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요지부동 친중 관료들, 언제까지 중공의 문화 검열에 굴종할 텐가

이희진
2025년 01월 28일 오후 4:54 업데이트: 2025년 01월 28일 오후 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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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연계 관계자로부터 우려스러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올해 경주에서 열릴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전국 국공립 공연장에 ‘션윈’ 공연 대관 금지령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이때 방한하는 중국 시진핑 주석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란다.

미국 뉴욕 예술단인 ‘션윈’은 중국공산당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1호 공연이다. 중국공산당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파룬궁 수련자들이 설립했고, 문화대혁명 당시 파괴된 중국 전통문화를 되살리는 것을 모토로 한다. 션윈이 표방하는 전통 가치가 공산주의 이념에 정면으로 반하기 때문에 중국공산당은 이 공연을 필사적으로 방해해 왔다.

문제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실패해 온 중국공산당의 방해 공작이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십수 년째 성공적이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6년 KBS홀 사건이다. 당시 KBS는 션윈과 대관 계약을 체결했으나, 공연 며칠 전 중국대사관의 협박 공문을 받고 돌연 대관 계약을 취소해 버렸다. 한국을 대표하는 공영방송사가 헌법적 가치인 예술의 자유를 내팽개치고 중국공산당의 검열에 굴종한 것이다.

전 세계 36개국을 돌며 순회공연을 하는 션윈 공연단이 공연이 예정된 국가에서 공연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그 국가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내정 간섭 영향력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각국의 중국대사관마다 션윈 방해 공작을 담당하는 부서가 있고, 극장에 대한 압력은 물론, 주요 정관계 인사들에게 공연을 보지 말라는 서한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러한 검열과 보이콧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2023년 도미니카 공화국에서는 션윈 첫 공연을 앞두고 중국대사관이 극장과 정관계에 전방위 압력을 행사했으나 실패했고, 오히려 상·하원 의원들이 션윈에 축하 서한을 보냈다. 도미니카 공화국은 남미의 대표적인 친미 성향 국가다. 그러나 2018년 중국과 수교를 맺으면서 오랜 우방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왔으나, 2020년 루이스 아비나데르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다시 대미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중국과 거리를 두고 있다.

션윈 공연을 사실상 ‘금지’할 정도로, 중공의 방해공작이 성공적인 나라는 노골적으로 친중을 표방하는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한국뿐이다. 미중 신냉전이 시작된 지금, 미국의 동맹국인 우리나라의 관료 조직에 중국공산당의 검열에 굴종하는 모럴 해저드가 팽배해 있다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최근 화제작인 ‘중국의 초한전(超限戰)’의 저자 이지용 교수는 한 기고문에서 션윈에 대한 검열 상황에 대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중국에 문화 주권을 빼앗겼다. 민족의 ‘혼’을 빼앗긴 것이다. 중국이 싫어하거나 반대하는 일이 있으면 오늘날 대한민국은 하지 못한다”라고 뼈아픈 지적을 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표현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된 주권 국가다. 그럼에도 중국공산당의 부당한 검열에 적극 협조하는 요지부동 친중 관료들이 대한민국 공연계를 좌우지하고 있다.

민간 예술단의 공연 하나를 두고도 이럴진대 외교, 경제, 안보 등 주요 분야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내정 간섭 영향력은 정부·의회 내부 어디까지 퍼져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