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도 예산안 갈등에 탄핵 정국…마크롱, 야당 사임 요구 거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하원에서 통과된 정부 불신임 수용을 거부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5일 밤(현지시각) 생중계된 대국민 연설에서 극좌·좌파 정당과 극우 정당이 “무질서를 선택했다”고 비난하며 야당의 사임 압박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날 연설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미셸 바르니에 총리가 모든 의회 그룹에 양보했음에도 정부가 불신임을 받았다”며 “극우와 극좌가 반(反)공화주의 전선을 만들어 예산안과 프랑스 정부를 무너뜨리기로 결정했다”고 비판했다.
프랑스 하원은 전날 극좌·좌파연합인 신민중전선(NFP)이 발의한 정부 불신임안을 표결에 부쳐 하원 재적 574명 중 찬성 331표로 통과시켰다.
신민중전선이 보유한 의석은 193석으로 의결에 필요한 과반(288표 이상)에 훨씬 못 미친다. 하지만 126석을 보유한 우파 정당 국민연합(RN)이 거들고 나서면서 정부 불신임안을 가결했다.
자유주의 성향의 중도 우파 정당인 여당 르네상스(RE) 소속인 마크롱 대통령은 국민연합이 극좌 세력에 동참한 것은 “자신을 뽑은 (우파) 유권자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지적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우파 정당인 국민연합이 극좌 세력과 연합한 것은 “오직 한 가지, 즉 대통령 선거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정부 “재정적자 심각, 지출 삭감해야”…좌파연대 “복지 축소 반대”
이번 정부 불신임은 2025년 예산안을 둘러싼 갈등으로 촉발됐다.
프랑스는 지난해 1540억 유로(약 227조원)의 막대한 재정 적자를 지고 있다. 경제성장률은 지난 2010년 이후 1% 전후 저성장에 머물고 있는 가운데, 복지를 위한 공공지출은 늘고 거둬들이는 세수는 줄어드는 어려운 처지에 빠져 있다.
이에 마크롱 정부는 400억 유로(약 60조원)의 지출을 삭감하고 대기업과 부유층에 더 많은 세금을 거두는 예산안을 발표했다.
이번 대기업·부자 증세안은 매출액에 따라 법인세를 20.6~41.2% 할증하고, 연소득 25만 유로(약 3억 7천만원) 이상 고소득자의 소득세를 조정하는 방안이 주요 골자다. 프랑스 납세자 0.3%인 6만 5천만 가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극좌·좌파연합은 교사직과 공공일자리가 수천 개 감소하는 등 복지가 축소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에 마크롱 정부의 총리인 미셸 바르니에가 총대를 매고 나섰다. 바르니에 총리는 의회 표결 없이 예산을 처리하는 ‘헌법 49조 3항’을 발동해 의회 투표 없이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이 조항에 따르면 정부가 ‘긴급 상황’이라고 판단하는 경우, 총리 책임 아래 국무회의에서 승인한 법안을 의회 표결 없이 통과시킬 수 있다.
바르니에 총리는 거센 반발에 일부 요구사항을 수용했지만, 계속 의회가 예산안에 제동을 걸고 나서자 최후의 수단으로 이 조항을 발동한 것으로 평가됐다.
이번 정부 불신임안이 극좌·좌파, 우파의 합동으로 통과되면서, 바르니에 총리 내각은 역대 최단기 내각으로 기록될 상황이다.
극좌 정당, 마크롱에 퇴진 요구…탄핵안 발의하고 퇴진 요구
프랑스는 지난여름 총선으로 어느 당도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며 정치적 불안정이 고조돼 왔다.
마크롱 대통령은 좌파연합인 신민중전선이 추천한 총리 후보 대신 우파 성향인 공화당 소속 바르니에를 총리로 임명했다.
극좌 성향인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는 이에 반발하며 탄핵안을 발의하며 마크롱 정부를 상대로 한 투쟁을 선언했다. 이번 정부 불신임 이후에는 마크롱 대통령에게 재차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퇴진은 없다는 단호한 입장이다. 그는 “여러분이 민주적으로 위임해 준 권한은 5년”이라며 “나는 끝까지 그 권한을 온전히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의회가 끝까지 예산안 통과를 거부할 경우 내년 프랑스는 예산 부재로 행정 기능 마비 사태를 맞이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 한국도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22건의 공직자 탄핵, 4조1000억 원을 삭감한 예산안을 밀어붙이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이를 비상사태로 판단, 계엄령을 선언했다가 해제하는 등 파란을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