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고] ① 중공의 통일전선공작기구 ‘차하얼학회’ 실체 해부

한민호 공자학원실체알리기운동본부 대표 /전 문체부 미디어정책관
2024년 12월 21일 오후 7:54 업데이트: 2024년 12월 21일 오후 8:51
TextSize
Print

차하얼(察哈爾)학회가 대한민국의 정치인, 지방자치단체장, 학계와 종교계를 대상으로 전방위적 활약을 펼치고 있다. 친중파를 양성해서 대한민국을 친중 국가로 만들기 위한 통일전선공작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공자학원이 대학을 거점으로 지역사회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공작을 하는 반면, 차하얼학회는 국회의원과 지자체의 장(長), 학자, 종교 지도자들을 포함한 엘리트들을 대상으로 공작을 한다고 한다.

월간조선 올해(2024년) 9월호에 차하얼학회와 관련한 충격적인 기사가 실렸다. 당시 차하얼학회 고급 연구위원이던 김상순 박사가 충격적인 폭로를 했다. 차하얼학회 주석(회장) 한팡밍(韓方明)이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차기 대선 유력 주자로 떠오르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대선 자금 지원’ 의사를 전달하려 했다는 내용이다. 대통령이 된 문재인은 이듬해(2018년) 2월, 한팡밍에게 수교훈장 흥인장을 수여했다. 차하얼학회와 한팡밍에게 날개를 달아 준 것이다.

앞서 에포크타임스는 이미 2022년 10월과 2023년 6월에 차하얼학회에 대해 보도한 바 있다. 이번 기고에서는 차하얼학회에 대해 보다 자세히 그리고 심층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그 성격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차하얼학회는 2009년 10월 공공외교, 국제관계, 평화학 분야 연구를 내걸고 설립된 ‘민간’ 싱크탱크다. 우리 언론에서 이 학회를 소개할 때 그냥 ‘싱크탱크’라 하지 않고 그 앞에 반드시 ‘민간’ 또는 ‘비정부’라는 단어를 붙인다. 차하얼학회의 요청에 따라, 중국 정부 또는 중국공산당의 지휘·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에 과연 ‘민간’이라는 영역이 있는지 의문이다. 중국은 스스로 중국공산당이 지배하는 당-국가체제라고 밝히고 있다. 입법, 사법, 행정 등 국가의 모든 기관 위에 중국공산당이 군림하는 체제다. 심지어 인민해방군도 국가의 군대가 아니라 중국공산당의 군대다. 그런 체제에서 ‘민간’ 싱크탱크는 존재할 수 없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차하얼학회 창립을 주도한 인물은 한팡밍(韓方明)이다. 1966년 중국 허베이성(河北省) 상의현에서 출생한 그는 베이징대학교를 졸업(학사·석사·박사)하고 미국 하버드대학교 방문교수를 지냈다. 그는 10~13기 중국 전국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이었다. 2008년부터 정협 외사위원회 부주임(차관급)과 공공외교 소조 조장을 역임했다. 중국 헌법은 <제3장 국가 기구>가 아니라 전문(前文)에서 따로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를 이렇게 규정한다. “광범한 대표성을 갖는 통일전선 조직으로서 과거에는 중요한 역사적 역할을 발휘하였고 앞으로는 국가의 정치 생활·사회 생활과 대외 우호 활동에서, 그리고 사회주의 현대화를 이루고 국가의 통일과 단결을 지키는 투쟁에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발휘할 것이다.” 그렇다. 정협은 통일전선 조직이고, 한팡밍은 ‘공공외교’라는 이름의 대외 통일전선공작 책임자였다. 물론 배후에서는 중국공산당 중앙통일전선공작부라는 막강한 조직이 지휘, 통제하고, 정협이나 차하얼학회는 그 수족에 불과하다.

정협 위원의 임기는 5년인데, 작년 2023년 3월로 13기의 임기가 끝났고, 한팡밍은 현재 더 이상 정협 위원이 아니다. ‘민간’ 싱크탱크의 대표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것으로 판단된다. 차하얼학회 고급 연구위원으로 일했던 김상순 박사에 따르면, ‘학회’보다는 ‘연구원’으로 번역하는 것이 성격에 가깝고, ‘민간’ 싱크탱크라지만, 주요 간부들의 배경을 보면 ‘1.5트랙’으로 봐야 한다. 추궈훙(邱國洪) 전 주한 중국대사가 퇴임 직후인 2020년 6월 차하얼학회의 동북아 사무 수석연구원에 취임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대한민국 중앙과 지방, 그리고 분야를 가리지 않고 활개칠 수 있었던 배경은 뭘까?

1992년 한중수교 이후 2016년 사드 사태까지 중국은 우리의 ‘우방’이었다. 그야말로 전 국민이 중국과의 ‘교류’에 열광했고, 심지어 ‘미국은 지고 중국이 뜬다’는 생각이 팽배했다. 특히 한팡밍이 우리나라에 본격 진출한 시기는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기와 겹친다. 중국공산당은 1998 박근혜 정수장학회 이사장이 국회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입문한 직후부터 집요하게 접근했다박근혜  대통령은 2013 2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번이나 중공의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국가원수급의 예우를 받았다대통령 취임 직후인 그해 6월에 다시 중국을 방문했고, 이듬해에는 시진핑이 답방이 있었다. 사드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한국과 중국은 그야말로 밀월 관계였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야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한팡밍과 차하얼학회의 통일전선 공작은 한마디로 누워서 떡 먹기였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