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 “428개 정부기관 99개면 충분”, “2조원 절감”
트위터 대규모 구조조정에 정부 규제 맞선 전력까지
“소셜미디어 통한 의견 수렴 및 진행 상황 공개” 약속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일론 머스크를 공동 수장에 임명한 ‘정부효율부’의 향후 정책에 관심이 쏠린다.
트럼프는 정부효율부의 자세한 운영 방침을 언급하지 않았다. 낭비되는 예산 지출을 줄이고 정부 조직을 축소해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기본 방침만 공개했다.
12일(현지시각) 머스크는 정부효율부 공동 수장 내정 사실이 알려진 직후, 소셜미디어 엑스(X·구 트위터)에 “연방기관 99개면 충분하고도 남는다”며 대대적인 인력 감축을 예고했다.
그는 정부효율부와 관련한 자신의 인터뷰 영상을 공유하며 “연방기관이 428개나 필요한가. 들어보지도 못한 기관이 많고 영역이 겹치는 기관도 많다”며 이같이 밝혔다.
트럼프 당선인에 따르면, 정부효율부는 정부 외부의 민간 전문가 집단으로 머물며 백악관 예산 관리국과 협조해 정부 합리화, 규제 완화, 지출 축소, 연방 기관 재편성 등을 조언하고 지침을 제공할 예정이다.
대규모 예산 편성은 의회의 고유한 권한이다. 의회가 정부효율부와 같은 정부 외부 집단의 조언을 들을 수도 있지만, 의무는 아니다. 무시하고 독자적인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머스크는 이 부서의 투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논의 내용을 온라인에 모두 공개해 미국인들의 의견을 듣겠다고 했다.
그는 엑스 게시물에서 “정부효율부의 모든 활동을 온라인으로 최대한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며 “중요한 것을 삭감하거나, 삭감해야 할 낭비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 언제든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납세자 세금을 가장 어리석게 지출한 순위표도 공개하겠다”며 “매우 비극적이면서도 매우 흥미로울 것”이라고 했다.
머스크는 지난달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대규모 트럼프 유세에서 연방정부 예산을 최소한 2조 달러 삭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의회 예산국 추산에 따르면, 미국의 2024회계연도 연방정부 총지출은 6조 7500억 달러다. 여기에는 재량지출(국방비 포함) 1조 9000억 달러가 포함됐다.
연간 정부 예산 3분의 1 정도를 절감하겠다는 머스크의 발언은 트위터를 인수해 효율성이 낮은 인력 80%를 내보낸 그의 추진력을 고려할 때 단순한 허풍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로켓 재사용’…발상의 전환으로 엄청난 비용 절감 전력
전기 자동차 제조업체인 테슬라와 민간 항공우주기업인 스페이스 엑스 최고경영자(CEO)를 동시에 맡고 있는 머스크는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과 국방부의 운영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나사 및 국방부와 로켓, 위성 등 여러 항공우주 관련 사업에 대한 계약을 체결한 바 있으며, 스페이스 엑스의 로켓 발사를 규제할 수 있는 연방항공청(FAA), 테슬라 자동차의 자율주행 기능을 조사하는 교통안전청(NHTSA)과도 오랫동안 줄다리기해 왔다.
나사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로켓 발사를 민간 부문으로 끌어와 더 큰 성공을 이뤄낸 것도 머스크의 업적이다. 그는 스페이스 엑스의 팰컨9 로켓은 한 번 사용한 로켓을 재사용한다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발사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 새로운 위성 시장을 창출했다.
또한 스타링크를 통해 민간 위성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으며 산업적 활용뿐만 아니라 현대적인 군사 전략 수립에까지 기여함으로써 스페이스 엑스를 미국 국방부의 주요 방위산업 계약자로 발돋움하게 했다.
머스크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와 함께 공동 수장에 임명된 인도계 기업가 출신의 30대 정치인 비벡 라마스와미는 제약회사를 설립했으며 식품의약청(FDA)의 규제에 익숙하다. 그는 지난 2023년 엑스에 FDA의 일부 규정과 조치가 불합리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광범위한 분야에서 연방정부 기관을 경험한 머스크와 라마스와미가 힘을 합치고 여러 분야의 민간 전문가들을 규합하면 정부기관 내 존재하는 비효율과 낭비를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차기 행정부의 바람이다.
레이건 때도 효율적 정부 추진…의회의 벽에 좌절
비대해진 정부기관의 비효율성과 낭비를 바로잡는 일은 역대로 작은 정부를 추구해 온 보수 성향 대통령들의 주요 정책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보수주의에 입각해 강력한 미국을 건설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다.
레이던은 40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1년 만인 1982년 2월 연방정부 기관의 효율성을 높이고 예산 낭비를 줄이겠다며 민간 전문가 집단 구상을 발표했다. 같은 해 6월 그는 대통령 행정명령을 통해 ‘그레이스 위원회’라는 이름의 비용 통제 조사기관을 설립했다.
그레이스 위원회는 모금을 통해 운영기금을 마련하고 정부기관과 예산 집행을 감독하는 총 36개의 실무 그룹에 150여 명의 기업계 리더들을 참여시켰다.
위원회가 1984년 1월 약 2500개의 권고안을 담은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보고서에서는 소득세 3분의 1만이 납세자를 위해 사용되고 나머지 3분의 2는 정부의 비효율성과 낭비되거나 지하경제로 흘러들어 아예 징수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권고안을 실행하면 2000년까지 정부 부채는 2조 5000억 달러로 억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권고안 중 실행된 것은 일부에 그쳤다. 의회는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았고 특히 입법이 필요한 권고안들은 완전히 무시했다.
결국 미국의 정부 부채는 2000년까지 권고안에서 제안한 수준의 2배 이상인 5조 6000억 달러로 급등했고 2010년에는 대공황 시절 수준까지 치솟았다.
트럼프 역시 집권 1기 때 비슷한 정책을 추진했다. 그는 임기 초인 2017년 3월 연방 정구기관의 효율성과 책임성을 높이고 구조조정을 통해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또한 규제 개혁 태스크포스 창설을 지시한 별도 행정명령도 발령했다.
이를 통해 트럼프는 첫 임기 때 최소한 19개의 정부 기관을 폐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트럼프의 대통령직 수행에 부정적이었고, 정부 내부에서는 중간 관리층이 이런저런 이유로 시간을 끌며 정책 집행을 미뤘다.
트럼프 집권 2기는 백악관과 상하원 지도부와 민간 전문가 집단까지 자신의 국정 철학을 잘 이해하는 충성파들로 대거 구성함으로써 1기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막강한 조직력과 실행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머스크의 정부효율부 수장 임명을 두고 미국 주요 언론에서 보도를 쏟아내는 것 역시 단순한 화제성을 뛰어넘어 차기 행정부에서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내다보고 있다는 방증이 되고 있다.
법제상으로 트럼프 행정부 정부효율부는 1972년 제정된 ‘연방자문위원회법’에 근거해 운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정부의 각종 위원회 구성에도 참조가 된 이 법은 자문위의 조직과 구성, 활동을 일반에 시의적절하고 객관적으로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이 법은 미국 행정부 전반에 걸쳐 존재하는 1000여 개의 공개 자문위와 6만 명의 위원들, 그리고 숫자가 알려지지 않은 비공개 자문위에 대한 유용성 평가 및 비용 관리, 기록 유지 등을 규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