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문한답] 인재 유출의 현황과 문제점…대응 방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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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
2024년 11월 23일 오후 4:43 업데이트: 2024년 11월 23일 오후 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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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유출의 현황과 문제점 그리고 대응 방안은 무엇일까요?

답변_오정근 자유시장연구원장

고려대에서 경제학 학사·석사, 영국 맨체스터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부원장, 한국국제금융학회장,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서울특별시 지방시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요즘 ‘삼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자주 들립니다.

“최근 삼성반도체의 일시적 위기는 한국 경제의 미래 먹거리 산업이 어느 산업도 안전하지 않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 삼성전자는 최근 확산하는 인공지능(AI)에 들어가는 ‘고대역폭메모리(HBM·D램들을 연결해 처리 속도를 크게 높인 메모리)’ 반도체 생산에서 SK하이닉스에 뒤져서 어려움을 겪고 있죠. 세계적인 기업도 급격히 혁신하는 산업계에서 한순간만 잘못 판단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교훈을 줍니다.”

“시장점유율(올해 1분기 말 기준)은 삼성전자 43.9%, SK하이닉스 31.1%, 낸드플래시는 삼성전자 36.6%, SK하이닉스 21.6%입니다. 그런데 2022년 챗GPT가 나오면서 불기 시작한 인공지능의 급속한 확산으로 엄청난 메모리가 필요한 고대역폭메모리(HBM)가 중요해졌는데요. 지난해 출하량 기준 HBM 시장점유율은 SK하이닉스 50%, 삼성전자 40%, 마이크론 10% 순으로 삼성과 SK하이닉스의 순위가 역전됐습니다.”

-D램, 낸드 등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부동의 1위였던 삼성전자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경영구조의 경직성 등 여러 원인이 지적되지만, ‘인력 유출’이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2022년부터 불기 시작한 인공지능의 급속한 확산에 따른 HBM 수요 전망에 삼성이 주목하지 못하자 삼성전자에 근무하던 HBM 전문 인력들이 대거 SK하이닉스로 옮겨 갔다는 분석입니다. 뒤늦게 HBM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인력이 부족하면 발목이 잡힐 수밖에 없죠.”

“국내뿐만이 아닙니다. 1980, 90년대에 286, 386, 486 등 시리즈를 연이어 내놓으며 지난 40여 년간 ‘컴퓨터 제국’을 지배해 온 인텔은 2020년 초 2900억 달러가 넘었던 시가 총액이 3분의 1 규모로 쪼그라들면서 미국의 우량기업 주식 30개 종목을 기준으로 산출하는 다우존스 지수에서 탈락하고, 대신 ‘엔비디아’가 인텔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인텔 추락의 가장 큰 이유는 ‘인재난’입니다. 기존 CPU 사업이 잘나가고 있어 인공지능 시대 대비한 GPU 개발을 등한시하자 GPU 개발 인력들이 대거 ‘엔비디아’로 이적한 겁니다.”

“4차 산업혁명, 더 나아가 인공지능을 바탕으로 한 5차 산업혁명이 급속히 진행되는 혁신의 시대에는 인재 확보가 생사를 가르는 절대적 변수입니다. 그러나 4~5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최고급 인재는 양성하기도 힘들지만, 지키기도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인재 양성에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걸리는 데다 타이밍이 중요한 4~5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인재 쟁탈전이 치열해졌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 9세대 V낸드 제품 | 삼성전자 제공

-한국의 인재 유출 현황은 어느 정도인가요?

“세계적으로도 한국의 인재 유출은 가장 심각한 상황입니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2023년 미국 정부가 전 세계 11만 4130명을 대상으로 석·박사와 C 레벨 인재에게 발급한 EB-1·2 취업비자 규모에서 인도(2만 905명), 중국(1만 3378명), 브라질(1만 1751명)에 이어 한국(5684명)이 4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를 인구 10만 명당으로 환산하면 한국은 10.98명으로, 대표적 인구 대국인 인도(1.44명)와 중국(0.94명)을 10배가량 앞질렀죠. 일본의 EB-1·2 승인은 1066명으로, 절대 규모에서 한국의 5분의 1, 10만 명당으로는 13분의 1(0.86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만큼 국내 핵심 인재의 해외 유출이 심각하다는 방증입니다. 한 이민 컨설팅업계 관계자는 ‘10년 차 전후 엔지니어뿐 아니라 변호사, 의사, 상경·예술계 인재의 문의가 줄을 잇는다’고 전했습니다. 인공지능(AI)이 일상화되는 기술 혁신의 시대에 핵심 인재들이 한국을 등지는 상황을 방치하면 미래 성장동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겠죠.”

-다른 산업 분야는 괜찮을까요?

