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설립해 ‘이어도지킴이’ 활동
이어도 해역, 경제적·안보적 가치 높아
“국토 좁고 삼면 바다인 한국, 해양은 사활적 과제”
“해양의 미래가치 인식하고 해양주권 확보·강화해야”
신비의 섬 이어도. 이 섬을 보면 돌아올 수 없다는 전설이 있다. 이는 먼 옛날 이곳에서 고기잡이를 하다가 파도가 10m 이상이 되면 이 섬이 보였고, 당시 고기잡이 배로는 그런 상황을 벗어나 무사 귀환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이어도는 ‘도(島·섬)’라는 이름과 달리 섬이 아니라 해수면 아래 잠겨있는 수중 암초다. 동중국해 한가운데 있는 이어도는 좌표상 북위 32도 07분 22.63초, 동경 125도 10분 56.81초로 찍힌다. 한반도와 중국대륙, 일본열도를 잇는 삼각형의 중앙이다. 중국과 일본을 잇는 항로의 중간 기점이자 한반도에서 태평양으로 나가는 중요한 길목이기도 하다.
이어도는 오늘날 한국의 해양 주권을 상징하는 해양 영토다. 이어도와 그 주변 해역은 중국·일본 등 주변국들과의 배타적 경제수역 확정 문제, 해상 관할권 문제 등이 걸려 있다. 2003년 이어도에 국내 최초로 해양과학기지가 설치된 이래 중국은 해당 수역에 대한 권리를 주장해왔다.
고충석 이어도연구회 이사장은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주대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제주대 법정대학장, 행정대학원장을 역임했다. 제주대 제7대 총장을 지냈고, 2013년 퇴임 후 제주국제대 초대 총장으로 재임했다. 이 밖에도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제주경실련) 공동대표로 활동했고, 제주발전연구원장, 국제평화재단 이사장으로 일했다. 2007년 사단법인 이어도연구회를 창립해 현재까지 이사장을 맡고 있다.
“중국에 한 뼘도 양보할 수 없는 우리 바다, 이어도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고 이사장을 지난 3일, 제주시 연북로에 자리한 이어도연구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어도연구회 설립 취지와 배경을 소개해 주세요.
“2007년 8월에 사단법인 이어도연구회로 정식 발족했습니다. 우리나라가 독도 영유권 분쟁으로 일본과 상당히 시끄러운 때였죠. 당시 제주도를 방문한 김성진 해양수산부 장관이 독도 때문에 한일 간 갈등이 많은데 앞으로는 이어도의 경제적·안보적 가치가 더 중요할 거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이어도연구회는 한마디로 ‘우리 땅 우리 바다 이어도’를 지키기 위한 연구단체다. 고 이사장은 남중국해를 비롯해 여러 해양 영토를 놓고 주변국과 마찰을 빚고 있는 중국이 이어도 해역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은 해양 패권 의식이 매우 강한 나라입니다. 그동안 이어도 관련해서 별 문제 제기가 없던 중국이 2003년에 이어도 해양과학기지가 완공된 후 외교부를 통해 2006년 9월에 한국 정부의 해양과학기지를 이용한 해양활동에 반대한다고 공식 발표를 했어요. 중국은 동북공정에 이어 동남공정(서해, 이어도 근해 영유권 확보를 위한 중국의 국책사업)도 시작했기 때문에 분명히 이어도도 중국 관할권에 속한다고 주장할 게 불 보듯 뻔했죠. 그래서 이어도 바다가 한국의 관할권에 있다는 이론적 근거를 확보하고, 국민들에게도 알릴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이어도와 가장 가까운 제주도에서 민간연구단체인 ‘사단법인 이어도연구회’를 설립했어요.”
– 이어도연구회의 주요 활동 및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연구회 사업은 학술연구·해양교육·홍보활동 등 3가지로 요약됩니다. 이어도에 대한 한국과 중국 간 관할권 분쟁에서 이어도 바다가 한국 바다라는 논거 마련을 위해 다각도로 논의와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어도연구회 홈페이지에 국제학술세미나와 전문가 워크숍, 학술연구 지원 공모 등을 통한 그간의 연구 성과를 담은 학술서적과 논문, 어린이용 동화책, 영어 책자 등이 나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앞으로도 이어도 관할권 소재를 다룰 때 중요한 학술적 근거가 될 겁니다.”
