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손자병법의 지혜와 통찰력은 AI시대에도 불변” 손자병법 전문가 노병천 박사

최창근
2024년 12월 11일 오전 10:39 업데이트: 2024년 12월 11일 오전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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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孫子兵法)’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오래 가장 많이 사랑받는 전 세계인의 고전이다. ‘병법’이지만 군사학에 그치지 않고 경영학, 관리학, 정치학, 외교학, 처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 참고 문헌’ 혹은 ‘필수 참고 문헌’으로 자리 잡았다. 전 세계에서 출간된 관련 서적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현대 들어 ‘손자병법’을 자신의 분야에 적용하여 대성한 이로는 손정의(孫正義) 일본 소프트뱅크 창업주가 꼽힌다. 그는 20대에 소프트뱅크를 창업한 이래 인생과 경영 지침으로 이른바 ‘손의 제곱 법칙’을 창시했다. 손의 제곱 법칙은 ‘손자병법’에서 엄선한 14문자에 손정의 본인이 창조한 11문자를 조합한 25문자로 구성돼 있다. 손자의 ‘손’과 손정의의 ‘손’을 곱했다는 의미에서 손의 제곱 법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중국에는 ‘손자천독달통신(孫子千讀達通神)’이라는 말이 있다. 손자를 천 번 읽으면 신의 경지와 통한다는 뜻이다. ‘손자병법’에 잠재된 힘은 무궁무진하다는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손자병법’은 명저(名著)이자 동시에 기서(奇書)로 꼽힌다. 한국에는 손자병법 천 독이 아닌 십만 독 이상을 한 명실상부한 전문가가 존재한다. 노병천 박사가 그 주인공이다.

손의 제곱의 법칙 도식. | 연합뉴스 그래픽.

노병천 박사는 야전(野戰) 군인 출신이다. 육군사관학교 35기 졸업·임관 후 각급 야전 부대 지휘관을 거쳤다. 2003년 육군 제22보병사단(율곡부대) 제53 연대장 보직을 마지막으로 야전부대를 떠났다. 육군대학을 수석 졸업한 그는 모교 육군대학 전략학처장으로 전략학 등을 강의했고 2008년 육군 대령으로 예편했다. 육군대학 재직 시 미국지휘참모대학(CGSC)에서 교환 교수로 3년 세계 각국 고급 장교를 대상으로 강의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미국 미드웨스트대학(Midwest University)에서 크리스천 리더십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미션스쿨 나사렛대 부총장을 지냈다. 대통령 표창, 미국 근무공로훈장(MSM)을 수훈했고, 2003년 육군 개인 최초로 세종문화상 대상을 수상했다.

자타 공인 ‘손자병법’ 대가 노병천 박사를 그의 옛 직장 국방부 청사가 있는 서울 용산구 삼각지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손자병법 대가인데 연구 방법론은 어떻게 되나요?

“군 장교 출신으로서 보다 실질적인 연구를 해 보고 싶었습니다. 고전 연구자들은 문헌 자료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학자들의 연구 방법론이라 할 수 있죠. 저도 기본적으로 문헌 자료를 연구합니다. 강조하고 싶은 더 중요한 것은 학문이 단순한 글 속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부터 현재까지 일관되게 견지해 오고 있는 원칙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학문이 글 속에만 갇혀 있으면 생명력을 잃으니까요. 개인에 초점을 맞춰 볼 때도 이 원칙은 주효합니다. 학문은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소양을 넓히고 ‘인생은 무엇인가?’ 깨달음을 주는 것입니다. 저는 학문을 하는 목적은 삶의 적용이라 생각합니다. 그러하지 못할 경우 죽은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자연인이다’ 유(類)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오는 산인(山人)이나 도인(道人)처럼 산속에 틀어박혀서 세상과 소통하지 않는 사람도 있죠. 나름 삶의 방식이니 이해할 수는 있지만 학문을 함에 있어서는 좋은 것이라 보지 않습니다. 사람이 태어났으면 선(善)한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실천에 옮기며 살고 있습니다.”

노병천 박사가 ‘손자병법’을 처음 접한 것은 육군사관학교 생도 때이다. 전자공학을 전공하는 공학도였던 그는 ‘손자병법’의 매력에 빠져 중국어를 부전공으로 택했다. 학문의 심화를 위해서이다. 요즈음 개념으로 문이과 통섭(統攝)형 인재였던 셈이다. 이후 ‘손자병법’의 세계에 더욱 빠져들게 됐다.

