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55분짜리 尹 계엄령, 정치쇼로 그치지 않기를”

이진곤 전 국민일보 주필

이윤정
2024년 12월 05일 오후 2:12 업데이트: 2024년 12월 05일 오후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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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3일 오후 10시 25분,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에서 긴급 특별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이후 155분 만에 국회의원 190명 만장일치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됐다. 곧이어 오전 4시 30분, 국무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안’이 의결되면서 전날 내려졌던 비상계엄이 해제됐다.

이를 두고 국내외에서 다양한 해석이 쏟아지는 가운데 이진곤 전 국민일보 주필은 “솔직히 윤 대통령이 무슨 생각으로 155분짜리 비상계엄을 선포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진곤 전 주필은 경희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국민일보 논설고문을 지냈고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새누리당 중앙윤리위원회 위원장, 자유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에포크타임스는 지난 4일 이 전 주필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계엄령 발동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데는 나름대로 사정과 처지가 있었겠죠. 지금 국회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거의 완전히 장악하고 있고, 대통령으로서 정치를 리드할 수 있는 여건이 전혀 안 돼 있죠. 야당의 입법권이 대통령의 행정권보다 앞서는 게 사실 아닙니까? 야당의 법안을 거부하는 것만으로도 바쁘고 김건희 여사 특검이 세 번째 발의된 상황에서 의회 권력에 맞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 무엇인가 나름대로 고민하다가 계엄령 말고는 없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현재 민주당 의석만으로도 개헌이나 대통령 탄핵 말고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구도거든요.”

“대통령으로서 마지막으로 거대 야당에 휘두를 수 있는 정치적 무기라고 생각했겠죠. 문제는 무모했다는 겁니다. 1987년 9차 개헌 이후 사실상 계엄을 선포할 수 없게 돼 있습니다. 헌법 77조에 계엄령 규정은 있지만, 대통령이 계엄선포권을 쉽게 행사할 수 없는 구조로 만들어 놨죠. 더구나 사람들 기억 속엔 군사 독재 시절 고통스러운 경험이 있습니다. 대통령도 이 때문에 계엄을 쉽게 선포하지는 않았을 텐데 야당에 대한 반감이 너무 커서 그러지 않았는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윤 대통령이 무슨 생각으로 155분짜리 비상계엄을 선포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헌법 77조 제5항은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무조건 해제하도록 규정했어요. 현재는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해도 민주당만으로도 충분히 해제를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이죠. 또 계엄군이 사법권은 대신 행사할 수 있지만, 입법권은 간섭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이번에 계엄사 포고령에 나온 ‘정치 활동 금지’에 대한 법적 근거도 없고요.”

“대통령이 계엄 선포를 통해 얻으려는 목표에 닿기 위한 노력을 하기도 전에 계엄령을 해제해야 하는 겁니다. 엊그제 계엄 선포하고 군인 30~40명 들어가고 했지만,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단 말이죠. 윤 대통령은 법률을 잘 아는 사람인데 왜 아무 효과도 기대할 수 없는 그런 무모한 계엄선포를 했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나는 이렇게 억울하고 민주당은 저렇게 나쁘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는지, 아니면 대통령이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는지 모르겠는데요. 특별한, 어떤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서 그걸 달성하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안 될 걸 뻔히 알면서도 요란스럽기만 한, 이뤄질 수도 없었다는 점에서 허망한 정치쇼였다고 봅니다.”

-만일 윤 대통령이 대안도 없이 계엄령을 선포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도 궁금합니다. 한 총리, 최 부총리 포함해서 전 국민이 궁금할 겁니다. 들리는 말로는 계엄령 선포를 서둘렀답니다.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이 반대하고 간곡히 말렸는데도 대통령이 워낙 흥분해서 (그 말을) 안 들었다고 하더군요. 김건희 여사 특검이 또 요구되고 중앙지검장을 비롯한 이재명 대표 수사하는 검사 3명이 탄핵 소추 대상이 됐잖아요. 그러니 대통령으로서 더 밀릴 데가 없다는 인간적인 분노도 있었을 거예요. 이쯤 되면 나도 수단이 있고 무기가 있다, 이런 걸 과시하려 한 것 같은데, 뒷일은 생각 안 한 거죠. 대통령의 권위와 힘으로 밀어붙이면 정국이 크게 출렁일 거로 생각했을 수도 있는데, 뭘 믿고 민주당이 (계엄) 해제 요구를 결의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는지 그걸 모르겠어요.”

