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운영하기 어려운 제도, 민주적 이성 지닌 국민 필요해…이성 잃은 민주주의는 폭정으로 이어져”
12·3 비상계엄령 여파가 지속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탄핵 소추되어 권한 정지됐고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 국무총리도 탄핵 소추됐다. 2024년 1월 현재 ‘대통령 권한대행’은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수행하고 있다. 한국 헌정 사상 일대 위기다. ‘불안전성’을 극도로 꺼리는 경제 부문에서도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환율·주식시장 불안정성이 증대됐다. 제2의 외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정치 불안정성이 파급한 경제 위기라는 복합 위기 앞에서 ‘대한민국호(號)’는 표류하고 있다. 표류의 원인은 국가 리더십 실패, 대통령직 실패 문제로 귀결된다. 이 속에서 국가리더십·전략을 연구해 오고 있는 원로 학자를 만나 고언을 들었다.
이홍규 한국과학기술원(KAIST) 명예교수는 경영전략 전문가이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거쳐 미국 오리건주립대에서 MBA를 취득했고 한국외국어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5년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하여 공직에 선 후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주요 보직을 거쳤다. 김영삼 정부 출범 후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 정책비서관을 거쳐 1999년 1급 관리관으로 통상산업부에서 명예퇴직했다. 의료기기 제조기업 메디슨 부사장을 거쳐 2001년부터 한국정보통신대(한국과학기술원과 합병) 교수로서 경영전략을 강의했다. 한국과학기술원 사회기술혁신연구소 소장, 한국정보사회학회 회장, 유네스코(UNESCO)한국위원회 위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대통령의 성공조건(2002)’ ‘대통령직 인수의 성공조건(2007)’ ‘뉴미디어시대의 비즈니스 모델(2011)’ ‘경제와 민주주의의 하모니(2017)’ ‘디지털 시대 인간에게 묻다(2021)’ 등이 있다.
이른바 ‘정권 10년 주기설’을 깨고 5년 만에 당선됐던 윤석열 대통령이 12·3계엄령 사태 여파로 국회에서 탄핵 소추당했습니다. 보수 정당 출신으로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8년 만의 탄핵 소추 사태입니다.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요?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 선포라는 악수(惡手)를 둔 것은 현실 판단 능력 결핍으로 보인다고 진단한 이홍규 교수는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문제를 들었다. 인지부조화는 사람들이 자신의 태도나 행동이 서로 모순되어 양립할 수 없다고 느끼는 불균형 상태를 가리킨다. 심리학에서는 두 가지 이상의 상반되는 믿음, 생각, 가치를 동시에 지닐 때 또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과 반대되는 새로운 정보를 접했을 때 개인이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나 불편한 경험 등을 의미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인지부조화는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명품가방 수수 사건 등 영부인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논란, 지난해 발생한 해병대 채 모 상병 사망 사건, 이준석(현 개혁신당 국회의원) 전 대표를 비롯한 역대 국민의힘 당 대표와의 관계 설정 등에서 국민의 눈높이와 현저하게 다른 행동으로 표출됐습니다. 그 결과 심각한 수준의 민심 이반이 일어났고요. 제22대 총선 국민의힘 참패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비상계엄령 발령은 대통령 스스로 발등을 찍은 패착으로 정의했다. “극심한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더불어민주당을 위시한 야권은 ‘특별검사법’을 발의하여 대통령과 정부를 압박했습니다. 대통령은 재의권(거부권) 행사로 맞섰고요. 야권의 정치 공세 속에서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10%대로 급락했습니다. 집권 여당 내부도 이른바 ‘친윤(친 윤석열)파’ ‘친한(친 한동훈)파’ 등으로 나뉘어 야권의 공세에 단일대오를 형성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입장에서는 ‘계엄령 선포’라는 극약 처방 외에는 탈출구가 없었을 것이라고 느꼈을 것입니다.” 현실을 분석한 이홍규 교수는 인지부조화 문제 위험성을 이어 설명했다. “대통령과 같은 권력자의 인지부조화 문제는 현실을 일깨워줄 견제력이 무력화될 때 현실적 위험으로 나타납니다. 계엄령 사태가 극단적인 사례이고요. 고언(苦言)·충언(忠言)을 해야 할 대통령 참모들은 ‘대통령의 격노’에 입을 닫았습니다. 민심을 대통령실에 전달하는 ‘통로’가 되어야 할 집권당은 이른바 ‘친윤’으로 불리는 친위세력이 지배하였습니다. 자연 견제력은 실종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본인은 ‘계엄령 선포는 대통령 고유권한이자 통치행위이다’라고 항변합니다. 