생도 시절 그는 ‘손자병법’ 원문을 기숙사 벽에 붙여 놓고 통독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틈나는 대로 원문을 보고 또 보고 하며 되새겼다.

“다른 사람들은 처음에는 잘 믿지 않는데 저는 손자병법 원문을 최소 10만 회 이상 읽었습니다. 물리적으로 생각해도 하루에 3번만 1년 365일 읽으면 1000회 이상 읽게 되는 것이잖아요.”

노병천 박사는 “어떤 책이든 100번 이상 반복해서 읽으면 문리(文理)가 트인다.”며 말했다. “반복해서 읽고 생각하다 보면 자연 이치를 깨닫게 되는 것이죠. ‘손자병법’은 한 번 읽어서는 안 될 중요한 고전입니다. 번역본이 아닌 원문을 읽는 것이 중요하고요.”

10만 회를 읽는 게 쉽지 않았을 듯합니다.

“지금도 계속 읽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이른바 고전(古典) 반열에 오른 명작들이 다수 존재합니다. 다만 ‘책의 생명력’ 관점에서 ‘손자병법’에 비견할 만한 책은 극소수라 생각합니다. ‘성경’ 정도 있을까 싶네요. ‘손자병법’은 2500년 전부터 현재까지 널리 읽히고, 새롭게 해석되고, 통찰력을 독자에게 선사합니다. 독자층도 넓죠. 일반 독자부터 군인, 정치가, 기업 경영자 등 이른바 오피니언 리더들을 망라합니다.”

노병천 박사는 ‘손자병법’에 평생 천착할 수 있는 원인으로 책 자체의 가치와 더불어 자신의 특성을 들었다. “사실 저는 원래 보병 병과 출신의 야전(野戰) 군인입니다. 보병부대 지휘관으로 일선 부대를 지휘했죠. 국방부에서도 오랜 세월을 보냈지만요. 교수사관이나 정보 병과 장교가 아닌데 학문을 열심히 하게 된 원인은 제가 ‘몰입형 인간’이라서인 듯합니다. 한 분야 공부를 하거나 업무를 할 때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최단 기간에 최대 성과를 내는 것을 추구합니다.”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으면 어떤 장점이 있나요?

“‘손자병법’을 읽기 시작한 지 10년쯤 지나서 한 1000회 정도 읽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성경’에 비유하자면 ‘구약성경’ ‘창세기’ 1장 1절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잖아요. 이 구절도 10대 때 읽었을 때랑 20대, 30대 때 읽었을 때 느낌이 다릅니다. 해석도 달라지고요. ‘손자병법’도 다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허실(虛實)’ 편에서 병형상수(兵形象水)라고 하는데, ‘흐르는 물처럼 순리를 따라야 한다.’ 정도로 해석되잖아요. 초급 장교 시절에는 ‘윗사람 말은 무조건 잘 따르면 된다.’ 정도로 해석하고 실천에 옮겼습니다. 이후 가정도 생기고 계급도 높아져서 지휘할 부하가 늘어나고 하면서 달라졌죠. 연대장(대령)만 되어도 휘하에 대대장(중령)이 3명 있고 연대 직속 참모도 여럿 있기 때문에 어떤 결정이나 명령을 함부로 할 수 없어요. 자연 병형상수의 의미도 다르게 해석해야 하죠.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이 여럿이다. 결정은 더욱 신중하게 해야 한다. 어떻게 내 책임하 사람들은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죠. 나이, 지위, 처한 상황에 따라서 해석은 달라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때마다 ‘손자병법’의 각 구절들은 깨우침을 줬고요.”

야전부대 대대장(중령) 시절 노병천 박사. 그는 각급 지휘관 재직 시 손자병법이 실전에서 도움이 되었다고 회고했다. | 노병천 제공.

군 생활에서 손자병법의 유용성은 어떠했나요?

