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 F. 주니어는 지난 8월 대선 후보를 사퇴한 뒤, 자신의 보건 개혁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후보 사퇴 전까지, 그는 대선 유세 기간 내내 “미국인들은 독살당하고 있다”고 거듭 말했다. 그는 미국인들의 만성 질환 증가와 수명 감소의 원인을 ‘미국인’ 하면 떠올리는 잘못된 식습관에서 찾았다.
미국인의 기대수명은 2022년 기준 77.5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82.2세보다 5년 가까이 짧다. 미국인의 기대수명은 지난 코로나19 팬더믹을 거치며 지난 2019년 78.9세에 2021년 76.1세로 급감했다가 올해 약간 회복했지만 여전히 OECD 회원국과 큰 격차를 보인다.
식품학 전문가 중에는 그 원인을 ‘고도 가공된 식품(ultra-processed foods)’이 평소 섭취하는 음식의 50~70%를 차지하는 미국의 식단에서 찾는 이들이 적잖다. ‘고도 가공 식품’은 경화규, 고과당시럽(액상과당), 착향료, 유화제 등의 성분을 가리킨다. 상업적 식품공정을 통해 생산된 이른바 ‘식품’이다.
고도 가공 식품에 대한 비판
고도 가공 식품은 각종 동반 질환을 일으키는 비만 등의 주요 요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당뇨병·소화기병·신장병 연구소(NIDDK)가 성인 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지난 2019년 5월 발표한 연구에는 고도 가공 식품과 가공을 최소화한 식품을 동일한 칼로리, 설탕, 섬유질, 탄수화물로 비율을 맞춰 섭취하게 했다. 그 결과 고도 가공 식품을 섭취했을 때,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더 많은 칼로리를 섭취하고 체중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소규모 집단을 조사했지만, 엄격하게 통제된 이번 실험에서 두 식단 간의 차이는 명확하고 일관되게 나타났다”며 “고도 가공 식품이 사람들에게 과다한 칼로리를 섭취하게 하고 체중을 늘어나게 한다는 인과성을 입증한 최초의 연구”라고 평가했다.
케네디 주니어가 지명된 미국의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가 식량 공급의 약 80%를 감독하고 모든 화장품, 의약품, 제약 제품을 감독할 권한을 갖는다.
이에 따라 미국 현지에서는 트럼프를 비판했던 좌파 언론에서도 케네디 주니어의 ‘미국을 다시 건강하게(Make America Healthy Again)’ 의제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미 FDA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식품·의약 업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FDA를 대대적으로 개혁하겠다는 케네디 주니어의 구상은 각국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지나친 당류 섭취 주범…액상과당 규제
케네디 주니어는 대선 유세 기간, 비만을 일으키는 미국의 잘못된 식습관과 관련해 ‘고과당 옥수수 시럽(HFCS, High-fructose corn syrup)’의 위험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미국 하면 비만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2024년 세계 비만율 1위는 오세아니아의 통가(70.5%)였다. 미국의 비만율은 43%로 13위에 그쳤다. 그러나 전 세계 비만율 상위 50위 국가 중 미국을 제외한 선진국은 호주(43위)이다. 미국은 선진국 중 압도적이다.
고과당 옥수수 시럽은 그냥 콘 시럽, 옥수수 시럽이라고도 불린다. 옥수수를 가루로 만들어 효소를 이용해 포도당으로 만든 후 이를 과당으로 전환시켜 농축하면 점성을 지닌 액체, 즉 액상과당이 된다. 액상과당이라고는 하지만, 과당만 있는 게 아니라 포도당과 약간의 올리고당으로 구성된다.
설탕은 과당과 포도당이 1 대 1로 구성돼 있다. 액상과당 역시 설탕과 같은 과당과 포도당으로 이뤄져 있으나 차이점은 제조 과정에서 효소가 투입되며 과당과 포도당 비율이 설탕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액상과당은 주로 과당 45%( HFCS-42), 과당 55%(HFCS-55)가 쓰인다. 과당 비율이 높으면 적은 양으로 더 강한 단맛을 낼 수 있어 미국에선 55% 제품이 일반적이다. 유럽연합(EU)은 과당 비율을 최대 30%로 제한한 아이소글루코스 형태 제품을 승인했다.
식품업체에서 액상과당을 선호하는 것은 원료인 옥수수 가루가 값이 싸기 때문이다. 설탕은 사탕무나 사탕수수를 원료로 한다. 하지만 과당은 미국에서 넘치도록 많이 생산되는 옥수수를 원료로 만들 수 있어 원가가 매우 저렴하다.
