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유학생 동원한 기술 탈취부터 경제·군사 각 방면 침투 조망
대학·기업들을 안보의식 약해, 친중세력까지 가세하며 위기
프랑스 방송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공산주의 중국의 정치, 문화, 과학기술, 군사 분야 등 광범위한 프랑스 침투를 폭로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중국의 과학기술 탈취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2일(현지 시각)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 피가로’에 따르면, 이날 텔레비전 채널 M6는 중국이 프랑스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내용의 탐사 다큐멘터리 ‘프랑스-중국: 비밀 전쟁(France-Chine, la guerre secrète)’를 방송했다.
73분 분량의 이 다큐는 중국인 유학생들의 프랑스 대학 연구자료 절취 사건으로 시작한다. 이어 산업 스파이 활동, 기술 탈취, 정치적 염탐, 영향력 침투 등 정치, 문화, 기술, 군사 분야에서 중국 공산당의 비밀공작을 자세히 추적한다.
다큐를 연출한 감독 빈센트 프라도(Vincent Prado)는 1년간의 조사 과정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많은 침투와 내통 증거”를 발견했다. 프라도 감독이 처음 중국의 침투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인민해방군에 고용된 프랑스 조종사들에 관한 뉴스를 접하면서부터다.
이들은 중국 조종사들의 훈련 속도를 높이기 위해 높은 몸값을 받고 용병으로 고용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소속 조종사들만 터득한 노하우를 전수했다. 이 사건은 사안의 심각성을 발견한 프랑스 국방보안국(DRSD)에 의해 처음 공론화됐다.
다큐 ‘프랑스-중국, 비밀 전쟁’에서는 이러한 사건들을 바탕으로 중국이 지난 20년간 위성항법기술 분야에서 프랑스가 보유한 최첨단 기술을 베끼거나 훔치려는 시도를 반복해 왔음을 조망한다.
유럽 국가들은 1990년대 독일·프랑스·이탈리아의 주도로 미국의 GPS, 러시아의 글로나스에 대항할 수 있는 유럽만의 독자적 위성항법시스템 ‘갈릴레오’ 개발에 착수했으며 2003년 유럽연합(EU)과 유럽 우주국(ESA)의 공식 승인을 받았다.
당시 중국도 이 사업에 참여했는데, 얼마 못 가 중국인 엔지니어들이 유럽 기술진을 염탐하고 기밀을 훔치고 있다는 혐의가 제기됐다. 이에 유럽 기술진은 중국 측 인력의 접근을 제한하기 위해 우회 네트워크 케이블을 설치하기도 했다.
추후 프랑스 정보기관은 중국이 갈릴레오 위성 내비게이션 기술을 사용하여 베이더우(北)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비밀리에 개발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베이더우는 이처럼 프랑스 기술을 도용해 개발됐을 뿐만 아니라, 내비게이션 시스템에 적합한 주파수 대역을 점유하면서 국제 간 주파수 갈등까지 일으켰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의 전 베이징 사무소장 마리 피에르 반 호케에 따르면, 중국이 사용하는 수색구조(SAR) 주파수가 EU 회원국이 사용하는 위성항법시스템의 PRS 신호를 가로채거나 방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발견됐고, 유럽 측의 항의로 양국 간 분쟁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는 중국 공산당의 모든 요구에 따라야 하는 중국 연구진 혹은 기업과의 모든 기술적 협력이 기술 절도와 방해, 악의적 개입 위험성에 노출돼 있음을 보여준 또 하나의 사례로 기록됐다.
Agents secrets, opérations commandos et scandales d’État passés sous silence : enquête sur les agissements du pouvoir chinois en France pour faire de la Chine la première puissance mondiale.#EnqueteExclusive, ce soir à 23:10 sur M6 et en streaming sur @M6plusofficiel pic.twitter.com/R6PeRcCotv
— M6 (@M6) January 12, 2025
프랑스가 자랑하는 여객기 에어버스도 중국의 절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다큐에서는 중국이 2023년 공개한 C919 여객기를 개발하기 위해 2010년부터 프랑스 항공우주업체 사프란 등의 정보와 데이터를 훔친 과정을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 기업들의 ‘느슨한 안보관’도 작용했다. 프랑스 기업들은 민간 항공 기술의 중요성을 소홀히 여겼으나 중국 기업들은 기술 절도와 저렴한 인건비, 국가 보조금을 무기로 국제 시장에서 프랑스와 미국 기업들의 시장을 잠식해 나갔다.
이 밖에도 다큐에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테스트 비행 아카데미(TFASA)에서 교관으로 활동하는 퇴역 조종사들에게 중국이 접근했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중국 공산당은 서방의 퇴역 조종사들을 영입하는 주된 목적은 조종 기술 교육이 아니라 서방 공군의 전술 개념 탈취에 있다. 단일 항공기 전투와 비행 전술, 편대와 대규모 함대 비행의 개념과 운용, 전자 간섭 및 미사일 공격 회피법 등이다.