노병천 박사는 현역 군 생활에서도 ‘손자병법’은 유용한 지침서가 됐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무경칠서(武經七書)’라고 하여 일곱 가지 병법서를 꼽습니다. 유학의 사서삼경(四書三經)에 비견되는 것이죠. ‘손자병법’ ‘오자병법(吳子兵法)’ ‘사마법(司馬法)’‘ 육도(六韜)’ ‘울요자(尉繚子)’ ‘삼략(三略)’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가 그것이죠. 하나하나 좋은 책이고 특장점도 다릅니다. 각각 적용할 수 있는 분야도 다르고요. 주지할 점은 오직 ‘손자병법’만이 대전략부터 소전술을 망라한다는 것입니다. ”

그는 현역 시절 경험을 들었다. “장교 임관 후 소대장-중대장-대대장-연대장으로 이어지는 일선 지휘관 보직을 다 경험했습니다. 지휘 부대 단위가 커질 때마다 병력 수도 늘어났죠. 그때마다 ‘손자병법’이 제시한 방향을 적용해 봤습니다.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맞아떨어졌고요.”

1975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던 노병천 박사는 소위 시절을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한복판에서 보냈다. 계엄군 소대장으로 현지에 파병됐다.

“저는 광주·전남을 관할하는 제31보병사단 예하 소대장(중위)이었습니다. 마침 광주항쟁이 발생하고 저는 ‘장흥교도소를 탈취하려는 시민군을 저지하라.’는 명령을 받고 소대원들과 현장으로 갔습니다. 영화 ‘레마겐의 철교(The Bridge At Remagen)’ 한 장면처럼 외길 도로에서 무장 트럭에 탑승한 시민군과 마주쳤습니다. 상대방도 약 25명, 소대원도 약 25명 도합 50명의 ‘생명’이 총부리를 겨눈 채 마주했습니다. 일촉즉발의 위기였죠. 제 목표는 분명했습니다. ‘인명 살상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죠. 일단 부하들을 인접한 산 위로 올라가게 했습니다. 우발적인 충돌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음으로 시민군을 살려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방법은 단 한 가지밖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혈혈단신 비무장으로 소총으로 무장한 시민군 앞에 섰습니다. 두 손을 들고서 그들에게 ‘저는 이 지역 위수(衛戍) 소대장입니다. 제 임무는 여러분을 무사히 광주로 돌려 보내는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극한 상황이 몇 번 반복된 끝에 시민군은 수긍하고 광주로 돌아갔습니다. 결과적으로 시민군도 제 부하 장병들도 모두 무사했습니다. ‘손자병법’에 등장하는 우직지계(迂直之計), ‘먼 길로 돌아가면서도 곧바로 가는 것과 같은 우회하는 방법으로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을 실제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원문은 ‘군쟁(軍爭)’ 편의 ‘군쟁 중 어려운 점은 먼 길을 곧은길로 삼고, 근심거리를 오히려 이로움으로 삼는 것이다. 그 길을 구불구불 가는 것처럼 하여 적을 이익으로 유인하면 나중에 출발한 군대가 먼저 도착하는 것이니 이는 우직지계를 안다고 하는 것이다(軍爭之難者, 以迂爲直, 以患爲利. 故迂其途, 而誘之以利, 後人發, 先人至, 此知迂直之計者也).’입니다.”

서양에는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명저로 꼽습니다.

“‘전쟁론’도 ‘손자병법’의 영향을 받았다.”며 운을 뗀 노병천 박사는 설명을 이어갔다. “클라우제비츠는 프로이센(독일) 육군 장교였잖아요. 훗날 육군대학 교장 재직 시 ‘전쟁론’을 집필했고요. 젊은 장교 시절 그는 나폴레옹전쟁에 참전했다 포로가 되어 겪었습니다. 한때 유럽을 지배했던 나폴레옹의 전략·전술을 집중 연구하여 모국 프로이센에 기여하고자 하는 생각에 ‘전쟁론’을 썼고요. 나폴레옹의 영향을 받은 책이라 할 수 있는데, ‘전쟁론’의 핵심을 관통하는 사상은 ‘손자병법’의 그것과 일치합니다.”

