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善)의 치유력] ③ 용서, 내면의 평온과 심신 건강으로 이끄는 힘

안전하고 효과적이며 비용도 들지 않는,단지 약간의 관점 전환만이 필요한 약이 있다면? ‘선(善)의 치유력’시리즈에서는 선량한 행동과 건강 사이의 잊혀진 연결고리를 살펴본다. 그 세 번째 순서는 잇따른 비극적 사건들로 심신의 건강을 잃은 성직자가 ‘원망‘을 내려놓고 ‘용서‘의 힘으로 평온을 되찾은 이야기다. <편집자주>
린든 해리스는 2001년 4월, 뉴욕 월스트리트에 있는 성공회 교회인 세인트 폴 채플의 사제로 임명되면서 꿈의 직장을 얻었다. 하지만 몇 달 후, 비극적인 사건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해리스는 집과 아내, 심지어 건강까지 잃었다. 그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 폐 손상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당연히 세상을 원망했다. 하지만 그를 구원한 것은 예상치 못한 것, 바로 용서의 힘이었다.
영웅에서 피해자로
세계무역센터에서 불과 3블록 떨어진 곳에 있던 해리스의 교회에서 그는 9.11의 비극을 목격했다. 눈앞에서 타워가 무너지는 참상이 벌어졌다. 그 여파로 그는 집을 잃은 이웃들, 실종된 사랑하는 가족을 찾는 사람들, 그리고 갈 곳 없는 생존자들 등 사건 피해자들의 고통을 직접 목격했다.
아비규환 속에서 해리스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임시 음식 배급소를 설치해 햄버거와 핫도그를 제공했다. 이후 그는 교회를 개방하고 구조대원들과 재난 현장 작업자들을 위해 음식, 마사지, 재활치료,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며 재난 현장에서의 인도주의적 노력을 확대했다. 교회는 또한 사람들이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해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는 항상 누군가가 어려움에 부닥쳤다면 도와야 한다고 가르치셨죠.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교회 지도부는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인도주의적 지원에서 건물 보존으로 초점을 옮겼다. 해리스는 반대했지만, 성과가 없었고, 놀랍게도 교회 경영진은 사람들을 돕는 그의 노력을 인정하지도, 가치 있게 여기지도 않았다.
몇 달 후, 해리스는 교회가 제작한, 재난 현장에서의 교회 봉사활동에 관한 다큐멘터리 예고편을 보기 위해 뉴욕역사협회 상영관에 가서 관객들과 함께했다. 영상을 보면서 그는 자신이 이 봉사활동을 처음 시작하고 240일 이상 운영을 감독한 중심인물임에도 자신이 등장하는 장면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마치 그가 지워진 것 같았다.
해리스는 “내가 한 모든 일이 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 같았다”라고 했다.
재난 현장에서 8개월 반 동안 헌신하는 동안, 그는 폐와 부비동이 손상됐다. 다큐멘터리 예고편을 보았을 때, 자신이 피해자라는 의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분노와 배신감을 느낀 해리스는 사직했다.
그는 “그리고 곧 제 인생이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해리스는 집을 잃었고, 결혼 생활도 실패했다. 몸과 마음이 아픈 상태에서 그는 우울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더욱 고통을 받았다.
그의 원망은 10년 동안 지속됐다. 그는 다시 개인적인 ‘재난 현장’에서 살았다. 이어지는 해리스의 말이다.
“넬슨 만델라가 가장 잘 표현했죠. ‘용서하지 않는 것은 독을 마시고 적이 죽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라고요.”
“제가 그 독을 마셨고, 때로는 정말 좋은 맛이 났습니다. 그리고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제 일부가 죽어갔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것이 이야기의 끝이 아닙니다. 제가 용서의 마음을 열었을 때 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내려놓기’가 삶을 건강하게 개선하는 방법
루터 대학의 심리학 교수이자 선도적인 ‘용서’ 연구자인 로렌 투쌍트는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1423명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 연구는 자신을 용서하고, 다른 사람을 용서하며, 신의 용서를 느끼는 것이 더 나은 정신 건강, 신체 건강, 삶의 만족도, 행복 등과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반대로 불용(不容), 즉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이 계속 일어나는 현상인 반추와 우울 증상으로 이어져, 정신 건강에 극도로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당신이 집중하는 그것이 자란다”라는 격언처럼, 반추는 스트레스를 반복적으로 유발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지속해서 분비되게 한다. 이는 버지니아 커먼웰스 대학의 명예교수이면서 용서에 관한 책을 50권 이상 저술한 에버렛 워싱턴의 설명이다.
