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구호 아닌 시진핑 집권 3기 핵심 국정과제
주요 회의에서 언급 안 돼, 정치국이 앞서는 모양새
호칭도 ‘시진핑 총서기’ 한 번 뿐, ‘시진핑 동지’ 38회…이례적
중국공산당(중공)의 중요 회의를 전하는 관영 언론 보도에서 ‘중국식 현대화’가 단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아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됐다.
관영 신화통신은 9일 중공 중앙정치국 월례회의 개최 소식을 전하며 올해 경제 정책 성과를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를 전면적으로 건설하는 과정에서 견고한 발걸음을 내디뎠다”고 요약했다.
1년 전인 2023년 12월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중국식 현대화로 강국 건설과 민족부흥의 대업을 전면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과는 대조적이다.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와 ‘중국식 현대화’는 표현 자체만 놓고 보면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중국식 현대화’는 시진핑이 집권 3기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운 용어다.
그동안 주요 회의, 특히 경제 관련 회의에서는 빠짐없이 등장하고 중요한 대우를 받았던 표현이라는 점에서 미묘한 기류 변화를 보여준다는 게 에포크타임스 중국 전문가들의 견해다.
에포크타임스 타이완의 중국 전문가 중위안은 “‘중국식 현대화’는 시진핑의 책사인 왕후닝이 전임자들과 시진핑의 차이점을 두드러지게 하려고 특별히 고안한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중위안은 “하지만 이번 중공 중앙정치국 회의에서는 내년 경제 전망을 발표하며 ‘제14차 5개년 계획의 목표와 과제를 고품질로 완성하고, 제15차 5개년 계획이 좋은 출발을 할 수 있도록 견고한 기반을 마련하라’고만 했다. ‘중국식 현대화’를 언급할 기회가 있었는데 언급하지 않았다”고 했다.
‘중국식 현대화’…책사 왕후닝이 제안한 시진핑 집권 3기 핵심 과제
‘중국식 현대화’라는 용어가 중국 정치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79년 3월 덩샤오핑 시절이었다. 그는 개혁개방과 관련, 중국이 서방을 빠르게 따라잡을 것이라며 이 용어를 사용했다.
30년도 더 지난, 이 낡은 용어를 시진핑이 다시 들고나온 것은 2015년이었다. 그는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설명하며 ‘중국식 현대화’를 언급했다고만 간략히 말했다.
이후 가끔 이 용어를 사용하던 시진핑이 ‘중국식 현대화’를 본격적인 국정과제로 선포한 것은 자신의 정치적 명운이 걸렸던 2022년 10월 제20차 전국대표대회 때였다.
당시 집권 2기 임기 말 불안정한 상황에서 집권 3기를 확정 지을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가 필요했던 시진핑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선언했고 그 추진 방안으로 ‘중국식 현대화’를 제시했다.
중국식 현대화는 서구식 근대화를 거부하고 중국특색 사회주의를 유지하며 현대화를 이뤄내겠다는 것이다. 공동부유, 고품질 발전 등 주요 정책들이 모두 이에 포함된다.
이후 2023년 3월, 시진핑 집권 3기가 출범하면서 ‘중국식 현대화’는 핵심 국정과제에 등극했다. 이 용어는 시진핑 정권의 경제 정책을 총괄적으로 표현하는 용어로 받아들여졌고 주요 회의와 정책 발표, 관영 언론 보도를 통해 끊임없이 중국 내부와 외부 세계로 선전됐다.
외부 인사 심포지엄에서는 언급, 정치국 회의에서만 빠져…위상 격하
관영언론의 보도 시점에서도 이상한 점이 포착됐다. 중앙정치국 월례회의가 열린 9일, 신화통신은 별도 기사를 내고 앞서 6일 ‘당외 인사 심포지엄’이 개최됐다고 보도했다. 3일 전 소식을 이날, 월례회의 보도 이후에 전한 것이다.
해당 심포지엄은 경제 업무에 관한 비(非)공산당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마련됐으며 시진핑이 주재하고 참석해 직접 연설도 했다. 신화통신은 당외 인사들이 “중공중앙의 판단에 전적으로 동의했다”고만 소개하고 대부분 분량을 시진핑 연설에 할애했다.
보도에 따르면 시진핑은 이 심포지엄에서 “현재 중국의 발전은 많은 불확실성과 도전에 직면해 있다”면서도 어려움 극복과 “중국식 현대화”를 강조했다.
신화통신 보도에서 그려지는 모습을 본다면, 당외 인사들이 모인 포럼에서는 시진핑의 ‘중국식 현대화’가 언급됐지만, 공식적인 중앙정치국 회의에서는 시진핑이 추진하는 용어가 빠진 것이다.
중위안은 이 점을 지적하며 “중앙정치국 회의에서의 시진핑 발언과 당외 인사 심포지엄에서의 시진핑 발언은 다른 톤을 나타내고 있다”며 정책 주도권이 시진핑에서 중앙정치국으로 옮겨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신화통신은 또한 8일 시진핑의 근황을 전한 장문의 기사에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38회에 걸쳐 ‘시진핑 동지’라고 칭했다. 총서기란 표현은 단 1회만 등장했다.
중위안은 “선전 기사에서는 총서기라는 직함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해당 기사를 보면 초반부에서도 시진핑을 동지라고 칭하고 중간에 한 번만 총서기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시진핑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는 신호들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중앙정치국, 25명 위원들 간 이합집산…시진핑 측근들 계속 숙청
중국 공산당과 관영 언론들은 스스로를 중공이라 칭한다. 인민망(한국어판) 등 공산당이 운영하는 한국어 매체에서도 ‘중공’ 혹은 ‘중공중앙’이라는 표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중공중앙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줄임말로서 중공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통치기구를 가리킨다. 중국의 명목상 최고 지도기관은 전국대표대회(당대회)이지만, 5년마다 한 번 열리는 비상설 기구이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중공중앙이 통치한다.
중공중앙은 전국대표대회에서 추려낸 370여 명으로 구성된다. 이 중 정식 위원이 205명, 의결권이 없는 후보 위원이 170명이다.
정식 위원 중 25명은 중앙정치국 위원이 되고 다시 여기서 7명을 상무위원으로 뽑는데, 이들이 명실공히 중공의 최고 권력자들이다. 시진핑 역시 중공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중 한 명이다.
시진핑은 그동안 이러한 집단통치 시스템을 1인 중앙집권체제로 돌려놓았지만 최근 리상푸 전 국방장관을 비롯한 측근들의 연이은 낙마로 권력이상설이 불거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