액상과당은 1960년대에 개발돼 1970년대 탄산음료의 강한 단맛을 내는 감미료로 널리 투입되며 사용량이 10배 이상 폭증했다. 이는 1980년대부터 촉발된 미국 내 비만 인구의 출현 및 증가와 맞아떨어진다.
연구에 따르면 액상과당을 섭취한 쥐는 설탕을 섭취한 쥐보다 체중이 더 많이 증가했다. 2012년 실시된 연구에서는 액상과당 소비량이 많은 국가에서 제2형 당뇨병(인슐린 저항성으로 인한 인슐린 분비 장애) 유병률이 20% 더 높았다.
과당 자체는 인체에 필요한 영양소이며 유해 물질이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인체에 들어오면 그대로 사용되는 포도당과 달리 과당은 일부만 포도당으로 변하고 대부분 간으로 이동해 지방으로 저장된다. 이 과정은 간이 알콜을 처리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탄산음료를 마시면 술을 마시는 것과 다름없이 간에 부담을 준다’는 이야기는 이런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과당을 많이 섭취하면 간의 지방 대사 기능이 저하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과당은 또한 우리 몸의 인슐린 저항성을 증가시켜, 인슐린의 정상적인 분비를 방해한다. 그 결과 밥을 먹고 나서도 뇌에 공복을 알리는 호르몬이 여전히 비슷하게 유지돼 포만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밥 먹고 뭔가 더 먹게 되는 이유다. 과당 섭취가 체중 증가, 비만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설탕이든 액상과당이든 문제는 과다 섭취라고 지적한다. 액상과당을 비판하는 전문가들은 액상과당 자체의 유해성보다는 설탕보다 당류를 과다 섭취하기 쉽다는 점을 지적한다.
미 FDA는 액상과당에 GRAS 인증을 부여했다. 일반적으로 안전한 물질이라는 의미다. 국제사회에서는 ‘까다로운 미국 FDA가 안전하다고 공식 인증한 것’이라며 GRAS 인증을 폭넓게 받아들이고 있다.
FDA는 식품첨가물과 GRAS 인증 물질을 구분하고 있다. 식품첨가물은 허용 한도를 정하지만, GRAS 인증 물질은 허용 한도를 정해 놓지 않고 있다. 케네디 주니어는 FDA 개혁을 예고했다. 액상과당에 관해서도 새로운 규정을 추진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만성 질환 원인? 씨앗 오일에 대한 검토
케네디 주니어는 가공된 식물성 기름, 즉 “씨앗 기름”의 광범위한 소비에 대해서도 거듭 비판해왔다.
FDA는 카놀라유, 대두유(콩기름), 옥수수유, 해바라기씨유 등 대부분의 씨앗 기름을 GRAS 물질로 승인했다.
씨앗 기름과 질병과의 연관성을 직접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다만 일부 연구에서는 씨앗 기름과 암 사이 상관 관계를 시사하는 결과들이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시장에서는 씨앗 기름 대신 ‘식물성 기름’이라는 이름이 사용된다. 식물성 기름은 야채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식물성 기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옥수수, 콩(대두), 땅콩, 해바라기씨 등 씨앗에서 추출하는 씨앗 기름과 과육에서 짜내는 압착 식용유인 코코넛 기름, 올리브유, 팜유 등이다.
씨앗 기름은 정제와 표백, 탈취 과정을 거친다. 그래서 정제유라고도 부른다. 우선 화학용매제를 사용해 기름을 최대한 짜낸다. 용매로는 기름을 잘 녹여내는 헥산을 사용하는데, 이는 석유를 증류시켜 만드는 화학물질이다.
이렇게 추출한 기름은 냄새가 좋지 못하고 불순물이 많다. 그래서 인산, 황산을 이용해 끈적거리는 덩어리 같은 불순물을 분리한다(탈검), 이후 수산화나트륨을 처리해 산을 제거하고(탈산), 다시 흡착제를 이용해 기름의 색깔을 좋게 하고(탈색) 마지막으로 탈취를 거쳐 완성한다.
이렇게 가공한 씨앗 기름(정제유)은 라드(돼지 기름), 탤로(우지, 소기름)에 비해 불포화 지방이 많아 산패되기 쉽다. 산패는 기름에 포함된 불포화 지방이 산소와 결합돼 일어나는 현상이다. 냄새와 맛이 고약해지고 기름 속에 유독 물질이 생성된다.
씨앗 오일과 과육 오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오일을 이루는 지방의 구성이다. 씨앗 오일은 불포화 지방 함량이 많다. 반면 과육 오일은 포화지방 함량이 많다. 이는 동물성 기름(버터 등)과 비슷하다.
