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트럼프 복귀 대비해 750조원 규모 공동방위기금 설립 논의

“트럼프 2.0, EU가 국방력 강화하는 데 촉매 역할할 것”
유럽연합(EU) 국가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백악관 복귀에 대비해 5천억 유로(약 749조원) 규모의 공동방위기금을 마련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5일(현지시각) 유럽 국가들은 방위비 지출이 부족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에 대한 안보 보장을 철회할 수 있다는 트럼프 당선인의 재집권을 앞두고 보다 과감한 국방비 조달을 모색 중이라고 보도했다.
논의에 참여한 6명의 관계자에 따르면, EU 회원국들은 참여국이 보증하는 채권을 발행하고 유럽투자은행이 특수목적기구(SPV)와 재정 기능을 관리하는 기술적 역할을 맡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
정확한 자금 규모는 논의 중이지만, 최소 5천억 유로를 목표로 하고 있다. EU 행정부 격인 EU 집행위원회 위원장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은 향후 10년간 유럽의 안보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금액이라고 말했다고 관계자들은 FT에 밝혔다.
나토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 반도를 강제 합병한 지난 2014년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로 끌어올리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같은 해 이 기준을 충족한 회원국은 미국을 제외하면 영국과 그리스 단 2개국뿐이었다.
또한 나토는 2023년 방위비 비율을 GDP의 2% 이상으로 상향했다. 2022년 2월 발발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올해 이 기준을 충족한 국가는 전체 회원국 32개국 가운데 23개국에 불과하다.
트럼프 당선인은 나토가 미국의 군사력에 의존하며 자국 방어에 소홀해 안보 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방위비를 GDP의 3%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해왔다. 대선 기간에는 적정 수준의 방위비를 내지 않는 나토 회원국은 러시아의 침공을 받아도 돕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힘이 없는 평화는 공허한 외침’이라는 지론에 따른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경고에만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압박 조치에 착수했다. 지난 20일에는 매슈 휘태커 전 법무장관 대행을 나토 대사에 지명하면서 “전 세계에 힘에 의한 평화와 자유, 번영을 증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휘태커 전 대행은 나토 대사에 임명되면 나토 동맥국에 대한 방위비 증액 요구에 중점적으로 힘을 쏟을 것으로 전망된다.
FT에 따르면 이번 공동방위기금 논의는 EU 회원국의 달라진 상황 인식이 배경이 됐다. 그리스 총리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는 “EU 지도자들은 당초 트럼프의 제안에 미온적이었으나 트럼프의 복귀, 도전적인 안보 환경에 새삼 긴박감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방위에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는 의견이 점차 커지고 있으며, 공동의 이익을 위한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한 공동 유럽 메커니즘을 수립할 때가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국산 무기 수입에 박차를 가해 주목받고 있는 폴란드 재무부 부장관 파베우 카르보니크 역시 “유럽은 방위 투자를 늘리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우리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정치컨설팅업체 유라시아 그룹의 무스타바 라흐만은 “트럼프 2.0은 EU가 우크라이나를 위해, 자체 안보와 방위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하는 데 촉매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