헌법에 보장한 대통령 권한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계엄령은 선포 선결 요건을 갖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선포·시행 과정에서 위헌·위법 행위가 있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경찰 등 수사기관은 계엄령 선포를 국헌 문란 행위 혹은 내란 행위로 간주하고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법률가 출신으로 검찰총장을 지낸 대통령으로서는 의외의 행동을 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령 선포를 ‘통치행위(統治行爲)’라고 항변합니다. 기본적으로 통치행위는 왕정 시대 군주(君主)의 대권(大權)에서 유래한 구(舊)시대적 개념입니다.” 이홍규 교수의 설명대로 지난날 권위주의 시기 한국 대법원은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치행위’라고 규정하고 권력분립설, 자유재량행위설, 사법자제설 등 법률 학설에 근거하여 긍정하였다. 대통령에 보장된 권한을 행사한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기 때문에 사법적 판단을 자제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사법적 판단 대상 자체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1987년 민주화 이후 1979년 12·12 군사 반란, 1980년 5.17 비상계엄 확대 조치 등에서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나 확대 행위의 통치성을 긍정하면서도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가 국헌(國憲) 문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행해진 경우에는 법원이 그 범죄행위 해당 여부를 심사할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한국 헌법학자들도 계엄령 선포를 ‘친위 쿠데타’ 성격을 지닌 내란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통치행위 자체가 구시대적 용어입니다. 설령 계엄령 선포를 긍정해도 초(超)헌법적일 수는 없습니다. 12·3 비상계엄령 선포는 필립 골드버그(Philip Goldberg) 주한국 미국대사 표현을 빌리자면 ‘21세기에 상상할 수 없는 비민주적 상황’을 초래한 것입니다. 래리 다이아몬드(Larry Diamond)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정치적 뇌졸중’이라고 정의했고요. 한국 국민은 TV 중계 방송을 통하여 군·경의 국회의사당 난입을 목도했습니다. 계엄군 지휘관들은 계엄령 발령 시 국회 장악 시나리오 등을 구체적으로 국회에서 증언하여 다시 한번 충격을 던졌고요. 21세기에 선진국으로 치부되는 한국에서 이러한 사태가, 그것도 법률가인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발생했다는 점에서 저는 의구심이 듭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법률적 철학과 상식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이죠. 민주주의 국가에 필요로 하는 존재는 법률을 개인의 출세 도구로만 간주하는 ‘법 기술자’가 아닌, 법률을 존중하고 법률에 복종하는 ‘법치주의자(法治主義者)’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더불어민주당을 위시한 야권의 정치 공세 수위도 전례 없이 높았습니다 고위 공직자 탄핵이라는 최고 수위 법적 수단을 사용하여 정쟁을 심화했습니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대통령으로서는 풀어나가기 힘든 일입니다. 어떠한 방법이 적절했다고 보나요?
“야당은 ‘탄핵(彈劾)’을 공직자 겁박 수단으로 악용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수사했던 검사도 탄핵하는 현실을 보면 할 말을 잃게 합니다. ‘비상식은 비상식을 부른다.’고 하는데 그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가 불가피했다고 판단하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야권의 고강도 정치 공세의 문제점을 지적한 이홍규 교수는 다음을 강조했다. “야당의 정치 공세 수위가 높고 비상식적이라 하여도 계엄령 선포를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령 선포가 아닌 영부인 김건희 여사 특별검사 임명, 해병대 상병 사망 사건 특별검사 임명 등에 대해서 ‘전향적’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해당 문제를 국민의 상식 혹은 국민의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풀어내려는 노력을 기울였다면 10%대로 국정 지지율이 하락하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국정 운영 동력 상실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요. 국정 지지율이 일정 수준으로 회복됐다면 야당도 탄핵 남발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변화를 수용하여 스스로 바꾸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강압을 사용하여 세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후자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사실상 불가능합니다만 현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시도한 듯합니다.