이어도연구회는 지난 2022년,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에 관한 그간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중국 등 주변국의 무리한 권리 주장에 대한 대응 논리를 담은 ‘이어도 오디세이’를 발간했다. 이 책은 영문으로도 출간됐다.
“아울러 이런 내용을 교육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독도에는 관심이 많은데 이어도의 높은 가치와 중요성에는 무심하거든요. 교사, 일반시민, 청년 등을 대상으로 교육을 해 왔는데 지금까지 도합 1600여 명 될 겁니다. 또 여러 시민단체와 손잡고 홍보 활동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이어도가 왜 중요한가요?
“이어도 항로는 경제·안보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원유, 원자재 등 수출입 물동량의 90%가 지나가는 해양 수송로(SLOC)이자 동북아 최고의 황금어장이기도 하죠. 국제교역량의 99.7%를 해운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유조선, 무역선, 곡물 수송선 등 대부분이 이어도 항로를 거쳐 세계를 드나듭니다. 그럴 리 없겠지만, 만약 중국이 이 항로를 봉쇄하면 한국 경제는 1~2개월 이내에 거덜 난다는 예측이 있습니다.”
고 이사장은 “이어도 주변 지역에는 상당한 규모의 광물자원이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유엔 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는 1969년 에머리 보고서를 통해 동중국해 대륙붕의 세계 최대 석유 매장 가능성을 발표했다. 미국 윌슨국제연구센터도 이어도 주변 지역에 상당한 규모의 광물자원이 매장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다만 자원 규모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는 제시되지 않았다.
동중국해는 제주도 남쪽부터 대만에 걸쳐있는 서태평양의 연해로, ‘아시아의 페르시아만’이라 불릴 만큼 전략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한·중·일의 앞마당 같은 바다인 만큼 세 나라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며, 3국이 각자 주장하는 배타적 경제수역이 중첩돼 있다.
“동중국해는 한·중·일 3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과 대륙붕이 중첩되는 수역으로 해양경계 획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바다이기도 합니다. 동중국해상에 위치한 이어도 주변에 엄청난 자원이 매장돼 있을 거로 추정됨에 따라 앞으로 자원을 둘러싸고 한중 간 갈등이 생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경제적·안보적 측면에서 이어도는 양보할 수 없는 우리 바다입니다.”
-이어도 문제에서 쟁점은 무엇인가요?
“이어도 문제는 본질적으로 영유권 분쟁이 아니라 해양 경계 획정과 관할권 다툼”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영유권과 관할권은 모두 국가의 권한 행사에 관한 것이지만 의미가 다릅니다. ‘영유권’은 점령과 소유가 결합된 용어로, 영토주권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영토·영해에서 국가가 행사하는 유일하고 독자적인 통치권한이기도 하고요. 반면 ‘관할권’은 국가의 권한이 미치는 범위를 뜻합니다.”
고 이사장은 “독도는 영유권 문제”라며 “독도는 울릉도 가까이 있고, 한 나라의 주권이 미치는 영해는 기선으로부터 12해리(약 22km) 범위까지의 영역이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이어도 해역은 배타적 경제수역이므로 영해에서 국가가 갖는 권한을 모두 행사할 수 없고 제한적인 관리 권한만 인정됩니다. 우리 외교부는 ‘이어도는 유엔해양법협약상 ‘섬’이 아니므로, 자체적인 영해나 EEZ를 갖지는 않으며, 영유권 분쟁의 대상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라고 인식하고 있죠. 그렇지만 이어도 수역은 우리 측에 훨씬 가까운 곳으로, 한·중 간 해양경계획정 이전이라도 명백히 우리 측 EEZ에 속하는 수역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이어도는 한국·중국·일본 세 나라 중 한국과 가장 가깝다. 대한민국 영토 최남단 마라도에서 149km(80해리) 떨어져 있고, 중국 서산도에서 289km(156해리) 떨어져 있다. 가깝다고 해서 자동으로 관할권이 인정되는 건 아니지만, 해양법적인 논리로 볼 때 우리나라에 더 가까이 위치해 있기에 관할권은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중국은 대륙 퇴적물이 쌓여 형성된 대륙붕이라며 자국 관할권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건 중국 측 주장일 뿐입니다. 해양법은 이미 ‘관할권 분쟁이 있을 때 가까운 나라의 관할로 본다’고 결론 내렸어요.”