2019년 연구에 따르면, 반추는 수면 시간 단축과 기상 시 현저히 높은 코르티솔 수치와 관련이 있다.

에버렛 워싱턴은 에포크타임스에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은 단기적으로는 유익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신체의 모든 시스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라고 말했다.
코르티솔은 투쟁-도피 반응에 필수적인 신체의 경보 시스템인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을 활성화한다. 하지만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심혈관계를 손상하고, 기억이 통합되는 해마를 위축시키며, 면역 체계와 위장관계를 교란할 수 있다고 했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또한 높은 자살 위험과도 상당한 관련이 있다.
미국 암치료센터에서 10년간 목회 돌봄 책임자로 일한 목사 마이클 배리는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차 있을 때, 살고 싶은 욕구마저 줄어들곤 한다”고 말했다.
원한을 품는 대신 용서를 받아들이는 정신적 전환은 우리의 신체 건강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투쌍트 교수는 참가자들에게 누군가가 자신에게 상처 준 때를 회상하게 한 흥미로운 실험을 설명했다.
고통스러운 경험을 회상할 때, 위장이 뒤틀리고, 입안이 바짝 마르며, 약간의 땀이 나기 시작한다고 투쌍트 교수가 말했다. 상상된 것이지만, 뇌는 그것을 실제와 구별하지 못하고, 신체는 스트레스 경험을 다시 겪게 된다.
‘용서하는 생각’을 가진 참가자들은 강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심박수, 혈압, 눈썹 근육 긴장도가 더 낮고 편안했다. 용서는 그들이 상처 입는 경험에 반응하는 것을 막아, 매우 완화된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게 했다.

스트레스는 주요 우울증, 심혈관 질환, 암의 위험 증가와 연관돼 있으며, 연구들은 스트레스가 유전자 발현을 변화시키고, 염증 인자를 활성화하며, 종양 성장과 전이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건강심리학 저널에 발표된 연구에서 투쌍트 교수는 용서가 평생의 스트레스를 상당히 완충하고, 정신 질환을 예방하며, 신체 건강을 크게 개선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에 따르면, 용서하는 사람들은 생활 스트레스에 대해 더 효과적인 대처 방식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적용할 수 있는 더 많은 전략을 가지고 문제 중심적으로 접근한다.
스탠퍼드 용서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프레드 루스킨은 에포크타임스에 “역경이나 부당한 대우에 직면했을 때, 과거를 내려놓고 자신의 방향을 바로잡으며, 더 큰 자신감으로 전진할 수 있다”라고 언급했다. 원한과 두려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내려놓음으로써 친절, 사랑, 연민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얻게 되며, 이는 그 자체로 건강상의 이점을 가져다준다.
해리스는 에포크타임스에 용서 전문가이자 친구인 루스킨이 자주 그에게, 불운을 곱씹는 데 쏟는 만큼의 에너지를 삶의 축복을 찾는 데 쏟는다면 새로운 만족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이 해리스의 용서를 향한 여정의 초석이 됐다.
새로운 장을 열며
해리스는 건강을 되찾기 전에, 우선 피해자 의식을 풀어내고 용서를 받아들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6년을 ‘용서와 자비의 해’로 선포했다. 같은 해, 해리스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에 올랐다.
해리스는 순례길의 전통 중 하나는 돌을 가지고 가다가 긴 여정을 마친 후 피니스테레 절벽에서 돌을 바다로 던져 ‘짊어지고 온 짐들을 놓아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자기 삶과 과거의 실수들, 그리고 용서하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했고, 그 모든 것을 놓아주었다.
여정의 끝에서 해리스는 순례길에 동행한 여자 친구 마리아와 함께 절벽 아래로 돌을 던지고 “우리의 미래를 향한 약속을 선언했다”라고 했다. 바로 그때 그녀에게 청혼했고, 그녀는 “예”라고 답했다.

그는 말했다. “저는 새로운 사명을 가진 새로운 사람이 됐습니다.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면하게 되었죠. 정말 축복받았습니다.”
해리스는 폐 손상의 흔적도 없고 원망의 감정도 없이, 정신적, 신체적 건강이 최고 상태라고 했다. 꿈꿔 왔던 여인과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용서의 이점을 전파하는 동기부여 강연자로 일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모두 비극을 마주하지만, 행복하고 회복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대응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용서는 그것의 핵심입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죠. 연구 결과들은 반박할 수 없습니다.“
용서는 무엇인가?