“언론이나 야권에서 비상계엄령 선포를 두고서 ‘쿠데타’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쿠데타라는 표현은 비상계엄령이 내포한 위험을 자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보입니다.”라고 전제한 이홍규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쿠데타는 한 마디로 초헌법적 행위입니다. 위헌이고요. 계엄령 선포가 국가에 긴박한 물리적 위협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군사력을 동원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훗날 역사에 ‘쿠데타 시도’로 규정될지는 모릅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한국의 어떠한 법령 조항도 군사력 동원을 가능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위배된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한국은 두 차례의 쿠데타 경험이 있기 때문에 비상계엄령 선포를 쿠데타 혹은 정변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시민의 힘으로 비상계엄령 선포를 실패로 만들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원인으로 ‘인지부조화 문제’를 들었습니다. 문제는 점점 악화한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대통령이 ‘선거부정론(선거조작론)’ 등을 유포하는 유튜브 콘텐츠만 반복 시청하고 신문을 비롯한 정규 미디어를 보지 않으며 심지어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보고서도 신뢰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각종 SNS, 유튜브 콘텐츠 등 알고리즘에 기반한 편향 문제가 현대인에게는 인지적 편향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인지적 편향은 그 특성상 특정 콘텐츠나 정보에 빠져들수록 수용자의 확증편향을 강화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결과적으로 균형 잡힌 사고를 하지 못하게 하고 특정 이념이나 인식에 경도되게 합니다.” 이홍규 교수는 한 국가나 사회의 리더가 편향에 빠지면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고 했다. “권력이나 영향력을 지닌 리더가 인지 편향이나 확증편향에 빠지면 국가나 사회에 심각한 해악을 초래하는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추후 지도자 선출 과정에서 유튜브나 SNS 이용 정보를 공개하고 인지적 편향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한 외신은 ‘공포와 음모론이 한국의 정치적 위기를 부추긴 방식’ 제하 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를 ”유튜브 알고리즘 중독이 초래한 세계 최초 내란”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선거 조작 등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유튜브 콘텐츠를 반복 시청하며 확증편향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이홍규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의 인지부조화 문제는 잘못된 현실 인식과 대처로 이어졌다고 했다. “대통령은 자신과 가족, 측근에 더 엄정한 잣대를 들이댔어야 합니다. 현실에서는 일반인으로서 수용하지 못하는 이중 잣대를 들이댄 것이고요.”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주 원인으로 꼽히는 영부인 김건희 여사 문제와 관련해서는 전직 대통령들 사례를 들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아들 김현철 씨 국정 개입 논란이 터지자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구속 수사를 지시했습니다. 검찰 수사에서 뇌물 수수 등 명백한 부정행위가 없었음에도 결단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죠.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재임 중 두 아들을 사법 처리했습니다.” 그는 다음을 강조했다. “동양 사회에서는 법 규정을 따지기 전에 공정의 기준이 권력자에게 엄격한 것이 중요한 요소입니다. 다른 의미에서 권력의 정당성을 유지하는 핵심 기반입니다.”
유튜브 등 신규 온라인 플랫폼의 해악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의 입지가 위축됐습니다. 한국 3대 신문의 영향력도 예전만 못하죠. 주지할 점은 한국 미디어도 문제점이 많지만 기본적으로 사실을 검증하고 다양한 여론도 수렴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입니다. 과열 경쟁 속에서 인터넷 신문을 중심으로 미디어가 범람하고 유튜브라는 강력한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했습니다. 유튜브의 특징은 알고리즘에 기반한다는 것인데 수용자의 요구나 취향에 맞추어 유사한 콘텐츠를 제공합니다. 그 속에서 인지부조화나 인지편향이 발생하고요.”
