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술 유출이 극심한 걸 보면 새로운 공포감을 느낀다.”
가전업계 연구원은 12일 기자와 만나 “나한테 제의가 오진 않았지만, 동종업계 선배들에게 소위 ‘산업 브로커’로부터 적지 않은 (유출 관련) 유혹을 받은 얘기를 들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연구원은 “산업 브로커는 주로 중국 국적 관계자들을 연결시키려고 했다는 말도 들렸다”고 했다.
13일 산업계에 따르면, 중국을 비롯한 외국 산업 브로커들의 활동이 왕성하다. 이를 뒷받침하듯 올해 경찰에 적발된 해외 기술 유출 사례는 25건에 육박한다. 이 중 중국으로 흘러간 기술 유출 사례는 18건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기술직 연구원은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우리 정부도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앞서 중국 공안부가 민간 해커 조직과 손잡고 산업 브로커들을 운영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그 여파가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히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업계의 위기감은 최근 삼성전자의 핵심 반도체 인력·기술을 중국으로 빼돌린 브로커가 적발되면서 더 커지는 추세다.
서울경찰청은 지난 4일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핵심 반도체 인력들을 중국의 반도체 업체인 ‘청두가오전’으로 스카우트한 혐의로 삼성전자 출신 60대 중반 A 씨를 직업안정법 위반 등으로 구속했다”고 전했다. 해당 사건은 삼성전자의 독자적인 반도체 기술이 유출된 것으로, 피해액은 최소 4조 3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A 씨 이외에도 해당 사건에 연루된 헤드헌팅 업체 대표 2명과 관련 법인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수사당국에 해당하는 중국 공안부가 민간 해커 조직과 결탁한 사실이 구글 자회사의 폭로로 드러난 사실이 존재한다.
구글 클라우드의 보안 분야 자회사인 맨디언트 측은 지난 2월 중순 “당사는 최근 유출된 중국 정부의 사이버 스파이 활동 지원 관련 자료가 진짜 데이터라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헐트퀴스트 맨디언트 총괄은 당시 “중국의 민족주의적 해커들은 최소 20년 전부터 세계 각지에서 조직적으로 활동해 왔다”며 “‘깃허브(마이크로소프트 운영 오픈소스 플랫폼)’에 공개된 자료는 이들이 공안부를 비롯한 여러 정부 조직의 후원을 받고 일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논란을 덮기 위해 중국 당국은 자국에서 활동하는 외신 기자들의 보도를 방해하는 수위도 높인 바 있다. 중국외신기자클럽(FCCC)은 지난 4월 초 회원 150여 명 중 101명을 대상으로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2023 취재 환경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엔 응답자의 71%가 ‘자신의 위챗(중국판 대중화 매신저)과 휴대폰이 중국 당국으로부터 해킹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응답했다. 응답자의 55%는 ‘자신의 사무실 또는 집에 중국 당국이 도청 장치 등 감시 장비를 심어놨을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답했다.
보안 전문 외신인 해커뉴스는 지난달 중순 “구글이 중국에 친화적인 여론 조작 네트워크를 적발해 무력화시켰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해커뉴스에 따르면, 해당 네트워크의 이름은 ‘글래스브리지’로 주로 가짜뉴스를 게재하는 가짜 매체들의 웹사이트를 만들어 운영했다. 글래스브리지가 생성·운영한 사이트들은 중국 정부 기조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데 주력했다. 구글은 해당 사이트들에서 나오는 소식이 구글 뉴스와 디시커버 페이지에 노출되지 않도록 여러 방법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사이버 보안을 강화할 혁신에 민관이 힘을 합쳐 제대로 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보안업계 연구원은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중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의 해킹 수법은 날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며 “총성 없는 사이버 전쟁이 연일 발생하는 것으로, 이를 철저하게 대비할 대책 마련에 민관이 머리를 모을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