-‘계엄 선포’에 대한 개인적 입장은 어떠신가요?

“대통령이 헌법에서 보장된 권한을 행사해서 비정상적인 정치 과정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그건 대통령으로서의 책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부의 비상계엄 같은 구시대적 대응을 개인적으론 지지하지 않습니다. 옛날 기억이 있는 사람들은 계엄령이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는 걸 압니다. 통치권자가 국회도 바로 봉쇄해 버릴 수 있다는 것을요. 그렇지만 87년 헌법 개정을 통해 의회 권력에는 손을 못 대게 됐죠. 대통령 계엄 선포 후 계엄사령부에서 포고령을 통해 의회, 지방의회, 정당 활동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는데 이건 그 자체가 하나의 위헌이 될 수 있거든요. 옛날처럼 ‘계엄’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 통치자 입장에서는 야당의 입법 횡포에 대해 어떻게든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 있겠죠.”

“법률 전문가인 대통령이 설마 헌법 조항을 우회해 가면서 계엄을 선포했을 때는 나름 정밀한 대안이 있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어떤 수단을 통해서든 야당의 입법 횡포에 일부라도 제동을 걸 수 있는 법이 없을까, 정치 풍토를 개선할 수 없을까, 대통령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서 상황을 정리해 줬으면 좋겠다는 기대는 늘 하고 있었죠. 그러나 그것이 계엄령으로 나타났다는 건 굉장히 유감입니다. 한편으로는 너무 쉽게, 허망하게 한밤의 정치 쇼로 끝난 것에 대해선 한편으로 배신감이 들기도 하고요.”

-민주당에서 ‘계엄 가능성’을 처음 언급한 발언이 회자되고 있는데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기사회생의 기회를 열어줬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8월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처음으로 계엄령 발동 가능성을 언급했고 용산 대통령실에선 이를 괴담 선동으로 규정하며 반발했지만, 민주당은 지속해서 의혹을 제기했죠. 저는 이걸 민주당의 ‘미끼’로 봅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국군 기무사가 계엄 문건을 만들었다 해서 적폐 청산 차원에서 부대 자체를 없애버린 적이 있거든요. 민주당이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대통령실에서) “절대 아니다”라고 그렇게 반박하는데 계속 몰아붙였어요. 윤 대통령은 이게 미끼인 줄 모르고 민주당이 계엄을 제일 겁낸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죠.”

“그런데 계엄령이 실패할 게 뻔히 보이고, 실패하고 나면 계엄에 대한 책임 문제가 생긴단 말이죠.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라는 요건이 갖춰지지 않았죠. 한마디로 계엄 선포 요건인 ‘국가비상사태’가 아니라는 건데 그걸 민주당이 노렸을 수 있어요.”

“민주당이 계속 윤 대통령을 압박해 들어가지만, 뭔가 획기적인 돌파구는 마련하지 못했거든요. 그저 법률 거부하고, 이 대표 재판은 계속되고 하니까 민주당도 대통령을 크게 압박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했는데 계엄 선포가 딱 맞았던 거죠. 민주당은 실제로 그렇게 했고, 윤 대통령은 지금 어떻게 됐나요? 민주당 측은 탄핵소추안을 발의했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친한파 인사들은 적극적으로 이재명 편에 서서 해제 요구안을 통과시킴으로써 힘을 얻은 셈이죠. 국민들의 계엄령에 대한 공포심, 거부감도 크기 때문에 대통령에 대한 신뢰는 더 떨어지겠죠. 지금도 정부가 무력증에 빠져버린 모양새인데 아무래도 이재명 대표가 앞으로 재판에서도 유리해질 수도 있고요. 민심도 이 대표 쪽으로 몰릴 수 있고 대통령 될 때까지 시간만 끌어주면 되는 거니까, 결국 이재명 대표가 회생할 길은 열어주고 자신은 죽는 이런 상황이 돼 버린 것 아니겠습니까?”