이를 통해 중국 공산당 인민해방군 조종사들은 중국만의 한계에 갇힌 낡은 훈련법을 벗어나 세계적 흐름과 유행을 따라잡을 수 있게 된다. 향후 분쟁이 발생할 경우, 상대국이 예측할 수 없는 전술로 대응하는 기초를 다지는 작업이다.
프랑스 국방정보보안국도 이러한 중국의 공세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방첩 조치를 취하고 있다. 적잖은 프랑스 퇴역 조종사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본국에 귀국하거나 중국 측과의 협력을 포기하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해부터 기밀정보 취급 경력이 있는 군인이 교육을 위해 해외로 출국할 경우 사전에 신고하도록 하는 법안을 제정했으나 이 법안은 소급 적용되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는 중국과 바로 인접해 있으면서도 유독 중국 공산당의 침투와 내통 세력 포섭을 경고하거나 추적한 언론보도와 방송이 극히 드물다.
프랑스에서는 이러한 보도가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21년 2년 한국의 ‘추적 60분’에 해당하는 프랑스 TV2 탐사 보도 프로그램 ‘콤플레몽 동켓(Complément d’enquête·추적조사)’은 ‘중국의 대공세(Chine, la grande offensive)’ 편에서 중국의 프랑스 각 분야 침투를 자세히 보도했다.
이 방송에서는 프랑스 권력층이 중국 공산당에 의해 장기간 포섭됐으며, 특히 프랑스 정계와 재계 거물들이 참석하는 ‘프랑스 중국 위원회(Le Comit France Chine·CFC)’가 중국 공산당의 통일전선 중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통일전선은 중국 공산당이 글로벌 강대국으로 올라서기 위한 주요 전술 전략이다. 외국과의 문화, 경제 등 가벼운 교류 협력으로 시작해 상대국 내부에 지지 세력을 확대하고 더 나아가 내통 세력을 구축하는 간첩 포섭 조직망이다. 현지에서 활동하는 중국 대사관·영사관, 중국계 이민자 그룹, 중국인 유학생 조직이 주축이 된다.
다만, 이러한 방송의 경고에도 효과는 크지 않았다는 관련 전문가들의 평가였다.
미국의 경우, 중국이 탐내는 기술과 연구 능력을 보유한 주요 대학에서 중국 군과 관련된 학자, 유학생들의 입학을 차단하는 등 실질적인 조치가 이어졌지만, 프랑스에서는 대학과 기관들이 미국만큼 경계를 높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방 각국은 과거 중국 공산당의 개혁개방 이후 별다른 경계심 없이 많은 기술을 중국에 이전하거나 판매했으나, 현재는 중국산 전기자동차에 시장이 잠식되고 자국 산업이 무너지게 되자 뒤늦게 관세 인상 등 보호 장벽을 설치하고 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형태의 피해를 보거나 일부는 완전히 친중 세력으로 자리 잡았기에 미국만큼의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하거나 다국적 공조가 쉽지는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중국의 경제·산업 침투에 대한 자국 산업 보호 강화는 미국이나 유럽에만 그치지 않는다. 인도와 브라질은 중국산 제품 반덤핑 조사에 나섰고, 멕시코·칠레·콜롬비아 등 중남미 국가들도 중국산 철강에 대한 관세를 인상했거나 인상할 예정이다.
세계 각국이 공산주의 중국을 상대로 장벽을 쌓아 올리는 가운데, 한국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어 더 늦기 전에 태양광, 전기차 등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국내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나온다.
다큐 ‘프랑스-중국: 비밀 전쟁’은 기술 및 정보 탈취와 이전 외에도 프랑스 내 반체제 인사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국경을 넘나드는 탄압, 공자학원을 통한 소프트파워 침투와 감시, 국제 영화 및 텔레비전 공동 제작과 검열을 통한 창작물 통제 등을 폭로했다.
중국의 공자학원은 각국 대학에서 저렴한 가격에 중국어를 교육하고 대학 측에 각종 지원을 제공해 인기를 얻고 있으나, 캠퍼스 내 중국인 학생들의 정치적 발언과 활동을 감시하는 ‘사상경찰’ 역할도 겸하고 있다.
다큐 마지막 장면에서 익명으로 인터뷰에 응한 한 중국인 유학생은 “심지어 서로에 대한 (감시)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한다”며 이를 조국(중국)을 돕는 일이라는 자부심을 드러내기까지 했다.
에포크타임스의 중국 문제 전문가들은 중국인 유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공산당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려면 이들이 중국과 중국 공산당을 구분할 수 있도록 돕는 켐페인을 전개하는 것이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조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