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지난 12월 8일, 성모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를 기리는 전통적인 축일에 재개관했다. 대성당이 성모 마리아에게 헌정되었다는 점에서(‘노트르담’은 프랑스어로 ‘우리의 성모’를 의미) 이는 매우 의미 있는 날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교회 중 하나인 이 웅장한 고딕 양식의 건축물은 2019년의 대형 화재 이후 재건 과정을 거쳐, 마치 번데기에서 나비가 나오듯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다.
노트르담은 프랑스의 영혼과 깊이 연결돼 있으며, 수 세기 동안 프랑스의 종교적, 정치적 생활의 상징으로 우뚝 서 있다. 이 대성당은 문자 그대로, 또 상징적으로도 프랑스의 중심을 나타낸다. 대성당 외부의 표지판은 이곳이 프랑스의 모든 도로가 시작되는 기점임을 알려주고 있다.
세계사의 이정표
치솟은 첨탑과 부벽(扶壁), 반짝이는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인류의 시선을 천국과 영원을 향하도록 지어진 이 거대한 건축물은 세기를 거듭하며 하늘로 우뚝 서 있다. 세상의 격변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프랑스와 세계사의 주요 사건들의 배경이 되어 왔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발간한 ‘기사도의 시대’에 따르면, 노트르담은 제3차 십자군 원정의 필요성을 처음 설교한 장소이자, 헨리 6세가 프랑스 국왕이 된 곳이다. 필립 4세가 전쟁에서 이기고 감사를 표하고자 제단까지 말을 타고 간 교회이며, 성 루이가 1239년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예수의 가시관을 보관한 곳이기도 하다. 18세기 프랑스 혁명가들이 이성(理性)의 신전으로 변모시키고자 했던 상징이었으며, 나폴레옹이 자신을 스스로 황제로 대관한 건물이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4년 파리 해방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진 교회이기도 하다.
건물의 역사는 4세기, 호전적이었던 프랑크족의 왕 클로비스가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시작된다. 파리는 최초의 기독교 유럽 왕국 중 하나인 프랑크왕국의 수도가 됐다. 6세기에는 파리의 첫 대성당인 생테티엔 성당이 세워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파리는 규모도 커지고 문화적 위상이 높아져 지적·예술적 활동의 중심지가 됐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대학 중 하나인 파리대학도 문을 열었다.
12세기의 순례와 십자군 원정으로 파리, 특히 센강의 섬인 시테섬은 많은 인구가 왕래하는 교통의 요충지가 됐다.
늘어나는 순례자들로 인해 파리의 주교 모리스 드 쉴리는 두 개의 옛 성당 유적지 위에 거대한 대성당을 건설하기로 계획했다. 1163년 교황 알렉산더 3세가 초석을 놓았다. 드 쉴리는 이 프로젝트에 자금과 자원을 쏟아부었고, 농노에서 왕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의 독실한 신앙인들이 성당 건립을 위해 기부했다. ‘기사도의 시대’에 따르면, 파리의 여인들은 성모 마리아를 생각하며 너무 자주 기부를 해 노트르담이 ‘과부들의 동전으로 지어졌다’는 전설이 생겨났다.
드 쉴리 주교는 자신의 작품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대성당은 완공까지 거의 200년에 걸친, 세대를 이어가는 프로젝트였다. 완성된 대성당은 중세 기술자들의 탁월함과 예술가들의 기량, 그리고 중세 사회 전체의 열망을 증명하는 증거물로 우뚝 섰다. ‘기사도의 시대’는 14세기의 한 방문객의 말을 인용해 “들어서는 순간 마치 천국으로 끌어올려져 낙원의 가장 아름다운 방 중 하나로 인도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기록했다. 수 세기가 지난 후 빅토르 위고는 이 건물을 “시선 앞에서 솟아오르는… 거대한 석조 교향곡”으로 표현했다.
노트르담은 고딕 건축의 보석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양식은 하늘을 향해 무모할 정도로 사치스럽게 치솟은 석조 건축물로, 유명한 귀면상(鬼面像)들을 비롯해 성경과 가톨릭 전통에서 나오는 수많은 인물상으로 장식돼 있다.
수난을 견디며
대성당은 수많은 격변과 위험을 겪어 왔다. 프랑스혁명 당시 반가톨릭 정서가 프랑스를 휩쓸면서, 혁명가들은 노트르담의 가톨릭교회로서의 의미를 박탈하고 계몽주의적 합리주의의 기념물인 ‘이성(理性)의 성모(聖母)’로 변모시켰다. 성경 속 왕들의 조각상을 프랑스 군주로 오인한 혁명가들은 프랑스 귀족에 대한 증오로 이들의 머리를 잘랐다. 이 왕들의 머리는 1977년 파리의 한 지역 재개발 과정에서 발견됐다. 대성당은 혁명의 주역 로베스피에르가 실각하고서야 완전한 파괴를 면할 수 있었다.
19세기에는 혁명과 기후로 인한 피해로 대성당이 붕괴 위기에 처했으나, 나폴레옹의 후원과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의 인기, 그리고 프랑스 건축가 외젠 에마뉘엘 비올레 르 뒥의 작업으로 복원될 수 있었다.
2019년 4월 15일, 대성당은 최악의 시련을 겪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복원 공사 중에 발생한 대화재로 중앙 첨탑을 포함한 건물의 상당 부분이 파괴됐다. 하늘로 연기를 뿜어내며 첨탑이 녹아내릴 때, 거리에 모인 파리 시민들은 자신들이 사랑하는 국가의 상징이 화염에 휩싸이는 것을 바라보며 충격에 빠졌다. 일부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눈물 속에서 파리 시민들은 성모 마리아를 향해 ‘아베 마리아’를 부르기 시작했다.
대성당 복원 책임자였던 고 장루이 조르줄랭은 노트르담 화재 당시 프랑스인들의 반응을 회상하며 “많은 프랑스인이 울었다. 프랑스의 영혼과 정신 깊숙한 곳에 있는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려 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파리 소방대는 대성당의 완전한 붕괴를 막아냈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즉시 대성당 재건을 약속했다.
12월 8일, 세계는 이 약속이 실현되는 순간을 지켜보았다. 이 행사는 프랑스의 회복력과 프랑스 국민의 정신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그리고 그들이 과거와 다시 연결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조르줄랭은 “노트르담 대성당은 어떤 면에서 프랑스의 심장과 같다”며 “물론 가톨릭 신자들과 기독교인들에게도 그렇지만, 모든 이에게 그러하다. 프랑스의 모든 위대한 사건들이 어떤 식으로든 이 대성당에서 일어났다”고 말했다.
*한강덕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