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도 깊은 인연…지미 카터, 향년 100세로 별세

2024년 12월 30일 오후 8:00

제39대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가 29일(현지 시간) 100세 나이로 별세했다. 1924년 10월 1일생인 카터는 역대 미 대통령 중 가장 장수한 대통령이 됐다. 암 투병과 여러 가지 건강 문제를 겪어 오던 카터는 2019년에는 낙상으로 뇌 수술을 받기도 했으며 지난해 2월부터 자택에서 호스피스 돌봄을 받던 중 타계했다. 카터 전 대통령 부인 로절린 여사는 지난해 11월 향년 9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1962년 조지아주 상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후 조지아주 지사를 지냈다. 1976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선출된 카터는 공화당 소속 현직 대통령인 포드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비록 재선에는 실패했지만, 퇴임 후 평화 해결사로 활약하며 ‘가장 위대한 미 전직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반도와 오랫동안 깊은 인연을 맺었고, 2002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의 대표적 치적은 1978년 9월 체결한 ‘캠프데이비드 협정’으로 불리는 중동 평화 협상 체결이다. 안와르 사다트 당시 이집트 대통령과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를 캠프 데이비드로 초청, 협정 체결을 주선했다. 이 협정은 지난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중동 갈등을 막고 중동 평화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카터 전 대통령은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을 잡지 못했고, 인권을 앞세운 도덕주의 외교 정책마저 그의 발목을 잡았다.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후 미국 대사관 직원 등 52명이 강경파 대학생들에게 444일간 억류당한 사건은 그의 대표적 외교 실패 사례로 거론된다.

그는 1980년 대선에서 ‘위대한 미국’ 건설을 내세운 공화당 레이건 후보에게 대패했다.

카터는 재임 기간보다 퇴임 후 더 주목을 받은 대통령이기도 하다. 퇴임 이듬해인 1982년 카터 센터를 세우고 평화·민주주의 증진과 인권 신장, 질병 퇴치를 위한 활동에 나서 ‘가장 위대한 전직 대통령’이라는 수식어도 얻었다.

카터 전 대통령은 한반도와도 인연이 깊다. 1977년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한국의 인권 상황을 문제 삼으며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를 주장해 박정희 군사정권과 갈등을 빚었다. 미국 내 주한미군 철수 반대론과 북한 군사력이 과소 평가됐다는 미 국방부 정보 부서 보고서 등이 나오면서 주한미군 철수 계획은 백지화됐다. 카터 전 대통령은 2018년 펴낸 회고록 ‘지미 카터’에서 1979년 6월 박정희 대통령과 있었던 회담을 두고 “동맹국 지도자와 가진 토론 가운데 아마도 가장 불쾌한 토론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퇴임 후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평양을 직접 방문해 김일성과 담판을 통해 미국과 북한 간 협상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 후 2010년, 2011년 등 3차례 걸쳐 북한을 방문해 한반도 평화 증진에 기여했다. 또한 에티오피아, 수단 등 국제 분쟁 지역의 평화적 해결책을 찾기 위해 중재자로 나섰다. 이런 공로로 그는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바이든 대통령은 카터 전 대통령으로부터 장례식 추도사를 부탁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글에서 “그는 미국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이에 대해 우리 모두는 그에게 감사해야 한다”며 애도의 뜻을 밝혔다.

한편, 한국 정부는 30일 외교부 성명을 통해 “카터 전 대통령은 국제평화, 민주주의, 인권 등 인류 보편 가치 증진을 위해 일생을 헌신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며 “특히 한반도 평화 증진에도 큰 관심을 갖고 적극 활동했다”고 평했다. 이어 “우리 정부와 국민은 카터 전 대통령의 정신과 업적을 높이 평가하며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