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관리들, ‘인종차별주의자’ 낙인 우려해 묵인
당국, ‘정치적 올바름‘ 때문에 사태 방기, 개입 주저
최근 파키스탄계 아동 성착취 조직의 만행이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 공개돼 충격을 더하고 있다. 잉글랜드 북부에서 아동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질러온 이 조직의 피해자에 대한 충격적인 법정 기록이 X에 공개되면서다.
억만장자 일론 머스크는 즉각 이 사안에 주목해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의 노동당 정부를 공격했고, 영국에서 소위 ‘그루밍 갱단’ 스캔들이라 불리는, 오랫동안 들끓던 논쟁을 재점화했다.
하지만 이 스캔들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왜 수천 명의 소녀들에 대한 조직적인 착취와 성폭력이 드러나기까지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는가?
이 스캔들이 10여 년 전에 발생했는데도 머스크를 비롯해 여러 사람들이 현 총리를 겨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조사 결과 어떤 사실이 드러난 것일까?
수십 년 동안 잉글랜드 북부의 여러 도시에서 특히 가난한 백인 소녀들이 파키스탄계 남성들의 표적이 돼 성착취를 당했다. 이후의 조사와 재판, 취재진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그 지역 관리들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낙인이나 지역사회의 민심 악화를 우려해 이러한 학대를 묵인했다.
예를 들어, ‘포주 퇴치 연합(CROP, 후에 아동착취반대 부모연합 PACE로 개명)’에 참여한 부모들은 2004년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브래드포드에서 아시아계 남성들이 백인 여학생들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다큐멘터리는 ‘도시의 변두리(Edge of the City)’라는 제목으로 채널4에서 방영될 예정이었으나, 방영 몇 시간 전에 취소됐다. 영국국민당이 이 상황을 이용하려 한다는 주장, 그리고 “인종 폭동을 촉발할 수 있다”는 웨스트요크셔 경찰청장의 발언 때문이었다. 인종차별반대 전국회의와 같은 단체들도 이 다큐멘터리에 반대 로비를 했다.
킬리 지역구 국회의원 앤 크라이어는 2002년 자신의 선거구 내 두 소녀가 성착취를 당한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우려를 제기했지만, 1997년부터 2010년까지 집권했던 자신의 소속 정당인 노동당으로부터도 외면당했다. 웨스트요크셔 경찰및 사회복지기관들과 ‘지속적인’ 회의를 가졌음에도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2014년 크라이어는 가디언지(誌)와의 인터뷰에서 “다른 정치인들도 비슷한 이야기들을 들었지만 다들 외면했다”고 말했다. 크라이어는 파키스탄계 무슬림 시의원을 통해 이슬람 사원의 장로들에게 35명의 아동 성착취 혐의자 명단을 전달했다. 이맘(이슬람 성직자)들은 이에 대해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일축했다.
타임스의 기자 앤드루 노퍽은 로더햄 성착취 스캔들을 폭로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2011년 1월 5일, 타임스에 ‘영국 성범죄 조직에 대한 침묵의 공모 폭로·Revealed: conspiracy of silence on UK sex gangs)’라는 제하의 기사가 실렸다. 11세에 불과한 소녀들을 포함해 최소 1400명의 아동들이 사우스요크셔에서 다수의 가해자들에 의해 성폭행을 당하고 착취당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성착취 조직에 대한 보도를 이어갔다. 2012년 9월 24일 자 타임스 기사 ‘경찰은 만연한 아동 보호 관련 스캔들을 알고 있었다·Police files reveal vast child protection scandal)’에서 주목할 만한 보도를 했다. 파키스탄계 남성들의 네트워크에 의해 매년 수천 건의 아동 성착취 범죄가 사우스요크셔에서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담은 비밀 보고서를 경찰이 이미 2010년에 작성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가해자들의 신원을 확인했지만 기소하지 않았다. 기소되지 않은 범죄 중 하나는 새벽 3시에 옷이 흐트러진 채로 다수의 아시아계 남성들이 있는 집에서 발견된 13세 소녀의 사건이다. 그 남성들은 소녀에게 보드카를 먹였다.
이웃이 소녀의 비명 소리를 듣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당국은 음주와 질서 위반 혐의로 그 소녀를 체포했고, 남자들은 심문하지 않았다.
노퍽은 이들 보도로 2012년 폴 풋상(賞), 2013년 오웰상, 2014년 영국 저널리즘 어워드에서 올해의 저널리스트상을 포함한 권위 있는 저널리즘 상을 받았다.
2024년 BBC와의 인터뷰에서 노퍽은 자신조차도 학대의 규모를 “엄청나게 과소평가했다”며 “소녀들은 그 남자들의 쾌락을 위해 인간 이하의 종(種)으로 취급당했다”고 분노했다.
노퍽은 경찰과 시의회의 대책을 이끌어내려고 했지만 ‘침묵의 공모’에 부딪혔다. 보수당 정부하에서 2012년 아동보호위원회가 영국에서의 아동과 청소년의 성적 착취 규모를 밝히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아동 성착취 문제를 모든 남성의 문제로 일반화했고 범죄의 배경에 파키스탄인들과 이슬람이 있다는 사실은 외면했다.
보고서 및 조사
로쉬데일, 텔포드, 옥스포드, 허더스필드, 뉴캐슬, 브래드포드, 캐일리 등의 도시에서 그루밍 갱단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TV∙라디오 방송 GB News는 아동 성착취 갱단이 운영됐거나 운영되고 있는 50개의 마을과 도시를 파악했다고 밝혔다.
알렉시스 제이 교수는 2013년 로더햄 시의회가 의뢰한 보고서에서 1997~2013년까지 로더햄에서 1400명의 아동이 겪은 성적 학대의 규모를 밝혔다. 그에 따르면 당국은 성적 착취를 당한 아동의 약 3분의 1만 파악하고 있었다. 나머지는 방치되고 있었다.
