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이 주도한 22일 트랙터 시위 현장에서 공무집행방해로 연행된 2명이 민노총 소속으로 확인됐다.
28시간 대치 끝에 민주당 의원들의 설득으로 경찰이 물러난 이번 트랙터 시위가, 순수한 농민 시위가 아니라 전농과 민노총 주도하에 치밀하게 기획된 반정부 투쟁이라는 비판에 힘이 실린다.
이날 시위는 애초 집회가 아닌 행진으로 신고됐으나, 경찰의 ‘트랙터·화물차’ 불허 통지에도 트랙터 30여 대와 화물차 50여 대를 동원한 전농에 의해 불법 시위로 비화되면서 경찰과 시위대의 대치로 이어졌다.
시위대 일부는 경찰의 저지선을 뚫으려 시도했고 이 중 2명은 경찰을 폭행했다가 연행됐는데, 이들 2명이 민노총 조합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민노총은 이번 탄핵 정국을 맞아 반정부 투쟁을 확대하고 있다. 앞서 지난 12일에는 서울 세종대로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였다.
이 집회는 신고 위치인 남영역 일대에만 머물지 않고 용산 대통령실과 한남동 관저로 진격해 불법 시위 논란을 일으켰다.
21일 트랙터 시위 역시 대통령 사저를 목적지로 잡았다. 시위대는 16일 각각 전남 무안과 경남 진주에서 트랙터 등을 운전해 6박 7일만에 서울에 입성했다.
이 트랙터 중 일부는 농업이나 다른 작업에 사용한 흔적이 없이 매우 말끔해 눈길을 끌었는데, 동양물산의 2019년 모델이었다. 2020년 사명을 TYM으로 바꾼 이 회사 관계자가 소셜미디어에 밝힌 바에 따르면, 해당 트랙터는 2019년 전농이 북한에 보내려다 대북 제재 위반으로 좌절된 ‘통일 트랙터’다.
통일 트랙터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민간인 통제구역인 파주 도라산역 물류창구에 보관돼 있었는데, 이번 시위를 앞두고 무안과 진주까지 이동한 것이다. 다만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떤 경위로 옮겨졌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전농은 농민단체이며 농민 권익을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으나 동시에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며 강한 정치색을 지닌 단체라는 사실이다. 전농은 보수 인사들로부터 “종북 좌파”라고 비판받는 민노총과도 긴밀한 연대를 맺고 있다.
민노총은 지난 2000년 10월 북한 조선노동당 창당 55주년 기념행사에 초청돼 참석했다. 당시 김대중 정부 시절 남북 ‘화해 무드’에 따라 민노총과 함께 7개 단체가 방북했는데 여기에 민주노동당,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외에도 전농이 포함돼 있었다.
불법 집회, 대통령 사저…민노총·전농 시위 키워드
22일 트랙터 시위와 12일 민노총 시위 모두 ‘한남동 관저’를 목표를 삼았다. 12일 시위는 도중에 불법으로 비화됐으나 전농 시위는 처음부터 불법이었다.
경찰은 전농의 행진 신고 하루 전인 20일, ‘옥외집회 제한 통고서’를 보내 트랙터와 화물차 이용이 불가하며 ‘행진이 아닌 집회’는 허용되지 않는다며 교통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고 알렸다.
서울 관악구 남현동과 서초구 방배동, 경기도 과천시 사이에 위치한 고개인 남태령은 평소에도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전농은 30여 대의 트랙터와 50여 대의 화물차로 이뤄진 행렬 그대로 서울에 입성해 윤석열 대통령 관저로 향했고, 경찰은 경찰 버스로 차벽을 세워 이를 저지했다.
전농과 경찰 간 대치로 끝나려던 시위는 ‘시민’들이 가세하면서 복잡해지는 양상을 띠었다. 전농과 경찰 간 28시간 대치 상황 속에서 시민들이 전농을 지지하고 나서면서 행진은 그대로 집회가 됐다.
적잖은 언론에서 이 시위는 ‘농민’, ‘농민 트랙터’로 보도됐다. 농민들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긴 시민 일부가 추운 날씨를 무릅쓰고 현장에 달려간 이유다. 추위를 견디며 밤샘 시위를 한 이들에게 음료와 먹거리, 방한용품을 전달하는 손길도 이어졌다.
하지만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에 ‘일반시민처럼 트랙터 시위에 참가하라’는 내용의 메시지가 확산되는 등 조직적 움직임도 포착됐다. “시위 티 내면 안 돼”, “구호 외치지 마”, “피켓 숨겨” 등 집회 참여를 독려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번 집회가 경찰로부터 ‘왜 왔나, 시위 참여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너무 막혀서, 혹은 트랙터 보러, 구경왔다”고 답하라며 불법 집회라는 것을 인지하고도 참여를 독려한 메시지도 있었다.
여당 “법질서 무너뜨린 난동 세력”… 야당 “내란 동조”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전농의 트랙터 시위를 두고 “공권력을 무너뜨리고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난동 세력에게는 몽둥이가 답”이라고 비판했다.
윤 의원은 23일 페이스북에 “지난 주말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민노총과 전농의 트랙터 시위와 경찰과의 충돌은 공권력을 무력화시키고 시민의 안전과 공공질서를 심각하게 위협한 충격적인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트랙터로 경찰 버스를 들어 올리려는 위험천만한 행위, 저지선을 뚫고 관저로 진입하려는 시도는 명백한 불법”이라며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난동이다. 다시는 이 같은 시도가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윤종군 원내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국민의 의사 표현에 몽둥이가 답이라니 제정신인가. 내란 세력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밝혔다.
윤 대변인은 “대한민국의 안녕을 위협하는 것은 트랙터와 응원봉이 아니라 윤석열 내란 세력과 이를 비호하는 국민의힘”이라며 “궤변과 말장난으로 내란을 선전하는 국가 반역 행위를 당장 멈추고 석고대죄하라”고 재촉했다.
전농 트랙터 시위대는 28시간 대치 끝에,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이 경찰을 설득해 물러서게 하면서 저지선을 통과했고 트랙터 13대를 도심에 진입시켜 집회에 참여하게 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06년 이후 북한의 핵 및 미사일 활동에 대응해 대북 제재를 결의했다. 이에 따라 전농이 북한에 보내려던 ‘통일 트랙터’도 대북 제제 위반 물품으로 간주됐다.
트랙터는 만성적인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북한으로서는 필수적인 장비다. 지난 3월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동북부 양강도에 트랙터를 보낸 일을 주요 뉴스로 보도하기도 했다.
북한은 트랙터를 군사 장비로도 사용한다. 북한 열병식에는 트랙터로 견인하는 방사포도 주요 무기로 선전된다. 트랙터를 사용하는 이유는 농민들을 바로 전장에 투입할 수 있는 데다, 전쟁 발생 시 폭격 등으로 도로가 부서지더라도 트랙터는 군사무기를 효과적으로 견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기존에 생산·보유 중인 트랙터가 노후된 데다 부품 부족으로 유지 보수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