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곳곳서 유사 사례… ‘빚 돌려막기’로 위험 증가
중국 지방정부들이 밀린 빚을 청산하지 못해 개발 중인 미분양 주택을 넘겨주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경기 침체로 자산을 매각한 부동산 개발업체들의 뒤를 따르는 것이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민영 천연가스 공급업체 둥팡한위(東方環宇)는 지난해 8월 창지(昌吉)시 국영기업들의 연체된 천연가스 대금 2500만 달러 대신 아파트 260채를 인수했다.
이 아파트들은 창지시 산하 국영기업 중 최대 규모인 창지 도시건설투자개발(창지건투)이 짓던 것으로, 창지건투는 지난해 6월 기준 부채 규모가 18억 달러(2조6천억원)에 달하지만, 현재 융통할 수 있는 자금은 9700만 달러(1400억원)에 불과해 도산 위기에 처해 있다.
둥팡한위는 지난 2022년부터 창지시 국영기업들에 천연가스를 공급해 왔으나 지금까지 대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이 보도한 창지시와 둥팡한위 간 합의안에 따르면, 둥팡한위는 아파트 260채를 매각 후 판매 수익에 따라 최대 100채분의 초과 수익까지 보유할 수 있지만 수익이 연체 대금보다 적을 때 손실을 감수하기로 했다.
지방정부가 빚 대신 산하 부동산 개발업체 소유의 미분양 주택을 양도하는 사례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서남부 구이저우성의 3개 현 정부는 중국 얼굴인식·감시 카메라 ‘업체 화핑(華平)정보기술’과 계약을 맺고 2012년부터 3년간 주민 감시 시스템인 스카이넷(톈왕·天網) 설치 사업을 진행했으나, 사업 비용을 상환하지 못해 부채가 1000만 달러(약 145억원)를 넘어서자 아파트 분양권을 매각한 자금으로 이를 해결했다.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경기 침체로 사업 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게 되자, 설계업체나 하청업체에 채무 대신 미분양 주택 분양권을 넘겨주는 일이 중국 지방정부로 확산하는 상황이다.
미국 경제학자 데이비 웡은 “이런 사건은 지방정부 재정의 어려움을 드러내는 동시에 지방정부의 고질적인 관리 능력을 보여준다”라며 “증상만 해결할 뿐 본질적인 문제는 건드리지 못해 또 지방 은행, 국유기업으로 확산해 경제 전반에 심각한 위기를 불러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타이완 난화대학 국제 문제 및 기업학과 쑨궈샹 교수는 “이런 조치는 단기적으로 유동성 압박을 완화할 수 있지만, 부채 규모 증가와 유동성 부족이라는 근본적 문제는 건드리지 못한다”라며 “중국 지방정부 재정은 여전히 부동산 대출과 인프라 투자에 의존하는데, 현재 두 수익원 모두 약화해 지속적인 부채 상환 수요에 대처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쑨 교수는 “지방정부들은 대출로 자금을 마련해 부동산 개발사업을 벌여왔는데, 아파트 분양권을 팔아 수익을 내지 못하고 다른 부채를 상환하는 데 이를 이용하고 있다. 즉, 빚을 돌려막는 것이나 다름없다. 계속 이렇게 하다가는 스노우 볼 효과로 한계에 직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방정부 부채 위기는 실은 지방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 경제의 구조적 모순이 드러난 것”이라며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대규모 재정과 세금 제도 개혁, 위험 관리가 필요하지만, 중앙정부가 이러한 의지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 지방정부가 부동산 개발과 인프라 산업에 매달리는 것은 지금까지 지방정부 경제 성장을 이끈 가장 손쉽고 확실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 붕괴와 과도한 인프라 투자로 막대한 빚을 지게 됐지만, 지방정부는 여전히 기존 방식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중앙정부의 재정지원만 바라보는 실정이다. 위기를 경고하고 본질적인 대책을 요구하던 이들은 관료 시스템 밖으로 쫓겨난 지 오래다.
데이비 웡은 “지방정부 부채 위기는 중국 경제의 회색코뿔소(예상 가능하지만 쉽게 간과하는 위험 요인)”라며 “지방정부 위기로 디플레이션이 심화하면, 이는 세수 감소로 지방정부의 부채를 확대하고 다시 디플레이션을 심화하는 악순환을 일으켜 중국뿐만 아니라 주변국과 세계 경제까지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