-이어도를 둘러싼 한중 갈등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어도는 한국과 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이 겹치는 수역에 위치해 있지만, 한국 쪽으로 28해리 가깝게 위치해 있습니다. 이런 경우 대체로 ‘중간선(등거리선) 원칙’이 통용되는 것이 국제법상의 관례입니다. 이 원칙을 적용하면 이어도는 당연히 한국의 관할 영역에 속합니다. 그러나 중국은 중간선 원칙을 거부하고 이어도가 중국 관할권에 있는 바다라는 논리를 펼치고 있는 겁니다. 해저 퇴적 지형에 기반한 ‘자연연장이론’과 해안선 길이 및 인구 비례 등에 근거한 ‘형평의 원칙’을 주장하는 것이죠.”
“한국과 중국은 1996년 유엔해양법협약 가입 이래 이어도 관할권을 놓고 수십 차례 국장급 혹은, 차관급 협상을 해왔으나 진전이 없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선포한 ‘이승만 라인’에도 이어도는 우리 바다로 돼 있습니다. 중국의 주장은 패권적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중국은 이것뿐만 아니라 남중국해 9단선을 비롯해 관할권 문제, 영유권 문제로 말레이시아, 필리핀, 대만, 싱가폴 등에 해양 갈등을 촉발했죠. 중국은 해양경계의 원칙뿐만 아니라 역사적 근거 등을 자국에 유리하도록 아전인수식으로 해석, 주장하고 있습니다. 해양 평화를 위해서 중국이 상식을 따르는 것이 강대국으로서 최소한의 윤리적 처신이라고 봅니다.”
-중국과의 갈등에서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앞으로 계속 협상해 봐야죠. 이어도 관련해서 중국의 노골적인 무력 행사는 아직 없었어요. 중국 어민들이 이어도 바다에서 마음대로 조업하는 것 외에 별 문제는 없어요. 지금은 중국도 전략적으로 한국과 갈등을 피하려는 게 아닌가 싶고요. 지금까지 큰 갈등은 없었지만, 중국의 행보로 봐서는 조만간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중국은 9단선을 근거로 남중국해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했지만, 2016년 중재재판소는 중국의 9단선 주장이 현대 국제법에 어긋난다고 판결했죠. 이 판결은 필리핀-중국 간의 해양분쟁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고 필리핀의 입장을 강화하는 중요한 법적 근거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남중국해, 대만과의 갈등 같은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반드시 동중국해로 넘어와서 이어도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데, 아직 여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필요하면 우리도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소(訴)를 제기할 수 있겠죠. 우리는 이어도연구회 같은 사단법인이 존재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일본과의 문제는 없나요?
“대륙붕 7광구 문제도 해결이 안 되고 있어요. 일본의 기회주의적 처신 때문으로 보이는데 어떤 형태로든 조만간 해결되리라 봅니다. 7광구 해역은 석유 매장지로 주목받아 왔지만, 2002년 양국 공동탐사 이후 일본은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공동 개발에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면서 오랫동안 진전이 없었습니다. 앞으로 국제법상 결론이 어떻게 날지 모르겠지만, 일본은 굳이 공동 개발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입장입니다.”
한국과 일본은 1974년 7광구를 한일대륙붕공동개발구역으로 설정하는 ‘대륙붕 공동개발구역(JDZ)’ 협정을 체결했고, 4년 뒤(1978) 발효됐다. 그러나 협정은 40여 년간 실질적 성과 없이 2028년 6월 22일 종료될 예정이다. 다만 협정 만료 3년 전(2025년 6월22일)부터 일방 당사국이 협정 종료를 서면으로 통보할 수 있다. 종료 통보 가능 시점을 9개월 앞둔 지난 9월, 한·일 외교당국 간 국장급 대화가 열렸다.