그녀는 “아동 피해자가 겪은 학대가 얼마나 끔찍했는지 말을 하기도 어렵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갱단은 아동에게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이겠다고 위협하고, 총으로 위협하고, 잔인한 성폭행을 목격하게 하고, “누구한테 말하면 네가 다음 차례가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정치적 올바름’과 ‘인종주의자’ 낙인에 대한 두려움
여러 조사에 따르면 ‘정치적 올바름’ 때문에 당국은 사태를 방기하고 단호한 개입을 머뭇거렸다.
전 보수당 대표 겸 총리였던 테레사 메이는 제이 교수의 로더햄 보고서에 대해 논평하면서 “의원들의 조사가 부실했고, 정치적 올바름이 ‘제도’로서 뿌리를 내렸고, 정보도 은폐되었고, 심각한 위법 행위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없었다”고 개탄했다.
2004년부터 2013년까지를 조사한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한 고위 경찰관은 정부 조사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때 이 문제가 널리 알려지는 바람에 우리는 어린 여성을 태운 파키스탄인 비슷한 택시 운전사는 다음 날부터 별도 통지가 있을 때까지 영업을 못 하게 하려고 했다. 운전사가 승객이 누군지 설명을 못 하면 승객을 내리게 하고, 운전사를 체포하고, 차를 압류하고, 갱단을 완전히 박살 내자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경찰은 “파키스탄인 비슷한 택시 운전사’를 단속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도시에 파키스탄, 인도 사람이 많이 살고, 택시 운전사의 상당수가 그 나라 출신이라고 덧붙였다.
그 경찰관은 “맨체스터 경찰 순찰대가 수상한 택시 운전사를 검문하지 못한 이유는 인종차별을 했다는 오명을 쓸까 봐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텔포드 조사 보고서에 이런 사례도 있었다. 한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파키스탄계 그루밍 갱단과 엮이면 위험하다는 경고를 하려 했는데, 시의회 인사가 교직원에게 “그건 인종차별”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키어 스타머 총리와 대검찰청
2023년 12월, GB News는 여성과 소녀에 대한 보호 및 폭력 담당 국무부 차관보인 제스 필립스가 올드햄의 오랜 아동 학대에 대한 정부 조사 요청을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필립스는 로더햄과 텔포드에서도 성공적으로 그런 조사를 했다며 그런 조사를 하는 것은 지방정부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일론 머스크는 최근 소셜 미디어에서 필립스와 노동당 대표인 키어 스타머를 비판하면서 “필립스는 올드햄 조사 거부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머스크는 또, 스타머가 검찰총장 재직(2008~2013) 시절 그루밍 갱단을 기소하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로쉬데일에 만연한 아동 성착취를 폭로하는 데 기여한 전 맨체스터 경찰 형사 매기 올리버도 스타머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녀는 X에 올린 글에서 “보수당과 노동당 모두 똑같이 비난받아야 한다. 그리고 전 검찰총장 키어 스타머는 오늘날 우리가 이 지경에 처하기까지 내가 아는 사람 중 누구보다 죄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모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안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우리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연쇄 강간범을 기소하는 일을 맡은 사람 중 누구도 믿지 않는다”며 ‘그들은 반복적·고의적·범죄적으로 실패했다”고 질타했다.
전형적인 사례: 로쉬데일
맨체스터 로쉬데일은 산업혁명 당시 번창하는 공업도시이자 섬유산업의 허브였지만, 이후 오랫동안 쇠퇴했다. 정부 데이터에 따르면, 오늘날 로쉬데일 인구의 32.8%가 전국에서 가장 빈곤한 10%에 속하는 지역에 살고 있다.
이 도시는 그동안 상당한 인구 변화를 겪었는데, 20세기 중반 이후 파키스탄에서 온 이민이 꾸준히 증가해, 지금은 주민 중 파키스탄 출신이 두 번째로 많다.
압둘 아지즈, 아딜 칸, 카리 압둘 라우프 등 9명은 2012년 10대 소녀 성폭행 및 인신매매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 이야기는 2017년 BBC 드라마로 만들어졌는데, 피해자들이 범인들과 같은 마을에서 사는 트라우마를 견뎌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라우프와 칸을 파키스탄으로 추방하려는 반복적인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로쉬데일의 자기 집에서 살고 있다. ‘더 선(The Sun)’지에 따르면, 칸과 라우프는 파키스탄이 그들을 데려가는 데 동의하는 경우에만 추방될 예정인데, 파키스탄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전 노동당 의원 사이먼 단주크는 에포크 타임스에 “2010년부터 2017년까지 로쉬데일이 국회의원으로 재임할 당시 당 간부들로부터 그루밍 갱단원의 출신 국가나 종교에 대해 언급하지 말라고 경고를 받았다”고 폭로하면서 당시 의회 노동당 의장이었던 토니 로이드를 거명했다.
로이드는 당시 맨체스터 경찰청장 출마를 희망하고 있어서, 파키스탄이나 이슬람을 스캔들과 연결하면 선거에서 불리할까 봐 걱정했다고 한다.
로더햄 아동 성매매 갱단의 희생자였던 운동가 새미 우드하우스는 지난 1월 6일 머스크의 개입을 환영하며 X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일론 머스크는 영국에서 아동이 성매매, 학대, 성폭행, 고문, 인신매매, 살해 등을 당하는 현실에 대해 영국 역사상 다른 누구보다 더 전 세계에 많이 알렸다. 하지만 영국인들은 그 일에 대해 불평하면서 머스크를 물어뜯느라 바쁘다.”
*한강덕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