흔히 불포화지방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려 혈액 순환을 돕는 이른바 ‘착한 지방’으로 알려져 있다. 반대로 동물성 기름에 많이 들어 있는 포화지방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이는 ‘나쁜 지방’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불포화지방은 결합이 불안정하다. 산소에 노출되면 산패돼 우리 몸에 해로운 물질로 변질된다. 이는 식용유를 사용하고 바로 뚜껑을 닫아야 하며, 식당에서 튀김 등에 여러 차례 사용한 기름이 건강에 나쁘다고 하는 이유이다.
씨앗 기름에 들어 있는 대표적인 불포화 지방산은 오메가-6, 오메가-3이다. 이 둘은 필수 지방산으로 인체에서 자연적으로 생성할 수 없어 음식 섭취로 얻어야 한다. 건강 전문가들은 오메가-6와 오메라-3를 1대 1 비율로 섭취해야 좋다고 한다.
하지만, 씨앗 기름은 오메가-6 함량이 훨씬 높아, 이를 섭취하면 오메가-6와 오메가-3의 불균형을 일으킬 수 있다. 오메가-3는 항염증 효과를 내지만, 오메가-6를 많이 섭취하면 신체에 염증을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만성 질환과도 관련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씨앗 기름 산업은 전 세계에서 거대한 시장을 이루고 있다.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가 보건복지부 장관에 취임해 FDA에 씨앗 기름 GRAS 승인에 대한 재검토를 추진할 경우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나프탈렌서 뽑아낸 ‘타르 색소’ 사용 제한
타르(Tar) 색소는 석탄타르를 이용한 인공 착색제다. 석탄을 열분해했을 때 발생하는 부산물인 석탄타르 속 벤젠이나 나프탈렌 등을 추출해 합성한다.
타르 색소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하여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에 일부 타르 색소가 인체에 간독성, 혈소판 감소증, 천식 등을 유발할 수 있으며, 체내에서 빠져나가지 않고 축적되어 다량 복용 시 각종 질병을 유발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 보고되고 있다(한국식품안전 연구원).
타르 색소는 원래 섬유류 착색을 위해 개발됐으나, 현재는 식용 색소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제품이 됐다. 사탕, 음료, 말린 과일, 아이스크림 등을 시각적으로 먹음직스럽게 하기 위한 용도다.
이 색소는 사람의 몸에 들어오면 소화효소의 작용을 저해하고 간이나 위에서 장애를 일으킨다. 일부 타르 색소는 어린이의 과잉행동(ADHD)을 일으키거나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위험성이 보고됐다.
캐나다와 호주는 타르 색소 사용량을 정해 규제하고 있으며 건강에 대한 관심 등으로 인해 천연 색소를 사용하는 추세다. EU 역시 타르 색소 사용량을 규제하고 있으며, 이러한 인공 착색제가 들어간 식품은 행동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내용을 반드시 표기하도록 했다.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에서는 아예 사용을 금지했다.
한국에서는 지난 2009년 중국산 참깨에서 공업용 타로 색소가 검출돼 사회적 관심이 고조된 바 있다. 한국은 타르 색소 첨가가 가능한 식품을 관련법으로 지정하고 경고 문구를 표기하도록 했으나 허용량을 따로 규정하진 않고 있다.
케네디 주니어는 지난 10월 과자와 요구르트, 젤리, 기침 시럽 등 다양한 식품에 사용되는 황색 5호 타르 색소를 비판했다. 미국에도 유럽에 준하는 더 까다로운 규제를 도입하고 천연 색소 사용을 권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부틸화하이드록시아니솔(BHA), 부틸화하이드록시톨루엔(BHT)
칩, 크래커, 시리얼, 미리 만들어진 빵류, 그래놀라바에는 산패를 막고 유통기한을 연장하기 위해 부틸화하이드록시아니솔(BHA)과 부틸화하이드록시톨루엔(BHT)이 들어간다.
FDA는 두 물질을 GRAS로 분류하고 있다. 식품은 아니지만 식품 첨가물보다 더 안전성이 보장됐다는 의미다.
하지만 미국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보건원 국립 독성학 프로그램(NTP)에서는 BHA와 BHT 모두 “인간에게 발암을 일으키는 물질로 예상”하고 있다(NTP 발암물질 15차 보고서).
과일과 채소에는 자체적으로 산화를 막는 천연 항산화제가 들어 있으나, 이러한 두 인공 산화제는 생명체에 흡입되면 암을 일으키거나 면역 체계를 교란할 가능성이 우려된다.
동물 연구에 따르면 BHT는 간, 갑상선, 신장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이 기사는 에포크타임스 영문판 건강 전문 기자 마리아 장이 기여했습니다.
* 기사문 일부는 국내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국 편집부에서 추가·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