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 체포 이후 추가 적발…“앞으로 더 많이 공개”
중국 간첩들, 이민자·유학생 신분으로 세계 각국서 활개
필리핀 당국이 불법적으로 군사 정보를 수집하며 국가 안보를 위협한 중국인 간첩 5명을 체포했다. 증가하는 중국인 간첩 활동에 맞춰, 반(反)간첩법을 개정해 단속과 처벌을 강화할 방침이다.
30일(현지시각) PNA에 따르면 이날 필리핀 당국은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 지역에서 불법 정보 수집 및 감사, 정찰을 벌인 혐의로 중국인 용의자 5명을 체포하고 관련 장비를 압수했다고 밝혔다.
앞서 17일 필리핀 군사 시설 등 중요 인프라를 정찰해 수집한 정보를 중국에 넘긴 중국 소프트웨어 기술자 덩칭위안을 체포한 데 이어 약 2주 만에 중국 간첩들을 추가로 적발한 것이다.
필리핀 국가수사국(NBI)은 이날 용의자 5명이 필리핀 공군·해군 기지, 해경 함정, 스프래틀리 군도와 인접한 팔라완주 조선소 등을 드론으로 촬영했다며, 이들이 사용한 장비와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도 공개했다.
특히 중국인 간첩들은 민간 CCTV처럼 위장한 군사용 고해상도 비디오 카메라와 드론을 사용해, 중국 공산당 정보기관과 관련됐을 의혹을 짙게 했다.
필리핀군 참모총장 로미오 브라우너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중국인 간첩들은) 태양광 발전 기능을 탑재한 비디오 카메라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어딘가로 전송했다”며 “필리핀 군 기지와 선박이 매우 위험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당국에 따르면, 중국인 간첩 용의자 5명은 자신들이 필리핀-중국 평화우호증진협회, 필리핀 차오싱(侨星) 자원봉사단 등 시민단체 소속이라고 주장했다.
현지 중국계 이민자들은 이 두 단체가 10여 년 전 필리핀에서 새롭게 설립됐으며, 회원 대부분은 중국 본토에서 새롭게 이민 온 중국인들이라고 말했다.
이는 지난 수년간 중국에서 이민자나 유학생으로 위장한 간첩들이 대거 세계 각국에 침투했다는 중국 감시단체 및 전문가들의 경고와 일치한다.
앞서 중국 간첩 덩칭위안 등이 체포된 것을 두고 지난 25일 주필리핀 중국대사관은 그의 혐의를 부인하며 “근거 없는 비방”이라고 반발했었다. 27일에는 덩칭위안의 아내까지 나서 “남편은 중국 간첩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필리핀 해군 준장 겸 대변인 로이 빈센트 트리니다드는 외국 세력이 필리핀 전국에서 염탐을 벌이고 있다면서 중국대사관의 주장을 일축했다.
중국 간첩, 세계 각국서 기승…대책 마련 시급
군사 기지 등 국가 중요 인프라를 중국인들이 드론 등으로 정탐하는 일은 최근 부쩍 늘고 있다.
필리핀 국가안보위원회의 대변인 조나단 말리야는 지난 29일 관련 포럼에서 “필리핀 내 중국 간첩망이 이미 광범위하게 구축돼 있다”며 “앞으로 더 많은 적발 사례를 일반에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6월 중국인 2명이 부산 해군작전사령부에 입항한 미국 항공모함을 드론으로 불법 촬영하다가 적발됐고, 11월에는 중국 국적의 40대 남성이 입국 직후 강남구 내곡동의 헌인릉을 드론으로 찍으면서 인근 국정원 건물도 함께 촬영하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이들은 현지 중국계 이민자 혹은 관광객, 유학생 신분을 내세워 ‘단순 호기심으로 촬영했다’ 등의 주장을 펴고 있으나, 이는 상대국을 방심하게 만들거나 법적 허점을 이용해 빠져나가기 위한 것으로 파악된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28일 필리핀과 한국에서 일어난 미군 시설 정탐 사건에 관한 VOA 논평 요청에 “미국인과 미 장병의 안전 및 (국가) 안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긴다”고 답했다.
한국 부산에서 미국 항모를 드론 촬영한 중국인 3명은 2년 전부터 또 다른 군사시설 촬영물을 500개 넘게 보관한 것으로 밝혀졌으나, 현행 간첩법상 적국은 북한으로만 규정돼 있어 적용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이후 국회에서 간첩죄 구성요건을 기존의 ‘적국을 위하여 간첩하는 행위’에서 ‘외국’으로 확대하는 형법 개정안이 추진됐으나 법사위 소위를 통과한 개정안은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제동이 걸렸다.
좌파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진보네트워크, 천주교인권위원회,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한국진보연대 등은 “국정원 권한 남용으로 간첩혐의자를 양산하고 민간사찰 등 인권 침해가 우려된다”며 간첩법 개정을 반대했다.
공산주의 중국은 세계 각국에 간첩을 침투시키고 호주와 영국에서는 선거 개입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지만, 자국에서는 반간첩법을 강화해 중요 시설 촬영은 물론 기업 활동을 위한 정보 수집이나 관광객의 거리 사진 촬영도 제약을 가하는 실정이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은 360만 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78% 증가했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엄청난 인적 교류와 경제적 긴밀함에 비해, 중국의 침투에 대한 한국의 경계심은 무감각에 가깝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정보기구 책임자는 미국 역시 이러한 무감각에 빠져 있다며, 이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극복해야 할 의도적인 마비 공격이라고 경종을 울렸다.
존 랫클리프 미 중앙정보국(CIA) 신임 국장은 지난 24일 언론 인터뷰에서 “워싱턴에서부터 월스트리트, 실리콘밸리, 할리우드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이 중국에서 돈을 벌고 있다”며 이러한 영향력으로 인해 중국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억제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랫클리프 국장은 또한 “우리는 중국과 중국 공산당의 여러 부서가 얼마나 사악하고 불법적인지 분명히 보여주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는 국가 안보를 지키기 위한 역량의 대응 초점을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이동시키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