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입법원(국회)에서 거대 야권의 입법 강행을 놓고 극심한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 배후에 시진핑의 통일전선공작(내통 세력을 이용한 공작)이 있다는 내부 폭로가 나왔다.
호주에 체류하고 있는 법학자 겸 평론가 위안훙빙(袁紅冰)은 최근 “내부 소식통으로부터 입수했다”며 시진핑 책사 왕후닝(王滬寧)이 대만과 관련해 네 가지 지시를 내렸다며 이같이 밝혔다.
왕후닝은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등 3대에 걸쳐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책사 역할을 해 온 인물이다. 현재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 주석 겸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대만 여소야대 정국…여당 “야당이 사실상 계엄 선포” 비난
반체제 인사인 위안훙빙은 지난 수년간 중국공산당 고위층 내부 소식통을 두고 외부에서는 알 수 없는 공산당 내부의 자세한 상황과 소식들을 전해왔다.
그는 이번 정보에 관해 “당내 양심적 인사들이 매우 큰 위험을 무릅쓰고 입수했다”며 에포크타임스에만 단독으로 제보한다고 설명했다.
에포크타임스는 전 세계 곳곳에서 중국공산당의 영향력에 저항하는 매체다. 중국공산당의 각국 침투를 폭로하는 보도를 20년 이상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위안훙빙의 제보를 이해하려면 먼저 현재 대만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대만의 혼란상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대만 국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대 야권의 입법 강행이다. 여당인 민진당 사무총장은 지난 16일 “국민당 의원들이 국회 계엄을 선포했다”고 비난했다. 반면 국민당은 국회의 입법권을 무시하는 민진당이 계엄이라고 반박했다.
다른 하나는 제2야당 대표 커원저(柯文哲·65) 주석의 몰락이다. 커원저 대표는 독립 성향의 민진당(여당), 친중 성향의 국민당(제1야당) 사이에서 ‘청렴한 정치’와 제3지대를 표방하며 2030세대의 절대적 인기를 얻어왔다. 그러나 부동산 개발 비리로 체포되며 몰락했다.
두 사건은 별개의 사건이면서도 매우 긴밀하게 관련돼 있다.
“거대 야권의 입법 독재”…핵심은 3개 법안
대만 국회에서는 지난 20일 밤 ‘헌법재판소절차법(憲法訴訟法)’ 개정안, ‘공직자소환법(公職人員選擧罷免法)’ 개정안과 ‘재정계획법(財劃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날 국회 밖에서는 법안에 반대하는 수천 명의 시민이 집회를 열고 “국민당의 입법 독재”라고 비난했다. 현재 대만은 여소야대 정국이다. 야당인 국민당은 ‘현실론’에 따라 중국과의 합작을 주장하고 있고, 여당인 집권 민진당은 독립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3개 법안은 국민당이 주도하고 제2야당인 민중당이 협력해 가결됐다. 여당은 ‘민주주의 파괴’라고 비난했지만, 야권은 법률 개정안 처리를 강행했다. 국민당은 소수 재판관으로 중요 사안을 결정하는 것을 막고, 의원 파면을 더 엄정히 하기 위해 관련 법안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가장 논란이 되는 법안은 헌법재판소절차법 개정안이다. 개정안은 헌법재판소의 결정 요건을 기존 총인원 ‘과반 동의’에서 ‘3분의 2이상 동의’로 높였다. 따라서 위헌법률심판 등 헌법재판소 결정 시, 15인의 재판관 중 10인 이상이 동의해야 한다.
현재 대만의 헌법재판소는 정원 15인 중 7인이 공석이다. 개정안이 법률로 제정되면, 야당이 협조하지 않는 한 위헌법률심판 요건을 위한 재판관 숫자를 채우기도 어려워진다. 즉 거대 야권의 입법 강행을 막을 수 없는 현 상황에서 헌법재판소 역시 무력화될 우려가 있다.
공직자소환법은 대만에서 ‘선파법(의원 파면법)’으로도 불린다. 선출직 공무원, 즉 국회의원, 시의원 등을 주민 투표를 통해 파면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문제가 많은 의원을 임기 내에 쫓아낼 수 있도록 한다.
야당에서 주도한 공직자소환법 개정안은 주민 투표 실시 요건을 까다롭게 했다. 주민 투표를 요구하는 주민 청원서에 청원 참여자의 신분증 사본을 첨부하도록 했다.
재정계획법은 정부 예산안이다. 국민당이 주도한 개정된 예산안은 사기 범죄 퇴치, 주택 지원, 공습경보 시스템 강화, 민방위 훈련, 과학기술 지원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이 특징이다. 대만 국가과학위원회는 예산안이 집행되면 과학기술 경쟁력이 약화될 것으로 우려했다.
이러한 3개 법안이 야당의 강행 처리로 통과되면서 대만 국회는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시민들과 여당은 이번 법안 처리를 ‘민주주의 위협’이라고 반대하고 있으나 야당인 국민당은 힘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라이칭더 총통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야당은 계속 가결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어 정국 혼란이 지속될 전망이다.
위안훙빙은 “현재 대만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혼란은 사실상 왕후닝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제3지대’ 돌풍의 주역, 커원저의 부정부패 몰락
커원저는 제2야당 민중당 주석(대표)이다. 커원저는 여당인 민진당과 제1야당인 국민당 사이에서 이른바 ‘제3지대’로 덩치를 키워왔다.
올해 1월 총선에서 총 113석의 의석 중 민진당 51석, 국민당 52석으로 어느 쪽도 과반(57석)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8석을 차지한 민중당은 ‘캐스팅 보트’로서 위상이 수직 상승했다.
