 이들 역시 기용되지 않았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정치적 말로를 한두 해 전부터 직감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16년 7월 친구와 가까운 지인 20여 명과의 사적인 만남에서 왕치산은 “이번이 우리가 만나서 저녁 식사를 하는 마지막 자리일 것”이라며 “나는 늙었고 우산을 들고 비를 피할 능력도 없다. 여러분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평론가 리쥔(李軍)은 왕치산이 정치적 거래의 결과로 숙청당했다는 견해를 제시한 바 있다.
그는 왕치산이 시진핑의 라이벌 세력인 장쩌민파 수장이었던 쩡칭훙과 만난 적이 있는데 이때 쩡칭훙의 가족들이 반부패 숙청을 당할까 봐 두려워했고, 그 때문에 쩡칭훙이 시진핑에게 정치적 공세를 자제할 테니 왕치산을 해임해 달라고 제안했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왕치산이 반부패 과정에서 공산당 안팎의 인물들을 다수 숙청하면서 결과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빚을 키웠고, 시진핑은 왕치산을 버림으로써 내부 반발을 일정 부분 무마했다는 해석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