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 다가오면서 미국과 중국 간 무역 전쟁 2막이 가까워지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정학적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 ‘일대일로’ 구상을 재차 강조했으나 트럼프의 관세 장벽이 일대일로에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5개국 연합체인 브릭스는 지난 10월 러시아 카잔에서 개최한 정상회의에서 미국 달러화의 지배력을 대체할 새로운 국제 결제시스템 구축을 모색했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브릭스 국가들을 향해 “달러 패권에 도전하면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달 30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서“ 브릭스 국가들이 달러에서 벗어나려고 하는데 미국이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브릭스의 도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바이든 행정부와는 다르게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브릭스 정상회의에는 설립 멤버인 5개국, 추가 가입한 4개국(이란, 아랍에미리트연합, 이집트, 에티오피아) 등 총 35개국과 유엔(UN) 등 6개 국제기구대표단이 참석했다. 브릭스의 영향력이 나날이 확대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실질적인 브릭스 맹주인 중국은 브릭스 회원국을 중심으로 위안화 국제화 야욕을 확대해 왔다.
글로벌 시장에서 위안화 결제율은 지난 7월 기준 4.74%로 달러화(약 80%)에 비하면 매우 약소하지만, 브릭스 내에서 위안화 결제 혹은 제3의 공동 통화 도입이 성공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2023년 기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브릭스가 차지하는 비율은 37.3%로 서방 주요 7개국(G7,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의 29.3%를 능가한다.
앞서 브릭스의 달러화 패권 도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바이든 행정부와 달리, 트럼프가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 이유다.
일대일로와 브릭스 VS 세계 소비재 시장 30% 차지한 미국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산 수입품 관세 목표치를 60%로 제시했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100%, 200%로까지 높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직 인수팀은 중국의 우회 수출까지 꼼꼼히 틀어막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인수팀은 중국의 대규모 자본이 투입돼 건설된 페루 창카이 항구를 지목하며 이 항구를 통해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제품에 중국산 제품과 마찬가지로 6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방침은 중남미에 대한 투자와 교역을 확대하며 미국의 관세 장벽을 우회할 통로로 이용하려던 중국 공산당의 계획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 마찬가지로 풀이된다.
글로벌 경제 분석가들은 중국이 트럼프 집권 1기 때와는 달리 2기 무역전쟁에는 대항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자국 경제가 침체한 데다 과잉 생산한 물품에 대한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의 경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데이비드 황은 미국이 경제와 금융, 금전적, 기술적 분야에서 세계 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어 관세 정책으로 높은 효율을 기대할 수 있다고 에포크타임스에 말했다.
이에 따르면 미국은 전 세계 소비재의 30%를 차지하고 있어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로서는 외면할 수 없는 거대 시장이다. 대미 수출품 관세가 인상되면 중국을 비롯한 브릭스, 일대일로 가입국들은 수출 규모가 크게 줄어들어 경제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미국은 글로벌 과학기술 연구 투자 40%, 세계적 기술기업 50% 이상을 차지한 선두 국가다. 미국이 기술 분야에서 제재를 가하면 관련 국가들은 심각한 병목 현상에 시달리게 된다. 이 밖에 2023년 기준 전 세계 GDP의 25.9%를 차지한 미국의 규모도 중국(16.9%)을 압도할 무기다.
황은 “높은 관세 뒤에는 자국의 생산량과 시장 소비 능력에 대한 미국의 자신감이 있다”며 중국과 일대일로 국가들은 이러한 도전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JP모건 체이스의 경제학자 자한기르 아지즈 팀은 지난달 ‘폭풍에 대비하다’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신흥 경제권이 트럼프의 무역 관세 인상 약속으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또한 보고서는 “말할 것도 없이 중국이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이라며 “실질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무역 정책이 가장 먼저 바뀔 것으로 예상한다”고 적었다.
자금력 떨어진 중국, 덫이 돼 돌아온 일대일로
최근 시진핑 주석의 발언을 보면 중국 공산당이 처한 곤경이 드러난다. 시진핑 주석은 이달 2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일대일로 건설사업 심포지엄에 참석했을 때 “국제 환경이 엄중하고 복잡하다”고 시인했다.
시진핑은 보호무역주의, 지정학적 갈등 등을 언급하며 “우리는 다양한 위험과 도전에 적절하게 대응해야 한다”, “공동의 이익을 건설하고 높이는 관계를 적절하게 처리하며 유익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에서 중국 공산당의 이익이 위협받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일대일로는 시진핑이 2013년 제안한 초국가적 경제벨트 건설 프로젝트다. 지난 10년간 60개 이상 국가가 참여했으나 핵심은 중국 공산당이 관계를 주도한다는 것이다. 일대일로는 중국 내 과잉생산 물품을 처분하고 전망이 없는 국가에 막대한 차관을 제공해 빚에 빠지게 하는 사업으로 악명 높다.