“우리가 7광구 개발에 성공하면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여러 나라와의 자원 공동 개발이 필요합니다. 특히 중국과도 공동으로 자원 개발을 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이어도에 관한 국민적 관심을 환기하고, 나아가 국제사회에 이어도의 중요성을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해양은 뭔가 문제가 생겨야 주목을 받거든요. 한때는 전 국민에게 이어도를 홍보하기 위해 노래를 만들어서 유포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노래야말로 이어도를 전 국민의 가슴속에 각인시키기 위한 적절한 수단이기 때문이죠. 2012년에 작사가 양인자, 작곡가 김희갑 선생에게 의뢰해 노래를 만들었는데 별 인기는 없었어요. 언젠가는 잘될 수도 있겠죠?”
-이어도 문제와 관련해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점은 무엇인가요?
“우주개발은 아직 이르고, 앞으로 해양에 국가의 미래를 걸어야 합니다. 토인비는 해양을 ‘인류에게 마지막 남은 기업’이라 했고,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도 ‘21세기는 해양의 시대’라고 했듯이 바다의 중요성은 미래에도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고 이사장은 “지구상 부존자원 중 육지 자원이 해양 자원보다 훨씬 빨리 고갈되고 있기 때문에 해양은 ‘자원의 보고’이자 ‘제2의 영토’로 각광받는다”며 “해양은 앞으로 인류에 닥칠 식량 문제, 환경 문제, 물 문제, 에너지 분배 등을 전부 커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특히 국토 면적이 좁고 삼면이 바다인 한국에 해양은 사활적 과제입니다. 해양에서 얼마나, 어떻게 권익을 확보하느냐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어요. 해양의 미래가치를 확실히 인식하고 해양주권을 확보·강화해 나가는 일은 이 시대 국가와 국민에게 맡겨진 책무이기도 합니다. 그러려면 해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국민들이 알아야 하고요. 이어도연구회는 그러한 국민의식 확산에 초점을 맞춰서 교육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어도연구회가 집중할 목표는 무엇인가요?
“해양은 한 국가가 독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하도 상식에 어긋난 짓을 하니까 우리 연구회라도 나서서 우리 국민들뿐 아니라 이어도 문제의 세계화를 위한 단초를 제공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이어도연구회가 그런 역할들을 해 왔습니다. 동아시아 해역에서의 평화와 협력을 위해 몇 년 전부터 중국과 해양 갈등을 겪는 나라의 지식인들을 모아서 해양 포럼, 국제 학술대회를 열고 있습니다. 중국의 해양 패권 전략이 얼마나 국제법의 상식에 어긋난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하고, 영어 책자도 발간해서 국제사회에 배포하기 시작했어요.”
이어도연구회는 지난 10월 10~11일 제주 더원 호텔에서 ‘제8회 이어도 국제학술 세미나’를 개최했다. 지난 2011년 시작된 이어도 국제학술 세미나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중국, 대만, 태국, 필리핀 등의 해외 학자들이 함께 참여해 해양 이슈에 관해 토론하는 행사다. 시진핑 3기 재집권을 전후로 중국 팽창주의에 대한 의혹과 우려가 국제적으로 확산하는 속에서 해양 관련 국내외 5개국 석학 26명이 참여해 ‘동아시아 해역의 미래와 해양 지정학’을 대주제로 진행했다. 올해는 ‘동아시아 바다는 하나(One Ocrean)’라는 공동의 비전으로 대화와 협력을 통한 해양평화 실행 방안을 모색했다.
“이어도를 놓고 갈등을 빚는 나라가 중국이다 보니 이어도연구회를 반중(反中)단체로 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어도 관련해 국제사회에 여론을 확산하면서 중국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해 왔기 때문에 반중단체라고 할 수도 있겠죠. 중국의 대국답지 않은 옹졸한 행보에 맞서 반중 전선을 구축하겠다는 취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중국을 미워하거나 폄하하려는 게 아니라 지극히 국제법적인 상식에 입각해서 합리적인 주장을 하는 겁니다.”
-제주대 교수 및 총장으로 재임하셨는데 교육자이자 리더로서의 철학이 궁금합니다.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발된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 제 교육철학의 기저입니다. 영어 능력은 필수이고 미래에는 협업할 수 있는 능력, 도전하는 능력 등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대학교육은 학생들에게 이런 능력을 어떻게 길러 줄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교수들에게 이런 주문도 많이 했죠. 글쓰기, 말하기 같은 기본 역량 배양을 위해 독서 지도에도 힘썼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은 무엇일까요?