그는 ‘전쟁’의 본질을 재정의해야 한다고도 했다. 무력을 사용하여 상대방을 파괴하고 굴복시키는 것만이 전쟁의 본질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전쟁이라고 하면 파괴적인 행위만을 생각합니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도 등장하는데 ‘부전승(不戰勝)’, 즉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중요한 개념입니다. 상대방과 싸움을 해도, 국가와 국가가 전쟁을 해도 마찬가지인데 이기든 지든 결국 자신도 다치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전쟁에서 지면 국가는 존망(存亡)의 기로에 서는 것이고요. 전쟁 개념을 제대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불가피하게 전쟁을 하게 되면 승리해야 하는 것이고요.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최선의 방법은 전쟁을 억제하는 것입니다. 손무(孫武)가 강조한 부전승 사상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보이전승(自保而全勝)’을 강조했다. “스스로 보존하면서 온전한 승리를 얻는다는 말입니다. ‘손자병법’ 13편 총 6109자 중 딱 한 자만 남기라면 곧 전(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은 완전(完全)이 아니라 온전(穩全)의 뜻에 가깝습니다. 완전한 승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것을 잃지 않고 잘 지켜낸 승리라는 의미입니다. 손자병법의 핵심은 ‘현명하게 잘 싸우는 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병천 박사는 사람의 적이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제가 강의 중 늘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우리의 적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환경을 파괴하는 것, 지구를 오염 시키는 것 등이 적이 되어야 합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죠.” 그는 전(全)에 대비되는 개념은 파(破)라고도 했다.

파와 전에 대해서 설명해 준다면요.

“’깨트릴 파(破)’는 어떤 의미로든지 좋지 않은 것이에요. 개인이든 군대든 국가든 깨지지 않고 보존되는 것이 좋은 것이죠. ‘손자병법’에서는 ‘파전’을 강조하는데 무엇이든 깨지면서 혹은 상대를 깨트리면서 이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최대한 노력해서 온전하게 보존하라는 것이죠.”

노병전 박사는 완전과 온전의 의미는 유사하지만 근원적으로 다른 면이 있다고도 했다. “완전은 다 갖춰진 것을 의미합니다. 온전은 그보다 나아가 영어 식으로 ‘퍼펙트(perfect)’ 빈틈없이 그 상태가 고스란히 보존된 것을 의미하고요. 그 연장선상에서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 즉 부전승이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힘이든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거나 도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만.

“부전승을 이루는 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영향력’의 개념도 대표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권력이든 재력이든 사회적 지위든 상대방보다 우위에 서면 싸울 일이 없죠.” 노병천 박사는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도 언급했다. 그는 ‘제3의 물결’ ‘권력 이동’ 등 일련의 저서에서 지식 정보화 사회의 도래와 정보의 힘을 이야기했었다.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는 지식이나 정보가 힘의 원천이 됩니다. ‘아우라(aura)’라고 표현할 수 있는 개념도 있는데 권력, 재력, 사회적 지위를 모두 갖추었으니 사람들이 쉽게 대하지 못하겠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격(人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격 혹은 인품이 훌륭한 사람과는 감히 다투거나 맞설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본능이니까요.”

다른 병법서는 일반인에게 생소한 경우도 많은데 손자병법만은 다릅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정도는 알고 있고요.

“‘손자병법’은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강력한 힘을 지닌 책입니다. 군인에게도 그러하지만 경영자나 정치인에게도 통찰력을 줍니다.” 노병천 박사는 ‘손자병법’을 읽고서 현실에 적용하여 성공한 사례로 손정의(孫正義) 일본 소프트뱅크 창업주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도 ‘손자병법’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손정의 회장은 젊은 시절 난치병에 걸려 생사의 갈림길에 섰습니다. ‘책이나 읽다 죽자.’는 심정으로 서적 수천 권을 독파했는데 그중 두 가지 책을 명저로 꼽았습니다. 일본 역사 소설가 시바 료타로(司馬 遼太郎)의 대표작 ‘료마가 간다(竜馬がゆく)’ 그리고 ‘손자병법’입니다. 전작은 일본 메이지(明治)유신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무라이 사카모토 료마(坂本 龍馬)를 다뤘죠.”

‘손자병법’의 가치는 무한하다며 평생을 투자해서 연구하고 강의하고 있는 노병천 박사는 인생의 중요 가치로 시간과 사람 두 가지를 꼽았다.

“시간은 한번 지나가면 돌아오지 않는 가치를 지녔습니다. 무한재가 아닌 유한재입니다.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네요. 다음은 사람입니다. 그중 그 시대의 절대 고수 혹은 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워런 버핏(Warren Buffett)과 식사 한 끼 비용이 최고 246억 원까지 올라갔죠. 속된 말로 미쳤다고 할 만한 거금이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이 가격이 매겨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당대 해당 분야 최고 인물을 만난다는 것은 환산 불가능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절대다수 사람에게 있어 식사 한 번에 200억 원이 넘는 거금을 치를 수는 없지만요.”

