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 11시, 부산을 향하여 묵념” 유엔 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 기념식

2024년 11월 12일 오후 2:53

11월 11일 11시!

부산광역시 전역에 추모 사이렌이 울리면서 유엔군 전몰장병의 희생을 추모하는 묵념을 1분간 실시했다. 최고의 예우로 기린다는 뜻으로 조포(弔砲) 21발이 발사됐다.

숫자 ‘1’이 6번 겹치는 매년 이 시각, 세계인들은 대한민국 제1 항도(港都) 부산을 향해 묵념을 한다. 묵념의 대상은 ‘자유’라는 이름하에 6·25전쟁에서 ‘하나’가 되어 싸웠던 참전용사들이다. 1953년 정전 후 71년의 세월이 흘렀고, 참전용사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남은 이는 극소수이다. 그들은 세상을 떠났지만 참전용사들의 대한민국을 향한 사랑과 희생정신은 남아 살아 있는 이들의 가슴을 울린다.

한국에서는 모 제과회사의 스틱형 과자 상품에서 유래한 ‘빼빼로 데이’로 대중에게 알려진 11월 11일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이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일이다. 영연방 국가에서는 ‘현충일’로, 미국에서는 ‘제대군인의 날’로서 세계인들이 참전용사의 헌신을 기리고 감사를 표하는 날이다.

지난 11월 11일,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이 개최됐다. 유엔군 전몰장병이 영면(永眠)에 들어 있는 부산을 향하여 세계인이 함께 추모한다는 의미의 행사이다. ‘턴 투워드 부산’은 2007년 첫 행사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용되는 공식 표어이다. 한국을 비롯하여 22개 유엔 공식 참전국에서 더불어 사용한다.

올해 18회 유엔 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 기념식이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기념공원에서 개최됐다. 11일 10시 50분 시작한 행사에는 국내·외 참전용사, 참전국 정부 대표단, 주한 외교사절, 유엔사 장병, 학생 등 800여 명이 참석했다.

고(故) 맬빈 메너드 참전용사의 딸 메리 매킨토시(Marie McIntosh) 씨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유엔참전용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편지글을 낭독했다. 맬빈 메너드(Melvin Menard·1932~2024) 용사는 미국 해병대 소속으로 6·25전쟁의 전기가 된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다. 전훈으로 퍼플하트 훈장을 2회 수훈했다. 메리 매킨토시 씨는 “추모 행사 때 생존 참전용사들을 볼 때마다 올해 봄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더욱 그리워진다.”며 눈물을 훔쳤다. 그는 “아버지는 생전 대한민국을 사랑했고, 가족들에게 대한민국이라는 선물을 심어주고 갔다.”며 고인과 가족의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추모사 낭독 후 메리 매킨토시 씨 남편과 자녀들이 추모곡 ‘가리워진 길’을 함께 불렀다.

메리 매킨토시 씨 가족은 아버지 맬빈 메너드 용사의 6·25전쟁 참전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남편 로버트 매킨토시(Robert McIntosh) 씨는 한국에서 선교사로, 딸 새리 매킨토시(Saree McIntosh) 씨는 가수로, 아들 테일러 매킨토시Taylor McIntosh) 씨는 유튜버로 활동하는 등 3대째 인연이 이어진다.

추모 공연 후 오늘날 대한민국이 이룬 성장과 번영은 70여 년 전 유엔참전용사들이 심은 ‘자유와 평화의 씨앗’ 덕분이라는 주제 영상이 상영됐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추모사에서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은 70여 년 전 유엔참전용사들이 목숨 바쳐 뿌린 자유의 씨앗이 지금의 평화와 번영으로 자라났음을 영원히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라며 “특히, 참전 영웅들에 대한 예우와 보답, 참전국과의 연대는 물론 대한민국을 지켜낸 유엔 참전의 역사를 미래 세대에 계승하는 것에 만전을 기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어진 헌정 공연은 유엔참전용사들에게 바치는 평화 다짐문을 보훈 아너스클럽 위원으로 활동 중인 설동민(메이드인피플 공동대표), 선호승(동신초등학교 교사), 캠벨 에이시아, 미래세대 대표 자격으로 김시연(부경대 해군 학군사관후보생(ROTC)) 학생이 낭독했다. 앨범 형식으로 특별 제작된 다짐문은 기념식에 참석한 유엔참전용사 12명에게 전달됐다. 이어 국방부 성악병과 라온소년소녀합창단의 헌정곡 ’시유 어게인(See You Again)’ 합창이 있었다. 행사 대미는 한국 공군 제53특수비행전대(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추모 비행으로 공활한 가을 하늘에 태극기를 수놓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공식 행사 전 유엔기념공원 캐나다 기념비와 참전용사 묘역에서는 캐나다 참전용사 추모 행사가 개최됐다. 고(故) 엘윈 굿윈(Elwin H. GOODWIN) 용사를 기리는 행사로서 생존한 여동생, 조카가 방한했다. 엘윈 굿윈 용사는 캐나다 육군 패트리샤 공주 경보병 연대 소속 이등병으로 참전하여 후크고지(Hill 187) 전투 등에 참가했으며 코만도 작전 중 1951년 10월 4일 향년 20세로 전사했다. 그의 아버지도 제1차 세계대전 참전했다. 추모 행사에는 타마라 모휘니(Tamara Mawhinne) 주한국 캐다나 대사, 데릭 맥컬리(Derek A. Macaulay) 유엔군사령부 부사령관(캐나다 육군 중장), 지노 크레티엥(Gino Chrétien) 주한국 캐나다 대사관 국방무관(캐나다 육군 대령), 앵거스 탑시(Angus Topshee) 캐나다 왕립해군 사령관(캐나다 해군 중장) 등 캐나다 관계자가 참석했고 한국에서는 김주용 기획조정실장을 비롯한 국가보훈부 직원들이 참석했다.

같은 시각 ‘무명용사’ 1위(位)의 안장식도 있었다. 안장자는 2010년 발굴됐다. 유엔군으로 추정됐지만 국적과 신분이 확인되지 않아 국방부 유해보관소에서 안치됐다. 2022년 국적 판정 심의위원회에서 유엔군 무명용사로 최종 판정됐다.

행사 후에는 태국군 참전용사 롯 아사나판 씨의 사후 안장식도 열렸다. 태국인으로는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첫 번째 용사다. 유엔기념공원에는 전쟁 당시 숨진 용사를 비롯해 고국으로 생환했다가 사후 이곳으로 돌아와 안정되기도 한다. 사후 안장은 2015년 프랑스 참전용사 레몽 베나르 씨를 시작으로 27명이 있었고, 아사나판 씨는 28번째다.

‘턴 투워드 부산’ 행사는 2007년 캐나다 참전용사 빈센트 커트니(Vincent Courtenay) 씨의 제안으로 시작돼 매년 열리고 있다. 부산 유엔기념공원에는 6·25전쟁 때 참전한 12개국의 참전용사 2천329명의 유해가 잠들어 있다. 정부는 2020년 11월 11일을 법정 기념일로 지정하면서 행사의 격을 높였다.

국가보훈부 관계자는 “6·25전쟁은 1945년 유엔 창설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유엔이라는 기치(旗幟)하에 전 세계가 힘을 모은, 처음이자 마지막인 전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매년 한국 정부 차원에서 행사를 주최하고 생존 참전용사, 유족, 후손 등을 매년 초청하여 감사와 존경을 표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