“기본적으로 인성이 문제”라는 고 이사장은 경쟁 구도에 매몰된 대학 입시제도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 어디서 인성 교육을 하나요. 옛날에는 가정에서도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가 인성 교육을 해 주셨지만, 요즘엔 우리나라 교육이 모든 게 대학 입시에 집중돼 있어서 인성만 강조할 수도 없는 분위기죠. 유치원 때부터 좋은 대학 가기 위해서 교육을 하니까요. 입시 경쟁 구도로 갈 수밖에 없다 보니 교육 자체가 황폐화하고 있습니다. 저도 ‘교육의 본질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해 왔지만, 대학 입시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이런 관행을 없앨 수 없습니다. 초중등 교육도 전면 개편해야 하는데 인구 감소로 학령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입니다. 교육부가 입학 정원의 30%를 전공 구분 없이 뽑는 대학에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했고, 앞으로는 SKY(서延高) 대학은 어렵겠지만 웬만해선 다 대학에 들어갈 수 있어요.”
고 이사장은 사회적으로도 인성을 중시하는 풍토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기업들도 채용 과정에서 영어 수학 잘하는 사람 뽑을 게 아니라 다각도의 인성 검사가 필요합니다. 요즘은 협업 능력이 상당히 중요한데 그렇지 않으면 리더로 성공할 수 없어요. 제가 총장 시절에 조사해 봤더니 중소 기업까지 포함해서 CEO(최고경영자) 가운데 서울대 출신은 30% 정도밖에 안 돼요. 특정 직업을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하버드대 졸업생들 중에 건물 관리인도 있었고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세상은 머리로 사는 게 아닌데 수능 시험도 영어 수학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인성이나 리더십, 협업 능력 등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를 개발해야 합니다.”
아울러 진로 지도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교육부에도 ‘진로 지도’에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고 부탁하고 싶어요. 아이들 적성을 잘 파악해서 아이들이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질 수 있어야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요즘엔 취직해도 얼마 못 버티고 이직을 밥 먹듯이 하잖아요. 경쟁에서 이겨야 행복한 게 아니라 마음이 행복해야 합니다. 먹고 입는 데 치중하고 소비하는 걸 행복의 척도로 삼지만, 검소함의 미덕을 가르치고 적게 소비해도 행복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 제주대 7대 총장으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나 성과, 어려움은 무엇이었습니까?
“제가 총장 취임했을 때(2005년) ‘중앙일보 대학 평가’에서 제주대가 57위였는데 퇴임(2009) 후 나온 평가에선 36위를 했어요. 20계단 이상 올라갔죠. 숙명여대가 35위였습니다. 당시 중앙일보는 제주대학을 ‘최근 4년제 대학 중 (순위가) 수직 상승한 대학’으로 보도했습니다. 이는 저의 총장 임기 4년에 대한 평가이자 저의 꿈과 노력이 반영된 결과라고 자부합니다.”
고 이사장은 자신의 이력에서 제주대 총장 재임 시절 이룬 성과들을 최정점이자 빛나는 성과로 꼽았다. 그는 지난 2022년, 섬마을 우도 소년이 제주대 총장에 오르기까지 살아온 세월을 되짚은 자전적 에세이 ‘어느 행정학자의 초상’을 출간하기도 했다. 책에서 고 이사장은 “그저 공적인 영역에서의 삶만을 생각하고 숙명처럼 활동해왔다”고 밝히며 “제주대학교 제7대 총장 임기 4년이 내 생애 가장 숨 가쁘고 치열하며 온갖 노력을 다했던 시간이었다”고 자평했다.
“저마다 특성이 다른 대학에 똑같은 잣대로 서열을 매기는 걸 전적으로 신뢰하진 않지만, 그래도 참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어느 조직이든 구성원들이 그 조직을 사랑하는 만큼 발전한다는 걸 느꼈어요. 기업이든 국가든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에포크타임스가) 대한민국의 해양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려주면 좋겠다”는 고 이사장은 ‘이어도 사수’를 거듭 강조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이어도는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한 뼘의 바다도 중국에 넘어가선 안 됩니다. 바닷길의 급소인 이어도를 지키는 일에 한국과 한국인의 공존·번영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할 만큼 이어도는 우리나라의 생명줄과도 같다고 하겠습니다. 경제적·안보적 측면 통틀어서 이어도를 지키는 건 우리의 역사적·시대적 과제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