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는 ‘중국 포위망’…中 기업들, 폐쇄공간 속 생존게임

2025년 02월 15일 오후 4:15

압도적 미국 시장 놔두고 다른 시장에서 ‘아귀 다툼’
경영난 심화에 가격 낮추고 직원 해고…경제에도 악영향

미중 무역 전쟁 격화로 이미 치열한 중국 수출업체들의 생존 경쟁이 더욱 과열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로이터 통신은 12일(현지시각) 분석 기사를 통해 미국 시장에 의존하던 중국의 수출 기업들이 “극심한 생존 경쟁(Rat race)” 상황에 처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10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명령은 오는 3월 4일부터 시행된다.

미국에 수입되는 철강·알루미늄 25% 관세는 모든 국가로부터 수출된 제품에 적용되지만, 실제로는 중국을 겨냥한 조치라는 게 업계 전문가와 주요 언론의 견해다.

중국 수출업체들은 이미 미국의 관세 부과에 대응해, 캐나다와 멕시코 등 미국으로부터 관세 혜택을 받는 국가들을 통해 미국에 우회 수출해 왔다. 인건비가 싼 베트남 업체를 내세워, 중국산 철강·알루미늄을 ‘택갈이’만 해 수출하기도 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였던 2018년 중국산 철강에 25%, 알루미늄에 10% 관세를 부과했기 때문이다. 당시 트럼프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들었다.

로이터 통신은 중국의 한 알루미늄 생산업체 영업 책임자를 인터뷰해, 이 업체가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시장에 수출량을 확대하려 하지만 “문제는 다른 업체들도 같은 전략을 갖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 책임자는 가격 인하와 더 낮은 마진을 피할 수 없다면서, 미국 시장을 제외한 다른 시장은 규모가 작아 “케이크 한 조각을 두고 서로 다투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국 업체들은 내수 시장에서는 수요 감소, 수출 시장에서는 미국의 압박으로 생존 위기에 몰리고 있다. 다른 판로를 찾으려 하지만, 미국은 압도적인 소비력으로 다른 모든 시장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어 중국 업체들의 고통이 깊어지고 있다.

고통은 수출업체에서 끝나지 않는다. 업체 간 가격 경쟁 격화로 영업이익이 줄어들면 일자리 감소, 임금 인하, 투자 위축 등 연쇄 작용을 일으켜 이미 디플레이션 압력에 시달리는 중국 경제를 더 주저앉힐 위험이 있다.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주로 생산하는 업체의 대표인 천모씨는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에서 “회사가 마진이 거의 없다”며 올해 직원 80명 중 일부를 해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씨는 또한 “폴란드 시장에 진출하려고 애쓰고 있다”면서 “하지만 폴란드 소비자들은 미국 소비자들처럼 구매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신규 시장을 개척한다고 어려움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중국산 저가 수입품에 대한 자국 내 반발, 중국에 대한 정치적 저항 등 새로운 난관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HSBC의 아시아 수석 경제학자 프레데릭 노이먼은 “시장 다각화 시도는 이해할 만한 일이지만, 지속 불가능한 전략”이라며 “모든 중국 수출업체가 다른 시장에서 똑같은 전략을 구사하게 된다면 수익 개선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노이먼은 또한 “진짜 리스크는 중국산 제품을 수입하는 국가에서 자국 생산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결국에는 중국산에 대한 제한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즉, 미국 시장에서 쫓겨난 중국 수출업체들이 다른 시장으로 과도하게 몰릴 경우, 오히려 그나마 유지하고 있던 시장마저 잃게 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중국 허베이성 스좌장의 한 욕조 제조업체 임원은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려 이미 임금을 10~15% 낮췄는데, 미국 소매상으로부터 10% 가격 인하 요구를 받고 있다”며 경영난을 호소했다.

이 임원은 “외국 무역에 뛰어든 중국 기업이 너무 많다”며 업계가 전반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에서는 중국산에 대한 제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중국산 전기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인상했고, 인도와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신흥 시장에서도 중국산 특정 제품에 대한 무역 장벽을 높이고 있다.

중국 내수시장에 주력하는 전기 스쿠터 제조사 자리푸(嘉立富) 임원 리모씨는 “모든 산업 분야에서 중국 기업들이 해외 시장을 확대하고 있지만, 그 결과 전 세계 정부에서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고 제재를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씨는 “많은 제조업체가 비용 절감을 위해 근로자를 해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제학자들은 중국이 현 상황을 헤쳐 나가려면 내수 시장을 키우고 가계의 소비를 촉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아울러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생산을 줄여 수출 위주의 성장 구조를 내수 위주로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주도하는 계획경제를 완화하고 민간기업이 활약할 여지를 열어줘야 하지만, 이러한 전략 변경은 최고 권력자의 판단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게 현재 중국 공산당 체제의 한계다.

중국 전문가 양쉬(楊旭)는 “시진핑은 ‘공동부유’를 내세우면서 개혁 노선을 그만두고 민간 기업과 부유한 엘리트들을 탄압했다”며 “자신의 권력 안정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시진핑이 실책을 시인하고 개혁 노선으로 복귀하는 일은 생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