용서에 관한 책의 저자인 배리는 “용서는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고통스러운 기억은 두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바로 고통과 기억입니다.” 그는 신체의 흉터처럼 누군가를 용서할 때, 고통은 사라지지만 기억은 남는다고 했다.
용서는 또한 단순히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19세 젊은 여성이 트라우마 경험으로 인해 6년 이상 아버지와 멀어져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여성은 분노를 표출했고 여전히 고통 속에 있었다. 배리가 아버지를 용서하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물었을 때, 그녀는 “오래전에 용서했다”라고 답했다. 배리는 그녀가 아직 용서하지 않았다는 의견을 주었다.
배리에 따르면, 용서는 ‘진정으로 당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워싱턴 교수에 따르면, 용서는 내 피부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이는 순전히 개인의 내면 상태의 것으로,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다.
용서와 화해가 반드시 하나로 묶여있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을 다시 보거나 상호작용할 필요 없이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다.
놀이터의 원리
워싱턴 교수는 용서하려고 할 때 일정한 방식을 따르는 것을 추천했다. 그래서 그는 50개 이상의 과학 연구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보인, 자신만의 용서 방식인 ‘REACH 용서’를 만들었다.
그에 따르면, REACH는 다음과 같은 의미다. “상처를 상기한다(Recall). 당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과 공감한다(Empathize). 받을 자격 없는 사람에게 ‘이타적(Altruistic)’ 마음으로 용서의 선물을 준다. 감정적으로 경험하는 그 용서를 결심한다(Commit). 그리고 의심이 들 때 그 용서를 붙잡는다(Hold).”
그는 이 틀을 중대한 사건과 사소한 일에 모두 적용할 수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운전 중에 끼어들었다면, 먼저 상처를 상기하고, 당신의 분노를 인정하고, 계속 화내는 것이 가치 없다고 결정하면서 시작한다. 다음으로, 상대 운전자가 급했거나 주의가 산만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공감한다. 그런 다음, 그것을 놓아주는 이타적인 선물을 준다. 이것이 어렵다면, 비슷한 실수에 대해 당신이 용서받았던 때를 떠올릴 수도 있다. 그것을 놓아주기로 결심하고, 나중에 이 사소한 사건이 하루를 망치도록 두지 않기로 선택했다는 것을 상기하며 그 용서를 유지한다.
루스킨은 당신의 인생 파트너처럼 가까운 사람들과 작은 것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중요한 사람들에게 집중하고 연습한다. 2분 동안 앉아서 누군가에게 할 수 있는 말을 연습해 본다.
그는 “시험해 보세요”라고 조언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용서하려는 의도다.
루스킨은 “용서는 치유 열차의 마지막 정거장이다”라고 말했다.
가치가 있긴 하지만 구체적 방법들은 사실 보조적인 것이라고 했다. 그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빅터 프랑클을 인용했는데, 프랑클은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들은 거의 모든 방법을 견딜 수 있다”라고 했다.
“인내심을 가지세요.”
그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평온한 경험을 통합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기도, 명상, 깊은 호흡, 평화로운 이미지 또는 자연에서 시간 보내기를 추천했다. 이러한 실천들은 당신이 편안해지고 문제에 대한 다른 대안들을 고려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해리스는 ‘감사하는 마음 갖기’를 추천했는데, 이는 ‘용서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해독제’이기 때문이다.
배리는 ‘자신에 대한 용서’도 비슷한 접근법을 취한다고 했다. 먼저, 용서하기로 의식적인 결정을 해야 한다. 다음으로, 저지른 잘못을 받아들인다. 그런 다음, 과거의 행동이나 태도를 고칠 의지를 보임으로써 회개한다. 지혜를 얻는 세 번째 단계에서는 ‘내 실수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라고 자문한다.
해리스는 우리가 놀이터를 상상해 보길 제안했다. 철봉 중간에 매달려 있는 어린아이를 상상해 본다. 우리 중 많은 사람이 그 아이처럼 살고 있다고 했다. 중간에 갇혀서,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놓아주지도 못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미래를 향해 손을 뻗어야 합니다. 앞의 철봉을 잡아야 하고, 동시에 뒤에 잡은 것을 놓아주어야 합니다.”
*한교진 기자가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