그 중심에는 의사 출신 정치인 커원저 주석이 있었다. 청년층과 소통하며 중국과의 통일이니 독립이나 복잡한 의제를 탈피하고 민생과 청년의 미래를 고민하는 새로운 정치와 청렴성을 내세워 돌풍을 일으켰다. 옆집 아저씨 같은 친근한 이미지도 작용했다.
하지만 올해 8월, 커원저는 돌연 몰락의 길에 빠졌다. 타이베이 시장 재직 시절 부동산 개발업체의 편의를 봐주고 억대 뇌물을 수수했다는 혐의로 체포를 당한 것이다. 지난 26일 열린 재판에서 검찰은 그에게 뇌물수수,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28년 6개월의 중형을 구형했다.
커원저는 27일 보석금 3000만 대만달러(약 13억8천만원)를 내고 구속된 지 113일 만에 석방됐으나, 검찰의 항의를 받아들인 고등법원에서 29일 보석 석방을 취소하는 등 장기간의 징역형 선고가 유력해지면서 사실상 정치 인생이 끝날 위기에 놓여 있다.
“국회 뒤흔든 사건 배후에는 시진핑의 대만 통일전략”
위안훙빙에 따르면 왕후닝이 대만과 관련해 내린 지시는 다음 네 가지다.
우선 커원저의 체포에 대한 강력한 대응이다. 왕후닝에 따르면, 시진핑은 이 사건을 매우 심각한 전력 손실로 평가했다. 대만을 상대로 한 통일전선공작에 차질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커원저는 독립 성향의 여당 민진당, 친중의 야당 국민당 사이에서 제3지대를 표방하며 2030세대의 절대적 인기를 얻었다. 이후 어느 쪽도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여당과 야당 사이에서 캐스팅 보트로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그러나 은밀히 친중하며 공산당을 돕고 있다는 일각의 비판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민생과 개혁을 내세워 청년층의 환호를 얻었지만, 결과적으로 대만의 미래에 직결되는 중국과의 관계 문제에 관해 청년층의 외면과 무관심을 강화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두 번째 지시는 대규모 반격이다. 이는 커원저 몰락에 따른 손실을 만회하기 위한 것으로 대만 국회(입법원)를 공산당이 통제하고 있음을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 목표다. 구체적인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지난 5월 가결된 ‘국회 개혁법’ 수준의 법안 재추진 등이 거론된다.
이에 따르면, 시진핑은 ‘국회 개혁법(國會改革法)’을 큰 성과로 평가했다. 이 법안은 국회 개혁법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총통견제법’으로도 불린다. 국회가 국방비 등 예산을 더 강하게 통제하고 총통에게 정기적으로 국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도록 했다.
특히 총통은 물론 기업인, 일반인을 국회가 언제든 소환해 조사할 수 있도록 하고, 기밀정보까지 접근해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수사적 권한을 확대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사실상 민진당 정부를 무력화하기 위한 법안이라는 비판까지 제기됐다.
이 법안 국민당 주도로 가결됐지만, 지난 10월 헌법재판소(사법원)에서 대부분 조항이 위헌으로 결정됐다.
‘총통견제법’이 좌절된 국민당은 이후 ‘헌법재판소절차법’ 개정안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 개정안은 현재 7명이 공석인 헌법재판소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법안이다. 향후 국민당이 총통견제법을 재추진할 경우 저지할 방법이 줄어들게 된다.
세 번째 지시는 둘로 나뉜 중국공산당 대(對)대만 기구의 목표 단일화다. 현재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대만사무판공실, 국무원(행정부) 대만사무판공실 등 2곳이다. 두 기관이 대만 내 조직망을 각자 운영하면서 효율이 떨어진다는 게 시진핑의 판단이다.
이에 따라 책사 왕후닝은 두 기관이 앞으로는 한 가지 목표에 집중하도록 지시하고 구체적인 목표도 제시했다. 중국의 대만 통일이 반드시 이뤄진다는 확신을 대만 내 공작조직에 심어주는 것이다. 2028년 총선 실시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방침도 분명히 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은 대만에서 중국과의 통일을 지지하는 이른바 ‘애국 세력’에게 든든한 뒷배(중국공산당)가 있음을 주지시키고 투쟁을 독려해 더 강한 전투력을 발휘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한 통일이라는 대업을 완수하면 보상과 명예를 얻게 될 것이고, 이들을 공격한 독립 세력은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을 확실히 전달하도록 2개 대만판공실에 지시했다고 위안훙빙은 전했다.
“국회 싸움, 여야 대결 아냐…대만 국민 VS 중국공산당”
위안훙빙은 중국공산당 내 양심적 인사들의 제보와 분석을 종합하면, 대만 국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시진핑과 그 책사 왕후닝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민진당(여당) 대 국민당·민중당 연합 사이의 싸움은 정상적인 민주주의 체제하의 경쟁이 아니며 법치주의에 입각한 경쟁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사실 중국공산당의 대리인들이 대만 국회 지도부를 대부분 점령했다”며 “국회를 거점으로 삼아 헌정 체제를 무너뜨리고 민진당이 이끄는 정부의 행정권을 무력화하며, 사법체계와 감시 기능 무력화로 대만 사회를 흔들고 대만인들을 심리적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라고 했다.
위안훙빙은 “현재 대만은 매우 심각한 상황에 처했다”며 “대만인은 자신들의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쟁이 정상적인 상황에서 민주당과 국민당 간 경쟁이 아니라 실제로는 중국공산당과의 치열한 백병전이라는 점을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공산당은 2027년 이전까지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대만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위해 대만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다는 전략을 실행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다”며 2025~2027년을 핵심적인 기간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