“인재 유출은 인공지능·반도체 부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미국 군함의 수리와 관련해 한국의 협조를 요구하면서 크게 주목받는 국내 조선업계 역시 인력난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국내 조선업계가 10여 년 만에 슈퍼 사이클(초호황기)을 맞아 약 3년 치 일감을 확보하며 본격적인 실적 개선에 돌입했고, 대부분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FLNG) 등 고수익 선종 비중 확대에 힘입어 수주 잔고도 넉넉하지만, 인력 부족이 발목을 잡는 상황입니다. 지난해 기준 국내 조선업계 종사자 수는 9만 3038명으로 2022년(9만 5000명) 대비 소폭 감소했습니다. 조선업계 장기 불황이 시작된 2014년 당시 20만 3400명과 비교하면 절반 이하 수준인 셈이죠.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조선업계는 올해부터 연평균 1만 2000명 이상, 특히 2027년부터는 13만 명의 인력이 더 필요할 것으로 예측합니다. 여기다 KAIST 계열 대학에서 양성하고 있는 고급 과학기술인재 양성 차질도 우려되고 있습니다. ”

-고급 과학기술인재 양성에 차질을 빚는 원인은 무엇인가요?

“국회 자료에 따르면 4대 과학기술원(KAIST·UNIST·GIST·DGIST)의 교수 인력 유출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교수 총 160명 중 32명이 서울대로, 51명이 서울대 외 수도권 대학으로 이직했고 해외 대학으로도 25명이 떠난 것으로 조사됐죠. ‘지도교수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환경에서 과학기술 인재를 육성할 수 있겠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울러 반도체·배터리·게임 등 국내 산업계 전반에서 기술 유출 리스크도 확산하고 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9년 14건이었던 산업기술 해외 유출 사건은 △2020년 17건 △2021년 22건 △2022년 20건 △2023년 23건이고, 유출 내용으로는 ▲반도체 43건 ▲디스플레이 21건 ▲자동차 10건 ▲전기·전자 9건 등입니다. 이로 인한 기업들의 피해액은 연평균 약 56조 2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난해 산업 기술의 해외 유출을 시도하다 적발된 23건 중 65%인 15건이 반도체 분야에서 발생했으며 특히 HBM, D램 등 주요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노린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보안체계 구축, 제도 정비 등 국가적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요?

“고급 인재 없이는 급속한 혁신에 대응할 수 없습니다. 세계 주요국들은 패권 경쟁의 승패를 판가름할 열쇠를 기술로 판단하고, 기술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습니다. 미래 신산업의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인적자원 개발과 핵심 인재 영입 및 보호에 사활을 걸고 있죠. 삼성전자는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근무할 ‘파운드리 고객 엔지니어링 부문 수석 관리자’ 채용 공고(기본 연봉 최대 약 4억 원/ 전기공학·물리학 박사 학위 소지자 중 10년 이상 업계 경력)를 내는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을 관리할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엔지니어 채용에 나섰습니다.”

“조선업계는 인력 부족이 심해지자 외국인 노동자의 비중을 높여 외국인 비중이 10%대를 넘어섰습니다. HD현대,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업계는 ‘디지털 전환’에 눈을 돌리면서 너나 할 것 없이 이른바 ‘스마트 조선소’ 구축에도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대표적 노동 집약형인 조선업에 첨단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인력 부족과 생산성 확대 등에 나서겠다는 계획이죠. 이를 위해 로보틱스, 자동화, 인공지능(AI) 기술 등을 기반으로 미래형 조선소 구축에 나서고 있습니다. 스마트 조선소가 구축된다면 생산 등 전 부문에 걸친 자동화·디지털화로 인력 유출 대응을 비롯해 안전성 향상과 효율적인 생산 등이 가능해질 전망입니다.”

“연구개발력 강화도 시급합니다. 한국의 2019년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비(R&D) 비중은 4.6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세계 2위 수준이며, 총연구개발비는 89조 471억 원으로 세계 5위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연구개발 인력은 2020년 기준 약 45만 명으로, 세계 6위 수준의 규모이고, 연평균 증가율도 4.6%로 지속적인 증가 추세입니다. 기술 수준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기술 수준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으며 최고 기술 보유국인 미국 대비 80.1% 및 기술 격차 3.3년으로 아직은 괜찮은 편이지만, 중국과의 기술 격차는 이제 없어졌고 일부 분야의 기술은 중국에 추월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과학기술 인력 양성을 위한 방안을 제안하신다면요.

“먼저, 과학기술 관련 학과를 증설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동안 과학기술 인력 양성을 위해 정원 총량 규제안에서 늘릴 수 있는 계약학과를 추가했지만, 계약학과를 통해 배출되는 과학기술 인력은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수도권정비계획법 등 관련 법률 개정을 통해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를 완화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우수한 국내 과학기술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기초교육을 강화하고 미래 유망 분야 인재 양성에 정부의 지원을 확대해야 합니다. 초·중등 과정의 수학, 과학 등 기초 역량 교육 및 디지털 기초교육을 강화하고, 이공계 대학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며, 핵심 전략산업에 대한 과학기술 인력을 양성해야 합니다.”

“산업계에 대해서도 산업기술 인력, 연구개발, 시설 등 투자에 대한 세액 공제 및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외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선 ‘인재풀’을 관리하고, 비자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자발적으로 더 일하고 그만큼 더 높은 보상을 원하는 첨단산업 인력에 대해선 근로 시간 규제 예외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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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선진화재단 한선브리프 통권33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