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통일대화의 북한 측 상대방은 ‘억압받고 있는’ 북한 동포이어야 하지 북한 동포를 ‘억압하고 있는’ 정권이어서는 안 된다.”
이동복(李東馥) 전 국회의원이 지난 18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24북한인권과 자유통일을 위한 대토론’에서 이같이 주장하며 통일에 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올해 미수(米壽)를 맞이한 이 전 의원은 지난 1973년 당시 남북조절위원회 대변인을 시작으로 10년간 남북대화 업무를 도맡은 바 있다. 이후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고문, 국가안전기획부 부장 제1특별보좌관, 국무총리 특별보좌관, 제15대 국회의원 등을 지냈다. 현재는 북한민주화포럼 상임대표, 자유민주연구원 명예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전 의원은 이날 “통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특별 강연을 진행했다.
그는 우선 지혜롭게 ‘통일’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먼저 ‘분단’의 의미를 냉철하게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6·25전쟁이 1953년 ‘휴전’의 형태로 봉합된 후에도 한반도에서는 ‘정전협정’이 사실상 사문화(死文化)돼 유명무실해 진 가운데 ‘한미동맹(韓美同盟)’을 주축으로 하는 ‘전쟁 억지력’의 유지를 통해 겨우 ‘전쟁도 아니고 평화도 아닌 사이비 평화’가 불안정하게 유지돼 왔다”고 말했다.
이 전 의원에 의하면 한반도 분단이 외세가 초래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민족 자신에 의한 ‘체제 선택’의 결과물이다. 1948년 한반도의 남과 북에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2개의 국가가 등장했다. 남의 ‘선택’은 ‘민주주의’와 ‘자유’,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경쟁사회’ ‘개방’ ‘국제화’다. 반면 북의 ‘선택’은 ‘공산주의와 독재’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입각한 ‘명령사회’ ‘폐쇄’ ‘고립’이다.
이 전 의원은 그동안 남북 간 사활(死活)을 건 체제 경쟁에서 대한민국이 ‘체제’ ‘이념’에서 모두 승리를 거뒀다면서도 “대한민국이 불과 20~30년에 이룩한 산업화의 비력은 ‘압축성장’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의 일시적·부분적 희생을 강요했고 그 결과로 정치적·사회적·문화적 갈등을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반면, 세습 독재를 이어온 북한은 세계 최악의 ‘실패한 국가’다”라고 평가하며 “이제 우리가 이룩해야 할 ‘통일’의 ‘조건’을 결정하는 것은 체제 경쟁의 승자인 대한민국의 몫이어야지 패자(敗者)인 북쪽의 몫일 수 없다”며 “통일까지 앞으로 남은 시간은 이미 실패한 북의 체제가 무대로부터의 퇴장을 앞두고 잔열(殘熱)을 불태우는 임종(臨終)의 시간이다”라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은 대한민국 헌법이 요구하는 자유민주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고려해야 할 기본 명제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첫째, 통일의 결과로 대한민국의 번영과 발전을 가능케 해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질서와 가치가 훼손, 축소 또는 위축되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둘째, 통일은 북한 동포를 그동안의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시켜서 그들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혜택을 공유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셋째, 통일의 달성을 통해 한민족의 저력에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킴으로써 한민족의 경쟁력을 한층 더 제고시켜야 한다.
이 전 의원은 “이 같은 명제를 충족시킬 수 있는 통일의 방법은 오직 ‘대한민국 주도하에 자유민주 체제로 이루어지는 통일’이라야 한다”며 이른바 ‘흡수통일’을 비판했다.
이 전 의원은 ‘통일정책’과 ‘남북대화’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에 주목했다.
“우선 북한의 공산정권 당국자들이 ‘통일정책’에서는 ‘도태’와 ‘청산’의 대상이 되는 반면 ‘남북대화’에서는 대화의 상대방이 된다. 또한 ‘통일정책’은 ‘미래’를 관리하는 정태적(靜態的) 정책 영역인 반면 ‘남북대화’는 ‘현재’를 관리하는 동태적(動態的) 정책 영역이다”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전 의원에 따르면 ‘통일정책’과 ‘남북대화’ 사이에는 또 기능상의 차이가 있다. 전자가 정책연구와 교육홍보를 주 업무로 하는 방면 후자는 정책 부처뿐 아니라 현업 부처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 통제하는 일을 주 업무로 한다.
그는 “통일부가 통일정책과 남북대화를 몰아서 관장하는 결과로 대한민국의 대북정책이 ‘남북대화’에 과도하게 치중된 나머지 ‘통일정책’이 사실상 실종되고 있는 현상이 드러나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 전 의원은 마지막으로 “지금 북한의 상황이 심상치 않은 시점에서 미리 사전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통일이 대박이 아닌 쪽박이 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한편, 이날 행사는 북한인권민간단체협의회가 주최하고 뉴욕에 기반을 둔 비영리단체 휴먼라이츠재단이 후원했다.
윤여상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소장,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허광일 북한인권탈북단체총연합 상임대표, 리일규 전 쿠바주재 북한대사관 정치참사가 발표자로 나서 북한인권과 자유통일에 대한 각자의 견해를 발표했다.
이어 ‘북한주민 정보자유와 확대를 위한 자유토론’에서는 김승철 북한개혁방송 대표, 장혁 전 조선노동당 과학교육부 연구소 연구원, 김신삼 통일아카데미 대표 등이 토론자로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