데이비드 황은 “전 세계 외환보유고의 약 60%가 달러화”라며 트럼프의 100% 관세 위협은 브릭스 회원국을 비롯해 달러화에 대항하려는 세력의 내부 분열을 일으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일대일로 참여국은 부채가 많은데, 부채의 상당 부분이 미국 달러화로 표시된다. 미국이 달러화 가치를 높이거나 사용을 제한하면 즉각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비드 황은 또한 “지난 20년 동안 중국은 외환 흑자 중 85% 이상을 미국에서 거둬들였다”며 “중국은 일대일로 참여국에 수출을 하고 있지만, 이들 국가에서 벌어들이는 외환은 얼마 되지 않는다. 미국이 100% 관세를 부과하면 중국이 벌어들이는 달러화는 급감하고 결국 중국의 외환보유액도 급속히 소진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대일로는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정치적 영향력까지 확대하려는 프로젝트이지만, 문제는 자금이다.
데이비드 황은 “중국은 현재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와 일대일로 참여국에 매년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즉, 지속적으로 미국 달러화를 소모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일대일로 계약에서는 중국이 자금을 제때 제공하지 못하면 참여국이 계약을 파기할 수 있게 돼 있다”고 지적했다.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중국의 강대한 자금력에 기반을 둔 만큼, 자금력이 고갈될 경우 그동안 공들여 추진한 일대일로 사업이 참여국의 연이은 계약 파기로 허물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황은 일대일로의 사업 구조 자체에도 취약점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 프로젝트는 당초 중국에 대한 유럽과 미국의 경제적, 정치적 압력을 완화하고 글로벌 경제, 정치적 질서를 재편하려는 의도로 추진됐다”며 “하지만 글로벌 시장의 분열이 일어나면서 하나의 체제로 묶어 저항한다는 구상이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중국 공산당이 유럽과의 관계, 미국과의 관계가 그처럼 급격하게 변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여기에 중국 자신도 경제 침체, 정치 체제, 인구 노령화, 실업률 상승 등 어려움이 많아 미국의 관세장벽에 대처할 여력이 빠듯하다”고 덧붙였다.
대만 난화대학교의 국제관계 전문가인 쑨궈샹 교수는 에포크타임스에 “미중 무역전쟁 속에서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중국 공산당의 대응 역량과 글로벌 무역 동향에 달렸다”고 말했다.
쑨 교수는 “확실한 것은 무역 비용이 오르고 있다는 점”이라며 “세계 주요 시장 중 하나인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주축을 이루는 중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약화하고 이들 기업은 공급망을 재편하고 운영 비용을 절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 기업가들의 역량을 제한하고 국유기업과 계획경제로 무게 중심을 옮겨 온 시진핑 지도부가 급속하게 변화하는 경영 환경에 기민하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쑨 교수는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리스크 분산, 시장 다각화, 신흥시장과의 협력 강화라는 전략적 장점은 존재하지만, “직설적으로 말하면 신흥시장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시장”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세계 소비재 30%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 시장을 놔두고 열악한 시장에 의존해 미국과 그 동맹국 유럽과 경쟁한다는 전략은 논리적 모순”이라고 평가했다.
경기 부양책 내놓으라는 시장, 실망감 안기는 중국…왜?
지난 10월 8일 중국 경제를 총괄하는 부처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 부양책을 발표했지만 내년 예산에 책정된 투자 계획을 미리 앞당겨 발표하는 수준에 그쳤다. 시장이 기대했던 대규모 추가 부양책은 없었다.
한 달 뒤인 11월 8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는 제12차 회의 폐막 기자회견에서 5년간 10조 위안(약 1944조원)을 들여 지방정부 부채를 삭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경기를 직접 살리는 것이 아니라, 일단 고금리 단기 부채를 해결하겠다는 ‘급한 불부터 끄기’ 정책 발표에 시장은 실망감이 커졌다.
중국의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은 투자자들이 중국 경제 악화에 대한 우려와 중국 인민은행의 향후 완화적 통화정책에 대한 우려로 5주 연속 하락했다. 12월 2일 국채수익률은 1.9750%로 하락해 2002년 4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데이비드 황은 중국 공산당의 우선순위는 경기 부양이 아니라 미국과의 대결에 대한 준비, 미국의 경제 제재에 맞설 수 있도록 내부 순환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중국이 사회적 다윈주의(Social Darwinism)를 시행해 일반 대중의 복지를 소홀히 하고 있어 사람들이 감히 소비하지 못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다윈주의는 진화론을 사회학에 적용한 이론이다. 사회는 일정한 방향으로 진보·발전하며 현재는 과거보다 발전된 사회라고 전제한다. 동물 세계의 적자생존, 자연선택을 인류 사회에 그대로 적용함으로써 공산당 사회에 적응한 당원, 지도부를 제외한 일반 대중을 도태 대상으로 낮춰 본다.
그는 “이른바 ‘중국특색의 사회주의경제’는 중앙정부의 계획경제에 따라, 인민(대중)에게는 아주 적은 양의 자원만 할당한다. 따라서 소비가 충분하지 못하다. 사회주의 체제상 내부 순환은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중국 공산당은 매년 12월 중순 중앙경제공작회의를 개최해 다음 해 경제 기조를 확정하며 회의를 마치고 대략적인 방향을 담은 문건을 발표한다. 이제는 강도 높은 경제 부양책이 나와줘야 한다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하지만 대만 난화대 국제관계 전문가 쑨 교수는 “중국 공산당 당국은 아직 기존 정책의 효과를 평가하고 있을 것”이라며 “상황이 너무 복잡해 내부 논의를 마무리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 이 기사는 닝하이중, 뤄야 기자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