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처음 바이올린 소리를 들었을 때, 린자치(Chia-Chi Lin) 씨는 겨우 두 살이었다. 대만에서 자란 그는 언니들이 음악 레슨을 받는 모습을 지켜볼 기회가 많았는데, 그 나이 또래 아이와 달리 한 시간 내내 조용히 앉아 음악에만 집중했다고 한다.
“바이올린 말고는 다른 악기를 배우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린자치 씨는 어린 시절부터 바이올린에 뭔가 설명하기 힘든 강한 이끌림을 느꼈다고 한다.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했을 때도 막히는 부분이 거의 없을 정도로 쉽게 익혔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것이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약 13년 전, 중국고전무용을 공연하는 션윈예술단(Shen Yun Performing Arts)이 전 세계 투어를 시작했다. 그 무대를 본 순간, 린자치 씨는 “내가 해야 할 일이 여기에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바로 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만 출신인 그는 여러 오케스트라에서 수석 및 주요 단원으로 활동한 풍부한 경력을 지닌 클래식 바이올리니스트다. 하지만 션윈예술단이 아름다움을 지향하고 전통을 되살리려 노력하는 것을 보고 그것이 바로 ‘나에게 주어진 길’이라고 깨달았다고 한다.
“션윈예술단은 동서양이 가진 최고이자 가장 찬란한 전통 클래식을 결합했어요. 그들이 전통 클래식에 대한 존중과 아름다움에 대한 지향을 이어가는 걸 보면서, 저도 그 전통을 지켜내는 일에 동참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션윈 음악: 동양의 색채를 서양 무대에
션윈예술단 오케스트라는 그 독특함으로 유명하다. 공연이 시작되면 관객들은 곧바로 어디선가 동양적인 느낌을 받게 되지만, 막상 오케스트라 피트를 들여다보면 주로 서양 클래식 악기로 구성된 심포니 편성이다. 그중 몇몇 낯선 전통 악기들이 눈에 띈다.
린자치 씨는 “대만 출신이지만 션윈에 오기 전까지 제대로 된 ‘아시아 음악’을 깊이 접해본 적은 없었다”고 회상한다. 션윈에서 그는 악장과 지휘자를 모두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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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입장에서는 서양 클래식 악기들이 익숙하게 들릴 텐데, 거기에 얼후, 비파, 전통 타악기 같은 고대 중국 악기를 더해 중국 전통문화 특유의 정서를 표현합니다.”
서양 클래식 악기와 중국 전통 악기는 음색과 톤이 완전히 다르다고 린자치 씨는 설명한다.
“웅장하고 장엄한 클래식 사운드는 그대로 살리면서도, 그 안에 녹아 있는 분위기는 전혀 달라요. 바로 그 독특함이 션윈 오케스트라의 특징이죠.”
션윈과 두 가지 전통
린자치 씨는 바흐, 베토벤 시대로 대표되는 고전음악의 형성기를 언급하며 “당시 작곡가들은 자신의 재능을 신이 주신 선물로 여기고, 신성(神性)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음악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런 정신적 토양에서 태어난 음악이 곧 고전음악의 전통이 되어 현대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그녀는 “션윈에서 사용하는 서양 음악 요소도 전통적이고 클래식한 원형을 지킵니다. 고전음악의 본질을 그대로 가져와서 작업하고 있어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중국 전통 선율 역시 마찬가지다. 고대 중국에는 신성에 대한 경외심이 있었고, 예술로써 더 높은 가치를 표현하는 문화가 있었다고 한다.
“중국에는 5천 년에 걸친 신전(神傳)문화가 있잖아요. 우리가 보존하려는 것도 바로 그 전통문화예요. 무용이든 음악이든, 전통을 지키며 작업하죠.”
처음 이 음악을 연주했을 때, 린자치 씨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큰 감동을 느꼈다. 그 감동은 13년이 지난 지금도 식지 않았다고.
물론 서양음악에만 익숙한 사람이라면 중국음악 악보가 처음엔 낯설 수 있다. 그러나 기술적인 부분은 노력으로 극복 가능하다. 진짜 도전은 문화적 깊이를 이해하고, 그 정서를 진심으로 표현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쉽고 편안해 보여도, 연주자가 먼저 음악에 감동하지 않으면 청중에게까지 그 감동이 전달되지 않아요. 지난 13년 동안 매 공연이 느낌이 달랐고, 매번 새롭게 감동했습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곡이 가진 ‘성격’을 살리는 것입니다. 음악에 담긴 진짜 의미를 꿰뚫어 보고, 어떻게 하면 가장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지를 늘 고민해야 하죠. 곡의 의도와 본질을 충분히 이해해야 이 음악의 ‘존재 이유’에 부합하는 연주를 할 수 있어요.”
결국 이 음악의 본질은 스토리와 감정을 전하는 것이며, 션윈 음악가들이 가장 빛을 발하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션윈 음악가들이 만들어내는 하모니
린자치 씨에 따르면 션윈 무대의 각 곡마다 스토리가 있다. 무대 위에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곡은 물론, 서사가 드러나지 않는 곡도 곡 자체의 고유한 캐릭터가 존재한다. 작곡가들은 안무가와 끊임없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곡을 완성해 간다. 무용수의 한 동작, 한 제스처에도 정확히 대응하도록 세심하게 맞춘다.
“저는 무용수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이야기를 전하려는지 먼저 파악해요. 그리고 연주할 때 바이올린 선율에 그 움직임과 의미를 담으려고 노력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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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가 쌓아 올린 멜로디, 연주자들의 음색, 무대 의상과 배경 그래픽, 무용수들의 몸짓과 표정은 물리적으로만 맞물리는 게 아니라 정신적·감정적으로도 하나로 어우러진다.
“모든 요소가 하나로 모여 최고의 효과를 내는 거예요.” 린자치 씨는 이렇게 말한 뒤, “각 곡이 하나의 큰 그림을 이루는 요소가 돼 아름다운 완전체를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션윈을 보고 정말 훌륭하다고 느끼는 거죠”라고 덧붙였다.
린자치 씨는 지휘를 하든 바이올린을 켜든, 공연 중에는 온전히 그 순간에 집중해 작품 전체에 자신을 녹여낸다고 설명했다.
“그 순간 음악과 하나가 되는 것 같아요. 이건 개인이 돋보이는 무대가 아니라, 단체가 함께 만들어가는 무대죠.”
이어 그녀는 연주가 매일 조금씩 달라진다고 말했다.
“연주할 때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아주 미묘한 차이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날마다 달라지니까 매일 공연이 달라지는 거죠. 내일일 수도 있고, 다음 주나 지난주일 수도 있지만, 제가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도 있고 배울 수도 있는 거예요.”
린자치 씨는 모든 단원이 늘 발전하려고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늘 우리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요.
무대 위에서 이 목표를 함께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린자치
“우린 모두 계속 발전하려고 애써요. 무대 위에서 그걸 함께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매일 고민하죠. 그리고 다음 날이 되면 또 거기에 무언가를 덧붙일 수도 있어요. 항상 개선의 여지가 있고, 끝이 없죠. 원래 예술이란 끝없는 완벽함의 추구잖아요.”
그녀는 앙상블 전체가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그 에너지가 서로에게 전해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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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의 마음가짐이 정말 중요해요.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거나 충분히 아름답지 않을 때, 그 작은 긴장감이 서로에게 느껴지거든요. 오직 함께 협력해야만 완벽에 가까운 하모니를 만들 수 있어요. 음악은 사람들에게 감정을 전달하는 매개체인 만큼, 결국 우리의 마음이 음악을 통해 드러나는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