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반부패 운동, 충성 간부만 남기는 숙청 작업으로 변질

강우찬
2025년 01월 23일 오전 11:03 업데이트: 2025년 01월 23일 오전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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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간부들, ‘모험’ 안하고 안전한 선택만…정책 실효성 약화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부패 척결을 추진할수록 중국 관료체제 내 복지부동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최근 보도했다.

경제 위기 속에서도 반부패로 숙청당할 것을 우려하는 공직자들이 안전을 택하고 현실에 안주하면서 위기를 돌파할 용기 있는 대책이 실종되자 공산당 집행부가 “일부 과실은 허용”이라고 달래고 있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2012년 시진핑 집권 후 지금까지 부패 척결 운동으로 처벌당한 정부 관리, 당 간부들은 620만 명에 달한다. 10년 이상 이어진 반부패로 중국 공직사회 전반에 걸쳐 숙청에 대한 두려움이 광범위하게 확산돼 있다.

이에 시진핑은 “엄격한 규율을 강요해, 과거 중국 경제 부흥의 한 축이었던 ‘할 수 있다’는 정신을 약화하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시진핑은 “엄격한 통제와 애정 어린 보살핌을 병행하라”며 “간부들이 진보하고 진취적이 될 수 있도록 격려하라”고 말했다. 또한 침체된 경제를 살리려다가 부주의하게 실수를 저지른 관리들에게는 “관대하게 대우하라”며 고의적인 악행과는 구분하라고 지시했다.

‘관용 정책’이 최근에야 실행된 것은 아니다. 지난해 7월 중국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3중전회에서는 ‘3가지 차별화’가 결정됐다. 이 결정은 잘해보려다가 과실을 저지른 공무원은 처벌을 면해주고 간부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요구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이에 따라 중국 감찰당국은 근거 없는 고발 방지에 힘쓰고 선처 조치를 확대하며, 과실을 뉘우친 공무원들의 의욕을 불어넣기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반부패 자체를 완화하는 것은 아니다. 이달 초 열린 중국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시진핑 총서기는 “반부패 사업을 중단하거나 굴복하지 않고 계속 추진하겠다”며 “도중에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10년 이상 계속된 부패 척결에도 중국의 부패 관리들은 계속 적발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숫자가 증가하고 있다. 10일 중앙기율검사위원회 공식 발표에 따르면 2024년 부패 사범으로 처벌된 공무원은 88만9천 명으로 전년 대비 무려 46% 증가하며 반부패 시작 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시진핑의 반부패 운동이 당초 중국 공산당의 통치 기반을 흔들 정도로 만연한 부패를 없애겠다는 목표로 실행됐으나 점차 관리들의 충성심과 경각심을 유지하기 위한 숙청 캠페인으로 변모했다고 진단했다.

“시진핑은 숙청을 통해 통제력을 강화하기를 원하면서도, 동시에 관리들이 두려움 없이 마음껏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게 중국 문제 전문가들의 평가다.

반부패에 대한 두려움만큼이나 깊어지는 것이 중국 관료체제의 반발심이다. 대부분의 감찰이 반대 세력을 약화하기 위한 정치적 동기에 따른 ‘표적 조사’이므로, 실제 저지른 부패 정도가 어떻든 간에 표적이 된 간부들은 결국 처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 중기위 감찰관 출신의 중국 문제 전문가 왕요췬(王友群)은 에포크타임스 기고문에서 “시진핑의 반부패는 자기 사람만 피해가는 선택적 반부패”라며 “하지만 문제는 특히 고위층일수록 누구도 반부패를 피할 수 있다고 확신하지 못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왕요췬은 “시진핑은 선택적 반부패로 권력을 안정화하려고 했으나, 오히려 자기 사람만 남기려는 형태의 반부패 때문에 중국 고위층 사이에서는 시진핑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다”며 “더 많은 호랑이(고위 부패관리)와 싸울수록 자기편 사람은 줄어들고 적만 늘어가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공산당은 절대 권력을 휘둘러 엄청난 폐해를 가져온 마오쩌둥 집권 이후 집단 지도체제를 구축하고 파벌 간 경쟁과 협상으로 권력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시진핑은 집권 후 이러한 체제를 무너뜨리고 중앙집권을 강화했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홍색 귀족'(공산당 고위층 가족)이 몰락했다.

반체제 작가 두정(杜政)은 대만 ‘상바오(上報)’ 기고문에서 중국 관료계 내부 소식에 정통한 언론인 지인을 인용해 “지방정부 관리들은 중앙정부의 반복적인 명령(三令五申)에도 다들 탕핑(躺平·드러눕기, 복지부동)을 선택한다”고 밝혔다.

두정은 “지방정부 관리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회식 자리”라며 나라를 위해 정책을 세우고 집행하는 것에 관심이 떠났음을 시사하며 “하지만 발언이 녹음당할까 봐 다들 입조심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