평생 ‘손자병법’ 원문을 읽으며 해설서·연구서를 다수 집필한 노병천 박사는 근래 ‘AI손자병법’을 출간했다. 인공지능(AI)과 ‘손자병법’ 대가의 합작품이다. 그는 ‘챗GPT(ChatGPT)’를 활용했다.

노병천 박사는 신앙적으로 신실한 개신교 신자이다. ‘성경’ 관련 책을 다수 집필하기도 했다. 나사렛대 부총장 재직 시절. | 노병천 본인 제공.

책 집필 과정을 설명해 주세요.

약 한 달이라는 단기간에 책 한 권을 완성했다는 노병천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앞서 이야기했는데 저는 이른바 몰입의 귀재입니다. 특정 일에 고도로 몰입하여 단기간에 성과를 내는 유형입니다. 책 집필에도 다른 사람보다 속도가 빠른 편이죠. 나름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달란트라고 할 수 있죠. ‘손자병법’ 관련 서적도 다작(多作)했는데 이 능력이 주효했습니다. 제가 기존 쓴 책에 ‘손자병법’의 핵심 내용은 정리돼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손자병법’ 관련 서적, 논문 등을 남겼고요. 이는 책을 집필한 레퍼런스는 충분히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다음이 중요하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챗 GPT가 세상에 나왔을 때부터 저는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후 업그레이드되면서 성능이 향상됐죠. 단순하게 말하면 ‘손자병법 분야 인간 최고수라 자부하는 나와 인공지능 중 누가 뛰어난지 한번 승부해 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챗 GPT에게 손자병법 특정 구절을 입력하고 해석을 명령했습니다. 번역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 영어로 번역한 구절을 입력했고요. AI는 전 세계 최신 지식을 취합하여 나름 최선의 구절로 번역하죠. 이후 제가 번역한 구절과 비교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AI 번역이 나을 때도 있고, 때로는 영 엉성한 경우도 존재했죠. 이 과정을 거쳐 ‘손자병법’ 13편 전체를 해석했습니다. AI와 인간의 강약점을 제대로 알게 된 셈이죠. 개인적으로 흥미진진한 작업 과정이기도 했고요.”

그는 저자 약력 소개 등에도 AI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챗 GPT에 제 이름을 입력하고 요약 소개를 부탁하니 최신 데이터를 무궁무진 인용하면서 ‘노병천’이라는 한 사람을 소개하더군요. 저도 보지 못했던 참고자료도 인용하고 해서 저도 사실 놀랐어요. 서문, 시사점 등을 요약하는 것에도 AI 도움을 받았습니다.”

책을 쓰면서 얻은 또 다른 수확은 무엇인가요?

“고정관념을 깨트렸다는 것입니다. 저도 사람이니 일정한 틀의 사고에 갇히고 언어 표현도 제한적인데 챗 GPT는 그걸 초월하니까요. AI의 결과물과 제 결과물을 비교해 보면서 저를 더 객관화하게 됐죠. 제가 가진 사고와 언어의 범주를 초월하는 데 도움을 받은 셈입니다.”

AI가 인간보다 뛰어난 점도 존재하지만 한계도 분명합니다.

“‘AI손자병법’ 집필에서도 여실히 느낀 것인데 AI는 인간의 도우미 역할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머물러야 하고요. 예를 들어 특정 분야에 제가 필요한 지식이 있을 때 AI에게 명령하면 방대한 정보를 취합해서 최신의 나름 최고의 정보를 제공합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제대로 된 정보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취사선택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입니다. 이점이 무서운 것이고요. 자칫 잘못하면 AI에게 인간이 종속될 위험을 내포했습니다. 인간이 AI의 수준을 뛰어넘지 못하면 종속되는 것이죠. AI가 선별한 데이터의 진위 여부를 판별하고 고가치 정보인지 저가치 정보인지를 분석할 수 있는 실력을 인간이 갖추어야 합니다. 이 점이 전제되면 AI와 인간은 공존할 수 있고 각종 일의 효율성을 배가시킬수 있죠. 주지할 점은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속담처럼 인간이 실력이 있으면 이를 하지 못하고 AI에게 종속되어 그르친 판단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다음을 조언했다. “저는 ‘손자병법’ 대가니까 AI를 제 전문 분야에 접목해서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들었습니다. 각자 전문 분야가 다를 터인데 AI와 협업하면서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궁극적으로 AI를 뛰어넘은 지식과 통찰력을 소유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