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영화 ‘국유 장기’, 맨해튼 이스트빌리지서 상영회
“마음 무겁지만 희망 담긴 영화…다들 알아야할 사건”
미국 뉴욕에서 중국의 강제 장기 적출을 조명한 영화가 상영돼 시민들에게 충격과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안겼다.
지난 9일 뉴욕 맨해튼 남동부 이스트빌리지의 독립영화관 엔젤리카 시네마에서는 중국계 감독 레이먼드 장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국유 장기(State Organ)’ 시사회가 열렸다. 이곳은 예술가들이 모인 소호와 더불어 다양한 문화와 아름다움, 뉴욕의 젊음을 대표하는 지역이다.
영화 제목인 ‘국유 장기’란 중국에서 볼 수 있는 국가 소유(국유) 기업인 국유은행, 국유농장 등에 빗댄 표현이다. 사람의 신체 장기마저 개인 소유가 될 수 없고 언제든 정권에 의해 ‘수확’당할 수 있는 공산주의 국가의 비극적 상황을 암시한다.
강제 장기 적출은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사람의 안구, 심장, 신장 등을 적출하는 참혹한 범죄다. 장기 기증은 철저한 자발성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하는 숭고한 행위이지만, 중국에서는 자발적 기증이 아닌 강제 적출로 장기를 조달한다는 사실이 지난 2000년대 중반 관련자들의 폭로로 알려지게 됐다.
자발적인 기증이 아닌 만큼, 폭력과 일방적 강요 심지어 인위적인 뇌사까지 동원된다. 국제 인권 단체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중국 전역에서는 공안, 사법당국 등 국가 권력기관이 감옥 내 양심수를 상대로 광범위한 강제 장기 적출을 시행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실화에 기반을 둔 이 영화는 지난 2000년 갑자기 실종된 가족을 찾는 두 가정의 여정을 담담한 어조로 추적한다.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찾으려 동분서주하다가 공산주의 정권이 자국민을 일종의 가축처럼 사육하며 거대한 장기 적출 농장과 같은 산업체를 구축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영화는 인권 활동가들이 ‘전대미문의 사악함’, ‘인류 최악의 범죄’라며 개탄한 강제 장기 적출 사건을 다루면서도 절망적 상황 앞에서 사랑과 희망을 잃지 않는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연대와 위로, 회복력을 보여주며 잔잔하면서도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중국에서 정권이 저지르고 있는 끔찍한 범죄를 늦게나마 알게 돼서 다행이라며 더 많은 사람이 이 사건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브루클린에 거주하는 의료계 종사자 나빌 하마티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중국에서 정권이 양심수들의 장기를 강제로 적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며 “자유로운 미국에 살게 된 것에 새삼 감사한다”고 충격과 해소감을 동시에 피력했다.
이어 “인류애를 말하고 싶다”며 “영화 속 두 가족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희망이 없다면 사람은 자포 포기하고 과거에 머물 것이다. 희망을 품고 계속 굳세게 걸어가는 것은 좋은 일”이라며 밝은 소감도 전했다.
하마티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사건을 알리겠다”며 “특정 국가와 민족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라 우리 인류 전체가 나서서 막아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와 함께 영화를 관람한 동생 마야는 “유익한 영화”라고 말했다. 그녀는 “영화를 보면서 이런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최소한 주변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우리는 더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여겼지만 그런 일은 계속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사람들이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이야기할수록, 그늘진 곳에서 벌어지는 이런 일이 더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지난 2000년대 초반 갑작스럽게 세계적인 원정 장기이식 메카로 떠올랐다. 중국의 다수 병원에서는 장기이식센터를 개소하고 자국은 물론 해외로부터 이식 수술 희망자들을 받기 시작했다.
중국 원정 장기이식을 알선하는 브로커들도 활개를 쳤다. 이들은 각국에서 정상적인 환경에서라면 수개월 수년씩 걸리는 이식수술 대기 기간이 중국에서는 며칠이면 해결된다고 선전했다.
수술 희망자로 위장한 인권단체 조사원이 직접 중국 병원 여러 곳에 전화를 걸어 문의한 결과, 병원 측에서 비정상적으로 짧은 기간 내에 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다고 장담했다.
이는 중국 공산당이 감옥에 갇힌 수감자를 ‘사람’이 아닌 ‘생체 장기 공급처’로 취급하기 때문이라는 게 인권단체들의 조사 결론이다. 이러한 수감자는 절대다수는 사형수가 아니었으며 심지어 범죄자조차 아니었다. 중국에서 금지한 신앙을 이유로 수감된 양심수가 대부분이었다.
2020년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중국조사위원회인 ‘차이나 트리뷰널(중국재판소)’은 1년 6개월의 조사와 심리 끝에 중국 정권이 수년간 양심수로부터 강제로 장기를 적출해 왔으며, 주요 피해자는 파룬궁 수련자였다고 “합리적 의심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결론 내렸다.
국제 유고전범재판소(ICTY) 검사로 활동했던 제프리 니스 영국 칙선변호사(QC)가 위원장을 맡고 의료 전문가와 인권 활동가 등이 참여한 위원회는 조사 활동의 공정성을 위해 재판 형태를 취했고 중국 측에서 출석해 변호하도록 요청했으나 중국 측은 응하지 않았다.
파룬궁은 1990년대 초반 중국에 일반에 공개됐으며 이후 큰 인기를 끌며 수천만 명 이상이 수련했던 중국의 심신 수련법이다. 태극권과 비슷한 운동과 명상법으로 구성됐으며 진실·선량·인내(眞善忍)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정식 명칭은 ‘파룬따파’이다.
뉴욕에서 사업체를 운영 중인 린 딜로렌조는 영화 상영이 끝난 후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감옥에서 장기 적출을 당하기 전 성고문을 당한 여자 교사의 사연에 깊은 슬픔과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했다.
딜로렌조는 “누가 이런 사람들의 장기를 구입하고 있는 것인가”라며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모두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이런 집단학살을 우리는 막아야 한다”고 했다.
미국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서 최고경영자(CEO)의 수석 보좌관으로 근무하는 케빈 디우스는 “슬프고 비극적인 일”이라며 이런 엄청난 사건이 지금까지도 중국은 물론 국제사회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기술과 미디어 발전의 어두운 이면이라고 지적했다.
디우스는 “오늘날, 모든 기술, 우리가 가진 모든 미디어를 통해 이런 일이 여전히 일어나고 숨겨질 수 있다”며 “(하지만)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고 사람들에게 알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일반적인 미디어와 다른 영화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시사회에서는 감독과 관객 간 대화의 시간도 마련됐다. 2015년 다른 작품으로 ‘피버디상’을 수상했던 중국계 감독 레이먼드 장은 “영화 공개 후 여러 위협을 받고 있다”며 지난 10월 대만 상영 기간 있었던 일을 소개했다.
장 감독은 “대만의 여러 영화관에서 영화를 상영했는데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위협을 받았다”며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폭탄은 없었고 위협 발신지를 추적한 결과 VPN을 통해 우회한 해외 IP 주소라는 것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테러 위협은 중국 측의 방해 공작으로 추정됐지만 장 감독은 영화를 촬영한 이유는 중국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나는 중국에서 태어나 지금은 해외에 있지만 여전히 그곳을 사랑한다”며 “나의 바람은 그곳 사람들이 더 안전한 환경에서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영화 ‘국유 장기’는 맨해튼 그리니치 빌리지의 시네마 빌리지에서 15일부터 상영된다. 국내 상영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