해당 문제에 대해서 이홍규 교수는 저서 ‘디지털 시대, 인간에게 묻다’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지만 무지와 편견의 존재다. 인간은 자신이 얼마나 모르는지 모르고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 모른다. 디지털 시대는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지만 한편 무지와 편견을 강화시키는 시대다. 이성, 지혜, 텍스트보다 감각, 감정, 이미지가 넘쳐나며 자기중심적 에고(ego)와 욕망은 강화되고 있다. 인지적 인프라가 변하면서 인지적 편견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편견은 개인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집단사고와 포퓰리즘으로 인해 사회 심리가 변하며 민주주의 또한 질식하게 된다. 무지와 편견은 진실과 지혜, 성찰과 수용을 거부한다. 왜곡과 독선, 단견과 배척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옳아지려고 하는 의지가 사라진 개인과 사회는 지속 가능할 수 없다. 디지털 시대 과연 옳음을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 땅 위에 사는 모든 이들에게 던져진 숙제이다. 더구나 미래는 인공지능의 시대다. 인간보다 뛰어난 지식정보 역량을 갖출 기계 앞에서 인간은 이제 어떻게 옳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고민해 가야 한다.”
검사 출신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 사임 후 정계에 입문하여 약 8개월 만에 대선에서 승리했다. 정당 정치 경험이 일천하다. 임기 절반을 남겨놓고 탄핵 소추되어 권한 정지된 그를 두고서 홍준표 대구광역시장은 “용병이 국민의힘을 망쳤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홍준표 시장의 ‘용병’ 발언은 어떻게 평가하나요?
“이른바 ‘용병’을 잘못 들여 대국(大局)을 망쳤다고 하는데 다른 표현으로 검증 절차 없이 영입했다는 것입니다. 용병은 고용주를 위해 싸우는 존재입니다. 전투라는 주어진 상황 조건 속에서 전투에서 이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죠. 대통령 자리는 용병과 차원이 다릅니다. 가변적인 상황에 대처하며 전략과 전술을 구사해야 합니다. 민주주의 제도하에서는 선거로 지도자를 선출하는데 검증에 취약합니다. 민주화 이후 검증 과정은 발전이 아닌 퇴보를 거듭해 왔다고도 평가합니다.”
한국 대통령은 ‘국가원수’ 이자 ‘행정부 수반’이라는 이중 지위를 지닙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두 가지 역할의 차이점을 구분하지 못하고 행동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이는 독립 헌법기관인 국회나 선거관리위원회 경시로 이어졌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국가원수입니다.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은 국가 통합을 지향해야 합니다. 행정부 수반으로서 대통령은 정책의 효과성을 고려해야 하고요. 전자에는 정치적 역량이 후자에는 관리적 역량이 요구됩니다.” 국가원수로서 역할과 행정부 수반으로서 역할의 차이점을 설명한 이홍규 교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치적 역량이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소야대 정국에서는 더욱 그러한데 국회의 행정부 비판과 견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환경 감시(watch dog)’ 기능을 수행하는 언론의 비판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은 국회나 언론과 협력 관계 설정을 위해 각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미국 대통령이나 백악관 보좌진이 국회의원, 그중 야당 의원 설득에 공을 들이는 근본 이유입니다.” 그는 한국 역대 대통령은 이러한 노력이 부족했다고도 했다. “역대 한국 대통령은 이 점에서 부족했죠. 권위적인 대통령일수록 국회의 견제를 ‘딴지’를 거는 정도로만 인식했습니다. 민주화가 진척될수록 권위적 대통령은 실패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김영삼·김대중·김종필의 이른바 ‘3김(金)시대’ 이후 대통령은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도 통제하기 힘든 상황에 놓였습니다. 지난날에는 집권당 ‘총재(總裁)’로서 카리스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노무현 대통령 이후 현재까지 대통령도 정당에서는 ‘평당원’에 불과하죠. 3김시대가 종식된 지 20년 세월이 흐른 오늘날 정당 경험이 일천한 대통령이 갑자기 등장하여 집권당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심각한 인지부조화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리더십 관점에서 윤석열 정부 행태를 평가해 준다면요?