-만일 계엄령을 해제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헌법상 해제를 안 할 수 없게 돼 있습니다. 끝까지 밀어붙이겠다든지 국무회의를 열어서 해제를 결정하는 시간을 끌면서 계엄령의 목적 몇 개를 이루겠다, 이렇게 판단했을 수도 있지만, 윤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법을 잘 압니다. 검사 시절 자신 있게 집행관 역할도 했지만, 법의 무서움을 누구보다도 잘 안단 말이죠. 박근혜 대통령 특검 수사팀장을 맡아 박 대통령이 32년 징역형을 받도록 했으니 그 점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잖아요. 과거 전두환, 노태우가 나중에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도 잘 알기 때문에 대통령이 국회에서 해제하라고 요구하는데 못 하겠다고 할 수는 없었을 거예요. 만일 그런데도 해제하지 않았으면 헌법 위반이 됩니다. 그렇다고 계엄령을 무한정 끌고 간다면 독재자가 되는 것이고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게 되겠죠. 또 국회 장악을 위해 군대를 동원했다고 해석되면 내란죄나 내란미수죄가 적용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점을 다 고려한 것 같습니다.”

-이번 일로 인한 타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1987년 개헌 이후 37년 동안 난관도 있었지만, 대통령 단임제가 대체로 잘 이어져 왔죠. 외국에서도 한국을 경제적, 정치적으로 매우 성공한 나라로 인정하는데 이번 일로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나라인가 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고 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겁니다. 한동훈 대표를 비롯해 여당 측에서도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에는 반대한다는 인식도 확산해 있을 것이고, 그나마 사태가 신속하게 정리됨으로써 우리나라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안한 시선은 금방 걷힐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국민은 심리적으로 동요됐다가도 평정심을 찾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IMF 당시에도 그랬고요.”

-이 난국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 있을까요?

“별다른 방안은 없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재명 대표는 ‘차기 대통령’이라는 욕망 때문에 지금까지 이렇게 의회 정치를 왜곡시켜 왔거든요. 사법 리스크를 줄이고 징벌을 면하기 위해서 민주당이라는 거대한 정당을 지배하고 또 그 정당이 사실상 의회를 지배하고 있죠. 이 대표는 8개 사건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모든 혐의에서 무죄를 받을 수는 없을 테니 민주당이 바쁘죠. 불확실성을 최대한 제거하려다 보니 재판을 질질 끌거나 대선을 앞당기려는 것이고 대통령 임기 단축, 대통령 탄핵안도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민주당이 정국을 안정시키고 상식의 정치로 돌아간다는 건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한 개인이 대통령 되겠다는 목표 하나로 정당을 사병(私兵)처럼 부리는 나라가 어디 있나요? 국회의원이 국민 세금으로 월급 받으면서 입법, 의정 활동보다 이재명 대표의 안전 확보에만 총력을 기울인다는 게 말이 됩니까? 명색이 정치 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재명 대표도 변호사 출신인데 자기가 뭘 얼마나 잘못하는지 몰라서 그러겠습니까? 민주당은 절대로 이 상황을 완화하거나 한 걸음이라도 뒤로 물러서거나 하지는 않을 겁니다.”

-더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지금의 헌법 구조는 입법부가 행정부 사법부의 상위에 있습니다. 게다가 특정 정당이 국회의 입법 과정을 장악하게 되면 국가의 권력과 기능은 대통령이 아니라 그 정당의 대표에게 넘어가게 돼 있죠. 현재 민주당은 제동력을 상실한 폭주 기관차처럼 보입니다. 걸핏하면 국회 본회의나 상임위원회에서 소리를 지르고, 사흘이 멀다고 탄핵소추안, 특검법안을 발의하고 있죠. 특히 이 대표 수사를 담당하는 검사들을 골라서 탄핵소추를 발의하거나 의결하는, 후안무치한 저항 행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당은 어떤 제동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정부는 속수무책 당하고만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대의 민주정치는 의의를 상실하고 민주공화의 정치는 권위주의 독재 세력에 압도되고 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