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될 것인지 관심의 초점이었던 미국의 경제정책 총책임자인 차기 연방 재무장관에 헤지펀드 설립자 겸 억만장자 스콧 베센트가 후보자로 지명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22일(현지시각) 베센트를 차기 행정부 재무장관으로 지명했다.
트럼프는 세금 인하, 규제 완화, 관세 부과 등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들의 호응을 얻은 정책을 실행할 중책을 베센트에게 맡길 예정이다.
차기 재무장관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인 인물은 크게 3명이다. 그중 하나인 유명 헤지펀드 매니저 존 폴슨은 자진 하차했고 이후 투자은행 캔터 피츠제럴드의 최고경영자(CEO)인 하워드 러트닉와 베센트의 2파전으로 압축됐다가 베센트가 최종적으로 낙점을 받았다.
베센트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과 인플레이션 우려 중간에서 균형을 잡아줄 인물로 평가된다. 수입품에 관세를 높이면 물가가 올라가 인플레이션을 심화할 수 있다는 게 경제학자들의 견해다.
트럼프가 재무장관 후보자들을 놓고 고민하던 이달 중순, 워싱턴포스트(WP) 경제전문기자 제프 스타인은 “(트럼프는) 관세의 영향과 시장 반응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관세 정책과 관련해 이달 초 CNBC와의 인터뷰에서 “관세를 점진적으로 올리는 방안을 제안하겠다. 트럼프는 결코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지난 15일 폭스뉴스에 보낸 기고문에는 “다른 나라가 미국 시장에 더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관세를 협상에서 레버리지로 활용해야 한다”며 미국의 산업을 보호하는 일이 관세가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관세 공약 추진할 적임자…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전향
베센트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했으나 지난 2016년 대선을 계기로 트럼프의 방식에 지지를 보낸 특별한 경력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지난 10일 방송된 ‘더 스톤 라디오 쇼’에 출연해 “나는 트럼프 대통령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며 “월스트리트에서 그를 지지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라고 말했다.
베센트는 트럼프의 동생인 로버트 트럼프(2020년 사망)와 30년간 친구 사이로 지내며 트럼프와는 가족끼리 아는 관계였으나, 2000년 이래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고어,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에 기부한 민주당 후원자였다.
그는 2016년 클린턴(힐러리)과 트럼프 대결 때부터 트럼프에도 기부를 하기 시작했는데, 이번 대선 때는 본격적으로 트럼프 지지자로 변모해 수석 경제 고문직을 맡아 방송 토론에 경제 패널로 참석, 트럼프의 공약을 옹호했으며 수천만 달러를 모금하기도 했다.
트럼프의 승리 이후, 베센트는 월스트리트(WSJ) 기고문에서 “시장은 더 높은 경제 성장, 더 낮은 변동성과 인플레이션, 그리고 모든 미국인의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에 가격을 책정하고 있다”며 미국이 대선 결과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좌파 거물 소로스와 사제 관계…트럼프는 ‘경험’ 긍정 평가
미국 보수 진영에서는 베센트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그가 좌파 거물 후원자인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 밑에서 금융 경험을 쌓은 ‘제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소로스가 영국 파운드화 대폭락을 예견하고 거액을 베팅해 영국 중앙은행을 상대로 승리한 사건인 1992년 ‘검은 수요일’ 때 활약한 인물이다.
또한 소로스 펀드의 최고투자책임자(CIO)로 재직하던 지난 2013년에도 엔화 매도를 주도해 석 달 만에 거의 10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괴력을 과시했다.
이후 소로스로부터 독립해 헤지펀드 회사 ‘키 스퀘어 그룹’을 설립, 주로 지정학적, 경제학적 정보에 근거해 약 6억 달러의 자산을 성공적으로 운용하는 회사로 키워냈다.
WSJ에 따르면, 트럼프는 이처럼 소로스 밑에서 일하며 금융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스스로도 막대한 부를 거둔 베센트의 경험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컬럼비아 비즈니스 스쿨의 투자 교수인 마이클 올리버 와인버그는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베센트에 대해 “내가 함께 일해 본 투자자 중 가장 영리하고 기민한 인물의 하나”라며 “소로스처럼 시장을 몇 수 앞 내다본다”고 말했다.
“세계화가 미국 노동자 불평등 초래” 관세주의 옹호
베센트는 금융 분야에서 수십 년의 경력과 거시경제 및 지정학적 위험에 대한 심층 분석과 실제 투자 경험을 갖춘 상태에서 트럼프의 관세 정책을 지지한다는 몇 안 되는 경제 전문가다.
그는 올해 10월 이코노미스트 기고문에서 세계화가 미국의 불평등 증가를 촉발해 사회경제적 격차가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서구 중산층과 노동계급은 점점 세계화를 경계하고 있다.” “국제 무역 시스템의 이익을 보존하는 유일한 방법은 잘못된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를 현재 상황에 맞게 업데이트하는 것이다.”
그가 말한 ‘업데이트’의 핵심 중 하나는 관세 정책이다. 지난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베센트는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해 미국의 재정 수입을 확대하고 기업의 생산 재개를 장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재정 적자 해소는 트럼프 차기 행정부의 주요 과제 중 하나다.
베센트는 트럼프 행정부에 2028년까지 재정 적자를 GDP 3%로 줄이고, 규제 완화를 통해 GDP 성장률을 3%로 끌어올리고, 매일 300만 배럴의 석유를 추가 생산하는 ‘3-3-3’ 경제 목표를 세울 것을 제안했다.
이와 함께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정부 재정 지출 삭감과 기타 지출 삭감 계획을 포함해 미국 국가부채 문제 해결이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며 “이번 선거는 미국이 유럽식 사회 민주주의 국가가 되지 않고 이 산더미 같은 빚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미국의 국가 부채는 이달 초 35조9400억 달러(약 5경 200조원)로 집계됐다.
트럼프는 베센트의 재무장관 지명을 발표하면서 “우리 행정부는 자본 시장의 자유, 힘, 회복력, 효율성을 회복할 것”이라며 “민간 부문에 활력을 불어넣고 연방 부채의 지속 불가능한 길을 막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재무장관 임명은 상원 인준을 거쳐야 한다.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고, 재무장관 지명자인 베센트 자신은 월스트리트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베센트 지명자는 상원 인준을 무난히 통과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