“주어진 특정 환경하에서 대통령의 성과는 행정부·집권여당의 역량과 더불어 대통령 자신의 리더십 총합으로 나타납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식과 경험은 법률과 검사로 한정됐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처음부터 대통령으로서 그의 국정 운영 역량 혹은 국가 리더십은 미지수였습니다.” 법학 전공자로서 평생 검사로 살아온 윤석열 대통령의 근원적 한계를 지적한 이홍규 교수는 이어 말했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공정과 상식’을 강조했습니다. 검사 시절에는 부당한 상부의 명령에 저항하는 모습도 보여줬고요. 자연 대통령이 되면 공정한 리더십을 선보일 것이라는 국민적 기대가 형성됐습니다. 이는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졌고요. 문제는 취임 후 기대가 지나치게 빠르게 무너져갔다는 것입니다. 저는 ‘인사가 만사이다.’라고 늘 강조하는데, 취임 초기 정부 인사, 당정 관계 설정에서 기대가 무너졌습니다. ‘검찰공화국’이라는 표현처럼 대통령의 인재풀(pool)은 지나치게 협소했습니다. 법률가, 검사 출신을 우대하여 요직에 배치했죠. 대통령실 참모진을 포함한 ‘측근’은 이른바 친윤이라 불리는 친위세력이 장악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통령 취임 후 국정 운영의 파트너인 국민의힘 대표들과 비상식적 갈등이 지속됐습니다. 그 결과 당 대표는 단명하고 비상대책위원회가 수립되고 다시 선출된 당 대표도 단명하는 악순환이 지속됐습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영부인 김건희 여사 문제입니다. 공정과 상식을 내세우며, 지난날 검사로서 상대방에게 사정없이 ‘칼’을 휘둘렀던 검사 윤석열은 대통령이 된 후 김건희 여사 문제에 철벽을 친 듯 반응했습니다. 이는 ‘내로남불’ 논란을 일으켰고요. 윤석열 대통령 집무실 책상 위에는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라고 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선물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경구가 놓여 있다고 하는데 저는 과연 윤석열 대통령이 경구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또 다른 예로 지난해 제22대 총선에서 집권 여당 국민의힘은 참패했습니다. 총선 참패 원인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행태와 국정 운영 난맥상이 1순위로 지적됐음에도 그는 진솔하게 받아들이거나 교훈을 얻지 못했습니다. 국민에게 사과를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잘못 했는지를 알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담았어야 했는데 진정성이 결여됐습니다. 마지막으로 국민과 한 지키지 어렵지 않은 약속도 어겼습니다. 대통령과 가족, 측근 비리를 감찰하는 대통령실 특별감찰관을 임명하지 않은 것이죠.”
평소 이상적인 대통령의 리더십으로 ‘오케스트라 지휘자’ 역할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그 관점에 볼 때 윤석열 대통령의 리더십은 어떠한가요?
“오케스트라가 최고의 화음(和音)을 내기 위해서는 지휘자가 다양한 연주자와 합심(合心)을 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대통령도 국정 운영에서 최선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정부 부처, 공공기관, 국회, 정당, 언론, 시민사회와 마음을 통하고 합심을 이뤄야 합니다.” 합심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홍규 교수는 대통령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했다. “복잡한 관계를 풀어갈 출발점은 대통령의 마음가짐입니다. 기본적으로 권력자의 마음가짐은 ‘하심(下心)’,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다른 표현으로 ‘인지적 겸손’이 전제돼야 합니다.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이 미국 최고 대통령으로 꼽히는 이유는 겸손과 절제 때문입니다. ‘하심’이 되어야 어떤 사람을 등용해서 어떤 직무를 맡겨서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의 파트너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언론 보도 등에 비친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을 전제로 한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각종 풍문이나 언론 보도에 비친 윤석열 대통령은 ‘자기 과신형’ 리더라고 판단합니다. ‘나만이 옳고 나만이 무엇이든 잘 알고 잘 할 수 있다’는 유형이죠. 과신은 자기 고양적 편견을 낳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이죠.” 이홍규 교수는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를 예시로 들었다. 더닝 크루거 효과는 인지 편향 중 하나로서 미국 코넬대 사회심리학 교수 데이비드 더닝(David Dunning)과 대학원생 저스틴 크루거(Justin Kruger)가 코넬대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를 토대로 제안한 이론이다. 특정 분야를 조금 아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적당히 유능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가설의 요지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 운영 전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스스로 능력을 과대평가한 면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핑곗거리만 찾았죠. 늘 야당 탓을 하면서요. 이는 자기 합리화로 이어지는데 기본적으로 이러한 태도로 국정 운영을 해서는 성과를 내기 어렵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소통’ 문제도 지적됩니다. 당선 후 ‘소통 강화’를 명분으로 청와대 입주를 포기하고 용산으로 대통령실 청사를 옮겼습니다. 실제 취임 후 소통은 이뤄지지 않고 일방적인 지시만 했다는 평가입니다.
