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헌정 위기 해법, 원칙과 현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
2024년 12월 29일 오후 1:21 업데이트: 2024년 12월 31일 오후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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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잘못된 것이고 자신이 공언한 대로 정치적,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헌 문란의 헌법 파괴적 군사 변란이며 법치와 헌정 질서의 안정을 염려하는 자유주의자, 정통 보수주의자라면 그의 행위에 대해 어떤 변명도 불가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헌정 질서가 정상 궤도를 벗어난 상태를 어떻게 수습하느냐의 문제에 대해 나는 원칙의 충돌을 정리할 의사결정 구조가 고장 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을 가다듬어도 혼란스럽다.

블랙 스완(Black Swan)과 같은 평상시에 예기치 못한 일들이 겹치면서 우리는 진영 논리에 충실한 전사들이 아니라면, 충돌하는 원칙 사이에서 갈피를 잡기 힘들다.

탄핵과 권한쟁의 심판 등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것의 최종 의사결정을 헌재가 해야 한다.  그러나 헌재는 지금 제대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이 상태를 만든 것은 국회 특히 민주당이다. 관행과 관습 헌법도 엄연한 원칙이다. 이를 명분 없이 변경하고자 지연시켰다.  정부 조직을 불구로 만드는 탄핵을 남발하면서도 탄핵의 결정 기구인  헌재 또한 불구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야당만 탓하기도 어렵다.  윤 통은 방통위를 야당 추천 몫을 임명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지지자들만으로 운영하려고 했다.

대통령 권한 대행이 야당 단독으로 추천한 헌재 재판관 3인을 임명하는 것에 대한 판단도 어렵다. 국회 추천 몫이니 그냥 해야 된다는 주장과 국민의 선거로 뽑히지 않은 대행은 현상 유지만 해야 하고 특히 정파적 의견이 갈리는 일에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우리가 틀렸다고 주장할 근거는 분명하지 않다.

대통령 권한 대행의 탄핵을 대통령이 아닌 국무위원의 요건으로 할 수 있다는 것과 할 수 없다는 것도 헌법의 미비 사항이다.

나는 한덕수 총리가 국회가 국무위원으로 탄핵했으니 총리의 권한은 정지됐지만 대통령 권한 대행의 지위는 탄핵되지 않았다고 주장해 보기를 기대했다. 그래서 헌재가 이것을 먼저 판단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몰고 갔으면 야당을 궁지에 몰고, 우리 헌법의 모호성 하나를 해소하는 기회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6인의 헌재가 그것을 판결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대행이 대통령의 온전한 대행인지, 국무위원으로 국민의 선거라는 선택을 받지 않는 제한된 권한의 지위인지 우리는 모른다. 국무위원인데 대행의 역할만 추가되었다는 것이 국회의원 1/2로 탄핵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법률가들의 견해이고, 권한대행은 한순간도 비울 수 없는 대통령의 지위를 대신 행사한다는 쪽은 대통령에 준해서 탄핵해야 한다는 쪽이다.  만약 북한이 쳐들어오면 대통령 대행은 대통령의 권한 중에 가장 큰 권한인 군수 통제권을 발휘하는 것에 대해 누구도 의문을 달지 않을 것이기에 나는 온전한 대통령의 권한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관행은 한덕수 총리의 담화 내용이 맞다.

야당이나 여당이나 자신들이 과거에 했던 주장들을 뒤집고 있다는 점도 이들의 원칙이 원칙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 황교안 대행에게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고 거품을 문 측은 민주당 사람들이었다. 행정 수반으로서의 지위와 국가 원수들의 지위가 다르다는 절묘한 새로운 원칙을 들고나온 권성동의 주장은 창의적이기는 해도 법적으로 분명한 원칙이라기보다는 당파적 해석이다.

한마디로 원칙들은 충돌하고 있고 모호하다. 여야가 자신들의 주장만을 고집한다면 우리는 지금 이 비상상태를 정상화하는 여정이 길고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재판이 길어져서 4월을 넘기면 헌재는 다시 9인 체제가 와해된다.

후임 대행이 선임 대행이 거부한 것을 뒤집는 것도 정도는 아닐 것이다.

이 딜레마의 상황에서 분명한 원칙도 불분명하고 충돌한다. 그것을 최종 판단할 주체가 헌재인데 이것이 불구상태라는 것은 대한민국의 헌법이 고장 난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런 경우 정상적인 국가라면 정치 지도자들의 일이 된다. 명백한 범법 행위를 저지른 닉슨을 탄핵하지 않고, 그를 후임 대통령이 사면하겠다는 약속을 정치 지도자들이 여야를 떠나서 국가를 위해 양해하고 빨리 자진 사퇴를 통해 부통령에게 정권을 넘겨 혼란의 시기를 최소화한 미국의 선례가 그것이다.

과연 탄핵에 대한 최종 결정을 못 하는 헌재 부재의 상태가 지속되는 것을 여당이 취할 최선인가? 헌재의 심판이 지연되면 윤 통은 탄핵 심판보다 구속 수사를 먼저 당할지도 모른다. 야당은 탄핵을 계속 남발하며 행정부 부재의 무정부 상태를 야기하고 헌재의 자동 임명을 만드는 것이 그들에게 유리한가?

지금처럼 정치권이 결정을 못 내리고 죽기 살기로 갈등한다면 결국은 국민 여론이 결정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여야는 여론전 열심히 펼쳐라. 타협이 없는 대치 국면에 국민 여론만이 최종 결정을 할 것이다. 진영 논리로 여론마저 팽팽하게 대립한다면 구제 불능의 나라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