“소통은 기본적으로 ‘들으려는 마음’을 전제로 이뤄집니다. 대화는 상대에 주의력을 집중하고 자신과 다른 의견을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는 자세로 해야 합니다. ‘이견(異見)’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데 ‘가능한 한 좁힌다.’는 자세가 필요하고요.” 경청과 소통의 자세를 설명한 이홍규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 행태를 이어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 입주를 포기하는 명분으로 내세운 것이 ‘국민과 소통’입니다. 폐쇄적인 구조의 청와대에 입주하면 국민과 멀어진다는 것을 내세웠죠. 결국 무리수를 두어 가면서 국방부 청사를 비우고 대통령실로 만들고요. 문제는 취임 후 국민 대다수는 대통령과 소통이 사라졌다고 느꼈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국회 방문은 전례까지 무시하면서 기피했죠. 윤석열 대통령은 민주화 이후 국회 개원 연설에 불참한 첫 대통령입니다. 참모진의 고언에는 격노했다고 하죠. 대통령 스스로가 들으려는 태도가 결여됐는데 누가 진심을 다해 이야기하고, 진실을 이야기하겠습니까?”
‘소통’ 측면에서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은 무엇인가요?
“지도자, 그중 국가 최고지도자 대통령이나 총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은 자기 성찰 능력입니다. 모든 인간은 태생적 한계로 인하여 ‘인지적 부조화’나 ‘인지 능력 부족’이 존재합니다. 이를 보정하기 위해서는 메타 인지(metacognition) 능력이 필요합니다.” 메타 인지는 발달심리학자 존 플라벨(John Flavell)이 창안한 개념이다. 다른 사람의 지시 이전에 스스로 자기 생각에 대해 생각하는 능력을 말한다. 다른 용어로 상위 인지 혹은 초인지라고 한다. 이홍규 교수는 ‘정관정요(貞觀政要)’에 등장하는 당(唐) 태종(太宗)과 위징(魏徵)의 예를 들었다. “위징이 간언을 하면 당 태종은 화를 냅니다. 도부수(망나니)를 불러 ‘위징의 목을 치라.’고 명령하죠. 도부수가 위징을 끌고 나가서 참수하려는 순간 당 태종은 스스로 언행을 반성하며 중지시켰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당 태종은 위징의 충심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이죠. 당 태종이 중국 역사상 명군주로 기록될 수 있었던 원인입니다.”
비상계엄령 선포-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 속에서 보수성향 집권 여당 국민의힘도 위기에 처했다. 2020년 제21대 총선, 2024년 제22대 총선에서 연달아 참패하며 존립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이를 두고서 박성민 정치평론가는 “한국 보수 세력은 주류세력이 아님에도 여전히 주류라는 착각에 빠져있다.”는 진단을 내리기도 했다.
지난날 한국 주류 세력이었던 보수 세력은 이미 주류가 아님에도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점점 폐쇄적으로 변하고 보수가 아닌 극우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역적으로 TK(대구·경북) 지역당으로 고립되는 양상도 보입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중도층·진보층의 외연이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 속에서 비상계엄령 선포라는 잊지 못할 충격이 중도층·진보층을 강타했습니다. 후과(後果)가 어떠할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중도층의 보수여당 지지 철회로 이어지겠죠. 집권 여당 국민의힘 내에서 계엄령 선포를 옹호하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강경한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주지할 점은 이러한 목소리는 당장 대통령이나 집권 여당 지도부를 기분 좋게 하고 우파 진영 내에서 위상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결과적으로 중도층을 밀어내는 지름길입니다. 기독교민주연합(CDU) 장기 집권기를 열고 독일 통일을 이룬 헬무트 콜(Helmut Kohl) 총리도 ‘중도층을 잡아야 선거에 승리한다.’고 했듯이 중도층의 향방은 선거 승패를 좌우합니다. 정치를 결정하는 것은 중도층 여론이라는 의미입니다.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이 자당(自黨)의 행태를 ‘극우기회주의’라고 정의했는데 새겨들어야 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홍규 교수는 다음을 강조했다. “비합리적 정치에는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자신의 주장도 정파적 이익도 좋지만 부끄러움을 모르면 결국 대가를 치르는 법입니다. 중도층 국민은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지난 제22대 총선은 그런 의미에서 응징으로 받아들어야 합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는 ‘보수의 유언’에서 ‘보수는 변하지 않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때에 따라 발전과 전환을 해서 변하면서 살아간다’는 뜻의 ‘불역(不易)과 유행(流行)’을 제시했습니다. 한국 보수 세력에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보수는 자유, 시장, 안보, 법치 가치를 중시합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평등보다는 자유를, 분배보다는 성장을, 평화보다 안보를, 정부 규제보다는 시장 원리를, 인치(人治)보다는 법치(法治)에 중점을 둡니다. 보수의 가치는 평등, 복지, 평화, 안전을 등한히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무게를 다소 그 쪽에 둔다는 의미입니다.” 보수의 핵심 가치를 설명한 이홍규 교수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曽根 康弘) 전 일본 총리의 경구에 대해서는 다음 의견을 제시했다. “보수의 가치와 원칙에 기반한 구체적 정책은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 말처럼 시대가 변함에 따라 새롭게 다듬어져야 합니다. 현대는 성장의 지속과 더불어 불평등의 심화라는 ‘구조적 난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보수의 길’은 성장을 위한 자유와 혁신을 고취하면서도 동시에 불평등을 완화해 나갈 사회적 포용의 길을 찾는 것입니다. 문제는 포용이 자유와 시장에 중대한 위해를 가하는 방식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실패한 사회주의가 이를 실증하고 있습니다. 정부 규제나 보편적 복지 시행을 자제해야 하는 근본 이유이기도 합니다. 대신 더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것은 소외계층을 위한 선별적 복지, 복지 질 제고를 위한 투자 확대, 그리고 슘페터(Joseph Schumpeter)가 강조한 미래를 위한 창조적 파괴(Creative Distruction)와 혁신입니다.”
자유주의에서는 경제적 자유와 성장을 중시하는데 불평등을 필연적으로 수반합니다.
“경제적 불평등 현상은 전 세계적 문제입니다. 한국은 내수 경기 침체, 중국의 추격으로 인한 제조업 경쟁 우위 상실 등의 문제에 봉착했지만 상대적으로 양호하다는 판단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적 불평등 심화가 정치적 갈등으로 표출되고 있습니다. 구미(歐美)에서는 우익 정당이 힘을 얻고 있고요. 보수가 당면한 문제도 지속 가능한 성장 기조를 유지하면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자유의 신장과 더불어 ‘사회적 포용(social inclusion)’을 실현해야 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을 주요 의제로 다루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1987년 현행 제6공화국 체제 성립 후 5년마다 선출되는 대통령은 ‘성공하라.’는 국민의 열망을 안고 취임하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대통령들의 탄핵, 수감이 이어진다. 대한민국은 성공해 왔다는 평가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국가 최고 지도자 대통령은 성공적이지 못한 것이다.
실패를 거듭하는 한국 대통령 리더십의 근본 원인은 무엇이라 진단하나요?
“고대로부터 제왕(帝王)이 된다는 것은 철인(哲人)이나 군자(君子)를 상정했습니다. 한국식 대통령제를 두고서 ‘제왕적 대통령제’라고도 하는데 제왕적 대통령제는 철인이나 군자가 아닌 사람을 대통령이라는 제왕과 같은 자리에 앉히는 것에서 실패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제도는 기본적으로 평범한 사람이 선거라는 검증 과정을 거쳐 대통령이 되도록 설정된 제도입니다. 문제는 선출 과정에서 검증 절차가 제대로 이뤄지고 선출된 대통령의 권한이 분산되고 견제받게 설계되는지 여부, 즉 시스템 문제입니다. 한국 정치의 문제점은 검증 과정 없이 대통령에 선출한다는 것입니다. 우연한 사건으로 갑자기 출현하여 대중의 지지를 얻은 인물이 특정 진영의 ‘용병’으로 차출되어 대통령이 되기도 합니다. 더 큰 문제는 민주화 이후 대통령의 권한은 권위주의 시절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인 셈이죠. 선거라는 제도로 국가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 외에 묘안이 없는 현실 속에서 ‘실패하지 않는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통령 권력 분산과 견제에 초점을 맞춘 헌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탄핵 소추되어 권한 정지된 윤석열 대통령의 헌법재판소 심판이 속도를 내고 있다. 심판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여야 각 정당은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될 경우 올해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한다.
차기 대통령에게 반드시 전하고 싶은 조언은 무엇인가요?
“항상 ‘실패하기 쉽다.’는 점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고 봅니다. 조선 3대 군주 태종(太宗)이 말했듯이 국가 지도자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처럼 어려운 자리입니다. ‘경계심’을 가지고 임해야 듣기 좋은 소리는 자신을 망치려 드는 소리로 들릴 것이고 진영 논리에 매몰되면 스스로를 망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정의를 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일수록 스스로가 이른바 ‘선택적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는 의심을 하게 될 것입니다. 명철(明哲)은 균형과 조화에서 비롯됩니다. 옳은 길을 가야 하는 용기, 즉 ‘대도무문(大道無門)’은 이를 위한 대전제입니다. 지도자일수록 합리적 중도의 비판적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근본 이유입니다.”
그동안 외견상 ‘모범적’이라 평가받던 한국 민주주의가 일대 위기에 처했습니다.
“한국식 민주주의는 유례없는 중대 시험에 들었다.”고 현실을 진단한 이홍규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은 대외무역 의존도가 높고 대외신인도도 중요합니다. 계엄령 사태는 세계인에게 중대 의문을 남긴 것이죠. ‘한국이라는 국가를 신뢰해도 좋은가?’입니다. 정치적 불확실성 증대가 경제 불안으로 이어지는데, 계엄령과 탄핵 사태가 단기간에 종식되고 헌법 절차에 의하여 민주주의 회복탄력성을 증명한다면 국제 사회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겠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면 불신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세계인의 인식구조에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동안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 발전 양축에서 성과를 내어왔다고 인식되던 한국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태는 세계인에게 부정적인 선입견을 심어주었습니다. 세계인의 잠재의식 속에 한국은 불안정한 국가라는 인식이 심어졌는데 이로 인한 보이지 않는 기회비용이 엄청나게 발생했습니다. 현 사태를 조기 수습하고 금이 간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은 단기간에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뤘는데 그 대가인가요?
“서구의 근대 민주주의는 수백 년 세월 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축적되어 온 시스템입니다. 영국 명예혁명, 프랑스 대혁명 등을 겪고요, 200~300년의 세월 동안 대가를 치르면서 발전시켜온 시스템인데 한국은 이른바 ‘87년 체제’부터 환산하면 민주주의 역사가 40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속에서 계엄령 발령과 수습이라는 중대 실험을 하고 있는데, 이를 통과하면 한국은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고 통과하지 못하면 추락할 것이라 전망합니다.” 그는 한국 사례가 세계 정치사, 민주주의사에 ‘특이 사례’로 기록되고 연구될 것이라고도 했다.
계엄령–탄핵으로 이어지는 국가 리더십 위기 속에서 새로운 리더십 선출을 앞둔 국민에게 전할 말씀은 무엇인가요?
“먼저 민주주의는 작동하기 매우 어려운 제도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정치학자 헬렌 란데모어(Helene Landemore) 미국 예일대 교수는 ‘민주주의는 민주적 이성을 전제로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치가 4류라고 평가받는 근본 이유는 민주적 이성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성이 사라진 사회는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정글로 바뀝니다. 인간이기를, 사회이기를 부정하는 것이죠. 비(非)이성의 좌우 극단적 진영정치는 국민을 볼모로 잡고서 서로의 비합리성에 기반한 공생 관계를 형성합니다. 겉으로 정의를 내세우며 자신의 진영 내의 합리적 중도층부터 제거해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 듭니다. 결과는 정치의 비이성화입니다. 비이성은 국가를 위기로 몰고 가기도 합니다. 민주주의는 그 나라 국민 수준을 넘어서기 어렵습니다. 정치는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기에 정치인에게만 맡겨 두어서는 안 된다고도 합니다. 국민이 이성적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정치인의 폭주를 막을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국민이 감정적이고 이념적 선동과 달콤한 약속에 끌리기 쉽다면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이 말한 ‘다수의 폭정’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다수가 만드는 독재의 길입니다. 그만큼 민주주의는 작동하기 어려운 시스템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